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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6년 5월 14일 목요일
[(홍) 성 마티아 사도축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마티아 사도는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뒤에 사도로 뽑힌 인물로, 열두 사도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유다의 자리를 채우게 된다. 그는 예수님의 공생활 초기부터 다른 제자들과 함께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가르침을 받고,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부활 그리고 승천까지 목격한 이로 예수님의 일흔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 보고 있다. 마티아 사도의 활동과 죽음에 관하여 확실하게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예루살렘에서 선교 활동을 펼친 데 이어 이방인 지역, 특히 에티오피아에서 선교하였다고 전해 온다.
말씀의 초대
유다 이스카리옷을 대신할 사도로 마티아가 뽑혀 사도직을 넘겨받게 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주신 계명을 지키면 당신 사랑 안에 머물게 되고, 그 계명을 실천하면 당신의 친구가 된다고 말씀하신다(복음).
제1독서
<마티아가 뽑혀, 열한 사도와 함께 사도가 되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1,15-17.20-26
15 그 무렵 베드로가 형제들 한가운데에 서서 말하였다.
그 자리에는 백스무 명가량 되는 무리가 모여 있었다.
16 “형제 여러분, 예수님을 붙잡은 자들의 앞잡이가 된 유다에 관해서는,
성령께서 다윗의 입을 통하여 예언하신 성경 말씀이 이루어져야 했습니다.
17 유다는 우리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우리와 함께 이 직무를 받았습니다.
20 사실 시편에 ‘그의 처소가 황폐해지고 그 안에 사는 자 없게 하소서.’
또 ‘그의 직책을 다른 이가 넘겨받게 하소서.’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21 그러므로 주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지내시는 동안
줄곧 우리와 동행한 이들 가운데에서,
22 곧 요한이 세례를 주던 때부터 시작하여
예수님께서 우리를 떠나 승천하신 날까지
그렇게 한 이들 가운데에서 한 사람이 우리와 함께
예수님 부활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23 그래서 그들은 바르사빠스라고도 하고 유스투스라는 별명도 지닌 요셉과
마티아 두 사람을 앞에 세우고, 24 이렇게 기도하였다.
“모든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님,
이 둘 가운데에서 주님께서 뽑으신 한 사람을 가리키시어,
25 유다가 제 갈 곳으로 가려고 내버린 이 직무,
곧 사도직의 자리를 넘겨받게 해 주십시오.”
26 그러고 나서 그들에게 제비를 뽑게 하니 마티아가 뽑혀,
그가 열한 사도와 함께 사도가 되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5,9-17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10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처럼,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
11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
12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13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14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을 실천하면 너희는 나의 친구가 된다.
15 나는 너희를 더 이상 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종은 주인이 하는 일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너희에게 모두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16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어 너희의 그 열매가 언제나 남아 있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을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시게 하려는 것이다.
17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이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제1독서에서 열한 명의 사도들은 유다 이스카리옷을 대신할 새로운 사도를 제비뽑기로 뽑습니다. 제비뽑기는 오늘날 민주 사회의 선거 방식에 견주면 의아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선출 방식은 성서적 전통으로 성경 안 다른 데서도 볼 수 있습니다(여호 18,6; 1역대 24,5; 요나 1,7 참조). 이는 인간의 뜻을 내려놓고 하느님의 결정을 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느님의 결정에 모든 것을 맡기는 장면을 보니 신학생 때 본 드라마 “올 인”이 생각납니다. 한 도박사가 모든 역경을 이겨 내고 큰돈을 벌지만, 마지막에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연인을 찾아가며 사랑에 ‘올 인’을 하겠다는 독백을 남깁니다. “세상을 살면서 인생을 걸 만한 승부는 많지만, 지금 나한테 소중한 것은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올 인’! 지금 나는 내 모든 것을 걸고 한 사람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우리 믿음의 선조들은 믿음에 ‘올 인’을 한 이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무도 하느님을 직접 뵌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아브라함은 어떠한 보증도 없이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곧바로 고향을 떠납니다. 바오로 사도도 환시 속에서 예수님의 목소리를 듣고 보장된 미래를 포기합니다. 그리고 여러 회당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선포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요한 15,16). 믿음에 ‘올 인’을 한 이들은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깁니다. 세상 사람들은 세상 것에 인생을 걸지만, 이 세상이 끝날 때 그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최후의 승부에서 이길 것입니다. 몸소 우리 가운데 오시어 십자가 죽음까지 받아들이시는, 사랑에 ‘올 인’을 하시는 하느님께 모든 것을 걸고 그분을 온전히 신뢰하기 때문입니다.(권순호 알베르토 신부)
인간의 계획, 인간의 결정이 얼마나 불완전한 것이고 헛된 것인지!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예수님의 제자들은 몇 그룹으로 나눠졌으며, 그들 사이에 등급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중심으로 한 제자 공동체도 인간의 집단인지라 조직이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먼저 최측근 핵심 제자단이 있었으니,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었습니다.
