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8시 30분 쯤 교육부의 철저한 감사를 촉구하는 시위에 참여하려고 교문 앞에 도착했을 때, 내일 열리는 졸업식 안내 현수막에 적힌 '경축'이란 문구를 보며 허탈한 미소 짓게 되었다. 나는 비록 앞길이 막막한 처지로 내몰렸지만, 내일은 학교에 나와 졸업하는 제자들을 기쁜 마음으로 졸업을 축하해 주어야지하고 마음의 다짐을 하였다. 그래 경축하는거야!
9시를 넘길 무렵 나는 매우 이상한 일을 바로 내 눈 앞에서 목격하게 되었다. 학교 직원이 장대에 달린 낫을 가지고 오더니 졸업식 안내 현수막을 묶은 밧줄을 댕강댕강 잘라버렸고, 정문 경비원은 그 현수막을 구깃구깃 뭉쳐서 폐기하는 것이었다. 우리 일상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일이라 그 연유를 물어 보았더니 졸업식 행사가 취소되었으니 현수막을 철거하라는 상부의 지시를 수행하고 있다는 답변을 들었다.
대학공부를 마치고 졸업하며 학사를 비롯하여 석사와 박사 학위 수여도 이루어 지는 매우 뜻 깊은 행사가 어떻게 취소 될 수 있다는 말인가? 반신반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경축할 일이 사라져서 그런 것일까? 수원대에서 졸업식을 취소할 수 있는 자가 누구일까? 그 어떤 추측을 하여도 내 머리로는 이 현상을 이해할 도리가 없었다.
아침 시위를 마치고 중간 휴식을 하며 정문 건너편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중에도 웬지 나도 모르게 내 시선은 이제 허공으로 남아, 철거된 졸업식안내 현수막의 빈자리를 향하고 있었다. 나의 시선이 네 다섯번 쯤 창밖으로 보이는 교문 허공으로 향했을 때, 10시 30분 경 나는 또 다시 길 하나 건너 매우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바로 내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교문을 지나 경비실 앞에 정차한 1톤 트럭에서 반듯하게 접혀진 현수막과 사다리를 내리더니 원래 현수막이 있던 바로 그자리에 똑 같은 문구를 적은 새 현수막을 설치하는 것이 아닌가? 잠시 시간이 거꾸로 흘러 과거에 현수막을 설치하는 장면을 내가 지금 다시 보는 것같은 착각에 빠진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 보며 무척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마음을 차분히 가다듬고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게획된 일정에 의해서 내걸은 현수막이 행사 하루 전에 갑자기 철거되고, 1시간 30분이 채 안되어 새로 내걸리는 일은 우리 사회에서 분명히 매우 이상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 수원대에서는 한사람의 기분이나 결정에 의하여 예정된 일이 갑자기 뒤바뀌는 경우가 드물지 않았다는 기억이 되살아 났다. 그제서야 나는 이런일이 수원대에서는 일상이 되어 있지 않을까 하고 새삼 인식하게 되었다. 나에게는 새로운 발견이었고 새로운 깨달음이 된 셈이다.
이렇게 비일상이 일상화된 집단에서 정상이란 무었일까?
요즘 언론에서 자주 오르내리는 '비정상의 정상화'가 수원대에서 실현되기를 소망해 본다.
그날이 오면 우리 모두가 서로 경축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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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가글:
제보를 듣고 나서야 현수막의 맨 아래줄 빨간 글씨로 적힌 행사 년도가 2013년에서 2014년으로 바뀐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처음에는 경비원의 말을 정확히 듣지 못했고, 그 다음에는 변경된 문구를 세심하게 보지 못한 상태에서 글을 쓴 점에 대하여 사과드립니다. 위 글에서 실수한 점은 이 첨가글로 인정합니다. 그러나 내가 위 글을 통해서 전달하려는 내용에는 변함이 없어서 흠이 있는 그대로 남겨두겠습니다.
이 사건을 교훈 삼아 앞으로 신중하게 행동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이렇게 건설적인 비판과 지적으로 서로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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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사진:
2014년 2월 11일 오전 09시 00분 경
2014년 2월 11일 오전 09시 04분 경
2014년 2월 11일 오전 09시 45분 경
2014년 2월 11일 오전 10시 28분 경
2014년 2월 11일 오전 10시 30분 경
첫댓글 호떡장사 수준의 우리 총장이
자기 기분에 따라 졸업식을 취소하라고 지시했다가
다시 기분이 바뀌어 취소를 취소하라고 해서 일어난 현상입니다.
마중물 한방울님, 고생이 많으십니다.
수원대 왕국의 코메디같은 실화를 사진으로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문의 경비아저씨가 현수막의 날자가 잘못되어 교체하라는 지시와,
졸업식이 취소되어 현수막을 철거하라는 지시를 구별하지 못한다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나중에 정확한 사실이 밝혀지면 댓글을 그때에 삭제하겠습니다.
총장님, 환경측면에서 자원낭비가 심합니다. 제도적으로 시정하시기 바랍니다.
감사관들 보세요.
이런 희극이 수원대에서는 보통 일어난답니다.
한 사람의 기분에 따라 이랫다 저랫다, 학교의 모든 경비지출이 이모양으로 진행된다고 보면 됩니다.
예측 불가, 예산 결산이 무슨 의미가 있을 까요? 마지막에 끼워마추기만 하면 되는 것이지.
학교전체 예산밖에 없는 학교, 단과대, 학과, 부설연구소 및 부속기관 예결산이 없는 학교.
돈 문제 만큼은 혼자 무섭게 틍어지고.....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