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시 「수화기 속의 여자」로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의 주목을 받았던 이명윤의 첫 시집이 출간되었다. 시인은 이 시집을 통해 소외와 분열의 일상을 살아가는 인간 군상들을 섬뜩하리만치 섬세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명윤이 그려낸 우리 시대의 풍경은 자본주의의 가치법칙에서 소외된 곳에서 펼쳐지고, 이 사회의 변방으로 내몰린 인간들의 삶은 ‘상습침수지역’ 같은 비일상적인 공간에서 전개된다. 그곳에서의 삶은 “정착할 수 없는 날들”(「꽃게여자」)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다. 그러나 시집 『수화기 속의 여자』는 “봄은 모든 곳에서 피어날 권리가 있다”(「풀 2」)는 선언처럼 비판보다는 긍정, 절망을 넘어서는 새로운 모색이다.
일상에서 건져 올려낸 우리 시대의 음화陰畵
이명윤의 시는 ‘일상’에서 출발한다. 그의 시에서 ‘일상’은 그저 반복되는 권태의 시간이 아니라, 매순간 경험하는 상처(傷)의 시간이다. 그의 시편에서 삶의 풍경들은 자본주의의 가치법칙에서 소외된 곳에서 펼쳐지고, 이 사회의 변방으로 내몰린 인간들의 삶은 ‘상습침수지역’ 같은 비일상적인 공간에서 전개된다. 그곳에서의 삶은 “정착할 수 없는 날들”(「꽃게여자」)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다.
이명윤의 시에 등장하는 인간 군상들의 삶은 가파르고 고되다. 세 아이의 엄마이지만 밤이면 ‘미스 홍’으로 불리는 여자(「꽃게여자」), 질서와 권위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자행된 국가폭력의 희생자 “민방위 17년차 김길덕 씨”(「민방위 대원 김길덕 씨」), 근무 도중 척추를 다쳤으나 산재 판정도 받지 못해 옛 동료들을 찾아다니며 살아가는 사내(「부탁해, 라는 구름」),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가야 하는 “음지에 사는 눈치들”(「눈치」), 전화를 걸어야 사는 여자와 그 전화를 끊어야 하는 남자(「수화기 속의 여자」), 밤마다 매춘의 대상을 찾아나서는 열일곱의 소녀(「방울토마토」)…….
며칠 전 어시장 좌판, 큼직한 날개를 펼치고 엎드려 있던
더 할 말 없다는 듯 아랫배에 입을 숨기고 있던 가오리,
버스가 서지 않는 오지의 지명처럼 쓸쓸히 지나쳤던 그때 그
가-오-里,
-「날아라 가오리」부분
시인은 우리 사회의 낮은 곳에서 한 시대의 음화(陰畵)들을 건져 올린다. 화자는 자갈치역 지하도에서 납작 엎드린 채 살아가는 한 생과 마주한다. 그리고 시의 마지막, 생선가게 여자가 가오리의 날개를 자르는 장면에서 우리는 잠시 동안의 전율을 경험한다. 세상의 법칙은 “날아라 가오리”라는 시인의 바람을 비웃기라도 하듯 가오리의 날개를 절단한다. 시인은 항상 낮은 곳, 변두리의 삶에 시선을 던지고 있지만, 인간적 위로나 근거 없는 희망에 기대지 않은 채 현실을 직시한다.
‘불안과 공포’라는 도시의 표정들
이명윤의 시에서 도시는 불안과 공포의 장소이다. 또한 도시는 가난한 삶들이 더욱 가난하게 되는 불행의 공간이면서, 그 불행 속에서나마 비루한 일상을 이어나갈 수밖에 없는 삶의 공간이다. ‘공포’와 ‘불안’은 도시의 표정이다. 이 공포와 불안의 심리 상태는 도시에 거주하는 인간들에게, 우리 모두에게, 일상적으로 경험된다.
은행에서 목돈을 찾아 나오는데
누군가 뒤를 밟는 느낌이 있었다
불안은
밤색 모자를 눌러쓰고
봄날에 어울리지 않는 점퍼를 걸쳤으며
가슴은 뭔가로 부풀어 있었다
-「불안」 부분
화자는 ‘목돈’을 찾으면서부터 ‘불안’에 시달린다. 그러므로 불안은 부재, 즉 없음에 대해 느끼는 결핍감이 아니라 현존하는 무엇이 불현 듯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것에서 촉발되는 심리이다. 우리의 경험이 증명하듯이, 이러한 이상심리는 화자만의 특별한 경험이 아니라는 점에서 시대적인 징후이다. 한편 「위험한 골목」에서는 ‘구멍’ 이미지를 통해 도시적 삶의 암울함을 타전한다. 그러나 자본이 지배하는 일상에서 이 공포와 불안으로부터의 탈출구는 존재하지 않는다. 자동차가 고양이를 먹고, 스승이 제자의 치마를, 어린 소녀를, 수험생을, 남편을, 신용불량자를 삼키는 곳, 시인은 그 세계를 “참혹한 도시”(「적색경보」)라고 명명한다.
