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소개
우리를 ‘더불어 가난’으로 인도한 코로나19
가난의 책 속에서 찾는 삶의 태도
모두가 가난해지려는 시대의 도래
코로나19는 앞만 보고 달려왔던 우리 시대 성장 지상주의, 자기 우선 중심의 삶과 자본주의 시장 질서를 혼돈의 세상으로 빠트렸다. 치솟는 집값과 생활 물가, 가계 부채와 얄팍해진 지갑, 소득원의 상실, 그림자 노동(무급 노동) 등 녹록지 않은 시대에 코로나19는 세상 모든 이들에게 감내하기 어려운 삶을 던져 주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우리를 잠시 멈춤의 시간 속에서 자신의 삶과 이웃과 세상을 되돌아볼 수 있는 여지도 안겨 주었다.
차마 꺼내기 어려웠던 가난이라는 말
생존이 버거운 저성장 시대에 세상을 향해 '더불어 가난과 탈성장 담론'을 꺼내면 사람들은 “이렇게 가난한데, 더 가난해지라니!” 같은 황당한 반응과 불만을 터트렸다. 뚱딴지같은 말이면서 이상주의나 도덕적 의무와 당위를 주장하는 사람의 자기 과시적 담론이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성장주의를 경험했고, 저성장을 맞이한 사람들에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게 틀림없다.
성장주의로 해결할 수 없는 빈곤의 양극화와 사회 불평등
되돌아보면 근대 자본주의 문명이 와해시킨 공동체 사회와 자급자족, 부의 독점이 가져온 절대빈곤, 속도·효율성·양적확산·경쟁을 중시해온 성장주의 이면에는 관계, 돌봄, 생태, 공감, 호혜, 연대, 협동, 나눔, 겸양, 지혜, 살림의 빈곤이라는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그리고 이러한 빈곤은 소외 양상으로부터 출발하여 결국 결여, 부족, 결핍 등의 풍요 속 빈곤의 양극화와 사회 불평등으로 전개된다.
더불어 가난을 우리의 새로운 전망으로
우리는 빈곤을 없애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해야겠지만 더불어 가난을 우리의 새로운 전망으로 삼아야 한다. 더불어 가난의 시대는 공동체 자급자족 사회와 같이 관계의 풍요 속에서 서로 가난을 공유하고 나누려 할 때 찾아오는 탈성장 전환 사회를 의미한다.
이 책이 성장주의 사회에서 새로운 삶의 전환을 꾀하려는 이들에게 삶의 나침반이자 지침서가 되었으면 좋겠다. 더 느리게, 더 작게, 여백과 잉여는 더 많은 그런 삶이 찾아올 때 우리는 함께 앞으로 다가올 거대한 위기를 넘어서 탈성장 전환 사회에 더한층 가까워질 것이다.
🏫 저자 소개
신승철
문래동예술촌에서 아내와 함께 《철학공방 별난》을 운영하면서 공동체운동과 사회적 경제, 생태철학 등을 친구들과 더불어 공부하고 있다. 프랑스 철학자 펠릭스 가타리(Felix Guattari)의 『세 가지 생태학』과의 만남을 시작으로 줄곧 생태철학을 연구하는 중이다. 최근에는 《생태적지혜연구소협동조합》(ecosophialab.com)을 연구자, 활동가들과 함께 만들어서 기후변화와 생명위기 시대를 극복하고 전환사회를 만드는 지혜를 탐색하고 있다. 쓴 책으로는 『생태계의 도표』(2020, 신생), 『모두의 혁명법』(2019, 알렙), 『탄소자본주의』(2019, 도서출판한살림), 『구성주의와 자율성』(2017, 알렙), 『마트가 우리에게 빼앗은 것들』(2016, 위즈덤하우스), 『갈라파고스로 간 철학자』(2014, 서해문집), 『욕망자본론』(2014, 알렙), 『식탁 위의 철학』(2013, 동녘), 『눈물 닦고 스피노자』(2012, 동녘) 등이 있고, 공저로는 『우리의 욕망을 공유합니다』(2020, 도서출판한살림), 『체게바라와 여행하는 법』(2014, 사계절) 등이 있다.
📜 목차
책을 펴내며
1장 가난의 사색
- 자발적 가난, 무소유, 빈그릇운동
· 선택한 가난은 가난이 아니다 - 『법정스님의 무소유의 행복』
· 나락 한 알에도 우주가 깃들어 있다 - 『나락 한 알 속의 우주』
· 내 안의 진리 실험을 위한 가난과 겸손 - 『간디자서전』
· 아무것도 갖지 않은 자들의 영성적 공동체 - 『아시시의 프란체스코』
· 도제조합 속에서 기하학적 관계망을 탐색하다 - 『에티카』
2장 탈성장의 모색
- 관계의 빈곤이 아닌 더불어 가난으로
· 무소유가 죽음이 아니듯, 탈성장도 종말이 아니다! - 『탈성장 개념어 사전』
· 고독한 호모 이코노미쿠스를 넘어 더불어 가난으로 - 『도넛경제학』
· 최악의 붕괴 상황에 사회 재건에 나서자! - 『붕괴의 다섯 단계』
· 국가주의와 성장 이데올로기의 유혹 -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 금융자본주의가 호출하는 주체성으로부터 벗어나자! - 『부채인간』
3장 협동의 탐색
- 결여와 빈곤에서 증여와 호혜의 연대로
· 선물처럼 주고받을 수 있는 가난 - 『증여론』
· 가난의 경제는 사랑의 경제를 필요로 한다 - 『사랑과 경제의 로고스』
· 빈곤에 맞선 공공공 사회 건설 - 『거대한 전환』
· 정직한 노력은 협동에 있다 - 『깨어나라! 협동조합』
4장 자유의 문화
- 가난하지만 자유정신을 잃지 말자!
