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에게 버림 받은 상처 하느님 사랑으로 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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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소년들의 친구 살레시오 수녀들. 청소년이 있는 곳에는 살레시오 수녀가 있다. |
열다섯 살 다슬이는 어느 날 밤 더 이상 못 참겠다며 잠옷 바람으로 원장 수녀를 찾아가
"지금 당장 센터를 나가겠다"고 선언했다.
다슬이는 대학교수인 아버지가 있지만 엄마가 없는 게 부끄러워 무수히 방황했다.
다슬이는 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살레시오 수녀회가 운영하는 '마자렐로 센터'에 맡겨졌다.
첫날부터 '배 째라' 식으로 말썽을 피우던 다슬이는 눈에 불꽃을 튀기며 무작정 나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잠자코 듣고만 있던 원장 수녀는 다슬이의 잠옷 단추가 금방 떨어질 것처럼
덜렁덜렁 매달려 있는 것을 보고 말했다.
"다슬아, 단추가 떨어졌구나. 벗어주렴. 내가 꿰매줄게."
원장 수녀는 다슬이에게 잠옷을 건네받아 정성들여 꿰맸다. 결국 다슬이는 눈물, 콧물을
흘리며 울먹였다.
"수녀님! 저, 안 나갈래요. 그냥…살래요. 엉엉." (김인숙 수녀 글 「너는 젊다는 이유
하나로 사랑받기에 충분하다」에서 발췌) # 소녀들이 새 삶을 시작하는 집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살레시오 수녀회 관구관을 찾았을 때 가장 먼저 기자를 안내한
곳이 '마자렐로 센터'(원장 이정숙 수녀)다.
'마자렐로 센터'는 청소년 직업훈련 생활시설이다. 수녀 엄마 8명이 아동상담소를 통해
보호 위탁된 아이들, 잘못을 저질러 법원에서 이른바 '6호' 처분을 받은 10대 소녀들을
돌보고 있다. 더 이상 부모에게 교육을 맡기기는 어렵고 소년원에 보내기에는 경미한
범죄를 저지른 소년범들이 6호 처분을 받는다.
센터 내부는 밝고 화사한 느낌이다. 도서관처럼 손만 뻗으면 책을 잡을 수 있게
교실과 복도, 거실 곳곳에 책장이 자리 잡고 있다. 쉬는 시간이라 소녀들은 책이
빼곡한 책장 앞에서 독서에 열중하거나, 교실에서 미용기술을 연습하거나,
소파에 누워 휴식을 취하는 등 제각각이다. 외출과 휴대전화 사용이 제한된 것
말고는 생활이 비교적 자유롭다.
수녀들은 소녀들과 24시간 동고동락하며 때로는 엄마처럼, 때로는 언니처럼
상처 입은 마음을 다독여 준다. 한때 방황하느라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한
소녀들은 이곳에서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커피 끓이는 법과 미용기술 등을 배운다.
공부와 담을 쌓고 살던 아이들이 한두 달 만에 중졸과 고졸 검정고시를 연달아
합격하고, 바리스타 및 네일아트 자격증까지 따내며 하루하루 달라져 가는
모습에 수녀들은 보람을 얻는다.
물론 철없는 소녀들 때문에 겪는 수녀들 마음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외출했다가 끝내 돌아오지 않거나 입에 담기 어려운 욕설을 퍼붓기도 한다.
감수성이 예민한 사춘기인데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상처를 입은 아이들이기에,
수녀들이 아무리 사랑을 쏟아 부어도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수녀들은 사회와 가족에게 외면당한 어린 소녀들을 품어 안는다.
이정숙(마리아 아순타) 원장 수녀는 "교육의 가능성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며
"그들 스스로 '나'란 존재가 세상에서 제일 소중하다는 것을 느끼게 하려고 노력한다"
고 말했다.
"혈육에게 버림받은 상처는 하느님 사랑으로만 치료할 수 있어요. 부모 사랑이
그리운 아이들 마음을 모두 채워줄 수는 없지만 하느님 사랑으로 아이들 상처가
치유되길 기도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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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 살레시오 초등학교 어린이들을 안아주며 사랑스런 표정을 짓고 있는 살레시오 수녀. |
#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게 해줘야 청소년을 사랑하는 것만으로 충분치 않다. 그들이 진정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게
해야 한다. 이것이 '청소년들의 아버지요 스승'인 돈 보스코 성인이 지향한 예방교육
정신이다. 살레시오 수녀들은 결손가정 청소년들과 가정을 이뤄 살면서 그들 역시
사랑 받고 있음을 것을 느끼게 해 준다. 현재 서울ㆍ수원ㆍ부산ㆍ대전ㆍ광주에
있는 가정 공동체 '나자렛 집'이 그런 곳이다. 이밖에도 가정폭력ㆍ성매매 피해
소녀들의 자활과 다문화 가정 청소년들의 복지를 위해 헌신하고 있다.
