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이한 아침
(이진옥)
알록달록 울음들이 긴 몸을 꼬며 강물처럼 기어가고
검은 양복 입은 너구리들이 촐싹거리며 뛰어가는
노을이 노란 불을 환하게 밝힌 아침
인도에 모여 부글부글 끓고 있는 한 무리의 구더기를 보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혹은 일어나고 있는지 물어봤지만
내 목소리는 그들이 끓이고 있는 가마솥에 떨어지자
흔적도 없이 녹아버리고 말았다
구더기의 입안에 갇혀있던 거품이 뛰어나오며 소리쳤다
여왕 너구리께서 오늘 새벽 심장발작을 일으켜 서거했다고
숲에서 아침을 열어야 할 새들이 아파트 지붕 위에 모여 앉아
너구리들이, 울음을 끌고 가느라 잠시 벗어놓은 웃음을
냉큼 가져다 가면처럼 얼굴에 쓰고 슬프게 웃고 있었다
잠에서 깨어 난 아이들은 아파트 침실에서 자고 있는
빈 잠옷을 발견하고 기쁘게 울기 시작했다
어찌나 기쁘게 울고 있는지 나도 따라 울고 싶었지만
지붕 위에서 슬프게 웃고 있는 새들 생각에 울 수가 없었다
거실에서 오십 인치 티브이가 커다란 입을 벌리고 행진곡을 부르는
사이 아나운서의 기쁨에 겨운 멘트가 브라운관에 미끄러졌다
너구리 여왕께서 드디어 요단강을 무사히 건너셨습니다
아이들과 나는 서로 곁눈질하다가 결국 박수로 화답했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될 것 같아서)
새들이 쓰고 있던 웃음을 던지고 말없이 숲으로 날아갔다
지금 날아가서 어쩌자는 건지, 아침을 열기엔 늦은 시간인데
지루한 혹은 뻔한
(이진옥)
영화는 재미있었나요
평소에 당신이 섹시하다는 여배우가 나오는 영화였죠
당신이 그 여배우를 입에 담을 때 입가에 고이는 침을 보며
어쩌면 당신은 촉촉한 남자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영화 속 남녀 주인공이 서로의 혀를 몇 개째인가
뜯어 먹는 장면을 보며
사랑은 상대를 빼앗아 자기를 만드는 것이라는
당신 말이 맞을 수도 있겠다는 따분한 생각을 하는데
동굴 같은 침실에 작은 창 하나 내어달라는 여자
매일 침대 다리만 고치고 있는 남자
그가 두드리는 망치에 놀란 먼지가
허겁지겁 침대 위를 뛰어다닐 때
여자가 매트리스로 남아 버리지 않을까 조바심이 났어요
나는 당신의 손가락 사이에 끼인 팝콘을 빼 먹으며,
뻑뻑한 팝콘이 권하는 콜라를 마시며,
잠시 여배우를 어금니 안에 가두어두었어요
콜라의 이름은 k양이었는데 여배우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
난 너무 목이 말랐거든요
영화가 결말을 향해 헐떡일 때쯤
남자배우의 얼굴에 걸린 소화불량이
이제까지 뜯어먹은 혀를 왈칵 내뱉는 것
여배우가 얼굴에 붙어있던 질긴 미소를
씹지도 않고 꿀꺽 삼키는 것
콜라와 섞인 팝콘이 울컥 내 속을 뒤집는 것과 같이
왜, 항상 마지막은 비릿하게 목젖이 갈라져야 하는지
그런데 말이지요 당신,
사랑이 상대를 빼앗아 자기를 만드는 것, 맞기는 한가요
**이진옥: 경북 안동 출생. 2010년《예술가》로 등단.
(2013년 <시와미학>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