그러나 시집 『수화기 속의 여자』는 ‘비판’보다는 ‘긍정’, 도시적 일상보다는 그것을 넘어서는 새로운 모색이다. 그렇다. “봄은 모든 곳에서 피어날 권리가 있다”(「풀 2」). “해마다 망각을 찢고 불쑥 불쑥 세상을 겨누는/ 저 붉은 총구”(「동백」) 같은 ‘동백꽃’이나 “그래 뿔이었다/ 뿔이 힘이었다”(「지게」)에서 ‘뿔’의 형상은 그 긍정과 모색의 환유라고 할 수 있다.
저자 소개
이명윤
1968년 경남 통영에서 태어나 부산대 수학과를 중퇴했다. 2006년 전태일문학상에 「수화기 속의 여자」 외 6편이 당선되었으며 2007년 계간 시안 봄호에 「돌 하나를 집어 드니」 외 4편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수주문학상>, <민들레문학상>, <구상솟대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시마을’, ‘빈터’, ‘리얼리스트100’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목차 안내
5_ 시인의 말
1부 돌 하나를 집어 드니
13_ 돌 하나를 집어 드니
14_ 손맛
16_ 변소를 화장실로 부르기 시작했을 때
18_ 고둥
20_ 능숙한 수리공
22_ 라디오 여왕
24_ 방아쇠를 당긴 여자
25_ 가슴이 쿵쿵거리는 까닭
26_ 즐거운 감옥
28_ 장마
30_ 동백
31_ 웃음은 모음이 맞네
32_ 夢돌
34_ 오래된 책
36_ 나 혹은 낯선
38_ 폭설
2부 맛있다!
43_ 오아시스 그녀
46_ 화살표를 따라 걸어요
48_ 벌초
50_ 내 몸
51_ 개펄
52_ 얼음을 깨물다
54_ 나무의 이사
56_ 운수 좋은 날
58_ 맛있다!
60_ 발
62_ 항아리
64_ 달집이 탄다, 숙아
66_ 지게
68_ 평화시장 뒷골목에 비가 내린다
3부 수화기 속의 여자
73_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76_ 꽃게여자
78_ 민방위 대원 김길덕 씨
80_ 부탁해, 라는 구름
82_ 풀 1
84_ 눈치
86_ 서바이벌 게임
88_ 홍합
90_ 타래난초
92_ 수화기 속의 여자
94_ 일용직 정씨의 봄
96_ 항남우짜
98_ 동화 속 잘려나간 페이지
100_ 충무교 위의 여자
102_ 날아라 가오리
104_ 가을을 보내는 법
4부 그 동네 신발들은 공손하지 않다
109_ 수인번호
110_ 불안
112_ 적색경보
114_ 지루한 식사
116_ 위험한 골목
118_ 번지점프
120_ 풀 2
122_ 장승
124_ 악수의 추억
126_ 팽팽히 돌던 일상이 깨어지다
128_ 안녕, 치킨
130_ 방울토마토
132_ 벽
134_ 숲이 베어지고 없는 날에 새는 어느 가지 위에서 우는가
136_ 그 동네 신발들은 공손하지 않다
첫댓글 이명윤 시인, 첫 시집 출간을 축하합니다. 많은 독자들의 사랑 받는 시집이 되기를 빕니다.
푸른 시의 방에서 좋은 시로 자주 뵈었는데, 첫 시집 출간 축하합니다 이명윤 시인님.
이명윤 시인님, 첫 시집 출간 축하드립니다. 이 가을에 좋은 시집 한 권 읽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늘 건강과 건필을 기대합니다!
축하드립니다. 이명윤시인님!~ 참 부지런하게 시를 쓰시더니만 이렇게 기쁜 소식을 전해주시네요.
이명윤 시인님! 시집 읽었는데 참 좋았습니다. 더 정진하시길 바랍니다
이명윤 시인님의 첫 시집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독자의 사랑이 만선되어 오시길 기원합니다.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