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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 한민족의 신교(神敎)와 삼신三神상제님
태시(太始)에 하늘과 땅이 ‘홀연히 열린 우주의 대광명 가운데 삼신이 계시니, 삼신(三神)은 곧 일신(一神)이요, 우주의 조화성신(造化聖神)이다. 이 삼신三神과 하나 되어 천상의 호천금궐(昊天金闕)에서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하느님을 동방의 땅에 살아온 조선의 백성들은 아득한 예로부터 삼신상제(三神上帝), 삼신하느님, 상제님이라 불러 왔다. 상제님은 온 우주의 주재자요, 통치자 하느님이시다.
태시(太始): 태시란 무극이 태극으로 바뀌는 시점, 즉 하늘과 땅이 처음 열린 시점을 말한다.
조화성신(造化聖神): 동양의 신관에는 우주의 근원으로 작용하는 자연신, 조화성신造化聖神과, 그 신성을 다스리는 통치자로서의 인격신 하나님이 있다. 조화성신을 주재하여 실제로 천지와 인간 만물을 다스리는 하나님이 바로 이 땅에 오신 상제님이다.
삼신상제(三神上帝): ‘상제上帝’는 동방 민중 신앙의 장구한 역사 속에서 체험적으로 형성된 언어이며, 인간 세상뿐만 아니라 우주만물을 다스리는 지존의 절대자를 일컫는 말이다. 신교(神敎)에서는 ‘삼신상제님’이라 부르는데, 이는 우주의 일신(一神)이 현상계에 드러날 때는 3가지의 신성, 즉 天(하늘)의 조화(造化:父), 地(땅)의 교화(敎化:師), 人(인간)의 치화(治化:君) 삼신으로 작용(用)한다.
동방의 조선은 본래 신교(神敎)의 종주국으로 상제님과 천지신명을 함께 받들어 온, 인류 제사 문화의 본고향이다. 한민족은 환국 - 배달 - 조선(단군조선)의 삼성조시대가 지난 후 열국시대 이래 중국 한족(漢族)과 일본에 의한 상고(上古) 역사의 왜곡으로 민족사의 뿌리가 단절되어 그 상처가 심히 깊더니,
상제님께서 원시반본(原始返本)의 도(道)로써 인류 역사의 뿌리를 바로잡고, 인간(자손)과 신명(조상)을 구하시기 위해 이 땅에 인간으로 강세하시니라. 상제님께서 세상에 내보내신 석가, 예수, 공자를 비롯한 성자와 철인들이 상제님의 강세를 미리 알렸으니 이러하다.
하나님(상제님)의 지상 강세를 예고한 공자(孔子)님
공자(孔子)는 우주의 통치자 하나님(상제님)께서 동북 간방(艮方)으로 강세하시어 모든 성자들의 말씀이 이루실 것을 전하였다.
“艮,東北之卦也. 萬物之所成終而所成始也. 故曰, 成言乎艮.” 『주역(周易)』 「설괘전(說卦傳)」
“동북 간방(艮方)은 선천 봄여름 문명이 매듭짓고, 새로운 문명이 열리는 곳이라. 고로 모든 성인(聖人)들의 말씀이 간방艮方에서 이루어지느니라.” 고 하였다.
간방(艮方): 주역(周易)에서 간괘(艮卦)는 동북방(東北方), 대한민국을 상징한다. ‘간艮’은 작지만 모든 이치를 담고 있는 핵, 씨, 열매를 의미한다. 간절곶(艮絶串): 간방이 끝나는 지점이 울산광역시 울주군 서생면 대송리다.
또 『주자문집(朱子文集)』에서 주자(朱子)가 말하기를 “몸가짐과 의관을 바르게 하고 공경스런 마음으로 성령의 조화세계를 바라보라. 마음을 고요히 하여 일심(一心) 경계에 머물면 상제님을 뵈올 수 있느니라.”
『주자어류(朱子語類)』에 “통치자 하느님 제(帝)는 우주의 창조원리인 리(理)를 맡아 다스리시는 분이라. … 이 주재 자리가 세상에서 이르는 옥황대제(玉皇大帝)와 같나니 … 배우는 자 모두 능히 답할 수 없도다.” 하였다.
재림 예수가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지상 강세를 예고한 예수 그리스도
일찍이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나라에 온 인류의 아버지가 계심을 십자가에 매달려 피 흘리며 부르짖었나니
「요한복음」 그가 제자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스스로 온 것이 아니로다. 나를 보내신 이는 참이시니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나 나는 아노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났고 그가 나를 보내셨음이니라.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치라.”
또 아버지의 성령이 인도하신 대로 계시록을 쓴 사도 요한이 백보좌 하느님과 그 보좌 앞의 일곱 성령의 소식을 전하니, 「요한계시록」 요한이 말하기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데 없더라.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印)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얻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印)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
백보좌 하느님께서 요한에게 계시하여 말씀하시기를 “나는 알파요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니라. 이는 곧 지상에 아버지가 몸소 강세하심으로써 예전의 하늘과 땅을 문 닫고 새 하늘, 새 땅을 건설하시는 ‘땅 위의 천국’ 소식이다.
기존 종교의 성자들 공자,석가, 예수, 노자등을 주자, 진묵대사, 이마두(마테오 리치)신부, 최수운으로 교체하시고 종교문화를 통일하심
선천 종교의 종장(宗長)을 교체하시고 종교문화를 통일하심
선도(仙)와 불도(佛)와 유도(儒)와 서도(西道,기독교)는 세계 각 족속의 문화의 근원이 되었나니, 이제 최수운은 선仙도의 종장(宗長)이 되고, 진묵은 불佛도의 종장이 되고, 주회암(주자)은 유儒도의 종장이 되고
이마두(마테오 리치)는 서(西,기독교)도의 종장이 되어 각기 그 진액을 거두고, 모든 도통신(道統神)과 문명신(文明神)을 거느려 각 족속들 사이에 나타난 여러 갈래 문화의 정수(精髓)를 뽑아 모아 통일케 하느니라.
이제 불지형체(佛之形體) 선지조화(仙之造化) 유지범절(儒之凡節)의 삼도(三道)를 통일하느니라.
나의 도(道)는 사불비불(似佛非佛)이요, 사선비선(似仙非仙)이요, 사유비유(似儒非儒)니라.
내가 유불선 기운을 쏙 뽑아서 선(仙)에 붙여 놓았느니라.
