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의술]
진화의 병균: 아시네토박터 바우마니(Acinetobacter baumannii)
 
얌전하던 세균의 돌변…
항생제 안 듣는 ‘슈퍼박테리아’
 
면역저하자·당뇨환자 등 취약…다제내성균으로 혈류·호흡기 감염 등 유발
이라크전·아프간전 때 급증…반복적인 후송 과정·항생제 내성으로 출현
부상병 치료·재활 중 합병증으로 사망…의료기구·물품 등 위생관리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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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생제가 발견됐을 때 사람들은 이제 감염병(infectious disease)에서 해방됐다고 믿었다. 천연두 같은 병은 예방주사와 항생제의 발달로 지구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항생제의 발달에 따라 세균도 진화를 거듭해 항생제로 죽일 수 없는 내성균들이 출현했다. 이들은 변형돼 이전보다 더 교묘하게 질병을 일으키곤 한다.
앞으로도 병균이 없어지는 날은 오지 않을 것이고 인간은 감염병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요즘 주목받는 아시네토박터는 원래 세계 어느 곳에나 있고, 물에서 사는 평범한 세균이었다. 환경에 대한 적응력도 높아서 물기 없는 의료기구와 같은 무기질 표면에서도 며칠 동안 살 수 있다. 그러나 병원성은 약해서 건강한 사람에게는 병을 일으키지 않는다. 병원 직원 대부분이 보균자다.
그런데 최근에 ‘얌전하던’ 아시네토박터가 변하기 시작했다. 다제내성 아시네토박터 바우마니균(MRAB: Multidrug-resistant Acinetobacter baumannii)이 출현했다. 면역저하자, 만성 폐질환자, 당뇨 환자가 이 균의 감염에 취약하다. 창상감염, 혈류감염, 및 호흡기감염을 일으킬 수 있으며, 카바페넴계, 아미노글리코사이드계, 플로로퀴놀론계 항생제에 모두 내성을 나타낸다.
이 아시네토박터균이 이라크전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아프간전) 때 크게 증가했다. 이라크에서 부상한 병사들을 후송하는 미군의 병원선과 증상이 심각한 병사들을 일시 수용하는 독일 내 미군기지의 육군의료센터에서 의문의 감염 환자가 대량 발생한 것이다. ‘Pro-MED’에 따르면 2003년 4월 이후, 이라크로부터 귀환하는 미군들을 태운 병원선에서 아시네토박터 다제내성균에 감염된 환자가 급증해, 예방백신이 부족했다고 한다.
이런 감염은 1991년 걸프전 때는 나타나지 않았고 환자의 97%는 이라크 전쟁의 최전선에 배치된 병사들이었다. 워싱턴의 월터리드 육군병원에서 귀환병 442명의 검체를 배양 검사한 결과 37명(8.4%)이 양성으로 밝혀졌고 그중 3명은 병원 내에서 감염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라크전과 아프간전에서 총상이나 폭발에 의해 부상한 환자들이 후송되는 과정에서 평소 흙이나 물에 존재하는 이 균에 노출됐다. 부상자들은 우선 1차 시설에 옮겨지고, 부상의 정도에 따라서 외과팀이 있는 2차 시설로 옮겨졌다. 실행 계획에 따라 전투지역의 마지막 시설인 3차 시설로 이송되기도 했다. 이곳에서 사흘 안에 환자들이 안정되면 항공기로 지역시설(4차 시설)로 옮겼다. 아프간전에서는 4차 시설인 독일의 랜즈툴지역의료센터(Landstuhl Regional Medical Center)로 후송됐다. 마지막으로 이들은 치료와 재활을 위해 고국으로 보내졌다.
이렇게 각각 다른 환경으로부터 반복적인 후송 과정을 거치면서 아시네토박터 바우마니균이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 부상자들에게 항생제를 사용했고 항생제에 내성을 가지는 돌연변이종, 즉 다제내성 아시네토박터 바우마니균이 출현해 증가한 것이다.
이 균은 부상병의 치료와 재활 과정에서 합병증을 가져와 죽음에 이르게 하는 가장 중요한 균이 됐다.
우리나라에서도 아시네토박터 바우마니균 감염증이 법정전염병으로 등록됐다. 이 균은 일반 병원에서도 없애기 힘들지만, 전장의 야전병원에서는 더욱 심각한 문제다. 야전에서 부상한 병사가 후송되는 경우 군 응급구조사, 군의관, 간호장교, 의무병 등 의료진은 환자나 물품 및 환경을 접촉하기 전후에 손 위생을 철저하게 해야 한다. 오염 우려가 있는 경우 장갑과 가운을 착용하고 부상자에게 사용되는 의료기구나 물품은 철저히 소독해야 한다.
카뮈의 『페스트』 마지막 구절이 생각난다. “페스트균은 절대 죽지도 않고, 사라져버리지도 않으며, 가구나 이불이나 오래된 행주 속에서 수십 년 동안 잠든 채 지내거나 어딘가에서 인내심을 가지고 때를 기다리다가, 인간들에게 불행도 주고 교훈도 주려고 저 쥐들을 잠에서 깨워 어느 행복한 도시 안에서 죽게 하는 날이 언젠가 다시 오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황건 인하대 성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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