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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설계를 적용하면서, 요크타운급은 렉싱턴 급 보다 크기는 작지만 더 많은 항공기를 탑재할 수 있었으며, 더 크고 빠르고 많은 엘리베이터로 더욱 원활한 항공작전을 수행할 수 있었다. ]
이후 1938년 항모 보유쿼터에 여유가 생기면서 새로운 항공모함 건조를 준비하였는데 당시 미 해군은 아이오와급 전함을 위시한 주력함급의 설계에 매달려 있었고, 요크타운급이 워낙 성공적이라 새로 설계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기에 그냥 과거 요크타운급 설계에 지금까지 운용하면서 발생한 요구사항들을 반영하는 형태로 요크타운급 3번함 CV-8 호넷이 건조되었다. 호넷의 경우에는 배수량이 100톤 정도 더 늘어난 것을 제외하면 기존 요크타운급 항모와는 별 다른 차이가 없었다. 어쨌든 이로 인해 미군이 운용한 요크타운급은 총 3척이 되었다.
[1938년 미해군은 항모 보유쿼터에 여유가 생기면서 새로운 항공모함 건조를 준비하였는데 당시 미 해군은 아이오와급 전함을 위시한 주력함급의 설계에 매달려 있었고, 요크타운급이 워낙 성공적이라 새로 설계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기에 그냥 과거 요크타운급 설계에 지금까지 운용하면서 발생한 요구사항들을 반영하는 형태로 요크타운급 3번함 CV-8 호넷이 건조되었다. 호넷의 경우에는 배수량이 100톤 정도 더 늘어난 것을 제외하면 기존 요크타운급 항모와는 별 다른 차이가 없었다. 어쨌든 이로 인해 미군이 운용한 요크타운급은 총 3척이 되었다. 이들 3척의 요크타운급 항공모함은 훗날 진주만공습으로 태평양전쟁이 개전되면서 미드웨이해전에 일본해군에 막대한 피해를 입히며 태평양전쟁의 영웅으로 활약하게 된다]
From February 1942:
Name:
USS Yorktown (CV-5)
Namesake:
The Battle of Yorktown
Ordered:
3 August 1933
Builder:
Newport News Shipbuilding and Drydock Co.
Laid down:
21 May 1934
Launched:
4 April 1936
Sponsored by:
Eleanor Roosevelt
Commissioned:
30 September 1937
In service:
1937
Out of service:
1942
Struck:
2 October 1942
Honors and
awards:3 battle stars American Defense Service Medal
("A" device)/American Campaign Medal / Asiatic-Pacific Campaign Medal (3 stars) / World War II Victory Medal
Fate:
Sunk 7 June 1942 in the Battle of Midway, 141 men killed.
General characteristics
Class and type:
Yorktown-class aircraft carrier
Type:
Aircraft carrier
Displacement:
As built:
19,800 long tons (20,100 t) light
25,500 long tons (25,900 t) full load
Length:
As built: 770 ft (230 m) (waterline @ design draft)
824 ft 9 in (251.38 m) overall
Beam:
As built: 83 ft 3 in (25.37 m) (waterline)
109 ft 6 in (33.38 m) (overall)
Draft:
25 ft 11.5 in (7.912 m) (as built)
Propulsion:
9 × Babcock & Wilcox boilers,
4 × Parsons geared turbines,
120,000 shp (89 MW)
4 × screws
Speed:
32.5 knots (37.4 mph; 60.2 km/h)
Range:
12,500 nautical miles (23,200 km; 14,400 mi) at 15 knots (17 mph; 28 km/h)
Complement:
2,217 officers and men (1941)
Sensors and
processing systems:CXAM radar from 1940[1]
Armament:
As built:
Armor:
As built:
2.5-4 inch belt
60 lb protective decks
4 inch bulkheads
4 inch side and 3 inch top round conning tower
4 inch side over steering gear
Aircraft carried:
As built:
90 aircraft
3 × elevators
2 × flight deck hydraulic catapults
1 × hangar deck hydraulic catapults
2. 전쟁의 활약
진주만 공습으로 미 해군의 전함이 모조리 털린 까닭에 태평양 전쟁 초창기 살아남은 항모들이 미국 태평양 함대 작전의 주 타격력으로 활용되었다 태풍이 살린 엔터프라이즈. 그 결과 전함과 전함 사이의 함포결전이 아닌 항공모함과 항공모함 사이의 항공전 위주로 전개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많은 항공모함들이 손실되었다. 요크타운급도 예외가 아니어서, 네임쉽인 CV-5 요크타운은 산호해 해전에서 전치 3개월 진단서를 끊고도 3일 동안의 응급수리를 마치고 미드웨이 해전에 참가, 일본 해군한테 페이크다 이 병신들아를 선사했다. 게다가 일본군에게 두드려 맞고 빈사상태까지 갔지만 그걸 또 악착같이 복구해내는 바람에 일본군을 두 번이나 속여먹는 위업까지 세웠다![3] 하지만 결국 일본의 집요한 공격을 버티지 못하고 격침당했다.