주회암(朱晦庵, 1130~1200): 주자(朱子). 남송 시대 대유학자로서 북송 오현(五賢)의 학설을 계승, 종합하고 동시대의 불교, 도교 이론까지 섭렵하여 방대한 사상 체계를 정립하였다.
이마두(利瑪竇): 마테오 리치(Matteo Ricci, 1552∼1610). 이탈리아 예수회 선교사로 중국에 가톨릭을 뿌리내린 인물. 별호를 서방의 현사(賢士)라는 뜻에서 ‘서태(西泰)’라 하고 이름은 마테오의 음사인 ‘마두(瑪竇)’, 성姓은 리치를 본떠 ‘리(利)’라 하였다.
천지신명이 받드는 마테오 리치 대성사
이마두의 공덕을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나 천지신명들은 그를 떠받드나니 이마두는 신명계(神明界)의 주벽(主壁)이니라. 항상 내 곁에서 나를 보좌하여 모든 것을 맡아보고 있나니 너희는 마땅히 공경할지라. 이마두가 24절(節)의 역(曆)을 개정하여 때(時)를 밝히매 백성들이 그 덕(德)을 입어 왔으나 이 뒤로는 분각(分刻)이 나리니 분각은 우리가 쓰리라. 이마두는 보민신(保民神)이니라.(道典 4:12)
주벽(主壁): 천상 신명계에서 실무진의 우두머리 되는 신명.
이마두가 24절(節)의 역(曆)을 개정하여: 이마두 신부의 노력의 결실로 청나라 순치(順治) 2년(1645)부터 시헌력(時憲曆)이 반포·시행된다. 시헌력은 태음력에 태양력의 원리를 적용하여 24절기의 시각과 하루의 시각을 정밀하게 계산하여 만들었다. 우리나라에는 1653년(효종 4)부터 1910년 한일합방 전까지 쓰였다.
동서양의 벽을 허문 우주 역사의 큰 공덕
이마두가 천국을 건설하려고 동양에 왔으나 정교(政敎)에 폐단이 많이 쌓여 어찌할 수 없음을 깨닫고, 죽은 뒤에 동양의 문명신(文明神)을 거느리고 서양으로 건너갔느니라. 이마두의 공덕이 천지에 가득하니 신명계의 영역을 개방하여 동서양의 신명들을 서로 자유롭게 넘나들게 한 자가 이마두니라.
선천에는 천지간의 신명들이 각기 제 경역(境域)을 굳게 지켜 서로 왕래하지 못하였으나 이마두가 이를 개방한 뒤부터 지하신(地下神)이 천상에 올라가서 천국의 문명을 본떠 사람들의 지혜를 열어 주었나니, 이것이 오늘의 서양 문명이니라.
후천개벽 후 이마두 대성사의 신도 위격
이마두는 구천상제(九天上帝)이니라.
이마두는 구천상제(九天上帝): 상제님께서 가을의 새 우주를 여시고 십천상제(十天上帝)의 보좌에 오르시기 때문에, 선천세상에서 가장 큰 공덕을 세운 이마두에게 구천상제(九天上帝)의 보좌를 물려주실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마테오 리치 대성사의 큰 공덕
이마두(利瑪竇)는 세계에 많은 공덕을 끼친 사람이라. 현 해원시대에 신명계의 주벽(主壁)이 되나니 이를 아는 자는 마땅히 경홀치 말지어다. 그러나 그 공덕을 은미(隱微) 중에 끼쳤으므로 세계는 이를 알지 못하느니라.
서양 사람 이마두가 동양에 와서 천국을 건설하려고 여러 가지 계획을 내었으나 쉽게 모든 적폐(積弊)를 고쳐 이상을 실현하기 어려우므로 마침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 다만 동양과 서양의 경계를 틔워 예로부터 각기 지경(地境)을 지켜 서로 넘나들지 못하던 신명들로 하여금 거침없이 넘나들게 하고
그가 죽은 뒤에는 동양의 문명신(文明神)을 거느리고 서양으로 돌아가서 다시 천국을 건설하려 하였나니
이로부터 지하신(地下神)이 천상에 올라가 모든 기묘한 법을 받아 내려 사람에게 ‘알음귀’를 열어 주어
세상의 모든 학술과 정교한 기계를 발명케 하여 천국의 모형을 본떴나니 이것이 바로 현대의 문명이라.
서양의 문명이기(文明利器)는 천상 문명을 본받은 것이니라.
그러나 이 문명은 다만 물질과 사리(事理)에만 정통하였을 뿐이요, 도리어 인류의 교만과 잔포(殘暴)를 길러 내어 천지를 흔들며 자연을 정복하려는 기세로 모든 죄악을 꺼림 없이 범행하니
신도(神道)의 권위가 떨어지고 삼계(三界)가 혼란하여 천도와 인사가 도수를 어기는지라
이마두가 원시의 모든 신성(神聖)과 불타와 보살들과 더불어 인류와 신명계의 큰 겁액(劫厄)을 구천(九天)에 있는 나에게 하소연하므로, 내가 서양 대법국 천개탑에 내려와 이마두를 데리고 삼계를 둘러보며 천하를 대순(大巡)하다가 이 동토(東土)에 그쳐
중 진표(眞表)가 석가모니의 당래불(當來佛) 찬탄설게(讚歎說偈)에 의거하여 당래의 소식을 깨닫고 지심기원(至心祈願)하여 오던 모악산 금산사 미륵금상에 임하여 30년을 지내면서, 최수운(崔水雲)에게 천명(天命)과 신교(神敎)를 내려 대도를 세우게 하였더니
수운이 능히 유교의 테 밖에 벗어나 진법을 들춰내어 신도(神道)와 인문(人文)의 푯대를 지으며 대도의 참빛을 열지 못하므로, 드디어 갑자(甲子 : 道紀前 7, 1864)년에 천명과 신교를 거두고 신미(辛未 : 道紀 1, 1871)년에 스스로 이 세상에 내려왔나니, 동경대전(東經大全)과 수운가사(水雲歌詞)에서 말하는 ‘상제’는 곧 나를 이름이니라.(道典 2:30)
이마두: 마테오 리치(Matteo Ricci, 1552∼1610). 이탈리아 예수회 선교사로 중국에 가톨릭을 뿌리내린 인물. 별호를 서방의 현사(賢士)라는 뜻에서 ‘서태(西泰)’라 하고 이름은 마테오의 음사인 ‘마두(瑪竇)’, 성은 리치를 본떠 ‘리(利)’라 하였다.
