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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피직스(metaphysics)’라는 영어, ‘메타퓌지크(Metaphysik)’라는 독일어, ‘메타퓌시크(métaphysique)’라는 프랑스어의 번역어로서 ‘여태껏 동양에서만 통용된 형이상학(形而上學)이라는 꽤나 몽롱한 철학용어의 기원이나 어원이나 유래’를 언젠가부터 간간이 의심만 하던 게으르고 허랑한 죡변은 2016년에야 미적미적 끼적거린 모깃글(☞ 형이상학과 형이하학)에서 비로소 얼핏설핏 추정하여 암시했을 따름이다.
그래도 죡변은 미미하게나마 겸비한 꾀까다로운 성미대로 여태껏 형이상학의 기원이나 어원이나 유래를 찾겠답시고 띄엄띄엄 이러저리 기웃거려버릇해서 그런지 얼핏설핏한 추정의 타당성을 뒷받쳐줄 다음과 같은 사실을 기어이 발견해버렸다.
1880년에 일본 도쿄대학교(東京大學校) 철학과를 졸업하고 1881년에 일본 최초 철학사전이라고 인정된 《철학자휘(哲學字彙)》를 편찬한 이노우에 테츠지로(井上哲次郞, 1855~1944)는 1884년에 독일로 유학하여 철학을 공부하고 1890년에 귀국하여 “형이상학(形而上學)”이라는 번역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898년에 도쿄제국대학교(東京帝國大學校) 문과대학장을 역임한 테츠지로는 국가주의(일본주의)를 제창했다.
그러니까 독일에서 철학을 공부한 일본 철학자 이노우에 테츠지로가 메타피직스(메타퓌지크)를 일본어로 번역(왜역; 倭譯)하느라 고대 중국 유학자(儒學者) 공쯔(공자; 孔子, 서기전551~479)의 ‘《주역(周易; 역경; 易經)》 해설문(解說文) 〈계사전(繫辭傳)〉 상편(上篇) 우제12장(右第十二章)’에서 발견했을 “형이상자(形而上者)”의 ‘자(者)’를 뺀 자리에 ‘학(學)’을 끼워넣어 만든 신조어(新造語)가 바로 “형이상학”이었다.
그러므로 형이상학은 결국 근대 왜국어(倭國語)나 일본어였다.
그리고 “정신분석(☞ 참조)”이나 “악법도 법이다(☞ 참조)”처럼 왜역(倭驛)되거나 왜석(倭釋)되어 생겨난 이런 왜국어나 일본어가 됴션(조선)에나 한국에도 유입되어, 어쩌면 필시, 아무런 비판도 받지 않은 채로 무분별하게 사용되기 시작했을 것이고, 중국에도 그렇게 전달되어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급기야 “형이하학(形而下學)”이라는 더욱 몽롱하고 해괴한 용어마저 신조(新造)시켰을 것이다.
그런데 메타피직스(메타퓌지크; 메타퓌시크)를 몽롱하게 만든 이런 사연의 빌미는 이노우에 테츠지로의 왜역뿐만 아니라, 아래에 인용된 설명문 3건(▶◀표시)에서 암시되듯이, 메타피직스와 형이상학을 파생시킨 ‘메타퓌시카(metaphysika)’라는 그리스어의 이력에서도 감지될 수 있다.
첫째, 《브리태니커 백과사전(The Encyclopædia Britannica)》(제11판 제18권, 1911, pp. 224~225)에는 스코틀랜드 철학자 에드워드 케어드(Edward Caird, 1835~1908)의 다음과 같은 설명문이 수록되었다. 이 설명문에 언급된 “페리파토스학파(Peripatos學派)”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Aristotle, 서기전384~322)가 창시한 학파로서 “페리파테티코스(Peripatetikos학파; Peripatetic school), 소요학파(逍遙學派), 산책학파(散策學派), 산보학파(散步學派), 아리스토텔레스학파”라고 별칭된다. 이 학파의 명칭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운영한 학당(학원) 정원(안뜰)의 숲을 산책하듯이 거닐며 제자들을 가르쳤기 때문에 생겨났다’고 전래된다.
▶메타피직스(Metaphysics)와 메타피직(Metaphysic)이라는 영어들은 ‘자연물(自然物; things of nature), 자연(physis; 자연원리; 자연력自然力), 자연계(自然界; natural universe)’를 뜻하는 그리스어 ‘퓌시카(physika)’와 ‘다음(after; 뒤; 후속; 후편)’을 뜻하는 그리스어 ‘메타(meta)’의 합성어 ‘메타-퓌시카(meta-physika)’에서 유래했다.
페리파토스학파의 철학자 안드로니코스 호 로디오스(Andronikos ho Rhodios; 안드로니쿠스 로디우스Andronicus Rhodius; 로도스의 안드로니쿠스Andronicus of Rhodes, 서기전60년경에 주로 활동)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논저들을 집대성하면서 “자연학 논저들의 바로 뒷자리에” 배정한 논저에 ‘타 메타 타 퓌시카(ta meta ta physika; 자연학 후편)’라는 제목을 최초로 붙였다.