수녀회 홍보 담당 김영희(마리아) 수녀가 다음으로 안내한 살레시오 사회교육
문화원 건물 내에는 우아청 청소년 영성의 집, 마자렐로 여성학교, 다문화 한글
교실, 아동복지센터, 독서미디어 교실, 상담실 등 청소년과 부모를 위한 다양한
교육시설이 자리 잡고 있다.
또 옆에는 유아교육시설로서는 비교적 큰 성미유치원(정원 300명)이 있다.
김 수녀는 "수녀들은 가난하게 살아도 아이들을 위한 투자는 아끼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청소년이 있는 곳에는 살레시오 수녀가 있다. 수녀회는 이밖에도 전국의
청소년수련원, 청소년문화센터, 청소년활동진흥센터, 평생교육원 등에서
청소년들이 올바른 가치관을 지닌 건강한 인격으로 성장하도록 돕는다.
서영호 기자 amotu@pbc.co.kr
▨ 수도회 영성과 역사 "청소년들을 사랑하는 것만으로 부족하다. 그들이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절실히 느낄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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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요한 보스코 |
그리스도교 정신에 따른 참 교육자로 청소년 교육에 큰 획을 그은 요한
보스코(1815~1888) 성인의 영성을 집약한 이 말은 그가 설립한 살레시오
수도회와 살레시오 수녀회의 정신과 활동에서 실현되고 있다.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태어난 돈 보스코는 아홉 살 때 꿈에서 수많은 소년들
무리를 보았고 그들을 온유함으로 성화시키라는 계시를 받았다.
1841년 사제품을 받은 그는 꿈에서 계시한 대로 일생을 청소년들을 위해 헌신했다.
돈 보스코는 강요와 체벌 대신 오직 사랑으로 아이들을 대했다.
즉 그의 교육 이념은 하느님 사랑으로 청소년들이 사랑을 느끼게 함으로써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사전에 예방 지도를 하는 교육 방법이었다.
돈 보스코는 프란치스코 드 살(St. Francis de sales, 1567~1622) 성인에게 느낀
친절과 온유와 겸손을 기본 원리로 삼아 자신이 세운 공동체를 '살레시오회'라고
명명했다.
"무엇인가를 당장 할 것."
돈 보스코의 영성 중 '당장'이라는 말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예수 그리스도가 부르자 모든 것을 버리고 즉시 예수님을 따른 제자들처럼 비참한
상황에 있는 청소년들을 위해 잠시도 지체하지 말고 자신을 투신하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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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녀 마리아 마자렐로 |
살레시오 수녀회를 공동 설립한 마리아 도미니카 마자렐로(1831~1881) 성녀는
돈 보스코를 만나기 전부터 양재소를 열어 어려운 처지에 있는 소녀들에게 바느질을
가르치며 바른 길로 인도하고 있었다.
돈 보스코를 만난 성녀는 '너에게 소녀들을 맡긴다'는 부르심에 순응하며 그의
영성을 여성적 환경 안에서 실현하고자 1872년 8월 5일 수녀회를 설립했다.
'청소년을 위한 모든 일은 성모님 도움으로 가능하다'고 강조한 돈 보스코는 수녀회를
'도움이신 마리아의 딸회'라고 지었으나 오늘날에는 살레시오 수녀회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한국에서의 활동은 1957년 4월 일본관구에서 회원 5명이 진출하면서 시작됐다.
이어 광주 살레시오 여자중학교(1958)와 여자고등학교(1961)ㆍ초등학교(1962)를
비롯한 학교와 주일학교를 중심으로 청소년 교육의 돛을 펼친 수녀회는 서울
마자렐로센터(1971)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가난한 근로 청소년들과 결손 가정
소녀들을 위한 복지와 교육에 힘썼다.
2000년대 이후에는 이주민 여성과 다문화 가정 자녀들을 위한 사도직에 나서
현재 성북구 다문화지원센터, 베들레헴 어린이집, 이주여성 디딤터 등을 운영하고
있다. 또 1983년 에티오피아에 첫 해외선교사를 파견한 이래 아프리카 가봉, 앙골라,
케냐, 토고를 비롯해 중국과 몽골 등에서도 살레시안의 교육사명을 실현하고 있다.
현재 전 세계 92개국에 1만3500여 명 살레시오 수녀들이 퍼져 있으며, 한국 관구
에서는 전국 30여 개 분원에서 250여 명 회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서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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