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子曰 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옛날의 지식을 연구하고 새로운 이치를 깨달아 안다면, 남의 스승이 될 수 있다.”라고 하셨다.
溫, 尋繹也. 故者, 舊所聞. 新者, 今所得. 言學能時習舊聞, 而每有新得, 則所學在我, 而其應不窮, 故可以爲人師. 若夫記問之學, 則無得於心, 而所知有限, 故『學記』譏其“不足以爲人師”, 正與此意互相發也. 溫은 실마리를 찾아 추리(뽑아냄)하는 것이다. 故라는 것은 옛날에 들은 바다. 새것이라는 것은 지금 얻은 것이다. 배움에 있어, 능히 수시로 옛날에 들은 바를 익혀서 매번 새로운 얻음이 있다면, 배운 것이 나에게 있게 되고, 그 응용함이 무궁하므로, 그래서 남의 스승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만약 단순암기의 배움인 경우라면, 마음에서 얻는 것이 없고 배운 바가 유한하기에, 그래서 학기에 남의 스승이 될 수 없다고 기록하였으니, 바로 이 뜻과 더불어 서로 드러내주고 있는 것이다.
無得於心: 新安陳氏曰 與每有新得相反 신안진씨가 말하길, “매번 새롭게 얻는 것이 있다는 것과 상반된다.”라고 하였다.
所知有限: 新安陳氏曰 與其應不窮相反 신안진씨가 말하길, “그 응용함이 무궁하다는 것과 상반된다.”라고 하였다.
朱子曰 記問之學 溫故而不知新 只記得硬本子 更不去裏面搜尋得道理 記得十件 只是十件 記得百件 只是百件 這箇便死殺了 知新則就溫故中見得這道理 愈精勝似舊時 引而伸之 觸類而長之 則常活不死殺 中庸溫故而知新 乃是溫故重 此却是知新重 주자가 말하길, “달달 외움의 학문은 옛것을 익혀도 새로운 것을 알지 못하고, 그저 책에 쓰인 그대로 외워서 기억할 뿐, 그 안에 들어가서 도리를 찾지 않는다. 10건을 외우면 그저 10건일 뿐이고, 100건을 기억하면 그저 100건 일 따름이다. 이러한 것은 융통성이 없는 것이다. 새로운 것을 아는 경우라면, 옛것을 익히는 중에 나아가 이러한 도리를 알아차리는 것인데, 정밀할수록 옛날보다 더 나은 것처럼 보인다. 끌어다가 펼쳐서 비슷한 범주에 키워나가면, 항상 살아 있어서 경직되지 않을 것이다. 중용의 온고이지신은 곧 옛것을 익힘에 중점을 두었다면, 여기서는 도리어 지신에 중점을 둔 것이다.
溫故方能知新 不溫故而求知新 則亦不可得而求矣 옛것을 익혀야만, 비로소 새로운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니, 온고를 하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것 알기를 추구한다면, 역시 추구할 수가 없는 것이다.
溫故而知新 味其語意 乃爲溫故而不知新者設 不溫故 固是間斷了 若果無所得 雖溫得 亦不足以爲人師 所以溫得又要知新 惟溫故而不知新 故不足以爲人師也 這語意在知新上 溫故知新 不是易底 新者 只是故中這道理 時習得熟 漸漸發得出來 且如一理看幾箇人來問就此一理上 一人與說 一箇理 都是自家就此理上 推究出來 所以其應無窮 且如記問之學 記得一事 更推第二事不去 記得九事便說十事不出 所以不足爲人師 온고리지신이라는 그 말뜻을 음미해보면, 이는 옛것을 익히면서도 새로운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을 위하여 설정한 것이다. 옛것을 익히지 않는다면, 본래부터 중간에 끊길 것이다. 만약 결과적으로 얻은 바가 없다면, 비록 익힐 수 있다 할지라도, 역시 남의 스승이 되기에 부족한 것이다. 이 때문에 옛것을 익히는 것 이외에도, 또다시 새로운 것을 알아야만 하는 것이다. 오직 옛것을 익힐 뿐, 새로운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남의 스승이 되기에 부족한 것이다. 이 말의 뜻은 새로운 것을 안다는 것 위에 있는 것이다. 온고지신은 쉬운 것이 아니다. 새로운 것이란 그저 옛것 안의 이러한 도리로서, 수시로 익혀서 익숙하게 되면, 점점 발현되어 나오는 것이다. 