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이다, 무탈히 돌아와서 이렇게 책을 낼 수 있어서..
다정한 사람에게 다녀왔습니다.
남유럽에서 열여덟명의 사람을 여행한 기록
가출형 인간이자 습관적 흥분가이면서 카피라이터와 플래너의 경력을 지닌 노윤주씨는 이런 기준을 가지고 떠났다. 대도시보다는 소도시였고 성수기보다는 비수기에, 쌀쌀한 북쪽보단 따뜻한 남쪽. 그렇게 맞아떨어진 기준의 몇개의 도시에 도착해 보니 다정한 사람이 없는 도시는 없었노라고 포문을 열었다. 간이 큰건지 겁이 없는 듯하다. 혼자서 그렇게 떠나고 여행하기가 쉽진 않을 터인데 터벅터벅 잘도 다녔고 모르는 이들을 잘도 따라 다녔고 결국 그들이 다정한 것으로 판명돼 이렇게 그들에 관한 책도 냈다.
60대로 추정되는 에디나는 브라질 출신이지만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살고 있다. 옆나라 포르투칼어를 쓰는 브라질 출신이건만 스페인어를 쓰는 나라에 살고 있는 것부터 흥미진진했는데 그녀의 삶도 그러했다. 윤주씨는 그녀를 태양처럼 젊은 사람이라 소개했다. 항상 예쁘다는 뜻의 스페인어 구아파를 연신 외쳐대는 에디나는 맨발로 걷다가 길에서 춤을 추는 여인이다. 그녀가 윤주씨에게 "다음엔 리우데자네이로에서 만나요!"라는 제안을 했고 윤주씨는 그러자고 약속했다. 그 약속 꼭 지켜졌으면 좋겠다.
세비야로 이동한 윤주씨가 머물던 집의 주인 이었던 라우라는 이탈리아 출신이다. 전형적 이태리인의 느낌이 들지 않는다는 라우라가, 겁없이 혼자서 낯선 곳을 여행하는 윤주씨를 너무 신기해하고 부러워하자 책 '그리스인 조르바'를 추천하면서 "조르바는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틀이 없는 사람이야. 용감하고 동시에 다정한 사람이야. 하고자 하는 것을 해버리는 사람"이라고 알려줬다. 이에 라우라는 "윤주, 그게 조르바라면 넌 이미 나한테 조르바야"며 세상 다정한 답변을 날렸다. 아마 이 말로 이 책의 제목이 다정한 사람에게 다녀왔습니다로 결정된 듯하다.
이토록 다정한 라우라의 남자친구인 필립포는 뮤지션이고 마우로는 그의 동료 뮤지션이다. 당연 스페인 세비야에 사는 이탈리아인들이다. 윤주씨가 우연히 바에서 연주하는 마우로를 보았는데 또다시 마우로와 함께 만나게 돼 전혀 이탈리아인이라고 생각치 못했다고 하자 인간캔디 마우로의 답변은 무지 달달했다. 자신은 윤주씨를 보자마자 한국인인줄 알았다고. 왜? "한국여자가 세상에서 제일 예쁘니까!" 캬악~ 그자리에서 솜사탕이 된 윤주씨. 그런 말솜씨를 가르쳐주는 학원이 있다면 바로 등록하겠단다.
세비야에 머물면서 저가 비행기표가 떠서 잠시 다녀온 모로코 마라케시에서 만난 폴란드인 아냐는 영국에서 엔지니어링을 공부하고 있다. 이국에서 무작정 떠난 또다른 이국의 낯선 도시에서 어찌할 바를 모를 때 만난 그녀는 낯선도시생존법을 가르쳐주며 다정함을 선물했다. 세비야를 떠나면서 만난 독일인 필리프는 티테이블을 목걸이처럼 목에 걸고 다니고 돈을 아끼려 경유에 경유를 거쳐 비행기를 타고 가 공항에서 자기의 집까진 자전거로 간다는 이 청년은 자연을 좋아해서 아프리카 곳곳의 산을 찾아다녀 여권이 아프리카 나라들의 비자 스탬프로 빼곡하다고. 놀랍게도(?) 이 청년의 직업은 교회 파이프 오르간 연주자다.
이제 옆나라 포르투칼 라구스로 이동해 연날리는 서핑광 영국인 대럴을 서핑코치로 윤주씨는 만난다. 건축기술을 가진 그는 10년전 쯤 직장을 잃고 히피처럼 부인과 함께 유럽 구석구석을 떠돌며 여행하다 라구스에서 카이트 서핑을 처음해보곤 아예 눌러 앉았다고. 아무 욕심없이 그냥 즐겨야 연을 탈 수 있다는 명언을 남기며 윤주씨에게 다정함을 보여준 이다.
