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연천군 이장단연합회가 어떤 연유로 생겼는지 모르는 사람이 많다.
연천군이장단연합회 구상과 실행은 92년 후반기에 처음으로 내가 했다.
연천에는 10개읍,면이 있고 96명개리에 이장이 있다.
10개읍.면에서는 협의회가 조성되어 있지만 연천군 전체를 엮은 연합체는 없었다.
협의회장도 총무도 아닌 일개 이장이 연합체를 만들겠다고 덤벼 들었는데...
연천군총무과에 10개읍면, 회장,총무명단을 부탁하니 들어주지않아
연천읍 총무계에 부탁했다.
그 다음
전화통화로 일일히 설명하고 10개읍.면 회장, 총무모임을 주선했지만
모이지 못했다. 어디서 풍문으로 들었는지 내가 전 노조위원장이란 말이 돌더니
내가 이장들을 선동해 노조를 만들거라는 소문이 돌았다.
이때 청산면 이선재회장이 삐딱하게 틀었다( 후에 나와 손잡고 열심히 일했지만)
각 읍, 면에 회장, 총무집에 찾아가서 취지와 목적을 말해주고
여러통의 편지도 보냈다.
지금에 와 생각하니 그런 열정이 어디서 났나싶을 정도다.
이때 고 최순옥계장이 많은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연천군이장단연합회는 꼭 있어야 된다고 하면서...
(지금의 투명수채화님 부군도 미산면총무라 많이 도왔다)
해가바뀐 2003년 드디어 연천읍사무소에서 이장단연합회를 구성하기 위한 1차모임을 가졌다.
사회와 진행은 내가 맡았다.
1차모임 (2.17일)
11:00~13:30분까지 연천읍사무소에서 이장단 연합회 구성을 위한 1차 회의.
참석인원: 연천읍 회장단 외 12명 (10개 읍,면중 7개 읍,면참석)
주요안건:
①모임 명칭을 연천군 이장단 연합회로 한다.
②임원은 4명으로 구성한다(연합회장.부회장.총무.감사)
③정기모임은 2개월로 하며 날자는 임원진에서 별도로 정한다.
④임원의 임기는 2년으로 세부적인 사항은 임원진이 결성된후 차후에 논의한다.
⑤회비는 입회비 각인 2만원로 한다.
2차회의에서는 드디어 임원진이 구성됬다.
나보고 연합회총무 맏으라고 강권했으나 내가 다음과 같은 이유로 고사했다
첫째 : 본인이 연합회를 구성했기 때문에 중임을 맏으면 안된다( 순수하게 했기때문)
둘째 : 나는 평이장이어서 안된다( 회장,총무의 모임이기 때문)
셋째 : 회장을 연천읍에서 맏았기 때문에 연천에서 사무국장까지 맏을수 없다.
2. 2차회의 (2.21일)
11:00~12:20분까지 연천읍사무소에서 이장단 연합회 구성을 위한 2차회의
주요회의 내용:
연천군 이장단 연합회회장: 우정관(연천읍회장)
부회장: 김도수(청산면회장)
총무: 한기홍(전곡읍총무)
감사: 차석현(군남면총무)
3차회의할무렵 우리나라 전국이,통장연합회의 조성이 가시화 되고 있었다.
전라도 금산의 이장들이 전국연합체의 필요성을 느끼고 각 읍, 면회장에게 연락을 취해온 것이다.
연천군이장들도 전국이,통장연회회 창립총회에 참석하자는 의견을 내 놓았다.
3. 3차회의(5.28일)
11:00~12:30분까지 전곡 초계탕집
주요회의 내용:
전국 이,통장 연합회에서 충남 금산군 소재 학생종합체육관에서
월급 60만원인상을 요구하며 6월17일 11:00 창립총회를 가질 예정에 있다.
연천군 이장단 연합회에서도 이 창립대회에 적극 참여하자
연천군 96개리 2장의 공문서발송
1부: 우정관 회장님의 인사말 (존경하는 연천군 이장님 !)
2부: 전국이통장 연합회 추진사항
4차회의에서는 군수님을 찾아뵙고 연천군 이장단연합회 결성을 알렸으며
이장들의 애로사항을 전달했다.
