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회 폭주, 그 독재가 자행되는 가운데
무엇보다도 건강을 챙기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다른세대의 사악한 횡포로 분노하다가 혈압으로 쓰러지면 장래세대를 잃어버리고
때를 기다려 오늘의 절망을 딛고 절치부심으로 권토중래하고 마부작침으로 우공이산해야 해야 할 것입니다.
건강이 무너지면 죽음의 문턱이 가까와지고
애국도 사역도 취향도 아득해질 뿐입니다.
나라가 혼란하면 할수록 먹구름이 사라지고 영롱한 햇살이 비출 때까지
기도의 초막, 그 폭양과 폭우의 피난처에 안전히 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생각해보면 지난 날 험난한 세월을 많이 겪었고
베이비부머 세대의 파란만장한 역사의 얼룩, 그 질곡의 초상화를 그렸습니다.
추억의 맛집 기행을 하면서
한가히 추억의 맛집 기행이나 할 시국이 아닌 것을 절실히 느낍니다.
그러나 장래식에도 음식을 먹듯
정치는 쓰레기장이라도 산 사람은 목구멍이 포도청입니다.
세월의 흔적으로 남은 맛집의 기행은
어느덧 코로나19 펜데믹으로 더욱 추억의 장이 되었습니다.
고향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자취를 하면서 대구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때
처음 입맛을 사로잡은 것은 만두국이었습니다.
만두국은 고향에서 한번도 먹어보지 못한 맛이어서
도시 생활의 맛의 기행, 그 첫걸음이 되었습니다.
어린시절 고향의 입맛은
자연그대로 맛의 파라다이스였습니다.
두부와 메일묵과 토토리묵은 어머니의 손맛으로 빚어졌고
닭장의 계란은 하루에도 몇 개씩 먹고 화롯불에 계란밥을 지어 간식으로 먹었습니다.
농번기가 되면 농삿일을 도운 30여명의 저녁 식사는
대청과 마루와 마당의 멍석에 가득 앉아 풍성한 식사를 즐겼습니다.
장날이 지나면 항상 밥상에는 갈치가 놓여졌고
갈치조림과 구이는 갈치 맛집과도 비교할 수 없었습니다.
어린 시절 풍성한 먹거리로 즐긴 맛의 풍미는
오늘날까지 두부조림과 갈치조림 등 맛의 원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대구의 도시 생활에서 느끼지 못한 어머니의 손맛은 오랜 자취 생활의 그리움이 되었고
세월의 풍미는 어머니의 손맛을 찾아 맛의 기행을 떠나게 하였습니다.
한 떄 고난의 신학을 하면서 라면으로 연명한 떄도 있었지만
맛의 풍미를 아는 입맛은 라면의 맛에 머무를 수 없었습니다.
요즘은 어떤 재료를 보면 무슨 맛을 내는 음식을 만들어야 할지~
생각하기 전에 먼저 손이 움직입니다.
음식의 맛은 손 맛이요, 그리고 칼 맛이어서
재료를 손질하면서 정성된 맛이 우러납니다.
오늘은 오랫만에 볶음밥을 해먹었는데
솔직히 중화요리의 볶음밥보다 더 맛있었습니다.
맛의 기행으로 찾았던 동성로의 야끼우동 전문점 중화반점은
야끼우동으로 백종원의 중화요리 3대 천왕에 나올 정도로 유명하지만 언제나 새우 볶음밥만 먹었습니다.
벌써 40년 당골이 된 동성로의 중화반점은
미식가와 대식가를 비롯하여 유명인들이 찾는 동성로의 중화요리 맛집으로 유명합니다.
중화반점을 지나서 대구 백화점으로 중앙도서관 방향의 야시골목 입구에 있는 개정 본점은
비빕밥 전문 식당으로 당골로 찾는 맛의 기행으로 유명합니다.
특히 전주특육회 비빕밥은
비빕밥의 풍미를 천하일품으로 느끼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낙원식당의 순두부찌개는
43년 전통의 순두부식당으로 유명합니다.
한 때 주인장은 사진의 취향을 가져
사진의 애환을 나누는 말동무가 되었습니다.
지난 세월의 흔적으로 남은 맛의 기행은
주로 혼식할 때 찾았던 맛집입니다.
승용차로 이동할 때 찾은 맛집은
대부분 갈치 맛집입니다.
한 때 유명한 갈치 맛집을 다 찾아다니며
미식가로 맛의 기행, 그 정점을 찍었습니다.
요즘 여느 때보다 운동을 많이 하다보니
요리 하는 즐거움이 먹방을 능가하고 먹는 즐거움으로 아주 행복합니다.
허기가 반찬이라는 말이 있듯
배고프게 먹는 절식으로 맛의 풍미는 더욱 입맛을 돋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