문명신(文明神): 문명 발전에 사역한 종교가, 과학자, 철인, 학자 등의 신명.
현대의 문명: 일반적으로 근대 문명은 르네상스와 산업혁명으로부터 시작된다고 보는데, 산업혁명을 신명계에서 주도한 분이 이마두 대성사와 진묵대사이다.
그러나 이 문명은 다만 물질과 사리(事理)에만 정통하였을 뿐이요: 근대 이후 서양의 과학기술 문명은 인류의 편익과 복리증진에 지대한 기여를 하였다. 그러나 이 문명은 정신과 물질의 이분법적 사고, 인간중심주의, 물질주의, 그리고 ‘도구적 이성’에 근거함으로써 천지만물에 깃들어 있는 신성을 제거해 버리고 자본주의 및 제국주의와 결합하여 오늘날 인간과 자연을 파괴로 치닫게 하는 대재앙을 초래하고 있다.
이마두가 원시의 모든 신성(神聖)과 불타와 보살들과 더불어: 신성(神聖): 인류 문명사에 큰 덕을 베푼 실존 인물들과 그들의 영신(靈神).
서양 대법국 천개탑에 내려와: 상제님께서는 서양 근대문명을 연 이마두 대성사의 공덕을 인정하시어 서양 문명과 기독교 문화의 뿌리인 로마에 먼저 들르신 것이다.
공자 석가 예수를 내려 보내심
예수를 믿는 사람은 예수의 재림을 기다리고, 불교도는 미륵의 출세를 기다리고, 동학 신도는 최수운의 갱생을 기다리나니, ‘누구든지 한 사람만 오면 각기 저의 스승이라.’ 하여 따르리라. ‘예수가 재림한다.’ 하나 곧 나를 두고 한 말이니라. 공자, 석가, 예수는 내가 쓰기 위해 내려 보냈느니라.
부모를 하늘땅같이 섬기라
하루는 말씀하시기를 “부모를 경애하지 않으면 천지를 섬기기 어려우니라. 천지는 억조창생의 부모요, 부모는 자녀의 천지니라. 자손이 선령(先靈)을 박대하면 선령도 자손을 박대하느니라. 예수는 선령신들이 반대하므로 천지공정에 참여치 못하리라.
이제 인종 씨를 추리는 후천 가을운수를 맞아 선령신을 박대하는 자들은 모두 살아남기 어려우리라.”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조상은 아니 위하고 나를 위한다 함은 부당하나니 조상의 제사를 극진히 받들라. 사람이 조상에게서 몸을 받은 은혜로 조상 제사를 지내는 것은 천지의 덕에 합하느니라.” (道典 2:26)
사람이 사랑스러운 세상이 온다
이제 음도(陰道)를 보내고 양도(陽道)를 오게 하느니라. 앞으로 세상이 거꾸로 되어 바람 부는 대로 살리니 무를 거꾸로 먹는 이치니라. 두고 보라! 아침에 본 것, 저녁에 본 것이 다르고 날마다 해마다 달라지리니, 이제 세상이 다 가르치느니라. 구름도 가고 바람도 그치는 때가 돌아오면 사람 보는 것이 즐겁고 누구나 기룹고 사랑스러운 세상이 되느니라.
내가 이렇게 다니는 것도 세상 돌아가는 도수를 따라서 다니는 것이니라. 밥도 다 되었는지 뚜껑을 열어 보지 않느냐? 세상 사람들은 알지 못하나 내가 그냥 다니는 줄 알아도 세상일을 엎었다 뒤집었다 하느니라. 내가 세상을 뒤집는 것은 손바닥 안팎 뒤집는 것과 같으니라. 이 세상일이 내 걸음걸이 하나하나에 따라 모두 그렇게 되느니라.(道典 2:59)
양도(陽道)를 오게 하느니라.: 세계 문화가 한국에 들어와 지구촌 문화 시대를 열어 가는 과정을 말씀하신 것이다. 선천 상극의 원한 서린 어두운 세상(陰道)을 보내고 대광명의 새 세상(陽道)을 오게 하신다는 뜻.
전라북도 함열(咸悅)에 가심
계묘년 봄에 상제님께서 호연을 데리고 함열에 가시며 형렬은 경상도 통영(統營)으로 보내시고, 몇몇 성도들은 각기 다른 곳으로 보내시니라. 함열에서 한 달 가량 머무르시며 통영에 있는 형렬과 편지로 소식을 주고받으시고 다른 곳에 있는 성도들은 형렬을 통해 통지하게 하시니라.
상제님께서 함열에 이르시어 어느 집 문 앞에 서시더니 “이리 오너라.” 하고 부르시거늘 그 집 여인이 “아무도 안 계신다고 여쭈어라.” 하매, “저런 못된 것, 제 서방만 알았지 천박하게 ‘여쭈어라’가 뭔고.” 하시고, 다시 그 여인에게 “언제 들어오느냐고 여쭈어라.” 하시니 이번에는 모르겠다고만 대답하니라.
이에 상제님께서 호연을 내려놓고 대문 앞에 앉으시어 “뉘 집에 갔느냐고 여쭈어라.” 하고 집이 흔들리도록 고함을 치시니 여인이 나와서 상제님을 위아래로 훑어보거늘, 상제님께서 “흘겨보기는, 사람을 왜 흘겨보느냐?” 하시니 여인이 돌아서며 생각하기를 ‘정녕 저분이 높은 어른이니 저렇게 말씀하실 테지.’ 하고 사람을 보내어 남편을 불러오게 하니라.(道典 3:43)
네가 생전에 무슨 죄를 지었느냐
잠시 후 남편이 돌아와 상제님을 반가이 맞으며 방 하나를 내어 드리니, 이는 그 집 며느리가 아이를 낳지 못하여 온 집안이 근심하던 차에 집주인이 상제님의 신이하심을 듣고 그 연유를 여쭙고자 상제님을 청한 것이더라. 상제님께서 물으시기를 “네가 생전에 무슨 죄를 지었느냐?” 하시니 “저는 죄지은 일이 없습니다.” 하거늘
“네가 네 죄를 모르는 것이라.” 하시니 “전생은 몰라도 이생에는 죄를 짓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니라. 이에 상제님께서 “네가 스물두 해 전에 논에 다녀오다가 큰 짐승을 두 도막 내지 않았느냐?” 하시매 그제야 무릎을 치며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하거늘, 다시 “그 달부터 태기가 있지 않았더냐?” 하시니 “예, 있었습니다. 그 때 낳은 아이가 제 아들입니다.” 하고 대답하니라. 이에 상제님께서 “네 며느리를 데려오라.” 하시어 며느리의 얼굴을 보니 코가 잘 생겼거늘
며느리에게 “어떻게 하여 네 남편을 살렸는지 말해 보아라.” 하시니
며느리의 대답이 이러하니라. 첫날밤에 신랑이 족두리도 벗겨 주지 않고 소변을 보러 나가서는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거늘, 각시가 나가 보니 대밭에서 큰 구렁이가 신랑의 목을 감아 죽이려는 위급한 상황인지라, 묘안을 내어 ‘신랑의 목숨을 앗아가려거든 먹고살 것을 달라.’ 하니, 구렁이가 무엇이든 이루게 해주는 관자(貫子) 하나를 주매 그것으로 구렁이를 죽이고 신랑을 구하였더라.
