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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5. 31. 00;30
내가 탄 비행기엔 비즈니스석이 없고, 비상구에 위치한 좌석이
다른 좌석보다 앞뒤 간격이 조금 넓어 3만 원 더 비싸다.
비상구 앞 지정된 좌석에 앉자 승무원이 다가와
"유사시 승무원 지시에 의해 문을 개방하고, 승무원을 도와
승객이 신속하게 대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고 간단하게
교육을 시킨다.
며칠 전 제주 출발 대구행 비행기에서 어느 탑승객이 비상구를
강제로 여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다른 탑승객들은 공포에 떨었고, 다행히 인명피해가 발생하지
않은 사건이 생각나 앞에 앉은 승무원에게 질문을 하자 지금
내가 탄 비행기와 동일기종이라고 하는데 그 사람은 저 문을 왜,
어떻게 열었을까.
같은 A321기종으로 우리나라에 23대가 운행 중이라는데 한번
호되게 당했으니 이번에는 문제없겠지.
비행기 문짝과 승객이 미끄러지며 탈출하는 슬라이드가 망가져
수리비가 약 6억 4천만 원으로 추산된다는데 비용은 보험처리가
될까, 아니면 피의자에게 구상권(求償權)을 청구할지 흥미롭다.
높은 고도에서는 압력 차이로 비상문이 잘 열리지 않는다는데,
그 비행기는 착륙 2분 전, 고도가 213m라 비상문이 쉽게 열렸고,
다른 승객들이 불안감에 떨었다는 사건이 생각나 비상문을
유심히 관찰한다.
몇 년 전 2019년 5월 27일 백두산 등정을 위해 고교동창 50여
명과 함께 중국 심양행 아시아나 비행기에 탑승을 했었다.
심양공항 상공의 강풍과 불안정한 기류에 의해 두 번이나
Landing을 시도하다가 날개 끝이 지면에 살짝 닿았는지 착륙을
포기하고, 인천공항으로 회항(回航)하였다가 다시 선양공항에
내렸던 기억이 솔솔 난다.
00:30분
비행기 기체는 한 마리의 독수리가 되어 가볍게 땅을 박차고
하늘로 올랐다.
인천공항과 인천시의 야경이 사라지자 시속 818km, 고도 9,800m,
바깥온도는 영하 41도라고 모니터에 뜬다.
5. 31. 07;00
델타파(delta波)가 밀려와 두시간 정도 잠에 푹 빠졌던 모양이다.
숙소인 호텔에서 창문을 열자 훅하고 습기를 머금은 더운 바람이
밀려온다.
해수관음보살이 서있을 만한 숙소에서 해풍을 맞자, 내 뇌속에서
알파파(alpha波)가 튀어나와 마음이 편안해진다.
사람의 뇌파에는 알파파(alpha波), 베타파(beta波), 세타파
(theta波), 감마파(gamma波), 델타파(delta波)가 있다.
'알파파'는 심신의 안정상태에서 나오는 8~13Hz의 뇌파이고,
긴장 시 발생하는 주파수 13~32Hz의 스트레스파로 불리는
'베타파',
극도의 흥분 시 발생하는 32~100Hz의 감마파,
수면 시 발생하는 주파수 0.5~4 GHz의 델타파,
명상 시 발생하는 4~8Hz의 세타파가 있는데,
세타파는 매우 안정적인 주파수로 잠들기 전의 상태인 서파수면파
(徐波睡眠波)라고도 한다.
이번 다낭 여행은 틀에 박힌 패키지(package) 여행이 아니고,
우리 가족만의 자유여행이다.
따라서 옵션(option)에 시달릴 이유도, 강제쇼핑에 짜증날일도
없다.
또한 새벽부터 무리한 일정에 쫓기고, 가이드의 일방지시에 의해
시간을 서두를 일도 없다.
그냥 느긋하게 늦잠도 자고, 맛집을 찾아다니며 여행을 즐기면 된다.
이 나이 되도록 패키지여행에만 익숙하다가 자유여행을 하니 몸과
마음이 자유롭다.
12;00
예약시간에 1분도 늦지 않게 온 콜택시에 몸을 싣고 한국에도
잘 알려진 맛집에 도착한다.
