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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자신에게 주의를 기울여라
바실리우스
진리의 말씀은 알아듣기 어렵고 부주의한 청중은 그것을 쉽게 놓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께서는 우리의 말이 명확하고 간결하기를, 많은 것을 짧게 요약해 표현하여, 청중이 우리의 말을 기억하기 쉽게 해주기를 바라십니다. 말의 자연스러운 기능은 그 의미를 모호하게 가리거나 주제에 대해 장황하고 부적절한 방식으로 흐르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1]
☕ 좋은 말은 명확하고 간결하다. 이해하기 어려운 말은 좋은 말이 아니다.
“너의 마음에 사악한 생각이 들지 않도록 그대 자신을 주의하여라”(신명 15,9 참조). 우리 인간의 마음은 죄에 쉽게 이끌립니다. 그래서 각 사람의 마음을 개별적으로 빚으신(시편 32,15 참조) 그분께서는 죄의 가장 큰 부분이 우리가 의도하는 바를 통해 충동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아시고, 순수함이 우리 영혼의 중요한 관심사가 되도록 정하셨습니다. 우리는 죄를 범하기 쉬운 우리의 능력에 대해 확실히 주의와 경계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1]
☕ 인간은 죄에 기울여지기 쉬운 나약한 존재다. 죄에 빠지지 않으려면 늘 자신의 마음을 살피고 다스려야 한다.
“혹시라도 악한 생각이 너를 덮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이미 마음으로 그 여자와 간음한 것”(마태 5,28)이기 때문입니다. 육체의 행위는 많은 장애물에 의해 방해를 받지만, 생각은 빠르기에 생각으로 죄를 짓는 사람은 즉시 죄를 짓습니다. 그러므로 갑작스럽게 죄악에 빠지는 순간에, 성경이 말하는 것처럼, “혹시 악한 생각이 너를 덮치지 않도록” 우리에게 신속한 안전장치가 주어졌습니다. [1]
☕ 생각으로 짓는 죄는 남에게 드러나지 않지만 영혼을 좀 먹는다.
해로운 것과 유익한 것을 구별할 수 있도록 “그대 자신에게 주의를 기울이십시오”. [2]
☕ 늘 깨어 있어야 한다.
“그대 자신에게 주의를 기울이십시오.” 곧, 모든 면에서 그대 자신을 주의 깊게 살피십시오. “그대는 지금 올가미들 사이를 걷고 있으므로”(집회 9,13) 잠들지 말고 깨어 있으십시오. 원수가 파 놓은 함정이 사방에 숨겨져 있습니다. 그러니 “제비가 덫에서, 새가 올가미에서 벗어나는 것처럼, 당신이 구원받을 수 있도록”(잠언 6,5 참조) 사방을 둘러보십시오. [2]
☕ 가장 먼저 주의를 기울여야 할 대상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그대 자신에게 주의를 기울이십시오.” 그대가 소유한 물건이나 주위에 있는 물건에 관심을 기울이지 말고 오직 그대 자신에게만 관심을 기울이라는 뜻입니다. 우리 자신과 우리의 소유물은 서로 다릅니다. 그리고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물건도 우리 자신이 아닙니다. 창조주의 모상대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우리는 영혼과 지성입니다. 우리의 몸은 우리의 것이고, 육신을 통해 표현되는 감각도 우리의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돈, 공예품 등 삶의 부속물은 우리와 관계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성경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육에 귀를 기울이지 말고, 건강과 아름다움, 향락, 장수 등 어떤 형태로든 육신의 유익을 추구하지 말고, 부와 명성과 권력을 탐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현세에서 여러분에게 도움이 되는 부수적인 것들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에 대한 지나친 관심 때문에 그대에게 가장 중요한 삶을 소홀히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3]
☕ 진정 소중하게 보살필 대상은 소유물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이다.
“그대 자신에게 주의를 기울이십시오.” 곧, 그대의 영혼에 주의를 기울이십시오. 신중하게 주의를 기울여 죄의 결과로 생긴 더러움과 모든 수치스러운 악을 제거하고, 덕에서 나오는 모든 아름다움으로 그대의 영혼을 장식하고 밝게 하십시오. [3]
☕ 우리에게 영혼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 영혼을 가꾸고 계속 성장시켜야 한다.
