겟세마네 동산에서 밤을 새워가며 기도하신 예수님의 심정
겟세마네 동산에서 밤을 새워가면서 기도하신 예수님의 심정은 말할 수 없이 애달펐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따르는 세 제자들은 예수님과 행동을 같이하지 못하고 각자 따로따로 행동했습니다. 예수님만을 통해서 가야 하고, 예수님과 같은 심정으로 호소해야 했는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사랑하는 제자들을 위하는 심정으로 호소했고, 제자들을 염려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수님의 심정이 어떠했음을 모르고 피곤에 지쳐 잠들었던 것입니다.
생사의 결판을 짓는 마당에서 예수님의 심정은 하늘과 땅이 녹아나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안타까운 심정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예수님의 심정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3년 동안 친아들딸같이 길러준 사랑하는 세 제자는 예수님의 심정을 모르고 졸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불같이 안타까운 심정으로 세 번씩이나 나와 제자들을 깨우시던 예수님의 딱한 심정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때 예수님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아담 해와를 잃어버리며 느끼던 서러움을 느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 앞에 제2 민족으로 택함받은 이스라엘 민족이 반대하고 유대교가 반대하여 다시 3년 공생애노정을 거쳤지만 자신을 절대적으로 믿는 한 사람을 찾지 못했습니다.
아담이 타락한 후에 느낀 하나님의 서러움과 예수님이 30년 사생애기간과 3년 공생애기간에 느끼셨던 서러움, 나아가서는 겟세마네동산에서 기도하시던 그 애달픈 심정을 느끼면서 예수님을 대하는 사람이 없었고, 하나님의 심정을 느낀 사람이 없었습니다. 3년 공생애노정에서 희로애락을 같이하던 제자들도 몰랐습니다.
하나님을 대신하여 걸어가신 일생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걸어가신 목적이 민족을 위하고 세계를 위하고 인류를 위하는 것이었는데도 불구하고, 33년의 생애를 걷고 보니 남은 것은 예수님 혼자였습니다. 40일 금식을 끝마칠 때도 안타까운 심정과 서러운 사정에 사무쳐 있는 예수님에게 원수 사탄이 나타났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인간 세상을 대해 모든 것을 믿을 수 없고, 어느 곳에도 의지할 수 없고, 거처를 정할 수 없는 안타까운 사정에 처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원수 사탄이 나타나 시험하니 예수님의 심정은 말할 수 없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러면서도 유대민족과 인류를 염려하시기에 초조했던 예수님이었습니다.
우리에게 역사적인 사명을 대신하여 탕감의 노정을 다시 걸어야 할 책임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심정을 대표한 예수님의 애달픈 심정을 대신할 수 있고, 대신 싸워 드릴 수 있으며, 예수님의 뛰는 심장을 대신하여 염려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참아들딸이 나타나기를 고대하고 계십니다. (3-306, 58.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