손님은 우리 가족과 다른 한국인 일행뿐,
쇠고기 스테이크 등 이런저런 음식이 나오는데 우리의 입맛에
딱 맞고, 가격도 한국의 1/2 정도로 가성비가 매우 좋다.
다낭은 초행이지만 2017년 11월 29 하노이와 하롱베이 관광을
했었으니 베트남은 두 번째 여행인가.
통상 외국여행은 한나라에 한번 정도 관광을 하고,
두 번 이상 하는 경우는 매우 드믄데, 예외로 중국 쪽 백두산은
네 번 올랐고, 서유럽, 캐나다, 동유럽, 발칸반도, 홍콩 등은
한 번만 관광을 했으며 베트남은 두 번째이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높이 올라가는 고층빌딩들,
이제 베트남은 수십 년간 치렀던 전쟁으로 망가지고 낙후되었던
국가가 아닌 신흥 개발도상국가이다.
베트남은 사회주의 국가지만 경제성장률이 높고 인구가 많으며,
민도(民度)도 높은 편이기에 매우 희망이 있는 나라로 면적은
331,210㎢라니 남한면적의 3배가 넘는다.
베트남은 과일천국이라 호텔 근처 한국인이 경영하는 망고카페에
들른다.
애플망고, 골드망고 등이 한국의 반가격이라 걸씬들리듯 마음껏
먹으며 잠시 행복을 느낀다.
6. 1. 10;00
오늘 일정은 '투본강' 소쿠리배를 타는 거다.
어민들이 낚시나 인명구조용으로 쓴다는 소쿠리배는 관광
서비스업 도구로 바뀌었다.
'투본강' 물야자숲 물길로 수십수백의 소쿠리배들이 관광객을
태우고 묘기행진을 한다는데 매우 흥미롭다.
저 많은 배들이 뒤엉켜 사고는 나지 않을까.
끊임없이 나오는 한국 노래들,
술 취한 한국 관광객들의 고성방가(高聲放歌)와 중국 관광객의
담배연기가 역겹다.
한 시간 정도의 소쿠리배 승선료는 2달러 정도,
열심히 노를 젓는 사공의 주름살을 보며 별도로 이천 원 팁을
주고 배에서 내린다.
가장 베트남 스럽다는 소쿠리배의 일정이 끝난 후 야시장을
찾는다.
획일적인 패키지여행이 아닌 자유여행은 말 그대로 자유롭다.
어느 나라던지 가장 그 나라다운 곳을 찾는 재미도 쏠쏠하다.
관광객으로 인산인해가 된 야시장, 그리고 불이 켜진 호숫가를
걷는다.
한국말만 들리던 곳에 깃발을 앞세운 중국 단체 관광객이 떼로
몰려오자 조용히 가족사진을 찍던 사람들은 서둘러 자리를 피한다.
중국사람들에게 질려버렸다.
떼로 몰려다니며 안하무인으로 시끄럽게 떠들고,
담배를 아무 데서나 피우고, 냄새나는 그들을 현지 베트남 사람들도
좋지 않게본다는데 우리 가족도 서둘러 그곳에서 탈출한다.
6. 2. 07;30
해변을 산책한다.
어디선가 소총소리가 들린다.
내 귀가 잘못되어 환청을 듣는 걸까.
해병대는 해룡, 청룡, 흑룡, 백룡, 공룡의 다섯 용(龍) 부대가 있는데
그중 청룡부대가 베트남에 파병되어 다낭과 호이안에 주둔하였다.
해병 제1여단이 해룡부대요,
제2여단은 청룡부대요, 해병대 제6여단이 흑룡부대, 제9여단이
백룡부대, 연평부대인 공룡부대가 있다.
1965년 10월에 상륙해 다낭과 호이안에 주둔하였던 해병대
청룡부대는 6년 2개월의 작전을 마치고,
1971년 12월 9일 이곳 다낭항에서 미해군 수송선 업셔호를 타고
대한민국 부산항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기록에 의하면
1973년 베트남에서 최종철수까지 해병대 청룡, 육군 맹호부대,
비둘기부대 등 약 32만 5천여 명의 국군장병이 베트남 전쟁에
파병되어 전투를 수행하다가 5,099명이 전사하고 1만 1천여 명이
부상을 당했다.
다낭의 해변을 걸으며 타임머신(time machine)을 타고 53년 전
나의 1970년으로 돌아갔다.
