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6.12. 스물네 번째 주. 설교문
묵상 우리는 하나님 앞에 모두 장님입니다.(3장)
신앙고백
찬송 23 만 입이 내게 있으면
기도 방금숙 권사(549)
성경말씀 마가복음 14:43~52
찬양 샤론 중창단
설교 마가의 슬픔
찬송 474 이 세상에 근심된 일이 많고 1295 그는 나를 만졌네
광고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위해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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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CM 가수 선발 대회(82일 차 기도회)
찬송 278 사랑하는 주님 앞에
축도 아프니까 그만 하세요. 주님도 아프고, 나도 아프잖아요.
목사님이 태어난 산골 마을은 6.25 때 인민군이 오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교회를 가려면 30분 내외를 걸어가야 했고
버스를 타려고 해도 30분은 걸어가야 했습니다.
산골 마을에 점쟁이 집, 절까지 있어서 미신에 찌들어 살았던 마을입니다.
이런 오지 마을로 우리 어머니께서 성경책 한 권 들고 시집을 왔습니다.
당시 우리 아버님은 초등학교 선생님이셨습니다.
물론 아버님 가정도 미신에 찌들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어릴 적에 두드러기가 나면 할아버지께서 잿간으로 데려가
저를 발가벗겨 놓고 빗자루에 재를 묻혀 제 몸에 바르며 주술을 했습니다.
동네에서 좀 떨어진 곳에는 절이 있었는데 그 절의 중은 아내가 있었습니다.
중의 아내가 돈이 궁할 때면 우리 어머니께 찾아와서 돈을 빌려 가곤 했습니다.
중의 아내가 얼마나 사나웠는지
아들이 친구들에게 조롱을 받기라도 하면 달려와서 사납게 꾸짖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도 중이 되었습니다.
아버지 대를 이어 결혼도 했습니다.
옛날에 존경을 받는 유명한 스님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가까운 이웃 마을에 처녀가 임신을 했습니다.
그래서 질겁을 한 처녀 아버지가 딸에게 혼쭐을 내면서
도대체 누구의 자식이냐? 캐물었습니다.
그러자 당황한 처녀는 아버지가 존경하는 스님 아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화가 난 아버지는 딸 손을 끌고 스님께 달려갔습니다.
야 이놈아, 네가 스님이냐?
그동안 스님이라고 너 이놈을 얼마나 존경했는데
어찌하여 우리 딸에게 몹쓸 짓을 했느냐?
이 죽일 놈아!
그런데 그 고승은 전혀 대꾸를 하지 않고 묵묵히 듣고만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습니다.
그래서 스님은 모든 사람들의 비난의 대상이 되었고
제자들까지도 스님 곁을 떠나버렸습니다.
그리고 10개월이 지나서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그러자 딸의 아버지는 아이를 보듬고 스님에게 갔습니다.
야 이놈아, 네 새끼니 네가 키워라.
그리고 아이를 스님께 주고 가버렸습니다.
43절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곧 열둘 중의 하나인 유다가 왔는데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에게서 파송된 무리가
검과 뭉치를가지고 그와 함께 하였더라
44절, 예수를 파는자가 이미 그들과 군호를 짜 이르되
내가 입맞추는 자가 그이니 그를 잡아 단단히 끌어가라 하였는지라
45절, 이에 와서 곧 예수께 나아와 랍비여 하고 입을 맞추니
46절, 그들이 예수께 손을 대어 잡거늘
47절, 곁에 서 있는 자 중의 한 사람이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드리니라
48절,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 같이 검과 뭉치를 가지고 나를 잡으려 나왔느냐
49절, 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으면서 가르쳤으되
너희가 나를 잡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이는 성경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
50절,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그리고 얼마 만에 처녀에게 임신을 시킨 물레방앗간 청년이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딸의 아버지는 스님께 달려가서 사죄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스님께 물었습니다.
스님, 어찌하여 그 모진 오해를 받으면서도 한마디 말도 없이 묵묵하였습니까?