· 관직의 망상을 버리고, 뜻대로 가라 - 『이탁오평전』
· 감옥 속 민들레에도 생명의 위대함이 -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 자발적 가난, 자유로운 삶의 시작 - 『자발적 가난』
· 시골에 가니 희망이 있었다 - 『조화로운 삶』
📖 책 속으로
가난은 삶이 드러나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이며, 자신의 호주머니 속에 짤랑거리는 몇 푼의 돈의 가치보다 이웃·친구·가족, 더 나아가 공동체와 사회에 끼치는 가치에 주목하게 만든다. 보이는 영역보다 보이지 않는 영역에 주목할 때, 우리는 비로소 숭고한 가난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투명인간처럼 지각 불가능하고, 식별 불가능하고, 비교 불가능한 삶의 내재성이 가난을 통해서 유감없이 드러난다. 그런 점에서 가난이 말하도록 하는 것은 삶이 말하도록 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 p.17
빈곤에서는 고립된 사람의 절절한 외로움·고독·고립의 독백이 배어 있다면, 가난에서는 연대와 협동에서 오는 맑고 향기로운 미학적이고 윤리적인 영역이 배어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존재라는 깨달음뿐만 아니라, 우리가 맺고 있는 관계가 이 생애에서 한 번밖에 없는 순간이라는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 그것이 바로 불교의 연기법에 따라 관계 맺음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가져야 할 가난의 지혜다.
--- p.25
가난은 우리를 공(空)으로 비워 그 안에 생명과 우주, 자연, 생명이 들어올 여지를 두는 참으로 자신을 끊임없이 낮추는 가난이다. 그런 점에서 성경에서 얘기한 마음이 가난한 자가 되는 길이기도 하다. 가난은 벗어나려 하고, 극복하려 하고, 이겨내야 할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관계 그 자체가 가난이다. 자연과 생명, 이웃과 관계 갖고 있는 비움과 나눔, 살림의 지혜가 바로 가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끊임없이 관계로부터 단절되어 직면하게 되는 빈곤을 극복하기 위해서 제도와 시스템, 공공 영역의 중요성을 낮게 보아서는 안 된다.
--- p.44
‘더불어 가난’은 성장도, 발전도, 번영도 없는 감소와 축소와 감속의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다채로운 영역들의 상호 의존과 연대망의 구성에 달려 있다. 시장이나 공공 영역 만으로도 안 된다. 하나의 프로그램이 아니라,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필요하다. 엄밀하고 정교하게 자신의 프로그램을 내세우는 게 아니라, 다른 프로그램과 결합하여 브리꼴라쥬를 만들 능력을 갖추는 게 더 필요하다. 더불어 가난은 협동하는 가난, 연대하는 가난, 연결되는 가난이다.
--- p.113
미친 듯 일하고, 소비하고, 노는 사람의 관점을 ‘풍요’의 준거점으로 할 때 느리게 움직이고 재생과 순환에 따라 아껴 쓰고 나누어 쓰는 사람들은 ‘비풍요’, 즉 ‘빈곤’의 영역으로 걸려들게 된다. 그런데 진정으로 풍요의 관점과 기준을 바꿀 때 우리는 더불어 가난의 삶이야말로 진정한 행복, 풍요의 삶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결국 세상은 이분법에 따라 획일적인 비교나 준거점 설정에 따라 작동하는 게 아니라, 다분법, 다방향성, 복잡계로 이루어져 있다는 승인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발전, 성장, 개발의 논리는 하나의 획일적인 잣대로 세상을 보는 것에 불과하다.
--- p.134
코로나19 사태는 가난에 눈뜨는 상황으로 우리를 인도하고 있다. 자본주의의 허구상품들인 노동, 이자, 지대 등은 기능 정지 상태에 빠져들고 있다. 대신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던 관계들은 더욱 더 선명해지고 명확해지고 있다. 가정, 살림, 돌봄 등의 핵심적인 개념들이 복원되었다. 더욱이 더불어 가난이 전반화되어 재난기본소득이나 감축, 검소 등이 대두된 것도 사실이다. 더불어 가난을 통해서도 사회는 재건되고 구성되고 작동될 수 있다. 가난의 사회가 사회 와해가 아니라 사회 복원과 보호에 있다는 점을, 우리는 코로나19 사태의 교훈을 통해서 알 수 있다.
--- p.198
‘더불어 가난’은 욕망, 사랑, 정동이라는 활력과 생명 에너지가 더욱 충만하고 풍부해지는 상태를 의미한다. 금욕주의가 갖고 있는 고귀하고 고결한 개인들의 자발적 가난의 좁은 길을 따르는 게 아니라, 자신의 가난을 유통하고 공유할 수 있는 공동체를 형성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기성 종교가 스스로는 찬양하면서도 실제로는 잘 따르지 않는 금욕주의라는 위선이 아니라, 생명 에너지로서의 욕망이 만들어내는 창조와 생성의 삶의 양식에 더 관심을 갖는 것이 더불어 가난이라고 할 수 있다.
--- p.2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