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중부 요크셔 지방에 젠킨스(Jenkins) 형제가 소유한 죠지호텔(George Hotel)이라 불리는 작은 여인숙이 있었다.
두 형제는 의좋고 평생 독신이었다.
여인숙 로비엔 형이 태어난 날 구입한 것으로 알려진 큰 괘종시계가 돌아가고 있었다.
어느 날 동생이 병에 쓰러져 죽는데 그때 돌연 시계가 늦어지기 시작하면서
동생의 장례가 끝난 뒤 수리공의 노력에도 진전이 없었다. 1 년 후 형도 죽는다.
소식을 듣고 호텔 로비에 모여든 친구들은 시계를 보고 놀랐다.
시계는 정확하게 형이 죽음을 맞던 11시 5분에 정지하여 다시는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인이 바뀌자 죠지 호텔의 새 주인이 그 시계를 고치려 여러 번 시도했지만 실패했고
시계바늘은 계속 11시 5분에 멈추어 있었다.
그 후, 1875년 그 여인숙을 방문한 미국인 작곡가 헨리 클레이 워크가
그 이야기에 영감을 얻어 '할아버지의 시계'라고 부르는 'My grandfather's clock'을 작곡하여 발표한다.
조지 호텔은 지금도 운영되고 있으며 그 괘종시계도 아직 로비에 서 있다고 한다.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니 죽은 자로다(계3:1)"
시계는 주인의 의식을 일깨워 준다. 시계는 주인의 스케줄을 구분하고 지적하여 준다.
엄밀한 의미에서 시계는 인간 외부에 존재하는 게 아니라 인간 내부에 존재하는 지각 시스템이다.
우리는 우리의 창조주를 섬기고 그분이 배정하신 인생의 사계절에 응하기 위해
내부 의식과 지각 감지 능력이라는 시계를 받은 것이다.
신자는 외부에 성경이라는 지도와, 이 지도에 반응하는 내부 시계를 따라 인생을 실현해 나가는 것이다.
그런데 수많은 현대인의 시계가 멈추었다. 그들 안에서 뛰는 것은 자기 중심과 불안의 심장일 뿐,
인생의 때와 시기를 가리키는 지각 능력은 작동하지 않는다.
그들이 뛰는 발은 자기 내부의 욕망에 대한 응답이요 창조자의 요구에 대한 응답이 아니다.
주인이 사는 날에 기능하다가 주인이 죽는 날에 기능 정지된 시계.
주인과 시계가 일체가 되어버린 이런 이야기는 감동적이고 아름답지 않은가.
"인간이 하나님이다. 신학은 인간학이 되어야 한다."며 눈을 번뜩이던 포이에르바하,
"무신론이 답이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존재한다면 그는 정신병자일 것이다."라고 침을 튀기던
샘 해리스 외에 칼 마르크스, 프로이트, 찰스 다윈, 버틀런트 러셀 같은 부류의 심장은 고장나고 망가진 시계의 전형이다.
그러나 "꽃 한 송이, 물 한 방울, 인생의 일분일초가 다 하나님의 선물이다." 라던
스위스의 정신의학자 폴 투르니에의 고백은 얼마나 그의 안에 건전한 시계가 돌아가고 있으며,
얼마나 자기 인생을 복되게 영위하는 행복한 인생 모습인가를 반영한다.
커피 잔은 자기 자신 안에서 자기 정체성을 백 년 동안 찾아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인간도 자기 정체성을 자기 자신에게서 찾을 수 없다.
인간의 정체성은 오직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만 발견되는 것이니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의 참된 정체성을 발견하고 그에 따라 살아가는 자는 복된 자이다.
그 정체성을 가지고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전12:1)"를 실현하는 자가
자기 내부에 똑딱똑딱 작동하는 살아있는 시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주인의 숨소리가 끊어진다면 그들의 바늘 작동 도한 멈출 것이지만,
우리가 섬기는 주인에겐 그런 일은 있을 수가 없기에 그들의 삶은 영원하고 그들의 행복 또한 영원한 것이다.
2023. 1. 2
이 호 혁
첫댓글 울림을 주는 글 감사해요.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히 움직이고 작동하는 시계가, 시계 바늘이 되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