예컨대 하나의 이치에 관하여, 여러 사람들이 와서 묻는 것을 살펴보면, 이 하나의 이치 위로 나아가서, 한 사람이 각자 하나의 이치를 더불어 말하는데, 모두 스스로 이 이치 위로 나아가서 미루어 궁구하여 내놓은 것들이다. 따라서 그 응용함이 무궁한 것이다. 또 예컨대, 기문지학의 경우에는, 하나의 일을 기억하면 다시 두 번째의 일을 미루어갈 수 없고, 9건의 일을 기억하면 곧 10건의 일을 말해낼 수 없다. 이 때문에 남의 스승이 되기에 부족한 것이다. 問不離溫故之中而知新 其亦下學上達之理乎 曰 亦是漸漸上達之意 누군가 묻기를, “옛것을 익히는 가운데를 떠나지 않고서 새로운 것을 안다면, 그 역시 아래에서 배워서 위에까지 통달하는 이치가 아닐까요?”라고 하였다. 말하길, “역시 점점 위로 이른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2 | 道理卽是一箇道理 論孟所載是這一箇道理 六經所載也是這箇道理 但理會得了 時時溫習覺 滋味深長 自有新得 도리는 곧 하나의 도리다. 논어와 맹자에 실린 것도 이 하나의 도리이고, 육경에 실린 것도 역시 이 도리인 것이다. 다만 이해하여 터득하고서, 수시로 익히고 깨달으면, 재미가 깊고 길 것이니, 저절로 새롭게 얻는 것이 있는 것이다.
又曰 昔之所得 雖曰旣爲吾有 然不時加尋繹 則亦未免有廢棄遺忘之患 而無所據以知新矣 然徒能溫故而不能索義理之所以然者 則見聞雖富 誦說雖勤 而口耳文字之外略無意見 如無源之水 其出有窮 亦將何以授業解惑 而待學者無已之求哉 또 말하길, 옛날에 터득한 것이 비록 이미 내 소유가 되었다고 말할지라도, 그러나 수시로 실마리를 찾아 이치를 풀어냄을 더하지 않는다면, 역시 폐기하고 빠뜨리고 잊어버리는 근심이 있음을 면하지 못할 것이고, 새로운 것을 아는 데에 근거할 바가 없게 될 것이다. 그러나 헛되이 온고만 할 줄 알면서 의리의 그렇게 된 연유를 탐색할 줄 모른다면, 비록 견문이 풍부하고 외우고 말하는 것을 비록 열심히 한다고 할지라도, 입과 귀로 말하고 듣는 것과 문자 이외에는 약간이라도 제 의견이 없게 될 것이다. 마치 수원지가 없는 물과 같이 그 흘러나옴에는 끝이 있는 것이니, 장차 무엇으로써 수업을 하고 의혹을 풀어서 배우는 자의 끝없는 요구에 대응할 수 있을 것인가?
尋繹其所已得而每每有得於其所未得者 譬之觀人 昨日識其面 今日識其心 於以爲師 其庶矣乎 可云者 明未至此者 不足以爲師 非以爲能如是而爲師有餘也 자기가 이미 터득한 바를 실마리를 찾아 이치를 풀어내어 매번 아직 터득하지 못한 것에서 얻는 것이 있다는 것은, 사람을 살펴보는 것에 비유하자면, 어제 그 얼굴을 알고서 오늘은 그 마음을 아는 것과 같으니, 이로써 스승이 되는 것에 거의 가깝지 않겠는가? 可라고 말한 것은 밝음이 여기에 미치지 못한 자라면, 스승이 되기에 부족하다는 것이지, 이와 같이 한다면 스승이 되기에 남음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范氏曰 溫故者月無忘其所能 知新者 日知其所無 범씨가 말하길, “온고라는 것은 달마다 자기가 잘할 수 있는 것을 잊어버림이 없고, 지신이라는 것은 날마다 자기에게 없는 것을 알아가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 『論語古今註』曰: “可以爲師, 謂師之爲職, 頗可爲也. 舊學旣冷, 今以敎人之故, 得溫故而知新, 非益我之事乎? 人可以爲師矣.” 논어고금주에 이르길, “스승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스승이라는 직책을 아주 잘 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옛날에 배운 것은 이미 식었는데, 지금 남을 가르쳐야 하기 때문에, 옛것을 익혀서 새것을 알 수 있다면 나를 유익하게 하는 일이 아니겠는가? 남도 내 스승이 될 수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