그대가 어떤 존재인지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그대의 본성을 아십시오. 그대의 육체는 죽지만, 그대의 영혼은 불사합니다. 우리의 삶은 이중입니다. 하나는 육신에 속한 것으로 빨리 지나가고, 다른 하나는 영혼에 속한 것으로 끝이 없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대 자신에게 주의를 기울이십시오.” 죽을 것을 영원한 것인 양 집착하지 말고, 영원한 것을 일시적인 것인 양 멸시하지 마십시오. 육을 멸시하십시오. 육은 지나가기 때문입니다, 영혼을 돌보십시오. 영혼은 죽지 않기 때문입니다. [3]
☕ 육은 사라지더라도 영혼은 영원히 남는다.
우리 영혼의 의사인 성경은 죄로 고통받는 영혼을 다음과 같은 간단한 치료법으로 건강하게 회복시켜 줍니다. “그러므로 그대 자신에게 주의를 기울이십시오.” 그래야 여러분이 지은 죄의 경중에 따라 회복에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만일 그대의 죄가 무겁고 심각하다면, 그대는 많은 고백성사, 쓰라린 눈물, 장기간의 철야, 끊임없는 단식을 해야 합니다. [4]
☕ 말씀은 영혼의 양식이다.
만일 그대의 죄가 가볍고 웬만한 죄라면, 그에 대한 보속도 그러할 것입니다. “그대 자신에게 주의를 기울이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자기 영혼의 건강 상태나 질병의 여부를 인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의력 부족 때문에 많은 사람이 중병에 걸리고 심지어 난치병에 걸리며 자신이 아픈 줄도 모르고 있습니다. [4]
☕ 자신에게 주의를 기울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일기를 쓰는 것이다.
‘그대 자신에게 주의를 기울이십시오.’ 곧, 정신 차리고 깨어 있으며, 사려 깊게 행동하고, 가진 것을 지키며, 미래를 준비하십시오. 그대가 이미 소유하고 있는 것을 부주의로 잃지 말고, 그대의 것이 아닌 것을 그대가 이미 소유하고 있는 것처럼 즐기겠다고 그대 자신에게 약속하지 마십시오. 결코 그렇게 될 수 없을 것입니다. [5]
☕ 가진 것에 만족하자. 내 것이 아닌 것 때문에 마음이 흔들릴 필요가 없다.
우리 각자는 자신의 일을 챙기는 것보다 우리와 상관없는 일로 바쁘게 지내기가 훨씬 더 쉽습니다, 우리가 이런 죄를 짓지 않도록, 성경은 사실상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다른 사람의 일에 참견하지 마십시오. 남의 약점을 시시콜콜 캐는 데 시간을 낭비하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그대 자신에게 주의를 기울이십시오’, 곧 영혼의 시선을 자기 성찰로 돌리십시오, 참으로, 주님의 말씀대로,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제 눈 속의 들보는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마태 7,3 참조). 그러므로 그대는 자신의 삶이 이 가르침에 들어맞는지 끊임없이 성찰해야 합니다. 자신을 의롭다 여기고 세리를 경멸하던 완고하고 교만한 바리사이처럼, 어떤 흠을 발견할 수 있는지 보기 위해 그대의 밖을 둘러보지 마십시오. 그대가 어떤 생각의 죄를 지었는지, 또는 그대의 혀가 그대의 생각보다 앞서 달려가 어떤 실수를 범했는지, 또는 그대가 손으로 부주의하거나 뜻하지 않은 행동을 했는지 계속해서 그대 자신을 점검하십시오. 만일 그대가 자신의 삶의 방식에서, 많은 결점을 발견한다면, 인간은 누구나 당연히 그럴 것입니다, 세리와 함께 다음과 같이 말하십시오.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루카 18,13). [5]
☕ 다른 사람을 판단하기보다는 자신의 내면을 더 살펴야 한다.