그 제목은 ‘자연을 넘어서기나 초월하기’라는 (‘메타’에는 결코 담길 수 없는) 근대적 의미를 표시하기보다는 오히려 ‘그 제목을 부여받은 논저가 제목대로 자연학 논저들의 “뒷자리에” 배정되었다’고 (독자에게) 알리려는 단순한 의도를 표시할 따름이었다. 그러므로 ‘철학의 제1원리들’을 다루는 분과나 분야를 지칭하는 그런 제목은 문헌학적 우연의 소치에 불과하다.
아리스토텔레스 본인이 설명했듯이, 그 논저의 주제는 “존재를 존재로 인식하여” 고찰하는 “제1철학(First Philosophy; 기초철학)”이나 “신학(Theology)”이었다. 이런 설명은 나중에 “존재학(Ontology; 존재론)”이라는 용어를 파생시켰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메타’의 의미가 오인된 탓에 ‘메타피직스’라는 용어는 다양하게 오용되었다.
예컨대, 중세 스콜라학자(Schola學者; Schoolman; 기독교신학자)들뿐만 아니라 17세기 영어권 작가들마저 이 용어를 초자연적인(supernatural) 것과 관련시켰고, 심지어 근대 철학자들은 이 용어의 초자연적 의미를 오히려 더욱 좁혀서 위험하리만치 막연하게 만들어버렸다.
이 용어가 최대의미를 적용받으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제1철학(기초철학)”과 (참된 지식은 과연 어떤 의미에서 존재할 수 있느냐는 문제에 답변하는) 지식이론을, 예컨대, 존재학(존재론)과 인식학(epistemology; 인식론)을, 한꺼번에 포함할 수 있다.
그런 한편에서 독일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라면 ‘메타퓌지크’는 “‘순수리성(순수이성; 純粹理性)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모든 것’의 체계적으로 정리된 목록에 불과한 것”(예컨대, 인식론)이라고 주장했을 것이다.
최초 ‘메타피지션들(metaphysicians)’은 존재의 본성(존재론)에 관심을 기울이며 다양한 현상들의 배후에 존재할 것이라고 추정한 통일성을 추구했다.
후대의 사상가들은 존재의 본성을 탐구하기보다는 오히려 존재론적 탐구의 전제로서 반드시 요구되는 지식의 본성을 더 열심히 탐구하고자 했다.◀
둘째, 스코틀랜드 연합자유교회 목회자·신학자 제임스 헤이스팅스(James Hastings, 1852~1922)가 편찬한 《종교·윤리학 백과사전(Encyclopaedia of religion and ethics)》(제8권, 1915, p. 594)에서는 스코틀랜드 출신 브리튼 철학자 존 스튜어트 맥켄지(John Stuart Mackenzie, 1860~1935)의 다음과 같은 의견이 목격된다.
▶메타피직스(metaphysics)라는 명사의 개념은 쉽사리 만족스럽게 정의될 수 없다.
이 명사는 본디 아리스토텔레스의 몇몇 논저에 할당된 순서만 단순히 지시하는 낱말이었을 따름이라서 메타피직스의 본성을 실제로 전혀 조명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명사가 암시하듯이, 메타피직스라고 총칭된 논저들의 주제는 ‘더 전문적인 (더 순수한 자연과학들뿐만 아니라 생명과학들마저 포함할 수 있는) 과학들이 반드시 먼저 논의되어야만 비로소 온당하게 논의될 수 있는 소주제(小主題)들’과 관련된다. … 메타피직스의 주제는 ‘지식과 실상(實相)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들’이다.◀
셋째, 스코틀랜드 문헌학자 제이스 머레이(James Murray, 1837~1915)가 편찬한 《역사원칙을 준수한 옥스퍼드 영어사전(A New English Dictionary on Historical Principles)》(Oxford, 1908, p. 386)에서는 “영어 메타피직스(metaphysics)와 라튬어(라티움어; Latium語; 라틴어) 메타퓌시카(metaphysica)”가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
▶‘제1철학(기초철학)이나 존재학(존재론)의 문제들’을 다룬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논저 13권을 총칭하는 ‘메타퓌시카’는 1세기부터 통용된 ‘자연학(피직스; Physics; 퓌시카; Physicka)의 후편(속편)’을 뜻하는 그리스어 ‘타 메타 타 퓌시카(ta meta ta physika)’의 준말 ‘타 메타퓌시카(ta metaphysika)’에서 유래했다.
‘타 퓌시카(ta physika)’가 아리스토텔레스의 특정한 논저만 단칭(單稱)하지 않고 ‘자연학(자연과학)의 문제들을 다룬 그의 논저들’을 총칭(總稱)하는 제목으로서 사용되었듯이, (그리고 1세기에 그의 논저들을 주해한 학자들이 설명했듯이) ‘메타퓌시카’는 여태껏 널리 인정된 순서대로 정렬된 그의 저작들 중에 《퓌시카(자연학)》의 뒷자리를 차지한 후속논저들의 총칭으로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 확실하다.
