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 (證言) - [45] 문평래 (文平來) - 뜻길의 50년 생애 25. 뜻 가운데 마지막 생애를 보낸 노부모 부친은 내가 입교한 후 1970년 아내가 남매를 부모님께 맡기고 전도를 나갈 때까지 약 10년간 얼마나 핍박을 많이 하였는지 모른다. 우리 집을 다녀간 협회 순회사들의 보고로 참아버님께서도 그 사실을 아실 정도다. 나에게 “너희 아버지 교회 반대 많이 했지?”라고 참아버님께서 지적하신 적이 있다. 그만큼 부친은 교회와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1975년 서울에서 수련을 감동적으로 받은 다음 1976년에 기성 축복을 받으셨다. 그 후로는 참부모님 모시는 신앙을 열심히 하였는데 수도권 장로들로 구성된 성우회 총무를 지내기도 했다. 또한 문용선 회장과 함께 지방교회 돕기 운동을 여러 해 동안 하셨다. 특별히 1988년 전국 남평 문씨 대동보(통합 족보)를 만들 때 문용선 장로님과 강화도로 가서 북한에서 살다 온 일가로부터 참아버님의 일족이 기록된 북한 족보를 입수하였다. 하지만 아무리 읽어보아도 참아버님의 기록 부분을 발견하지 못하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밤중 몽시에 참아버님께서 부친께 나타나 “족보 몇 권 몇 페이지를 보아라!”라고 하셨다. 너무나 선명한 몽시였기에 아침에 일어나 말씀하신 대로 찾아보니 일족의 기록이 있더라고 했다. 역사적인 제24회 올림픽이 열리고 세계통일국 개천일(10월 3일)이 선포된 1988년에 편찬된 남북한 통합 남평문씨대동보 족보에 참부모님 가족 모두를 넣어 모시게 되었다. 모친께서는 내가 입교한 날부터 모진 핍박과 고통을 당하셨다. 그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나는 고향에 갈 때면 밤중에 살며시 들어갔다가 새벽에 나왔다. 그때마다 모친께서 도와주셨다. 집을 떠나가는 아들을 바라보며 흘린 눈물이 얼마인지 나는 마음으로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다행히 딸과 함께 신앙을 하면서 서로 의지해 나오셨다. 그리고 어려운 긴 세월을 극복하고 축복까지 받으셨다. 지금 95세이신 모친은 연로하신 모습으로 병원에 누워 계신다. 내가 찾아가면 참부모님의 안부를 꼭 물어보신다. 그리고 “바쁜 사람이니 큰일을 위해 빨리 가거라.”라며 재촉하신다. 얼마 전에는 당신이 전혀 알지도 못하는 교회의 땅 문제를 놓고 걱정하는 것을 보았다. “사탄이 참부모님 땅을 빼앗아 가려 한다. 잘 지켜야 한다. 식구들이 똘똘 뭉쳐야 한다.”라고 하셨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영계도 비상이 걸린 것이 틀림없다는 생각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