‘그러므로 그대 자신에게 주의를 기울이십시오.’ 이 권고는 인간의 본성을 끊임없이 일깨워 주는 현명한 조언자처럼, 그대가 빛나는 성공을 누리고 있을 때 그리고 그대의 인생 전체가 시냇물처럼 흘러가고 있을 때 그대에게 유용한 협력자가 될 것입니다. 그대가 역경에 빠졌을 때도, 천박한 생각에 굴복하여 절망에 빠지지 않도록, 마음속으로 이 말씀을 반복해서 되뇌면 유익할 것입니다. [5]
“그대 자신에게 주의를 기울이십시오.” 왜냐하면 그대는 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대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창세 3,19 참조) 없기 때문입니다. [5]
☕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에 살아있을 때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
모든 사람이 먼지로 사라지지 않았습니까? 그들은 모두 전설 속의 인물이 되지 않았습니까? 뼈 몇 개가 그 사람들의 삶에 대한 기념물인 것이 사실 아닙니까? 그들의 무덤을 내려다보고 누가 노예이고 누가 주인인가, 누가 가난한 사람이고 누가 부자인가, 분별할 수 있는지 알아보십시오. [5]
☕ 하긴 부유한 사람의 묘는 가난한 사람보다 크고 웅장하다.
그대의 현재 상태가 부러울 만한 것이 전혀 아니라고 해서 낙담하거나 희망을 버리지 마십시오. 오히려 하느님께서 이미 그대에게 주신 축복과 미래에 대한 약속으로 마련해 두신 축복을 생각하십시오. 첫째, 그대는 사람입니다. 모든 생물 중에서 하느님께서 빚어 만드신 유일한 존재입니다(창세 2,7 참조). 내가 이 정도만 말해도, 만물을 창조하신 바로 그 하느님께서 직접 빚어낸 사람이 바로 그대라는 사실을 총명하게 추론해 낸다면, 그대는 더없이 황홀한 기쁨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요? 둘째, 창조주의 모상대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대는 선한 삶올 영위함으로써 천사들과 똑같은 존귀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대는 이해할 수 있는 정신을 받았으니, 그 능력으로 하느님에 관한 지식을 얻을 것입니다. 이성의 도움으로, 그대는 존재하는 것들의 본질을 탐구합니다. 그대는 아주 달콤한 지혜의 열매를 땁니다. 육지의 모든 짐승, 들짐승과 길짐승, 물에 사는 모든 것, 공중에 날아다니는 모든 것이 그대를 섬기고 그대에게 복종합니다. [6]
☕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나’라는 존재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귀하다.
그대를 위하여 하느님께서 사람들 가운데 사셨고(요한 1,14 참조), 성령을 나누어 주셨으며(히브 2,4 참조), 죽음이 파멸되었고(1코린 15,26.55 참조), 부활에 대한 희망이 확증되었고(1코린 15,12.22 참조), 완전한 삶을 영위하도록 하느님의 계명이 주어졌으며(마태 19,17.21 참조), 하늘나라가 마련되었고(마태 25,34 참조), 덕을 쌓기 위해 수고를 마다하지 않은 사람을 위해 “의로움의 화관”(티모4,8)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6]
☕ 나는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단독자다. 얼마나 귀한 존재인가?
그대가 그대 자신에게 주의를 기울인다면, 이 모든 것을 스스로 발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이상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대는 그대에게 없는 것 때문에 낙심하지 않고, 그대가 소유한 것들에서 기쁨을 누릴 것입니다. [7]
☕ 없는 것에 낙심하기보다는 소유한 것에서 기쁨을 찾자.
분노가 그대의 이성을 압도하여 그대가 분노에 사로잡혀서, 험한 말을 하고 무례하고 야만적인 행동을 한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만일 그대가 그대 자신에게 주의를 기울인다면, 말 안 듣는 사나운 망아지를 채찍질로 제어하는 것처럼 자신의 분노에 이성의 타격을 가함으로써 그것을 제어할 것입니다. 또한 그대는 그대의 혀를 다스릴 것이며, 그대를 화나게 하는 자에게 폭력을 행사하지 않을 것입니다. [7]
☕ 분노는 사탄이 던지는 미끼다. 유혹에 넘어가면 안된다.