그런데도 ‘메타퓌시카’는 일찍부터 이런 후속논저들에서 고찰된 학문분야를 지칭하도록 사용되어서 그랬는지 ‘물상(物象)을 벗어나거나(넘어서거나) 자연을 초월하는 것들을 다루는 학문’을 뜻한다고 오해되기 시작했다.
심지어 그리스어 ‘메타(meta)’는 결코 ‘벗어난(넘어선; beyond)’을 뜻할 수 없고 ‘초월(선험; transcending)’을 뜻할 수 없는데도, 이 사실을 잘 아는 그리스 지식인들마저, 비록 드물게나마, 이런 오해를 범했다.
하물며 중세 유럽 스콜라학파(Schola學派; Scholasticism; 스콜라스티코스scholastikos학파; 스콜라스티쿠스scholasticus학파)의 라튬어권(라티움語圈; 라틴어권)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어쩌면, ‘메타(meta)’와 ‘트란스(trans)’라는 두 접두사가 다양한 낱말들과 합성되어도 서로 동등한 의미를 나타낸다고 인식되어서 그랬는지, 이런 오해가 보편화되었다.
영어권에도 파급된 이런 오해의 영향은 형용사 ‘메타피지컬(metaphysical)’을 ‘초자연적(supernatural)’이나 ‘자연초월적(transnatural)’ 같은 형용사들의 동의어로 인식하여 설명한 관습에서 발견되는데, 이 관습은 17세기까지 비일비재하게 준행(遵行)되었다.◀
이런 사연들이 감안되면, 메타퓌시카의 창시자는 안드로니코스였으며 형이상학의 창시자는 이노우에 테츠지로였다고 방평(傍評)될 수 있을뿐더러, 특히 테츠지로의 형이상학은 메타퓌시카를 두 번이나 오인한, 그러니까 겹치기로 오해한, 다소 얄궂은 오판의 소치였다고 잠평(暫評)될 수 있다.
비록 앞에서 초들린 죡변의 허름한 모깃글에서는, 형이상학을 어떻게든 티끌만치라도 더 정확한 용어로써 대체하고픈 죡변의 섣부른 욕심 탓에, ‘메타자연학(Meta自然學), 메타물리학(Meta物理學), “후자연학(後自然學), 후속물리학(後續物理學), 본질학(本質學), 무형학(無形學), 정신학(精神學)” 따위들이 후루룩 뚝딱 천거되었다.
그러나 이제야 얼핏하게나마 조명된 형이상학의 얄궂은 기원과 유래뿐 아니라 메타피직스(메타퓌지크; 데타퓌시크)의 얄궂은 사연들은 이토록 몽롱한 두 용어를 “기초철학(基礎哲學)”이라는 용어로 대체시킬 만한 효력을 (얼마나?) 발휘할 수 있을 듯이 보인다.
그렇다면 여기서 “제1철학”이나 “존재학”이 아니라 왜 하필이면 “기초철학”이 형이상학을 대체할 “제1후보”로서 거명될까?
한국에서 여태껏 통용·통념된 “제1(제일; 第一)”이라는 접두사의 의미는 이런 의문의 답을 암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온톨로지(ontology)”가 여태껏 “존재학”이 아닌 “존재론”이라고 번역되어 통용·통념되었다는 사실도 이런 의문의 답을 암시할 수 있을 것이다.
하물며 한국에서 철학이나 인문학을 전공한다고 자처하거나 타처되는 이른바 ‘지식인들이나 학자들’부터 이미 그런 통념들에 푹 젓담겨 찌들어버렸을 낮잖을 확률도 이런 의문의 답을 암시할 수 있을 것이다.
요컨대, 게으르고 얄망궂은 죡변의 미적거리는 관점에서도, 이런 기원, 어원, 유래, 사연과 함께 아리스토텔레스의 초의(初意)마저 감안되면, 형이상학이라는 몽롱한 낱말을 대신할 “제1후보”는 “기초철학”이라고 잠평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래도 이렇게 얄망궂은 모깃글이 “무려, 적어도, 백서른 해 전부터 여태껏 통용되면서 딱딱하게 경직되버린 왜래어(倭來語) 하나 바꾸자고 얼마나 많은 비용과 시간을 소모해야겠으며 얼마나 성가신 혼란이나 분란을 겪어야겠느냐?”는 히스테리반응을 유발할 확률은 영영 영이 아닐 것이라면, 근래에 끼적힌 다른 모깃글(☞ 해문력)도 슬그머니 암시되거나 참조될 만하리라.
(2022.04.14.08:19.)
아랫그림은 독일 화가 구스타프 아돌프 슈판겐베르크(Gustav Adolph Spangenberg, 1828~1891)의 1888년작 프레스코(fresco) 〈아리스토텔레스 학당(Die Schule des Aristoteles)〉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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