스님은 그 물음에도
이렇다 저렇다 말 한마디도 하지 않고 묵묵히 듣고만 있었습니다.
43절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곧 열둘 중의 하나인 유다가 왔는데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에게서 파송된 무리가
검과 뭉치를가지고 그와 함께 하였더라
44절, 예수를 파는자가 이미 그들과 군호를 짜 이르되
내가 입맞추는 자가 그이니 그를 잡아 단단히 끌어가라 하였는지라
45절, 이에 와서 곧 예수께 나아와 랍비여 하고 입을 맞추니
46절, 그들이 예수께 손을 대어 잡거늘
47절, 곁에 서 있는 자 중의 한 사람이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드리니라.
엊그제 집에 오는 길에 우리 요양원에 잠시 계셨던 가정을 방문했습니다.
사람이 사는 집조차 구별이 되지 않는 허름한 집에 삐드득 문을 열었더니
중풍을 앓는 권사님이 내복 차림으로 설거지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를 보더니 깜짝 놀라며 목사님이 어떤 일로 오셨냐고?
그래서 지나다가 아직도 살고 계신지 궁금했습니다.
기초수급을 받으며 근근이 사시는 권사님이신데 아들이 목회학 박사학위 받으려고
천만 원이 필요하다는 말에 주머니돈 쌈짓돈 모아둔 돈을 보냈다는 것입니다.
목회학 박사면 뭐하겠습니까? 인간학부터 공부해야 지요.
가정을 이룬 40이 넘은 목사 아들이
아직까지도 중풍에 오그라진 손과 발로 걷는 어머니께 돈을 타다 쓴다는 것이
어찌 사람이고 목사겠습니까?
그래서 목사님이 선뜻 20만 원을 드리고 나왔습니다.
무엇이 바른 인생 살인지 모를 일입니다.
48절입니다.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 같이 검과 뭉치를 가지고 나를 잡으려 나왔느냐
49절, 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으면서 가르쳤으되
너희가 나를 잡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이는 성경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
50절,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도대체 도망친 놈들이 누구겠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사는 세상은 좋을 때뿐입니다.
눈물도 납니다.
더 이상 할 말도 없습니다.
도망친 놈들에게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그런데 목사님도 공범입니다.
믿음을
사랑을
신뢰를
정황에 따라서 헌신짝 버리듯 팽개쳐 버리기 때문입니다.
요즘 목사님들도 다 이렇습니다.
그러니 우리 성도님들도 비겁하기는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달면 삼키고 쓰면 벧어 버리잖습니까?
그리고 내 배만 부르면 됩니다.
요즘 평균 정년이 51세랍니다.
정년 하면 도서관도 가면서 3년은 버틴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면 아내에게 밥 세끼 얻어먹기도 눈치 보입니다.
그래서 주부들이 모여 하는 말이
천덕꾸러기 남편이 제발 집에 없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80이 넘어서 반드시 후회하게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목사님은 70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후회합니다.
기회가 왔을 때 머뭇거렸던 일.
쓸데없는 걱정만 하다가 건강까지 잃어버린 일
그리고 인생이 길다고 착각하다가
제 잘난 멋에 고개 쳐들고 우쭐거리고 용서하지 못하고 용서받지도 못하고
옹졸 옹졸 살다가 친구 한 명 없는 고독한 인생
그러다 벗과 함께 여행도 한 번 못 가고 이렇게 늙어 버렸습니다.
51절입니다.
한 청년이 벗은 몸에 베 홑이불을 두르고 예수를 따라가다가
무리에게 잡히매
52절, 베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하니라.
이 광경을 상상만 해도 웃기는 코미디입니다.
아니 비겁하고 추악합니다.
얼마나 급했으면 발가벗은 몸으로 도망쳤겠습니까?
그런데 이렇게 비겁한 놈이 누구겠습니까?
아마 마가복음은 누구? 라 밝히지 않았지만 마가 본인으로 추정을 합니다.