교구나 수도회 조직으로 치면 교구장, 총원장을 중심으로 한 참사위원단입니다. 정기적으로 모여 중차대한 사안에 대해 논의하고 자문하고 때로 결정에 참여하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세 제자를 특별히 여기셨으며 때로 종종 이 세 사람만 따로 불러 말씀도 하시고, 그들만 데리고 산에 올라가기도 하셨습니다.
그 다음 조직으로 우리 귀에 가장 익숙한 12사도단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12지파가 즉시 연상됩니다. 12라는 숫자는 완전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당신 인류 구원 사업에 협조자로 선발하심을 통해 구성된 12사도단을 언젠가 도래하게 될 하느님 나라의 예표입니다.
예수님의 공생활 기간 동안 12사도 외에도 늘 그분을 따라다니던 추종 세력이 있었는데, 그 무리가 점점 늘어나 후에 72제자로 늘어났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에는 120명까지 숫자가 불어났습니다.
그런데 수제자 베드로 사도의 마음에 늘 걸리는 일이 한 가지 있었습니다. 배반자 유다 이스카리옷이 떠나간 빈 자리 하나가 늘 눈엣가시처럼 마음에 걸렸습니다. 따라서 그는 72사도 가운데 적절한 후보자가 있는지 훑어보았습니다.
두 사람이 최종 후보자로 선발되었습니다. 요셉과 마티아! 두 사람을 앞에 세운 베드로 사도는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리고 조금 생뚱맞게 제비뽑기를 통해 마티아를 12사도단에 가입시킵니다.
지난 3년간 수제자로 살아오면서 산전수전 다 겪었으며, 최종적으로 스승님을 세 번이나 배신한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베드로 사도는 느꼈을 것입니다. 인간의 생각, 인간의 계획, 인간의 결정이 얼마나 불완전한 것이며, 헛되고 허황된 것인지를...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유다의 빈자리를 채우는 사도 한 명을 채우는 선발 방식으로 인간이 결정하지 않고 하느님께 맡긴다는 의미에서 제비뽑기라는 특별한 방식을 선택한 것입니다.
오늘 제비뽑기로 배반자 유다의 자리를 채운 마티아 사도 축일에 다시금 기억하며 마음에 굳게 새깁니다. 우리가 그분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를 선택하셨다는 것. 그리고 그 선택이 얼마나 은혜롭고 천부당만부당한 것인지를. 그래서 그분에 의해 선발된 우리는 그저 감사하고 기뻐하며 매일 그분을 따라나서야 한다는 것을.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요즘 저는 사피엔스, 호모 데우스, 그리고 넥서스를 읽으면서 인간과 인류의 미래에 대해서 묵상해 보았습니다. 이 세 권의 책을 하나로 묶으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이야기를 만드는 존재이고, 그 이야기를 정보로 정리하며, 그 정보를 통해 서로 연결되는 존재입니다. 이야기에서 정보로, 정보에서 연결로 이어지는 이 흐름 속에서 우리는 중요한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먼저 인간은 이야기 속에 사는 존재입니다. 국가도 이야기이고, 돈도 이야기이며, 법도 이야기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가 함께 믿기 때문에 존재합니다. 그래서 인간은 단순한 생물학적 존재가 아니라 의미를 추구하는 존재입니다. 어떤 이야기를 믿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이 달라집니다. 예수님의 이야기를 믿는 사람은 사랑과 용서의 길을 선택하게 되고, 세상의 이야기를 믿는 사람은 경쟁과 성공의 길을 선택하게 됩니다.