연전에 그 주인의 꿈에 나타나시어
상제님께서 들으시고 며느리에게 “그만 나가거라.” 이르시고 주인에게 말씀하시기를 “이는 예전에 네가 죽인 구렁이의 원혼이니라. 네가 그런 며느리를 이상하게 보느냐? 하늘에서 명을 정했으니 그런 며느리를 얻은 것이니라. 내가 연전에 동쪽에서 혼처가 나서거든 그 규수를 며느리로 정해야 네 자식이 산다 하지 않았느냐?” 하시니, 그 주인이 놀라서 벌떡 일어나 절을 하며 그런 일이 있었음을 아뢰니라.
대저 수년 전 어느 날 꿈에 한 선관이 나타나 “자식을 살리려면 동쪽에서 며느리를 얻으라.” 하므로 명을 좇아 동쪽에서 며느리를 얻었는데, 이제 말씀을 듣고 그 선관이 바로 상제님이심을 깨달으니라. 이에 크게 감복한 주인이 며느리의 친정에도 알려 양가에서 사례금을 올리니 돈 꾸러미가 네 뭉치나 되거늘
상제님께서 형렬에게 “사람을 보내 오라.” 하고 기별하시어 통영으로 보내신 뒤에 통영에서 다시 전주로 보내게 하시는데, 통영에서는 돈을 가만히 놓아두어도 저절로 집까지 옮겨졌다 하더라. 함열에 계실 때 하루는 어떤 사람이 장어회를 상추와 함께 가져다 드리니 잘 드시니라.(道典 3:44)
어느 순검의 생명을 건져 주려고 맞으심
김갑칠을 데리고 부안, 고부 등지를 두루 다니시다가 2월 보름날 저녁에 고부 검은바위 주막에 들르시니라. 이 때에 화적(火賊)떼가 많이 일어나 대낮에도 횡행하므로 마침 순검 한 사람이 야순(夜巡)하려고 미복(微服)으로 주막에 들어오거늘, 상제님께서 주모에게 이르시기를 “저 사람에게 술과 밥을 주지 말라. 만일 술과 밥을 먹였다가 값을 받지 못하면 넉넉지 못한 영업에 손해가 아니냐?” 하시니라.
순검이 이 말씀을 듣고 크게 성내어 상제님을 구타하며 ‘무례한 말을 한다’고 욕을 하거늘, 상제님께서 태연히 웃으시며 “저 사람은 죽는 땅에 다다른 사람이니 다 죽은 송장에게 맞아서 무엇이 아프랴.” 하시고 밖으로 나가시니라. 주모가 순검에게 이르기를 “저 양반의 말씀이 이상하니 반드시 무슨 까닭이 있을 거요. 나가서 사죄하고 그 연고를 물어 보시오.” 하거늘
순검이 곧 상제님의 뒤를 따라가 사죄한 뒤에 그 연고를 여쭈니 말씀하시기를 “오늘밤에는 사무를 폐하고 다른 곳으로 몸을 피하라.” 하시니라. 이에 순검이 명하신 대로 몸을 피하였더니 이윽고 밤이 깊으매 화적들이 몰려와 주모를 구타하며 순검이 간 곳을 묻거늘, 이는 여러 화적들이 그 순검을 죽이기로 미리 약속했기 때문이더라. 이튿날 그 순검이 상제님께서 계신 곳을 찾아와 살려 주신 은혜에 사례하니라.(道典 3:76)
선령신을 박대하는 예수교의 기운을 거두심
하운동 입구 오동정(梧桐亭)에 세 아름씩 되는 큰 둥구나무 세 그루가 서 있거늘 상제님께서 제비창골을 오가실 때 그 나무 아래 바위에서 자주 쉬시니라. 하루는 바위에서 주무시다가 갑자기 일어나시어 그 앞에서 주막을 경영하는 예수교인 김경안을 부르시더니, 말씀하시기를 “네가 믿는 예수교서를 가져오라.” 하시매 경안이 영문을 모른 채 신약전서를 가져다 올리거늘 상제님께서 불살라 버리시니라. 이에 경안이 깜짝 놀라 “왜 책을 사르십니까?” 하며 소리치니
상제님께서 꾸짖어 말씀하시기를 “이놈아! 이것 믿어 가지고 뭐할 것이냐! 이 책은 죽은 뒤에야 천당으로 간다는 조건이 붙은 책이니 살아서 잘되고 행복하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앞으로 이 교가 수많은 중생을 죽게 할 것이요, 선령신을 박대하는 길이니 태우는 것이다.” 하시매, 경안이 분을 이기지 못하여 상제님의 멱살을 잡고 흔들며 “당신이 뭘 안다고 그러느냐!” 하고 고함치거늘 온 동네가 소란하니라.
그 후에 형렬이 상제님을 모시고 오동정 차윤필(車允必)의 집에 가니 경안이 와서 예수교서 불태운 것을 말하며 또 행패를 부리거늘, 상제님께서 “곧 돌려주리라.” 하시는데 이 때 마침 한 붓장수가 지나가는지라, 상제님께서 그를 불러들여 술을 권하시고 붓상자를 가리키며 말씀하시기를 “그 상자 속에 든 예수교서 좀 보자.” 하시니라. 이에 붓장수가 내심 놀라며 “이 속에 예수교서 있는 것을 어떻게 아셨습니까?” 하고 여쭈니
말씀하시기를 “아, 저 붓 밑에 들었구만 뭘 그려. 그대는 예수를 믿지 아니하니 그 책을 나에게 전함이 어떠하냐?” 하시매, 붓장수가 대답하기를 “술도 많이 주시어 고마운데 그냥 드리겠습니다.” 하거늘 상제님께서 그 책을 받아 경안에게 주시니라. 그 후로 경안의 집은 패가하여 아들이 간질병으로 죽고, 딸도 소박 맞고 돌아와 떠돌다 죽으니라.(道典 5:8)
차윤필(車允必, 1874∼?): 본관 연안.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에서 부 화성과 모 박씨와의 사이에 4남으로 출생.