그다음엔 욕쟁이 여행광 벨기에인 베르후르를 만났고 천개의 분수를 가진 마을이라는 포르투칼 빌라 노바 드 밀폰테스에서 프랑스인 실뱅과 독일인 요르크를 만나 그들의 다정함에 빠져들기도 했다. 리스본 호스텔에서 만난 페드로는 인생 다산 실업자로 의지박약자로 보여 불쌍해서 고기없는 그냥 면뿐인 스파게티 만들어줬더니 결국 부잣집 도련님으로 나타나 자신의 고향 브라가에서 신세를 갚기도 했다고. 그러면서 집이 화려해서 미안하다느니, 나도 안할테니 너도 결혼하지말라느니 요상한 말들을 윤주씨에게 했는데 결론적으론 비영리커뮤니티를 만들어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는 후일담을 들려주기도 한 인물이다.
터키 이스탄불에서 만난 수아는 호텔 사장이 되리라는 큰꿈을 지닌 영문교육 전공 대학생. 알바로 돈모아 집사서 세주고 자신은 폐가에서 친구들과 지내는 야망가다. 돈모아 호텔 지을려고..대단한 젊은이구만! 패기하난 맘에 드네!
끝으로 그리스 시프노스로 떠난다. 완벽한 섬에서 만난 히피, 크리스토스와 그의 친구들 마리노스와 디미트리스. 이들을 윤주씨는 느리게 빛나는 말라카들이라 칭했다. 서로들에게 일종의 은어인 말라카로 불려지는데 이중엔 왕중왕 그레이트말라카도 있다.
이 중간중간엔 영국과 그리스에서 만난 절친인 한국 친구들 이야기도 있다. 모두들 유사한 직업을 가지고 있는데 책을 내었거나 신문사에서 일한다. 윤주씨가 다정한 사람들을 이야기하면서 유유상종이라는 말을 했다. 다정하기에 다정한 이들과만 함께 하는지라 다정한 이가 다정한 이를 소개한다고. 윤주씨도 그러한 듯.
에필로그에서 낯선도시를 누군가의 이름으로 기억한다는 윤주씨. 시프노스를 떠나오면서 크리스토스에게 보낸 이메일. "그날 오후 네 가게에 들어간 것이 내가 여행 중 가장 잘한 일." 그후로 놀라운 일만 생겼노라고 어딘가에서 꼭 다시 만나자는 윤주씨에 대한 그의 답장에는 "누군가를 우연히 만나는 건 없어. 누군가 우리 인생에 나타났다면 그건 뭔가 이유가 있는거지. 근데 그 이유는 나중에 알게 되는거야. 지켜보자. 우리가 서로 왜 만났는지"라는 긴 여운이 남겨졌다.
이 책의 후기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지켜보자. 우리가 서로 왜 만났는지..
글쎄..이런 명언을 날리며 마음에 터치를 남긴 긴 여운에 딴지를 거는 것도 아니요, 다정한 사람들을 만난 걸 질투하는 것도 아니지만 윤주씨! 스쳐 지나간 이들이기에 다정함으로 각인됐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오래 혹은 자주 만나다 보면 다정함이 다정함만으로 남아 있기가 그리 쉬운 건 아니라오! 그래도 혼자 씩씩하게 다정한 마음을 품고 낯선나라의 다정한 이들에게 다녀온 건 참 잘했어요! 도장 쾅쾅 찍어주고 싶네요. 굿 잡!
♡ 늘 도서관 관계자분들과 한글도서목록을 수고로이 올려주시는 평상님에게 고마움을 표하며 ♡
1년에 52권 스물두번째 읽은 책
다정한 사람에게 다녀왔습니다
2021년 7월 3일 흙요일에
첫댓글 사람을 만나는 것이 우연이 아니듯, 책을 만나는 것도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코로나 시대에 님께 꼭 필요한 책인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군요.
잘 읽었습니다.
맞는 말씀이에요. 우연히 그 책에 닿았지만 무언가로 인한 이끔이 작용한 듯 합니다. 사람들에 관한 책을 좋아하는데 특히 이 책처럼 실재로 존재하는 이들에 관한 책이라면 언제나 오케이지요. 말씀처럼 사회적 거리두기를 생각해야만 하는 요즘 시대에는 더더욱 이런 책과 도서관이 있어 무지 감사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