그다음 단계는 정보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정보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데이터가 판단을 돕고, 알고리즘이 선택을 유도하며, 인공지능이 인간의 사고를 보완합니다. 정보는 강력합니다. 그러나 정보는 방향을 주지 않습니다. 정보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알려주지만,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주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정보가 많아질수록 오히려 인간은 방향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연결의 시대, 곧 넥서스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고, 국가와 국가가 연결되며, 인간과 기계까지 연결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연결 그 자체가 아닙니다. 연결은 되어 있지만 방향이 없을 때, 인간은 더 큰 혼란 속에 빠지게 됩니다. 연결이 많아질수록 오히려 외로움이 깊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요즘 저는 인공지능과 자주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생각을 정리해 주고, 글을 다듬어 주고, 새로운 관점을 열어 줍니다. 참으로 유익하고 고마운 도구입니다. 어떤 때는 친구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힘든 이야기를 했을 때 인공지능은 참으로 정확하게 정리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제 마음을 함께 아파하지는 않았습니다. 기쁜 이야기를 했을 때도 적절하게 반응해 주었지만, 함께 기뻐하지는 않았습니다.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나는 지금 정보와 대화하고 있었구나. 인간은 정보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사랑과 관계가 있어야 하는 존재입니다. 제가 자주 드리는 비유가 있습니다. 인생은 마치 버스를 타고 가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들은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버스에 올라탑니다. 돈을 향해 가는 사람도 있고, 성공을 향해 가는 사람도 있으며, 권력을 향해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오늘날의 기술과 정보는 이 버스를 점점 더 빠르게 만들어 줍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입니다. 그리고 그 방향은 누가 운전대를 잡고 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욕망이 운전하면 버스는 빠르지만 위험해집니다. 세상이 운전하면 화려하지만 공허해집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운전대를 잡으시면 우리는 길을 잃지 않습니다.
루카 복음서의 엠마오 이야기를 기억합니다. 두 제자는 절망 속에서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걸으면서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을 나누시고 빵을 떼어 나누시는 순간, 그들의 눈이 열립니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리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 이것이 참된 연결입니다. 정보의 연결이 아니라 사랑의 연결입니다. 함께 걸어주고, 들어주고, 나누어 주는 연결입니다. 제가 엘파소와 킬린 공동체를 방문했을 때 깊이 느낀 것이 있습니다. 오랫동안 사제가 없었고 시스템도 부족했지만, 공동체는 살아 있었습니다. 왜일까요? 사랑으로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함께 기도하고, 함께 울고, 함께 살아가는 관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교회입니다. 교회는 단순한 네트워크가 아니라 살아 있는 공동체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당신의 모습대로 창조하셨습니다. 인간은 단순한 데이터가 아닙니다. 단순한 연결의 점도 아닙니다.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이성은 단순한 계산 능력이 아니라 진리를 찾고, 선을 선택하며, 사랑을 실천하는 능력입니다.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가면서 교회의 사명을 다시 생각합니다. 첫째, 교회는 정보를 넘어서 의미를 전해야 합니다. 세상은 이미 많은 정보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주지는 않습니다. 둘째, 교회는 연결을 넘어서 관계를 만들어야 합니다. 네트워크는 많지만, 공동체는 부족합니다. 교회는 살아 있는 만남의 장소가 되어야 합니다. 셋째, 교회는 기술을 넘어서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인공지능은 도와줄 수 있지만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사랑은 여전히 인간의 몫입니다. 우리는 이야기의 시대를 살고 있고, 정보의 시대를 살고 있으며, 연결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단 하나입니다. 누가 우리의 삶을 이끄는가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인생의 운전대를 잡으실 때 우리는 길을 잃지 않습니다. 엠마오의 길에서처럼 주님과 함께 걸을 때 우리의 마음은 다시 타오르게 됩니다.