서교(西敎) 의전을 참관하심
병오년 10월에 한 예수교 교당에 가시어 모든 의식과 교의(敎義)를 직접 보고 들으신 뒤에 성도들에게 이르시기를 “족히 취할 것이 없다.”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내가 예수의 기운을 다 거두었노라.” 하시니라.(道典 5:160)
천지공사를 행하실 때나 어느 곳에 자리를 정하여 머무르실 때는 반드시 성도들에게 “정심(正心)하라.” 명하시고
혹 방심하는 자가 있으면 마음속을 보시는 듯 일깨워 주시며, 주무실 때도 마음을 환히 들여다보시고 “마음을 거두라.” 명하시니라.
상제님께서 이르시기를 “나무도 바람에 흔들리면 잎이 떨어지지 않느냐. 사람도 그와 같아서 몸을 흔들면 혼신이 흩어지나니 몸을 진중히 하여 경솔히 동요치 말라.” 하시고, “이는 유교가 낳은 부습(腐習)이니라.” 하시니라.
예수꾼들이 청지기를 맡았느니라
하루는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예배당 귀신들은 옷을 다른 신명과 같이 입고 있지만 힘을 못 쓰느니라.
예수꾼들이 청지기를 맡았느니라.” 하시니라.道典 5:162)
道典 4:48) 신명을 박대하는 서교의 운명
서교(西敎)는 신명을 박대하므로 성공치 못하리라.
이는 서양에서 신이 떠난 연고니라.
구천에 사무치는 ‘시~’ 소리에 서양이 덜덜 떠느니라.
서교는 신명을 박대하므로: 서교, 즉 가톨릭과 개신교 교리의 핵심은 ‘유일신 신앙’이기 때문에 그들의 신 이외의 모든 신을 부정한다. 여기서 선천의 전쟁 역사가 시작되었고 아직도 그 갈등은 풀리지 않고 있다.
서양에서 신이 떠난 연고: 서양은 근대에 이르러 합리적 이성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자연을 단순한 물질로 보는 기계론적 유물론이 가치관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는 결과적으로 인간과 자연 속에 내재되어 있는 신성(神性)을 부정하여, 자연과 동양 문명을 일방적으로 착취하고 정복하게 되었다.
道典 2:26) 이 때는 원시반본시대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때는 원시반본(原始返本)하는 시대라. 혈통줄이 바로잡히는 때니 환부역조(換父易祖)하는 자와 환골(換骨)하는 자는 다 죽으리라.” 하시니라.
부모를 하늘땅같이 섬기라
하루는 말씀하시기를 “부모를 경애하지 않으면 천지를 섬기기 어려우니라. 천지는 억조창생의 부모요, 부모는 자녀의 천지니라. 자손이 선령(先靈)을 박대하면 선령도 자손을 박대하느니라. 예수는 선령신들이 반대하므로 천지공정에 참여치 못하리라.
이제 인종 씨를 추리는 후천 가을운수를 맞아 선령신을 박대하는 자들은 모두 살아남기 어려우리라.”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조상은 아니 위하고 나를 위한다 함은 부당하나니 조상의 제사를 극진히 받들라. 사람이 조상에게서 몸을 받은 은혜로 조상 제사를 지내는 것은 천지의 덕에 합하느니라.” 하시니라.
금산의 한 예배당에 가심
가을에 하루는 상제님께서 “호연아! 나하고 무주 금산에 삼(蔘)도 줍고, 상수리도 주우러 가자!” 하시며 형렬과 호연을 데리고 금산(錦山)으로 가시니라. 이 때 날이 어두워져 호연이 자꾸만 넘어지거늘 상제님께서 호연에게 넘어지는 이치를 설명하며 꾸중하시니 호연이 “어린것이 자빠지면 안쓰럽지도 않은가, 계속 나무라고 지청구만 하네!” 하며 투정하니라.
늦은 밤에야 금산에 도착하시어 한 예배당으로 가시니 많은 사람들이 한 사람의 설교를 듣고 있거늘, 그가 이르기를 “하느님이 이 세상을 이토록 사랑하사 독생자 예수님을 주셨으니 누구든지 맘 변치 말고 믿으면 영생을 얻으리라 하셨습니다. 자, 우리 서로 서로 손잡고 함께 믿읍시다.” 하며 열변을 토하더라.
금산: 현재 충남 금산군. 당시 김제 금산(金山)과 구별하기 위하여 전라권에서는 금산(錦山)을 ‘무주 금산’이라 불렀다.
어찌 중생을 속이느냐!
이 때 상제님께서 앞으로 나가시며 큰 음성으로 꾸짖어 말씀하시기를 “그렇게 가르쳐서는 안 되느니라!
천지만사의 이치란 천지에 모여 사는 사람들 속에 있는 것이거늘 네 어찌 중생을 속이느냐!
가르치려거든 한길을 내듯 똑바로 가르쳐라.
길이 한 번 나면 그 길이 힘줄과 같이 천지 밖으로 벌어지나니 올바른 길이 아니면 가르치지 말라.” 하시니라.
환부역조의 큰 죄를 꾸짖으심
또 말씀하시기를 “중생들을 그릇 인도하면 천지의 원 주인도 자리를 잡지 못하느니라!” 하시며 환부역조(換父易祖)의 큰 죄를 호되게 꾸짖으시니 사람들이 술렁이며 수군거리거늘
상제님께서 “벼락신장은 어디 있느냐. 속히 벼락을 치라!” 하고 건물이 흔들리도록 큰 음성으로 칙령을 내리시니라.
순간 창창하던 밤하늘이 칠흑같이 어두워지더니 잠시 후 해처럼 밝은 불덩이가 나타나 번쩍번쩍 세상을 환히 비추고, 뇌성벽력과 함께 비가 억수로 쏟아지며 난데없이 하늘로부터 미꾸라지, 메기, 쏘가리, 뿌럭지 들이 수없이 떨어지니라. 이에 모두 두려움과 공포에 질려 바닥에 고개를 박은 채 벌벌 떨기만 하는데
몇몇 사람이 고기를 줍는다고 뛰쳐나가니 빛나던 불덩이가 순식간에 사라지며 사방이 다시 칠흑같이 어두워져 한 치 앞을 분별할 수 없거늘, 고기를 잡기는 고사하고 쏘가리에 쏘여 아프다고 소리치며 흩어지매 실로 아수라장을 이루니라.