1970년 부산 천광유지에서 퇴사를 하고 서울로 돌아왔으나 아직
군 미필자로 마땅한 직장이 없었고, 나이가 만 18살이라 육군에
입대하려면 3년을 더 기다려야 했지.
복교(復校)도 어중간하기에 군대나 일찍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으로
해병대를 지원하지만 시력이 나빠 두 번이나 탈락하고 해병대
입대를 포기했다.
당시 시력의 합격기준은 안경을 쓰지 않고 1.0 이상이 나와야 했다.
미리 시력표를 암기했더라면 합격하였을 텐데 그런 트릭(trick)을
쓰지 못하고 해병대 입대가 무산되었으니 차라리 다행이라고 할까.
해병대에 입대하였으면 베트남 전쟁에 쉽게 참전을 할 수 있었고,
만약에 참전하였더라면 내가 멀쩡하게 살아 돌아갈 수 있었을까.
어쩌면 전사하고 남은 영혼이 이 해변가에서 지금도 떠돌고 있지는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피식 싱거운 웃음을 짓는다.
산책을 마치고 호텔에 들어오자 로비에서 베트남 고유의 복장인
아오자이를 곱게 차려입은 직원이 반갑게 맞아준다.
하노이에서도 느꼈지만 세계 여러 나라의 고유복장 중 유독
아오자이가 예쁘다고 생각이 드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
이 여인에게 꽃사진을 보여주니 '웨델리아'라고 하는데 한국의
'금불초'와 똑같은 모습이다.
호텔로비의 '란타나'꽃에 코를 대니 고약한 냄새가 난다.
10;30
숙소가 호텔에서 리조트로 변경이 되었다.
리조트에서 만난 '플루메리아'가 은은한 향기를 풍긴다.
샤넬계통의 향수 중에 이런 향기를 맡은 적이 있었는데 이름을
모르겠다.
꽃말이 행운으로 라오스 국화라고도 하는 순백의 '플루메리아'에
잠시 빠졌다.
먼 이국땅에서 잠시나마 꽃멍을 하는 즐거움도 괜찮다.
우리나라에서도 잘 알려진 '일일초'를 만나 포커스를 맞춘다.
다른 나라에 와서 이렇게 야생화와 카메라의 초점을 맞추는
재미가 쏠쏠하다.
13;00
다낭 교구성당을 찾았다가 문이 닫혀 들어가지 못하고 재래시장을
찾는다.
휴 덥다.
기온은 37도, 습도는 90%에 가까워 숨이 막히고,
티셔츠는 이미 다 젖어 소금띠 라인이 생기기 시작한다.
남대문 도깨비 시장과 비슷한 시장에 들어오니 냉방이 되지 않아
찜질방 수준이고, 손님의 90% 이상이 한국 관광객이다.
14;00
성당문이 열렸다는 소식을 듣고 두 번째 방문을 하여 다낭 대성당
안으로 들어선다.
1923년 프랑스 식민 통치 시기에 건축된 성당으로 지붕 끝에서
풍향계가 돌아간다.
독특한 지붕으로 인해 현지인들이 '닭성당'으로 부른다는 대성당
외벽의 핑크색이 이채롭다.
금년이 100년이라는 대성당의 스테인드 글라스가 이색적이며
실내는 방금 끝낸 결혼식에 참석했던 사람들로 웅성거린다.
6. 3. 07;00
오늘은 다낭 여행의 마지막 일정이다.
밤이 되면 도마뱀이 숙소 창밖의 천장까지 기어오르고, 물이
찰랑찰랑 넘치는 풀장에서 손주 녀석들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물놀이를 즐겼다.
우리나라의 톱풀과 비슷한 열대와 난대성꽃인 '흰 도깨비바늘꽃'을
찍으며 시장기를 느낀다.
리조트에서 첫날 아침식사는 베트남 셰프가 출장을 와 유창한
한국말과 함께 한식요리를 차렸다.
메뉴는 김치볶음밥을 기준으로 김치찌개 등이 제법 먹을만했고,
오늘 메뉴는 경양식인데 샌드위치와 치즈맛이 괜찮다.
< 흰 도깨비 바늘꽃 >
13;00
다낭 관광의 마지막 코스인 바나힐스의 선월드(Sun world ba
na hills)에 도착한다.
중심의 원에 달과 태양시계를 형상화한 디자인이 인상적이다.