[1941년 12월7일 일본의 공격으로 시작된 진주만 공습으로 미해군의 항공모함 전단은 큰 피해를 입게 되지만 다행히도 3척의 요크타운급 항모들은 훈련을 나가있어 이들 공습에어 안전할수 있었다. 정신차린 미국은 이내 이들 항공모함을 깃점으로 전력을 재정비 일본을 향해 반격의 칼날을 갈게 된다.]
CV-8 호넷은 개전 초기 둘리틀 특공대를 발진시켜서 역시 일본한테 충격과 공포를 선사했지만, 결국 과달카날 전투의 산타크루즈 해전에서 일본 해군의 집중 공격을 받고[4] 격침당했다. 그러나 호넷 역시 격침당하기 직전까지 일본 해군의 베테랑 조종사들을 저승길 길동무로 삼았다.
[이륙준비중인 CV-5 요크타운 항공모함의 함재기들..CV-8 호넷은 개전 초기 둘리틀 특공대를 발진시켜서 역시 일본한테 충격과 공포를 선사했지만, 결국 과달카날 전투의 산타크루즈 해전에서 일본 해군의 집중 공격을 받고[4] 격침당했다. 그러나 호넷 역시 격침당하기 직전까지 일본 해군의 베테랑 조종사들을 저승길 길동무로 삼았다.한편2번함인 CV-6 엔터프라이즈는 여러차례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었지만, 행운의 여신의 가호와[5] 숙련 된 승조원과 든든한 동료들이 함께 있었기에 전쟁 시작전 7척의 항공모함 중 새러토가 및 레인저와 더불어 종전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에식스급 항공모함들이 전선에 등장하기 전까지 태평양 전선에서 4척의 항공모함이 상실하는 상황에서 미 태평양 함대가 곧바로 사용 가능한 항공모함으로서 지속적으로 전선에 투입 하였고 적 잠수함 뇌격에 피해를 입어 전선에서 물러난 새러토가가 수리가 완료 되어 복귀 이후 함께 일본군의 공세에 대응했다]
2번함인 CV-6 엔터프라이즈는 여러차례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었지만, 행운의 여신의 가호와[5] 숙련 된 승조원과 든든한 동료들이 함께 있었기에 전쟁 시작전 7척의 항공모함 중 새러토가 및 레인저와 더불어 종전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에식스급 항공모함들이 전선에 등장하기 전까지 태평양 전선에서 4척의 항공모함이 상실하는 상황에서 미 태평양 함대가 곧바로 사용 가능한 항공모함으로서 지속적으로 전선에 투입 하였고 적 잠수함 뇌격에 피해를 입어 전선에서 물러난 새러토가가 수리가 완료 되어 복귀 이후 함께 일본군의 공세에 대응했다. 과달카날 해전이 끝나고 전선이 잠시 소강상태에 빠지자 요크타운급이라고 쓰고 엔터프라이즈라고 읽는 함선에 대한 대대적인 개장이 이루어졌다.
이에 따라 배수량 제한으로 인해 설계시 눈물을 머금고 포기한 어뢰방어를 위한 벌지를 설치하고 구식 대공포였던 1.1인치 포를 제거하고 40mm 보포스 대공포를 추가로 설치하는 등 당시 태평양 전쟁의 사정에 맞게 거의 모든 시스템에 대한 업그레이드가 단행되었다. 그 결과 배의 기준배수량은 21,000톤으로 늘어났다. 이후 에식스급 항공모함들이 대량 건조되어 배치되면서 이들과 함께 태평양 전쟁을 수행하였으며, 일본 본토 공습 당시 카미카제 공격에 엔터프라이즈가 대파되면서 요크타운급은 전쟁에서 완전히 물러났다. 1945년8월14일, 수리가 끝난 엔터프라이즈가 해군공창 부두에 정박하고 있을때 전쟁은 끝나가고 있었다.
[요크타운 급 항공모함에는 한가지 단점이 존재했다. 배수량 제한을 지키고, 빠른 속도를 내기 위하여 방뢰격벽을 최소화 한 것이다. 이 때문에 어뢰에 대한 방어력이 매우 떨어졌다. 실제로 요크타운은 미드웨이 해전에서 적 폭탄에 의한 피해는 빠르게 복구했지만, 어뢰에 의해 침몰한다. 호넷도 산타크루즈 해전에서 비슷한 이유로 침몰했다. 요크타운은 1937년 9월 30일, 엔터프라이즈는 1938년 5월 12일, 호넷은 1941년 10월 20일 취역한다. 호넷의 경우 위에서 언급했듯이, 원래는 건조 계획이 없었다. 그러나 미 해군이 워싱턴 해군조약의 제한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면서 요크타운의 설계를 적용하여 건조하게 된다.]
그러나 미 해군의 역사가 계속되는 한 태평양 전쟁에서 미국을 승리로 이끈 이 항모들이 벌인 전설적인 활약은 널리 이야기될 것이다.