실로 아수라장을 이루니라: 그동안 입으로만 전해져 온 상제님의 예배당 행차와 벼락 사건을 현장에서 직접 목격한 김호연 성도 다. 이 날 김호연씨는 진산에서 길을 잃었으므로, 여느 때보다 더욱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거기서도 내둥 날이 창창하니 있다가도 고닥에 어물어지면서 무섭게 혀. 빈 해가 뜨면서 번쩍번쩍 번쩍번쩍하면서 (중략) 예배당에 사람 하나도 없이…. 모두들 번개가 치고 막 벼락이 내려오고 헌게, 다들 집으로만 가느라고 야단들이지.”
금산: 현재 충남 금산군. 당시 김제 금산(金山)과 구별하기 위하여 전라권에서는 금산(錦山)을 ‘무주 금산’이라 불렀다. 당시 상황을 아버지께 들은 육평기(87세의 연세에도 금산에서 자동차로 우유배달)씨가 지금도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카자흐스탄 환단고기 북 콘서트에도 참석했던 분이다.
속히 벼락을 치라: 이 때 불벼락을 내리신 것은, 단순히 한 목사의 설교를 꾸짖으신 것이 아니다. 동서양의 숱한 인간들이 ‘창조와 피조’라는 이원론적 구조의 낡은 창조 신화를 받들며 유대족의 신, 여호와에 매달려 제 민족의 뿌리와 조상신을 부정하는 환부역조의 죄악을 꾸짖으신 것이다.
상제님께서 항상 경계하시기를 “필성아, 네가 나를 따르면 환갑은 못 넘기지만 자자손손이 영화를 누릴 것이요
그렇지 않고 계속 예수교를 신봉하면 너는 백수를 누릴 것이나 네 후손에 큰 재앙이 미치리라. 나 죽은 후에 예수교도 버리게 되리니 지금 마음을 고쳐 나를 따르라.” 하시나 듣지 않으니라.
상제님께서 어천하신 뒤 필성의 손자 다섯이 6.25 전란에 모두 비명으로 죽으니 필성이 “내가 한 해에 벼락을 맞았다.” 하더니, 남은 자손들에게도 화가 끊이지 않거늘 말년에야 크게 탄식하니라.(道典 10:76)
안필성은 경오(庚午)생 말띠로 상제님보다 한 살이 많았다. 기존 종교 골수들은 결국, 뒤 끝이 저렇게 된다.
죽어서야 후회를 하게 된다.
안필성(安弼成, 1870∼1961): 족보명 성길(聖吉).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에서 부친 안광윤과 모친 손씨 사이에서 장남으로 출생. 기독교를 독실하게 신앙하여 김제 용화동의 금산교회를 세우는 데 기여했다.
선천 성인 심판 공사
이 날 오후에 약방 마당에 멍석을 깔고 상제님께서 그 위에 반듯이 누우시어 치복에게 “새 자리를 그 앞에 펴라.” 하시거늘, 치복이 명하신 대로 멍석을 가져다 펴니 상제님께서 허공을 향해 준엄한 음성으로 말씀하시기를 “오늘은 참 성인을 판단하리라.” 하시고, 문 앞에 세워 두었던 기(旗)를 가져다 불사르게 하시니 뜻밖에 벽력이 일어나니라.
이 때 상제님께서 큰 소리로 명하시기를 “공자(孔子) 부르라.” 하시니 성도들이 어쩔 줄 몰라 머뭇거리거늘
다시 “어서 공자를 부르지 못할까!” 하고 호통치시매 성도들이 놀라서 엉겁결에 “공자 잡아 왔습니다.” 하는지라
상제님께서 “불러 오라고 하였지 잡아 오라 했느냐.” 하시고 “너희들은 눈을 감고 보라.” 하시므로
성도들이 눈을 감고 보니 뜻밖에 펼쳐 놓은 자리에 공자가 무릎을 꿇고 “공자 대령했습니다.” 하고 아뢰더라.
상제님께서 꾸짖으시기를 “공자야, 네가 소정묘(少正卯)를 죽였으니 어찌 인(仁)을 행하였다 하며, 삼대(三代) 출처(黜妻)를 하였으니 어찌 제가(齊家)하였다 하리오.
또한 내 도(道)를 펴라고 내려 보냈거늘 어찌 제자들을 도적질 해먹게 가르쳤느냐. 그 중생의 원억(寃抑)을 어찌할까. 그러고도 성인이라 할 수 있느냐!.. 하시니라.
소정묘(少正卯, ?∼서기전496): ‘소정少正’은 관직명, 이름은 묘(卯). 정치를 어지럽힌다고 공자에게 죽임을 당한 노나라의 대부(大夫).
삼대(三代) 출처(黜妻)를 하였으니: 제사상에 육포(肉脯)를 올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공자가 출처하고, 그 아들 백어(伯魚)와 손자 자사(子思)도 역시 출처했다.
이어 “석가(釋迦)를 부르라.” 하고 명하시니 즉시 석가모니가 “대령했습니다.” 하고 꿇어앉아 아뢰거늘, 상제님께서 꾸짖으시기를 “석가야, 너는 수음(樹陰) 속에 깊이 앉아 남의 자질(子姪)을 유인하여 부모의 윤기(倫氣)와 음양을 끊게 하니, 너의 도가 천하에 퍼진다면 사람의 종자나 남겠느냐. 종자 없애는 성인이냐?
네가 국가를 아느냐, 선령을 아느냐, 중생을 아느냐. 이런 너를 어찌 성인이라 할 수 있겠느냐...하시니라.
상제님께서 다시 명하시기를 “야소(耶蘇) 부르라.” 하시니 즉시 예수가 꿇어앉아 “대령했습니다.” 하고 아뢰거늘
상제님께서 꾸짖으시기를 “야소야, 너를 천상에서 내려 보낼 적에 내 도를 펴라 하였거늘 선령을 박대하는 도를 폈으니 너를 어찌 성인이라 할 수 있겠느냐! 네가 천륜을 아느냐 인륜을 아느냐...하시니라.