만일 그대가 자신에게 주의를 기울인다면, 그대는 우주의 질서 안에서 창조주의 표징들을 찾을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대는 우주 질서의 축소 모형, 곧 그대 자신 안에서, 창조주의 위대한 지혜를 관조하게 될 것입니다. 그대 안에 있는 무형의 영혼으로부터, 하느님은 무형이시며 공간에 제한받지 않는 분이시라는 것을 배우십시오. [7]
☕ 인간의 몸은 얼마나 경이로운가? 나는 소우주다.
창조주의 작품에 경이로움을 느끼십시오. 그분께서는 한 번의 호흡으로 영혼의 힘을 육체와 신묘하게 결합시켜 영혼의 힘을 수많은 분리된 팔다리와 장기들을 연결하여 모든 것을 하나로 묶어 내십니다. 또한, 영혼이 육체에 부여하는 이 힘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반응으로 육체가 영혼에게 주는 교감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어떻게 육체는 영혼에 의해 생명을 부여받고, 영혼은 육체의 고통을 어떻게 전달받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7]
☕ 우리 인체의 신비를 생각해 보면 하느님의 신비를 느끼게 된다.
창조주께서는 모든 생물체 중에서 오직 사람만이 직립보행을 하도록 하셨습니다. 이는 인간의 삶이 천상에 기원을 두고 있다는 것을 인간의 관점에서 인식할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네 발 달린 동물은 모두 시선이 땅에 가 있고 머리를 배 쪽으로 숙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식탁의 쾌락이나 탐욕스러운 욕망에 휘둘리지 않고 하늘로의 여행에 온 힘을 쏟을 수 있도록 위를 바라보도록 창조되었습니다. [8]
☕ 인간은 하늘을 향해 살아가는 존재다.
창조주께서는 사람의 머리를 몸의 가장 높은 곳에 두시고 머리를 주요 감각의 자리로 만드셨습니다. 여기에 시각, 청각, 미각, 후각이 다모여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들은 그처럼 좁은 부분에 다 모여 있지만, 그중 어느 하나도 이웃의 작용을 방해하지 않습니다. 물론, 눈은 몸 전체를 둘러볼 수 있도록 가장 잘 보이는 윗자리에 있습니다. 말하자면, 눈은 작은 갑(岬) 아래에 있는 것처럼 자리 잡고 있어서, 방해받지 않고 완전한 전망을 누립니다. 반대로, 청각은 자극에 직접 닿도록 노출되어 있지 않지만, 공기 중의 소리는 순환 경로로 청각에 도달합니다. 이 배열은 최고의 지혜이신 창조주에 의해 결정되었으므로, 귀의 구불구불한 굴곡을 따라 비틀린 목소리는 통과할 수 있지만, 이 감각을 방해할 수 있는 외부의 어떤 것도 통과할 수 없습니다. 혀의 특성도 연구해 보십시오. 혀가 얼마나 부드럽고 유연한지, 그리고 다양하고 복잡한 움직임 때문에, 어떻게 혀가 언어의 모든 요구 사항을 충족시킬 수 있는지 관찰하십시오. 혀에 튼튼한 지렛대를 제공하면서 목소리의 도구 역 할을 하는 동시에 음식을 섭취하는 데 도움을 주는 치아를 생각해 보십시오. 치아 중에서 더러는 음식을 먹는 데, 더러는 음식을 갈아 먹는 데 도움이 됩니다. 그대가 이 모든 점을 각각에 대해 적절하게 성찰하면서 숙고할 때, 그리고 호흡의 과정을, 심장이 온기를 보존하는 방식을, 소화 기관과 정맥을 연구할 때, 그대는 이 모든 경이로움 속에서 창조주의 불가사의한 지혜를 분별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대는 예언자인 시편 저자와 함께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 자신에 관한 연구를 통해 “당신의 예지가 신비로워졌습니다”(시편 139,6 참조). 그러니 하느님께 주의를 기울일 수 있도록 그대 자신에게 주의를 기울이십시오. [8]
☕ 우리 몸의 신비를 묵상할 때 하느님이 권능과 만나게 된다.
첫댓글 " 그대의 혀가 그대의 생각보다 앞서 달려가 어떤 실수를 범했는지, 또는 그대가 손으로 부주의하거나 뜻하지 않은 행동을 했는지 계속해서 그대 자신을 점검하십시오"
잘 읽었습니다.
말씀은 영혼의 양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