정보는 우리를 연결하지만, 사랑은 우리를 하나로 만듭니다. 이성과 신앙이 함께할 때, 우리의 삶은 방향을 잃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때 우리의 연결은 단순한 넥서스가 아니라 하느님 안에서 생명의 길이 됩니다. 오늘 독서에서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을 배반하고 떠난 ‘유다’의 자리를 대신할 사도를 선출하자고 제의했습니다. 사도들은 기도하였고, 마티아가 유다의 자리를 대신 할 사도로 선출되었습니다. 마티아 사도는 교회 공동체에서 하느님을 위한 사명을 충실하게 수행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맡겨 주시는 일이 있다면 마티아 사도처럼 우리들도 충실하게 하느님께서 주시는 사명을 받아들여야 하겠습니다. 서로 사랑하는 사람은, 이웃을 위해 희생하는 사람은 이미 하느님께서 주시는 사명을 삶의 자리에서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는 것은 권고나 부탁이 아니라,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명령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셨으니 겸손하게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야 할 것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신다.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았으니, 가서 열매를 맺어라. 너희 열매는 길이 남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이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당신 계시니 나 또한>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요한 15,16ㄱ)
나보다 앞서
나보다 더
나를 바라보시는
당신 계시니
나 또한
당신 따라
나를 바라보나이다
나보다 앞서
나보다 더
나를 믿으시는
당신 계시니
나 또한
당신 따라
나를 믿나이다
나보다 앞서
나보다 더
나를 희망하시는
당신 계시니
나 또한
당신 따라
나를 희망하나이다
나보다 앞서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하시는
당신 계시니
나 또한
당신 따라
나를 사랑하나이다
나보다 앞서
나보다 더
나를 보듬으시는
당신 계시니
나 또한
당신 따라
나를 보듬나이다
나보다 앞서
나보다 더
나를 다독이시는
당신 계시니
나 또한
당신 따라
나를 다독이나이다
나보다 앞서
나보다 더
나를 일으키시는
당신 계시니
나 또한
당신 따라
나를 일으키나이다
오늘의 성인
성 마티아(Matthias)
신분 : 사도, 순교자
활동연도 : +1세기경
같은이름 : 마띠아, 마지아, 마티아스
기술자의 주보성인인 성 마티아는 열두 사도 중 유다(Judas)의 배반과 죽음으로 비어 있는 자리를 채우기 위해 사도로 선출된 예수님의 제자(사도 1,15-26)이다. 성 마티아는 당시 그리스 문화권에서 흔한 이름인 마티티아(Mattithiah, 야훼의 선물)의 약칭이다. 열 두 사도로 선출된 사실 이외에 그에 관해 알려진 바는 없으나 후대 전설에 의하면 성 마티아는 예수님께서 파견하였던 72명의 제자(루카 10,1-12)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
또 자캐오(Zachaeus) 아니면 성 바르나바(Barnabas, 6월 11일)와 동일 인물이라고도 하고, 그의 죽음에 대해서는 십자가형 또는 참수형을 받았다는 두 개의 다른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이와 같이 마티아 사도의 선출 이야기 외에는 신약성경의 다른 어느 곳에도 마티아라는 이름은 나오지 않으며 그에 관한 전승을 아주 불확실하다.
다소 불완전한 전설이긴 하지만 그에 따르면, 그는 거의 30년 이상 유대아(Iudaea)와 카파도키아(Cappadocia), 이집트, 에티오피아 등지에서 설교하였고, 카스피해(Caspian Sea) 연안에서 큰 박해를 맞이하여 콜키스(Colchis) 또는 예루살렘(Jerusalem)에서 순교하였다고 전해온다. 교회 전승에 의하면 성 마티아 사도의 유해는 콘스탄티누스 대제에 의하여 독일의 트리어(Trier)로 옮겨졌고, 노르만족의 침략으로 분실되었다가 다시 발견되어 안장되었다고 전해진다.
성녀 마리아 도미니카 마자렐로(Mary Dominica Mazzarello)
신분 : 동정녀, 설립자
활동연도 : 1837-1881년
같은이름 : 도미니까, 메리, 미리암
성녀 마리아 도미니카 마자렐로(Maria Dominica Mazzarello)는 이탈리아의 제노바(Genova) 인근 모르네세(Mornese)에서 농부인 주세페(Giuseppe)와 막달레나 마자렐로(Maddalena Mazzarello)의 열 자녀 중 맏이로 태어났다. 그녀는 어릴 적부터 매우 열심하여 가능한 한 매일미사에 참례하였고 모든 활동에서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한 번은 그녀의 본당 신부인 페스타리노가 마리아니스트 수녀회의 규칙을 따르는 '마리아회'를 조직했다. 그런데 페스타리노 신부가 토리노(Torino)에서 성 요한 보스코(Joannes Bosco, 1월 31일) 신부를 만나게 됨에 따라 성녀 마리아 도미니카 마자렐로 또한 성 요한 보스코 신부를 알게 되었는데 이때 그녀의 나이는 17세였다.
그러나 이 신심회는 그 후 5년 동안 시련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전염병의 창궐로 그녀와 회원들은 전염병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구하려고 노력하였으나 그녀 또한 병에 걸려 쇠약해졌다. 그래서 힘든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다른 방법으로 소녀들을 돕기 위해 다른 친구들과 함께 재봉 기술을 배우며 가르쳤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을 하는데 있어서 항상 성 요한 보스코 신부의 영향을 받았다.
