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 24일 (토) 주님 성탄 대축일 전야 말씀 묵상 (사도 13,16-17.22-25) (이근상 신부)
"이 다윗의 후손 가운데에서, 하느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예수님을 구원자로 이스라엘에 보내셨습니다. 이분께서 오시기 전에 요한이 이스라엘 온 백성에게 회개의 세례를 미리 선포하였습니다. 요한은 사명을 다 마칠 무렵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너희는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나는 그분이 아니다. 그분께서는 내 뒤에 오시는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사도행전 13,23-25)
성탄전야미사-밤미사가 아니다. 그 전에 하는 미사다- 둘째 독서의 한 대목. 바오로 사도가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증언한다. '요한 세례자가 사명을 다 마칠 무렵'이라고 하니 목이 좀 메인다. 이렇게 번역하는게 자연스럽기는 하지만, 사실 이 구절의 본문은 다른 곳에서는 '달릴 길을 다 달렸다'고 번역하였다. 사명이라 번역한 단어는 '드로모스'로 경기장의 트랙을 의미한다. 고대의 운동선수들이 달려야 하는 경기장의 길. 100미터 선수면 100미터, 천 미터 선수면 천 미터가 그들의 달려야 할 길. 사도행전 20장 24절 바오로 사도 자신의 고백을 같은 성경은 '사명을 다 마친다'는 번역대신 '달릴 길을 다 달려'로 번역하였다.
"그러나 내가 달릴 길을 다 달려 주 예수님께 받은 직무 곧 하느님 은총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다 마칠 수만 있다면, 내 목숨이야 조금도 아깝지 않습니다."
사명이라 하면 어째 시작도 끝도 없는 과제같은데, 달릴 길, 그것도 완수해야 할 거리가 주어졌다고 하니 이건 그야말로 다 달려야만 할 것같은 생생함이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이란 모호하여, 할 수 있는만큼 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생각보다 명료하다는게 뜻밖의 가르침. 정말 우리의 사명이 이렇게 명료한가? 사실 명료한 것을 명료하지 않게 흐트러뜨리는게 나의 특기이기도 하니... 나는 이 질문 앞에 부끄럽다.
문제는 그게 아니라 그렇게 달릴 길을 다 달린 요한 세례자의 신앙고백. 아니 생의 출사표가 아니라 생의 마지막을 정리하는 선언. 그의 몫이 신발끈을 매어주지도 못한다는 것... 자꾸만 예수께서 문지방을 넘지도 못한 상태에서 요한 세례자의 삶이 갑작스럽게 지워진다. 어둠 속으로.
빛이 세상에 오시기를 기다리는 마지막 순간. 빛 그것도 여린 빛을 맞이하려면 불을 끄고 어둠에 잠겨야 하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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