여기는 시간의 문이다.
빛과 물을 연주하는 예술과 소리의 능숙하고 미묘한 조합으로
마법의 상징을 만들었다니 이제부터는 공간의 한계를 넘어
환상의 세계로 들어가 마냥 즐겨야겠다.
해발 1485m에 만든 바나힐에 오르기 위해 케이블카에 탑승한다.
2013년 개통된 바나 케이블카는 5,801m로 단일 트랙 케이블카의
세계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이들은 해발 1414m의 고지대에 비단 띠 모양의 골든 브리지로
천상의 세계를 만들었다.
손가락으로 받쳐 '골든브리지'로 유명한 다리 위에는 많은 인파가
몰려 통행하기가 어렵다.
수백수천 명의 관광객으로 소란스러운 곳,
여기저기에서 들리는 한국말로, 이곳은 한국인이 점령한 모양이다.
비구름 사이로 린룽사(靈應寺)의 하얀 관음상이 이채롭다.
한국인이 얼마나 많이 왔으면 한국 태극기와 베트남 국기만
세워져 있을까.
중국의 오성홍기는 없다.
베트남에서도 더럽고 시끄럽다는 이유로 중국인은 별로 환대를
받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시간을 거슬러 프랑스 마을로 올라간다.
안내장에는 섬세하고 시적(詩的)인 공간이라는데 이방인의
눈엔 프랑스 식민지의 잔재로 보인다.
암튼 해발 1500m의 고지대에 만든 웅장하고 엄청난 성곽과 건물,
케이블카, 산악열차인 트램, 호텔 등을 보며 경탄을 한다.
설악산 오색에서 끝청봉으로 연결되는 케이블카 설치도 수십 년째
반대를 해오는 우리나라의 환경론자들이 이곳을 보면 어떤 평가를
내릴지 궁금하다.
또한 그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설악산에 케이블카를 설치한다한들
제한된 끝청봉의 작은 공간에서 무엇을 볼 수 있을까.
2023. 6. 11일 강원특별자치도 출범을 앞두고 환경영향평가 권한 등
여러 특례가 강원도지사에게 넘어갔다.
환경영향 평가 과정에서만 8년이나 발목이 잡혀 진전이 없었는데,
이젠 지혜롭게 환경과 산림을 보호하며 제대로 추진하려나.
15;00
천둥 번개소리 요란하더니 소나기가 한바탕 쏟아진다.
높은 고지에서 천둥번개와 함께 쏟아지는 빗줄기는 관광객을
당황하게 만든다.
비가 그친 후 하행선 케이블카를 타려는 인파가 한꺼번에 몰려
1시간이나 줄을 서서 하산을 한다.
선 월드 바나 힐스(Sun world ba na hills) 관광을 끝내고 공항으로
이동하며 비록 주마간산(走馬看山)을 하였지만 내가 본 베트남에
대해 생각을 해본다.
프랑스와의 독립전쟁에서 이겼고, 미국과 이데올로기(Ideologie)
전쟁이 끝난 후 통일된 베트남은 중국과 전후 처리 문제로 벌인
국지전쟁에서도 이겼으며,
1978년 12월 21일 국경분쟁을 벌이던 캄보디아를 침공하여
3주 만에 캄보디아를 석권하였다.
이렇게 여러 전쟁에서 승리했기에 자존심이 강한 민족이지만,
전쟁 당시 많은 젊은이들이 희생하였기에 길거리에서 노인을
보기가 힘들다.
노인이 없어도 이들에겐 희망이 있다.
인구가 1억 명이나 되는 인구대국이요, 젊은 인구의 비율이 매우
높아 전체의 68%가 넘는 나라이다.
자유여행이라 매일 콜택시를 이용하는데, 펑크를 내지 않고
콜시간을 정확히 지키며 바가지요금도 없다.
수많은 오토바이와 차량들이 오가는 거리에 신호등이 별로 없어도
교통사고가 거의 나지 않는다.
칼치기 운전을 하는 경우를 보지 못했으니 나름대로 교통질서에
대해 상당히 성숙한 문화를 보여준다.
6. 4. 01;00
2번째 베트남 여행을 끝내고, 내가 탄 비행기는 가볍게 창공으로
날아오른다.
베트남 다낭에서
석천 흥만 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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