성 요한 보스코 신부는 소년들을 위하여 살레시오회를 세운 후 소녀들을 위한 수녀회를 조직하고자 했다. 그래서 1872년 성녀 마리아 도미니카 마자렐로가 모르네세에서 활동한 공동체를 수녀회로 변경하였는데,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도움이신 성모 마리아회’, 곧 살레시오 수녀회의 시작이었다. 1878년 아르헨티나로 인디언들을 교육하기 위해 떠나는 6명의 살레시오회 수녀들을 전송하고 프랑스를 거쳐 돌아오던 도중 성녀 마리아 도미니카 마자렐로는 폐렴에 걸려 불과 44세의 나이로 1881년 5월 14일 이탈리아의 니차 몬페라토(Nizza Monferrato)에서 선종하였다.
그녀의 생존시에 이미 수녀회는 이탈리아와 프랑스 등지로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그들의 주요 임무는 교육이었다. 그녀는 1938년 11월 20일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51년 6월 24일 교황 비오 12세(PIus XII)에 의해 시성되었다. 성녀의 유해는 토리노(Torino)에 있는 성 요한 보스코의 무덤 곁에 안장되었다.
성 미카엘 가리코이트 (Michael Garicoits)
활동년도 : 1797-1863년
신분 : 신부, 증거자, 설립자
지역 :
같은 이름 : 마이클, 미가엘, 미구엘, 미키
성 미카엘 가리코이트는 프랑스 피레네 산중의 이바레(Ibarre)라는 한 작은 촌락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가족은 프랑스 혁명의 박해를 피해서 온 사제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하고 있었다. 산중생활이 대부분인 그는 여느 아이들과 다름없이 이웃의 목장에서 양을 치는 평범한 목동이었지만, 어려서부터 가끔씩 사제가 되고 싶다는 소망을 표현하곤 하였다. 그러나 너무나 가난했던 그의 부모는 아들의 교육비를 감당할 수가 없어서 "돈이 없다"는 식으로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의 할머니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할머니는 생팔레(Saint-Palais)의 본당신부를 찾아가서 손자 이야기를 했고, 그 결과 그는 그 본당신부의 주선으로 그 지방의 대학에 들어갔다. 그러나 부모가 학비를 부담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는 본당 사제관이나 주교관에서 일을 해야만 하였다.
에르(Aire)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닥스(Dax)의 대신학교에서 신학을 수학한 성 미카엘 가리코이트는 비록 시골 목동이었지만 매우 현명하고 또 건강했다. 더욱이 그는 마음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자세로 노동과 공부를 했기 때문에 '우리의 알로이시우스 곤자가(Aloysius Gonzaga, 6월 21일)'라는 별명을 들을 정도가 되었다. 이렇게 해서 그는 1823년 12월에 바욘(Bayonne) 교구의 사제로 수품되는 영광을 안게 되었다. 캄보(Cambo)의 보좌신부로서 사제생활을 시작한 그는 예수 성심께 대한 지극한 사랑과 자주 성체를 모시는 관습을 보급함으로써 얀세니즘(Jansenism)과 싸워 극복하고자 노력하였다.
그의 다음 부임지는 베타람(Betharram)에 있는 교구 신학교였다. 그는 여기서 철학을 가르치다가 원장이 되었다. 그 교구의 주교가 베타람 신학교를 바욘에 있는 신학교와 합치는 결정을 내렸을 때 그는 다른 두 명의 사제들과 함께 그곳에 남아 새로운 봉사를 꿈꾸게 되었다. 성 미카엘 가리코이트는 하느님을 믿지 않는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제 양성 계획을 구체화시킬 심산으로 동료들과 함께 공동생활을 시작하였다. 그 후 그는 툴루즈(Toulouse)로 가서 예수회원인 르블랑(Le Blanc) 신부를 만났는데, 그 신부는 성 미카엘 가리코이트 신부의 마음을 활짝 열게 했을 뿐만 아니라 격려까지 잊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로욜라(Loyola)의 성 이냐시오(Ignatius, 7월 31일)의 자녀들과 같은 규칙에 근거하는 회헌을 만들고 계획을 하나하나 실천에 옮겼다. 이렇게 해서 1838년에 '베타람의 성심 신부회'가 탄생하였다. 이 선교회는 베타람에서 그가 사망한 지 14년 뒤에 교황청의 인가를 받았다. 그는 1923년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1947년 7월 6일 교황 비오 12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