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여성수필의 정체성 연구
여성의식의 특성
모성의 자립성3
권대근
문학박사,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여성의 경험과 여성의 목소리가 표현된 문학은 여성문학으로 규정되며, 여성문학은 적극적인 여성상을 작품 속에 제시한다. 여성이 일상생활에서 겪는 생활 경험이 문학에 표현되어야 한다는 요구는 페미니즘의 입장이 아니더라도 정당한 주장이다. 버지니아 울프가 이야기했듯이 남성들의 활동 영역인 전쟁과 정치를 다루면 중요한 작품이 되고, 거실에서 여성들이 겪는 문제를 다루면 사소한 작품으로 간주되는 기존 문학 비평방식은 종종 여성의 경험을 제외해 왔다. 결혼, 고부갈등, 가사노동, 자녀교육, 성과 사랑 등 여성의 일차적 경험을 다룬 문학들이 남성 비평가들에 의해 합당한 문학적 평가를 받지 못한 것도 '여성적인 것'을 무조건 사소한 것으로 간주한 남성중심적 편견이 지배한 문단에서 그 한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페미니스트 문학론 초기에서 여성비평가들은 여성문학의 중요한 기준으로 여성의 경험을 들고 있는데, 이들은 여성의 생활공간이 남성의 생활공간과 다른만큼 여성의 경험은 남성의 경험과 차이가 있으며, 이에 따라 세계를 파악하는 양식도 달리진다. 오늘날 여성문학에서 크게 다루고 있는 여성문제가 계급이나 계층에 따라 달리 나타나는 만큼 문학 속에 그려진 여성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 대중 수필 속에 잠재된 해방욕구를 함께 읽어냄으로써 변화된 여성의식을 볼 수 있을 것이다. 80년 들어 여성의 삶과 체험을 다룬 글이 소설과 수필에서 뚜렷한 하나의 흐름을 형성할 만큼 막강한 문화적 세력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현실을 간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런 여성관련 수필의 급격한 부상은 여성이 문화의 소비자층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자신의 체험과 갈등을 문학 속에 적극 투영하는 새로운 문화 생산자층으로 올라왔음을 보여준다. 또 상업적 힘에 의해 신종 여성다움의 이데올로기에 유인당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전자의 경향이 후자의 흐름을 점차 압도해 갈 것으로 기대되지만, 현재로서는 두 흐름이 여성 문화 속에 섞여 있는 것 같다.
어릴 때 따먹어 보던 시고 떫던 어린 포도의 맛처럼 우린 미숙함 속에서 우리의 의도대로 안 되는 상황을 너무나 푸념하고 지내오지 않았는지 모른다. 끝없는 갈등과 모색 속에서 의식의 덩굴을 햇볕 잘 드는 곳으로 올리려고 노력도 한다.
인간의 운명, 게다가 주어지는 시간은 포도주를 익히는 것보다 값진 것이다. 우리 앞에 주어진 모든 여건이 다 활용할 수 있는 것이지만, 힘이 못 미쳐 손가락 사이로 모래를 흘리듯 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자기가 잠시 불운했다고 해서 한탄할 일은 아니다. 여러 개의 알알이 모여서 한 송이의 포도가 되듯이, 함께 살아간다는 의미를 생각할 때 고통이나 즐거움은 남과 공통의 나무에 매달려 있다.
포도를 쪼아보고 가는 새나 벌레의 침해가 없다면 그들은 편안한 성숙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C여사가 남편과 자녀를 잃고 포도주를 담그며 한을 삭혀 보려 한 것이나, 자유분방하여 풍매화처럼 동남 어느 쪽에서나 날아온 꽃가루를 받아들이듯 하는 Q여인이나, 그들의 의식의 덩굴은 포도송이들처럼 한 나무에서 뻗어가는지도 모른다.
그들이 방황이나 갈등이 없었다면 바람에 흔들리면서 그 무거운 포도송이를 다 떼어내고 나서 다시 그대로 붙인다면 쉬운 일이 아니다. 얼핏 보아 동그란 것 같으나 생김새나 크기, 그리고 알알의 방향이 달라서 그대로 채울 수는 없을 것 같다. 자기에게 주어진 운명 안에서 주위와 조화를 이루게 하는 신의 섭리, 신과의 하나하나의 약속인 듯하다. 자기가 맡은 일, 자기가 만나는 사람을 사랑하고 거기에 자기 영혼의 진한 액을 부어넣을 수 있는 진한 도취, 그것은 포도주가 해가 갈수록 값이 나가는 것과 같은 보람이리라. (굵게 강조 : 인용자)
- 유혜자, 「하나의 약속」 중에서 -
여성수필가 유혜자의 수필은 전반적으로 여성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과는 관계가 없다. 그렇다고 여성의 억압을 말하지 않는 건 아니다. 예문에서 보여지는 바와 같이 여성수필가는 ‘잠시 불운했다고 해서 한탄할 일’이 아님을 설파한다. “살면서 쓴맛을 거치지 않고 참된 삶의 숨은 뜻을 알아낼 수는 없으리라”는 진술에서도 작가의 세계관적 의식이 드러나듯이, 그녀는 여성이 처한 현실을 자각하면서 살자고 삶에 힘들어하는 자기 독자들을 달랜다. 작가는 ‘한 송이의 포도에 매달린 수많은 알들은 다 각각 제 자리가 있다’는 말로 자기의 한계를 자각하기를 촉구한다. 자기에게 주어진 운명 안에서 주위와 조화를 이루게 하는 신의 섭리를 신과의 약속이라 규정하면서, 작가는 ‘새벽 안개와 노을 속에서 익혀낸 작은 육신들의 어울림이 사랑의 부재, 대화의 단절로 달그락거리는 현대인의 식탁에 꼭 놓여져야 할 것임을 말함으로써 의식의 층위에서 중도성을 보인다.
페미니즘적으로 보면, '여성독자'에게 가장 중요하게 읽혀지는 것은 다양한 형태로 구현되는 다중적 억압의 상황에서 작품 속의 여주인공 또는 여성인물이 어떻게 그 상황을 인식하고 대처하며, 어떤 과정을 거쳐 주체적인 모습으로 바로 서게 되는가 하는 문제다. 이를 여성 자아의 정립과정으로 볼 수 있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자아의 정립은 인격성숙을 위해 필수적인 것이다. 그렇지만 성별에 따른 경험과 교육, 가치관 형성의 차이로 말미암아 남성 자아와 여성 자아는 그 성적 정체성을 기반으로 구분될 수 있다. 전통적 시각으로 볼 때, 남성 자아는 대 사회적 양상을 띠며 사회적 성공과 명성, 부의 획득을 지향하는 진취성과 능동성을 주된 특성으로 하는데 비해 여성 자아는 가정 내에서 필요한 관계적 양상을 띤다고 보았다. 그래서 모성을 특성으로 하는 헌신과 인내, 나눔과 봉사의 덕성을 익히는 것을 여성 자아의 본질로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현대문학기의 후반기라 할 수 있는 80년대 이후 한국여성 수필에 나타난 여성 정체성은 여성 자아와 모성이라는 두 개의 가치를 동시에 해결하는 통합적 요소를 지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는 페미니즘을 공부하거나 여성주의에 관심이 있는 여성작가들이 수필계에 수적으로 적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겠고, 한편으로는 한국이라는 현실적 여건을 고려한 차선책의 하나로 가정과 일이라는 모순된 두 가지 짐을 동시에 성취하고자 하는 여성의 불가피한 선택이 일반 여성들에게 어필할 수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