너희들 모두 나의 도덕 안에서 살라
이어서 “노자(老子)를 부르라.” 하시니 즉시 노자가 “대령했습니다.” 하매, 상제님께서 꾸짖으시기를 “노자야, 세속에 산모가 열 달이 차면 신 벗고 침실에 들어앉을 때마다 신을 다시 신게 될까 하여 사지(死地)에 들어가는 생각이 든다 하거늘, ‘여든한 해를 어미 뱃속에 머리가 희도록 들어앉아 있었다.’ 하니 그 어미가 어찌 될 것이냐.
그런 불효가 없나니 너는 천하에 다시없는 죄인이니라. 또한 네가 ‘이단(異端) 팔십 권을 지었다.’ 하나 세상에서 본 자가 없고, 나 또한 못 보았노라. 그래도 네가 신선(神仙)이냐!.. 하시니라.
잠시 후에 상제님께서 또 명하시기를 “공자, 석가, 야소, 노자를 다시 부르라.” 하시니 그들이 모두 대령하거늘
말씀하시기를 “들어라. 너희들이 인간으로서는 상 대우를 받을 만하나 너희들의 도덕만 가지고는 천하사를 할 수가 없느니라. 너희들의 도덕이 전혀 못쓴다는 말은 아니니 앞으로 나의 도덕이 세상에 나오거든 너희들 모두 그 안에서 잘 살도록 하라... 하시니라. 상제님께서 다시 말씀하시기를 “수천 년 밀려 오던 공사를 금일에야 판결하니 일체의 원억이 오늘로부터 고가 풀리느니라.” 하시니라.
상제님께서 선천 종교 기운을 거두시기 위해 선천 성자들을 불러 문책한 이 공사는 안내성, 박공우, 김자현 성도의 가족 및 제자들 모두가 생생하게 이 공사 내용을 전하고 있다. (안내성 성도의 아들 안정남 증언) “얼굴이 그냥 새카맣더라고 그리여. 예수가, 이렇게 무릎을 꿇었디야. 발발 떨더라고 그래싸. 발발 떨더라고, 겁에 질려서. ‘너 이놈, 도를 평창하라고 했더니, 너 선령도 몰라보는 놈이, 종교가 종교냐?’고…. 발발 떨고 막, 말 한마디도 못 하더라고 그러더만.”(안내성 성도의 아들 안정남 증언)
예수교는 유일신 신관으로, 후천 가을 대개벽기에는 선령(조상님)의 음덕에 의해서만 살아남는다. 선령신(조상신)을 박대하는 큰 폐해를 인류에게 끼쳤다.
상제님과 함께 선천 성자들의 고향을 순회하심
안내성이 모악산 백운동(白雲洞)에 있을 때 하루는 새벽에 치성실에서 남방을 향해 정성껏 청수를 모시고 공부를 마친 뒤에 부엌으로 내려오다 미끄러져서 한 길 가량 되는 밑으로 떨어지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다가 혼절하거늘 가족들은 혹 생명이 위태로울까 걱정하여 내성을 방으로 옮기는 등 법석을 떠는데
내성이 문득 “경만아! 이리 나오너라.” 하는 소리에 깨어나 마당에 나가 보니, 환한 대낮에 상제님께서 구름을 타고 오시어 공중에 떠 계시더라. 내성이 반가운 마음에 얼른 인사를 올리니 상제님께서 빙긋이 웃으시며 “내가 너 때문에 왔다. 나를 따라가자.” 하시고, 구름을 내성 가까이에 대시며 “여기에 타라.” 하시거늘, 내성이 구름을 타니 어디론가 날아가 순식간에 한 낯선 곳에 이르니라.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여기가 유대의 예수가 태어난 곳이다.” 하시고, “그 제자들이 선령을 심히 박대하니 무슨 복을 바랄 수 있으리오.” 하시며 이곳저곳을 둘러보시니라. 다시 구름을 타고 어떤 곳에 당도하매 “여기는 석가가 태어난 곳으로 본시 왕국이 있었나니 잘 보아 두어라.” 하시고
“석가를 그대로 두었다가는 사람들의 천륜을 끊게 하고 인종씨를 말려 모두 멸망당하게 하였을 것이라.” 하시니라. 잠시 후에 다시 어떤 곳에 도착하거늘 “여기가 바로 공자가 태어난 곡부(曲阜)니라.” 하시고, “그 제자들이 도둑놈이 되었다.” 하시며 여기저기 둘러보시더니
“이제 그만 가자.” 하시고 내성의 집으로 돌아오시니 어느덧 수 시간이 흘러 해 넘어가는 저녁때가 되었더라.
상제님께서 떠나시며 내성에게 이르시기를 “깨어나거든 마초(馬草)를 달여 먹으라.” 하고 약을 가르쳐 주시므로 명하신 대로 하니 몸이 차츰 회복되니라.(道典 10:120)
도둑놈이 되었다: 유교 경전은 일상적인 교훈들로 이루어져 있으나, 유교의 정교하지 못한 논리적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등장한 성리학이 후기에 이르면 지나치게 형이상학화 되어 사회적으로 병폐를 끼치게 되었다. 곧 공소(空疎)한 관념론으로 인한 지나친 명분주의나 편협 논리에 빠지게 되었고, 후기에는 남존여비 등의 폐단이 관습화되면서 사회적으로 심각한 폐해를 낳기에 이르렀다.
하나님의 강세를 예고한 동학의 창시자 최수운 대신사
신교(神敎)는 본래 뭇 종교의 뿌리로 동방 한민족의 유구한 역사 속에 그 도맥(道脈)이 면면히 이어져 왔다.