마가의 이런 성격을 어림잡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15장 37절입니다.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38절,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함께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그래서 벌거벗은 알몸으로 도망친 마가 스스로의 부끄러운 고백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런 면에서 마가는 그래도 양심적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목사님도 예배를 준비할 때마다 느끼는 마가의 슬픔이 있습니다.
그래서 설교는 목사님의 독백이고 고백이기도 합니다.
설교를 할 때마다
목사님 자신이 벌거벗은 임금님인 듯 부끄럽습니다.
요즘 윤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가 명품 옷 입고 나올 때마다 화제입니다.
김건희 여사가 신고 나오는 명품 신발도 몇백만 원짜리랍니다.
옛날에도 이렇게 명품 옷 입고 뽐내기 좋아하는 임금님이 살았습니다.
나라를 돌보는 일보다 명품 옷 입기를 더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임금님은 거울 앞에서 떠날 줄 몰랐습니다.
신하들은 임금님 앞에서는 아주 멋지십니다.
사바사바 칭찬을 했지만 돌아서면 끼득끼득거렸습니다.
어느 날 이 소식을 들은 사기꾼 두 명이 궁궐로 찾아왔습니다.
임금님, 저희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옷감으로 명품 옷을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이 명품 옷감은 바보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신비한 옷감입니다.
임금님은 귀가 솔깃했습니다.
그래서 임금님은 신기한 옷을 입고 거리를 행진하고 싶었습니다.
그럼 당장 옷을 만들어라.
임금님은 사기꾼들에게 돈도 많이 주었습니다.
두 사기꾼은 베틀을 놓고 옷감을 짜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베틀 위에는 아무것도 놓여 있지 않았습니다.
밤늦도록 빈 베틀에 앉아 열심히 베 짜는 시늉만 했습니다.
며칠이 지나자 궁금한 임금님은 믿을 만한 신하를 보내서 알아봤습니다.
임금님 심부름을 온 늙은 신하는 눈앞이 아찔했습니다.
명품 옷감은커녕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두 사기꾼은 완성된 옷을 임금님께 보여 드렸습니다.
그런데 임금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바보라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았습니다.
두 사기꾼은 보이지 않는 옷을 임금님께 입혀 주는 척했습니다.
임금님도 몸을 돌려 거울을 보는 척했습니다.
임금님이 사기꾼들이 만들어 준 명품 옷을 입은 모습을 본 신하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임금님이 걸친 명품 옷은 실오라기 하나 없는 가짜 옷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임금님은 명품 옷을 입은 것이 아니라 벌거벗은 알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하들도 바보라는 말을 들을까 봐 모두 거짓말을 했습니다.
임금님 참 잘 어울리십니다.
드디어 임금님의 행진이 시작되었습니다.
길가에 나온 사람들도 모두 임금님의 옷을 칭찬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한 어린이가 외쳤습니다.
벌거벗은 임금님이다!
어린이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그제야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벌거숭이 임금님, 임금님이 벌거벗었다!
이 벌거숭이 임금님 이야기가 바로 우리 윤석렬 정부는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벌거숭이 임금님은 바로 우리입니다.
그리고 목사입니다.
모두가 거짓된 세상,
모두가 짝퉁인 세상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목사님은 설교를 할 때마다 벌거숭이 임금님입니다.
51절입니다.
한 청년이 벗은 몸에 베 홑이불을 두르고 예수를 따라가다가
무리에게 잡히매
52절, 베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하니라.
이러할지라도 예수님은 자기 몸을 내어 주었습니다.
44절입니다.
예수를 파는 자가 이미 그들과 군호를 짜 이르되
내가 입 맞추는 자가 그이니 그를 잡아 단단히 끌어가라 하였는지라
45절, 이에 와서 곧 예수께 나아와 랍비여 하고 입을 맞추니
참으로 슬픈 광경입니다.
사랑하는 제자가 예수님을 팔아먹는 광경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몹쓸 슬프고 슬픈 광경이 오늘의 복음입니다.
알면서도 예수님 스스로 몸을 내어 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십자가 사랑입니다.
로마서 4장 25절입니다.
예수는 우리가 범죄 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