시간이 오래되어 기억이 희미하지만 장남. 신서면에서는 참여하지 않았다.
4차회의(03.5.28일)
장소: 연천군청 회의실에서 군수님면담
시간: 10:30~12:10까지
참석인원: 13명(각읍면별 협의회장 및 총무참석)
내용: 상견례
1) 업자들이 마을에서 공사가 끝나면 이장의 확인을 받을 것
(명예 감독관제 도입 요망) 긍정적으로 검토한후 실시예정
2) 6.17일 전국이장단이 금산에서 창립총회를 하니 버스협조 요청
3) 일반 산하단체에 준해서 연천군이장단연합회에 기금배정 요망
5차모임은 연천군의에 들어가 의원들과 면담하는것을 짜였다.
5차회의(2003.5.28일)
장소: 연천군군의회 의장실. 부의장 참석
시간: 오후1:30~2:30까지
참석인원: 10명(
내용: 상견례
1) 연천군 이장단 연합회가 구성된 취지설명
2) 이장단 연합회활동에 군의회의 협조요청
3) 이장에 대한 조례에 있어서 현실과 동 떨어지는것에 대한 재조정 요망.
이후에 장남면은 연합회에 가입했지만 신서면이 가입을 반대해 다음과 같은 글을 띄웠다.
이장님 그동안 안녕하신지요
본인은 통현리 이장 이윤승입니다.
몇일전 신서로 찾아가겠다고 했으나 이장님이 멀리
출타하신 관계로 전화통화만 하게되어 안타깝게 생각 했습니다.
연천군의 이장단 연합회가 이미 출범하였으나 논농사 관계로 모두가 바쁘시기에
모내기가 끝난 후인 5.28일날 군수님과 군의회 의장님을 찾아 뵙고 인사드렸습니다.
아직도 신서면에서 참여하지 못함을 가슴아프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전국이장단 연합회에서는 6.17일 금산에서 대규모의 창립총회를 준비하고 있으며
우리도 동참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연천군에서의 참가인원은 약 40명선이 될 것 같습니다.
우리역사에서 가장 오랫동안 자리하고 있었던 사람은 이장이었습니다.
옛날에는 부족장이라고 하기도 하고 촌장이라며 대접받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행정말단의 심부름꾼밖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전의 선배 이장들이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밥그릇을 찾아먹지 못하다 보니
지금에 와서는 최악이 되었습니다.
후배들에게 손가락질 받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가 희생을 감수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전국 이장 모두에게는 지금이 과도기라 해야 할것입니다.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을 받고있는 공무원들은 노조를 만들어 도지사에 대항하고
선생들은 교원단체인 전교조를 결성하여 교육대란을 일으키고
이제는 노동부의 직원까지 노동조합을 만든다고 합니다.
정년까지 임기 보장된 그들은 월급에, 보너스에, 각종 보험혜택과
학교 자녀교육에 있어서 월등한 대우를 받고 있습니다.
이장님들의 현실을 돌아보면 안타깝습니다.
읍면의 일을 대행하다 사고가 나면 스스로가 해결해야 하고 산재보험도 받지 못합니다.
우리나라 근로자의 최저생계비는 국가에서 보장한 60만원입니다.
이 액수보다 작을 때에는 노동부의 제제를 받습니다.
이장의 월급이 10만원이므로 국가 스스로가 법을 위반하고 있습니다.
이장에게는 월급주는 것이 아니라 수당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장은 국가에 편제해 있는 직원도 아니라면서 왜 규제의 올가미에 씌워져 있는지 살펴보아야 할것입니다.
그 하나의 예로서 선거에 일절 의사표명을 하지 못하게 한것입니다.
선거 개입 유무를 떠나 공명선거 하겠다고 선관위에 자원봉사 한다고 해도 받아주지 않습니다.
거주자 선거인 명부 확인은 이장에게 시키면서도 선거에서는 입다물고 가만히 있으라고 합니다.
월급10만원주면서 목을 메는 규제들을 둘레둘레 만들어 놓은것입니다.
우리는 부당한 것은 요구하지 않습니다.
부당한 것은 깨 부술려는 의지와 힘도 아직은 미약합니다.