여담으로 네임쉽 요크타운호가 요크타운급이 아닌 에식스급의 설명을 달고있는 경우가 있는데 이건 요크타운이 침몰한 후 그 이름을 에식스급 항공모함 중 하나에게 승계시켰기 때문이다. 승계 이유는 미드웨이에서의 전설적인 활약을 기리기 위해서라고. 비슷한 예로 렉싱턴이 있다.
또한 요크타운급 항공모함들이 조약 때문에 방어력이 많이 포기되었음에도 상당히 오래 버틴 것을 알 수 있는데 요크타운과 호넷의 최후를 봐도 요크타운은 꽤 오래 버텼고 호넷도 전투불능이 된 상황에서 자침시키려 해도 안되서 일본군이 격침시켰지만 꽤 오래 버텼고 엔터프라이즈의 경우에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가 없을 정도.
[요크타운호가 큰 피해를 입은이유중 하나는 당시 일본해군의 자살공격이였는데. 산호해 해전에서 요크타운은 적의 자살공격을 당하게 된다. 하지만 승무원들의 빠른대처로 기적적으로 살아남아 진주만으로 이동 48시간의 긴급복구를 마친후 미드웨이 지역으로 이동하게 된다]
[ 하지만 요크타운호는 결국 결국 일본의 항공모함 히류의 공격을 받았는데 1차 공격은 잘막어내어 항공기가 이착륙할 수있게 만들었으나 2차 공격때 어뢰 공격을 받아 자력 항해가 불가능한 피해를 입었다. 이후 수리하기 위해 진주만으로 예인하던 중 일본군 잠수함 I-168의 공격을 받아 1942년 6월 7일 침몰하였다.]
특히나 호넷의 방어력은 가관인데 방뢰능력을 포기했다는 요크타운급이 어뢰 9발을 맞고도 안 가라앉았다. 이후 일본이 추가적으로 산소어뢰 네발을 쏴서 세발을 명중시킨 후에야 천천히 가라앉았다고.
[CV-5 요크타운호의 최후.. 요크타운은 태평양 심해에 가라앉으며 그 임무를 다하게 된다 3척의 요크타운급 항모중 CV-6 엔터프라이즈를 제외한 2척의 요크타운급 항모는 그임무를 다하고 장렬하게 산화해갔다. 하지만 이후 이들 항모이름은 다른 항모에게 전해지며 전설은 이어지게 된다]
번호 이름 진수 취역 최종 설명
CV-5 요크타운 1936-04-04 1937-09-30 1942-10-02 미드웨이 해전에서 일본 잠수함 I-168의 뇌격으로 격침
CV-6 엔터프라이즈 1936-10-03 1938-05-12 1956-10-02 고철로 스크랩
CV-8 호넷 1940-12-14 1941-10-20 1943-01-13 산타크루즈 해전에서 일본군에 의해 격침.
[태평양 심해에 잠든 요크타운호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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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와스프급 항공모함이 바로 그 주인공. 절대 이 녀석과는 관련이 없다
[2] 요크타운이란 이름은 미국 독립전쟁 당시 미국 대륙군이 영국군을 상대로 최대이자 결정적인 승리를 거둔 요크타운 전투에서 유래된 것인데, 과연 이 항공모함은 실로 그 이름이 아깝지 않은 활약을 하게 된다
[3] 첫 공습에서 요크타운이 격침당했다고 오판한 일본군은 여전히 둥둥 떠있는 요크타운을 다른 항모로 착각하였다. 아내의 유혹? 이는 일본군이 미군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거의 얻지 못했기도 했고, 해당 전역에 있는 항공모함이 전부 동형함이었던 것도 한몫 했을 듯.
[4] 일본의 사토오 병조장의 급강하 폭격기가 비행 불능이 되자 호넷의 연돌에 자폭, 7명의 전사자를 내고 자신의 항공유를 호넷의 통신 데크에 뿌려 화재를 냈다.
[5] 진주만 공습 당시 폭풍으로 입항이 하루 늦어져서 무사히 넘겼으며, 산타크루즈 해전에서는 방공전투에서 이점을 얻기 위해 때마침 발생한 스콜에 이동한 덕분에 엔터프라이즈는 보이지 않았고 여동생인 호넷이 집중 공격을 받게 되었다.
일부 내용과 사진은 추가되었습니다.
PT2에 계속
첫댓글 예전 그러니까 대략 10년전쯤 트럼페터에서 호넷트 1/350 나올때 충격먹은것이 생각나는군요..
메리트하고 트러페터하고 같은회사인데요 들리는소문으로는 하비보스하고 형제들이 운영하는 회사라고도 하고요.. 이번에 트럼페터의 일부 제품을 메리트라는 상표명으로 출시하는데 이게 형제들간의 회사 분할인지..? 예전 아카데미와 세미나 의 관계인지는 아직 불분명하네요..
@mirageknight [왕성국] 아마 아카뎀하고ㅠ 세미나관계일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