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처럼 빛나는 세종시/靑石 전성훈
처음 가 보는 곳은 언제나 신기하고 새롭고 사물과 풍경은 물론 사람도 신선하게 다가온다. 2024년 첫 번째 인문학 기행지 세종특별시는 한 번도 가 보지 않은 낯선 고장이다. 세종(世宗)이라는 이름처럼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아름답고 멋진 고장이 되기를 기원한다. 남녘의 먼 곳으로 인문학 기행을 떠날 때는 평소보다 30분 정도 빨리 출발하곤 했었다. 그다지 멀지도 않은 충청북도 세종특별시로 가는 인문학 기행이 평소보다 30분이나 이른 오전 6시 반에 출발하기에 어떤 깊은 뜻이 있는지 자못 궁금하다.
수락산터널을 지나 고속도로로 가는 길이 막히지 않은 덕분에 안개 낀 고속도로를 자동차들은 조심하면서 일정한 속력으로 잘 달린다. 차창 밖으로 눈을 돌려보니 아직은 봄이 오는 모습을 확연히 느낄 수는 없다. 어제는 비가 왔는데 오늘은 날씨가 개어 창밖을 스쳐 지나가는 스산한 풍경을 볼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잠시 졸고 있는 틈에 어느새 관광버스가 음성휴게소에 도착하니 문화원 담당자가 20분 정도 쉰다고 안내한다. 뜨거운 어묵 국물을 마시며 뱃속을 따뜻하게 하고 나서 아침 약을 삼킨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반갑지 않게 늘어나는 건 ‘아이고’하는 소리와 식사 때 먹는 ‘약’뿐이다. 이제 1시간 정도 가면 세종특별시에 도착할 것 같다. 조용하던 버스 안 여기저기서 소곤소곤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세종특별시는 2012년 7월 1일부로 충청남도 연기군을 폐지하면서 인근의 청원군과 공주시 일부를 병합하여 광역자치단체로 출발하여 행정 중심 복합도시로 건설한 곳이다. 인접한 공주시 석장동에서 1964년에 구석기 유적이 발견되어 이곳은 구석기를 포함한 선사시대의 유적 권역에 들어가는 곳으로, 백제 초기부터 백제 강역(疆域)에 속하였다고 한다. 세종특별시에 도착하여 처음 찾은 곳은 정부청사 옥상공원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옥상공원’으로 2016년 6월 기네스북에 등재되어 유명하다. 처음에는 세종특별시 주민에게만 한시적으로 옥상공원을 개방하였다가, 2019년 9월부터 일반인에게도 개방하기 시작하였다. 면적은 약 79,194 제곱미터며 전체 길이가 약 3.6km이다. 날씨 탓에 한겨울과 한여름에는 개방하지 않고, 평일과 주말 오전 10시, 오후 13시 30분, 15시 30분에 개방한다. 봄이 오는 소식을 전해주는 매화가 꽃봉오리를 수줍게 내밀고, 봄의 전령 산수유도 꽃을 피우려고 노랗게 피어오르고 있다. 다른 꽃나무는 아직은 겨울의 잔재를 느끼며 숨을 죽이고 있는 모습이다. 날씨가 화창하고 햇볕이 쏟아져서 걷는 데는 그만이다. 꽃이 만발한 옥상공원을 구경하기에는 계절적으로 4월 중순에서 5월 초순이 가장 좋을 것 같다. 높은 옥상에서 주위를 바라보면서 남몰래 혼자만의 씁쓸한 상념에 빠진다. 명목은 국토의 균형적인 발전과 개발이라고 했지만, 정치권이 선거 때 ‘표’를 구하는 막전막후의 싸움에서 ‘수도’를 이전하는 저열한 공작을 했다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수도 이전 공약으로 대통령선거에서 재미를 봤다고 누군가 말했던 것도 기억난다. 옥상공원을 벗어나서 대통령기록관으로 향한다. 역대 대통령의 친필 휘호를 보니 감회가 새롭다. 온 마음을 다하여 국민을 위하여 봉사하겠다는 대통령 말씀과는 달리, 감옥에 간 사람이 몇 사람이나 있다는 게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새삼스럽게 정치인의 말과 행동이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되어 씁쓸하다. 기록관을 구경하다가 대통령 취임에 맞추어 제작한 시계, 지갑, 벨트, 만년필 등 선물을 보며 문득 짧은 생각이 스쳐 간다. 선물을 받고 어깨에 힘을 주었던 허세투성이 사람, 선물을 갖고 싶어서 안달하며 여기저기 부탁했던 사람의 허욕에 휩싸인 추한 행동으로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았던 신문 기사를 떠올리며 쓴웃음을 짓는다. ‘메밀꽃 필 무렵’이라는 음식점에서 ‘야채불고기찌개’로 맛있게 점심을 먹고 오후에는 봄을 시샘하는 세찬 바람을 맞으며 이응다리(기역, 니은, 이응)를 걷는다. 금강 북쪽 중앙녹지공원과 남쪽 수변공원을 연결하여 만든 콘크리트 다리, 세종임금이 훈민정음을 반포한 1446년을 기념하여 원형 둘레를 1446m로 정하였다고 한다. 다리 이름은 시민 공모로 선정하였다고 하니, 일부 공무원의 고착된 사고를 벗어난 활기가 넘치는 착상인 것 같다. 금강을 품어 안은 드넓은 평야의 개활지에 시야를 가리는 높다란 지형지물을 만들지 않고 사통팔달 마음껏 휘둘러볼 수 있도록 설계한 것이 가장 잘한 것 같다.
새로운 수도를 건설하는 것은 국가 백년대계를 좌우하는 중요한 일이다. 아무리 세상이 험악하고 볼썽사납다 해도 정치인은 정파적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국민의 복지와 행복을 위하여 정치해야 할 도리와 책무가 있다. 세종특별시 청사에서 근무하는 공무원들도 백성을 위한 세종임금의 큰 뜻을 기억하며 올바르게 일을 해주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원한다. (2024년 3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