그러나 뭔가는 잘못되어 있구나 라는 판단은 가지고 있어야 됩니다.
이런 것이 개혁의 시작이자 첫 단추가 아닐런지요.
현재 연천군 이장단 연합회에 신서에서만 가입이 않 되어 많은 이장님들이 걱정하고 계십니다.
차후에 회의를 거쳐 함께 동참하기를 희망해 봅니다.
이렇게 해가 바뀌어 그 다음해 (2004년도) 연천군 회장,총무의 명단이다.
2004. 2.28일 연천농협에서 내, 외빈이 참석한 가운데 연천군이장단연합회 창립총회를 가졌으며
사회는 내가 보았다. 군남면 12명의 이장들은 똑같은 양복을 맞춰입고(꼭 조폭같이) 입장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연천군 이장단연합회 참석자 명단 (2.16일)
읍.면별 |
직 위 |
성 명 |
서 명 |
연천 |
회장 |
우정관 |
(현 회장) |
총무 |
이경재 |
|
운영위원 |
이윤승 |
|
전곡 |
회장 |
서광현 |
|
총무 |
양재용 |
|
군남 |
회장 |
이충하 |
|
총무 |
차석현 |
(현 감사) |
청산 |
회장 |
이선재 |
|
총무 |
윤용혁 |
|
백학 |
회장 |
오영섭 |
|
총무 |
정응화 |
|
미산 |
회장 |
이병섭 |
|
총무 |
최승환 |
|
왕징 |
회장 |
임정수 |
|
신서 |
회장 |
조계희 |
|
총무 |
허경범 |
|
중면 |
회장 |
이광길 |
|
장남 |
회장 |
한기원 |
|
이날 우정관연합회장이(연천읍회장) 대회사를 했는데 내가 사무국장이 아니면서도
대회사의 글도 내가 떠 맏았다.
아래파일은 창립총회때 시나리오이며 열어볼수 있음
창립총회.hwp
이런 사연을 거치면서 연천군이장단연합회가 창립되었다.
내가 연합회를 만들어서 그러한지는 몰라도 지금의 연합회는 일을하지 않는것 같다.
연천에 어떤 이슈가 있을때마다 연천군연합회는 보이지 않으니 걱정이 앞선다.
( 썬배라고 노망떠는걸까 ㅎㅎ)
어찌되었건 내 노력으로 연천군이장단 연합회가
창립되어 활동하고 있으니 기쁘기 그지없다.
첫댓글 나도 상1리 이장을 5년동안 맡았었다, 당시 연천군 최연소 총각이장으로 연천읍장이나 계장과의 충돌을 많이 일으켰다, 이유인즉 리장이 공무원의 꼬붕이냐 너네가 할일은 니들이 하라 고 하며 협조하지 않고 내가 하지 않으면 리민들에게 불이익이 돌아올것 같은 일은 다른 리에 비해 월등히 빨리 처리 하곤해 연천읍내 리장중 계륵과 같은 존재였다, 지금 생각해도 소신있게 일을 했다고 자부 한다, 마을사업이나 마을행정에 대해 꼬투리 잡고 유세 떠는 공무원은 나한테 한번쯤은 멱살을 잡혔으니까.
연천읍의 썬배이장님이셨군요 ( 상1리는 골치 아픈동네라 이장님 보기 힘들었을텐데...그땐 안그랬나여)
상1리가 골치 아픈 동네라고 하는 부분은 이해가 되지 않는군요, 물론 이장의 지도력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내가 33살에 이장을 맡았으니 지금 생각하면 아찔 합니다, 내가 이장을 보면서 말만 많고 일하지 않으며 시비거는 선배 두어사람을 들었다 놓았으며 나보다 20년이상 나이 많은 사람중에 사사건건 꼬장을 부리는 사람이 몇 있어 역시 그냥 두었다가는 리장 일을 보는데 애로가 많을것 같아 정식으로 따지며 한판 붙었지요, 그 이후에는 이규만을 다시 보며 오히려 그사람들이 적극 지원을 아끼지 않아 골치 아픈 일은 없었지요.
예전에는 모르겠지만 현재는 사람끼리 패가갈려 이장보기 힘들어 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