일찍이 「난랑비서문(鸞郞碑序文)」에서 최치원(崔致遠)이 말하기를 “나라에 현묘(玄妙)한 도(道)가 있으니 풍류(風流)라 한다. … 실로 유불선의 삼교三敎를 포함하여(包含三敎) 접하는 모든 생명을 감화시키는 것(接化群生)이라.” 하였다. 그러나 조선을 비롯한 동양 각국이 서양 제국주의 열강의 폭압에 침몰당해 갈 무렵, 신교神敎 또한 권위를 잃고 그 명맥이 희미해지거늘
하늘에서 동방의 이 땅에 이름 없는 한 구도자를 불러 세워 신교(神敎)의 도맥을 계승하게 하고 후천개벽(後天開闢)으로 새 세상이 열릴 것을 선언토록 하셨으니, 그가 동학(東學)의 창시자 수운(水雲) 최제우(崔濟愚) 선생이시다. 최수운 선생은 몰락한 양반의 서자로 태어나 일찍이 구도에 뜻을 두고 세상을 두루 체험하며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자 공부에 전념하더니
이 때 도학자 연담(蓮潭) 이운규(李雲奎)가 수운 선생에게 말하기를 “그대는 선도(仙道)를 계승할 자라.”고 하였다. 을묘(乙卯 : 道紀前 16, 1855)년에 하루는 금강산 유점사의 한 중이 수운 선생이 머물고 있는 울산(蔚山) 유곡(裕谷)에 찾아와 책 한 권을 전하매 3일 만에 그 뜻을 해득하니, 신교神敎와 기도의 요체를 적은 책이더라. 이로부터 뜻을 더욱 굳건히 하여 양산 천성산(千聖山)에서 49일을 기약하고 기도를 드렸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매 참담한 심경으로 지내다가
기미(己未 : 道紀前 12, 1859)년 10월에 다시 발심하여 용담정(龍潭亭)으로 들어가며 ‘하나님이신, 천주님을 친견하기 전에는 세상에 나서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기도에 정진하였다. 이듬해 그의 나이 37세 되는 경신(庚申 : 道紀前 11, 1860)년에 ‘도기장존사불입(道氣長存邪不入) 세간중인부동귀(世間衆人不同歸)’라는 입춘시를 써 붙이고 하루에 세 번씩 청수를 올리며 기도에 더욱 정진하더니,
드디어 4월 초닷샛날, 전율오한의 묘경 속에서 홀연 공중으로부터 들려오는 ‘하나님(상제님)의 음성이 그에게 임하여 말씀하시기를 “ 曰 勿懼勿恐하라. 世人이 謂我上帝어늘 汝不知上帝耶아.” “두려워 말고 겁내지 말라. 세상 사람들이 나를 상제(上帝)라 이르거늘 너는 상제를 알지 못하느냐!” 『동경대전(東經大全)』 「포덕문(布德文)」
“너에게 무궁무궁한 도법을 주노니 닦고 다듬어 수련하여 글을 지어서 사람들을 가르치고 법을 정하여 덕을 펴면 너로 하여금 장생케 하여 천하에 빛나게 하리라.” 『동경대전』 「논학문(論學文)」 이로써 최수운이 인류의 새 세계를 알리라는 하나님의 천명(天命)과 신교神敎를 받고 도통을 하였다. 이것이 곧 우주사의 새 장을 열어 놓은 하나님과의 천상문답天上問答 사건이다.
이 때 하나님이신 천주(天主)님으로부터 “주문(呪文)을 받으라.”는 말씀을 듣고 본주문 13자와 강령주문 8자를 받았으니 그 내용은 이러하다.
侍天主 造化定 永世不忘萬事知 至氣今至 願爲大降
시천주조화정영세불망만사지 지기금지원위대강
최수운 선생이 천명(天命)과 신교(神敎)를 받들어 동학을 창도하니 얼마 지나지 않아 경상도 일대에 동학이 널리 퍼지거늘 그 급속한 전파에 불안을 느낀 조정에서는 동학을 사도난정(邪道亂正)으로 규정하여 최수운 선생을 체포하였다. 갑자(甲子 : 道紀前 7, 1864)년 2월에 대구장대(大邱將臺)에서 처형당할 때, 최수운 선생이 청수를 모시고 하나님께 기도를 올린 후 목이 베이니 그의 나이 41세였다.
『천도교백년약사』 이 때 형졸이 여러 번 칼을 내리쳤으나 목에 칼자국조차 나지 않자 수운 선생이 형졸에게 말하기를 “청수 그릇 하나를 내 앞에 놓으라.” 하여 청수 앞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목숨을 거두어 주실 것을 마지막으로 기도 한 뒤 마침내 순도하였다. 『천도교백년약사』
천주님의 동방 땅 강세를 예고한 최수운 선생
최수운 선생은 ‘인간으로 강세하시는 천주(天主)님’을 모시는 시천주(侍天主) 시대를 선언하였다.
최수운 선생의 이러한 시천주(侍天主) 사상은 이후 사인여천(事人如天), 양천주(養天主), 인내천(人乃天) 등으로 다양하게 해석되다가 마침내 범천론(汎天論)으로 크게 왜곡되었다.
최수운 선생은 ‘인간으로 강세하시는 천주(天主)님’을 모시는 시천주(侍天主) 시대를 선언하였다. 이는 온 인류에게 하나님 아버지의 대도(大道), 곧 무극대도(無極大道)가 조선 땅에서 나올 것을 선포한 것이다. 그가 비록 하나님(상제님)의 천명은 다 이루지 못하였으나 5년 동안 하나님의 동방 땅 조선에 강세하실 것을 알렸으니 바로 이러하다.
『용담유사(龍潭遺詞)』 “하나님(한울님)이 내 몸 내서 아국(우리나라)운수 보전하네.”
“호천금궐 상제님을 네가 어찌 알까 보냐.”
“만고 없는 무극대도(無極大道) 이 세상에 날 것이니
너는 또한 연천(年淺)해서 억조창생 많은 사람, 태평곡 격양가(擊壤歌)를 불구에 볼 것이니
이 세상 무극대도無極大道 전지무궁 아닐런가.”
“어화 세상 사람들아, 무극지운(無極之運) 닥친 줄을 너희 어찌 알까 보냐.”
“시천주 주문, 13자 지극하면 만권시서(萬卷詩書, 매우 많은 책) 무엇하며…”.
“무극대도無極大道 닦아 내니 5만년 운수로다.”
“12제국(당시 전세계) 괴질병운수 다시 개벽 아닐런가.”
『도덕경(道德經)』에서 일찍이 노자(老子)가 말하기를 “도는 텅 빔으로 가득하니 아무리 써도 마르지 않는도다.
상제님보다도 앞서는 것 같도다!” 하여 상제님이 실재하심을 전하였고
또한 『장자(莊子)』 「제물론(齊物論)」에서 장자(莊子)는 “진짜로 우주의 주재자(眞宰)는 계신 모양 같지만 그분의 모습을 보기는 워낙 어렵구나! 그분의 행하심을 내가 예전부터 믿어 온 바이지만 상제님의 형모 는 뵐 수 없더라. 만물과 통정하시며 형상을 감추시는 것일까?”
“皇矣上帝, 臨下有赫, 監觀四方, 求民之莫.” 『시경(詩經)』「대아(大雅)」 ‘황의(皇矣)’
“위대하신 상제(上帝)님이 아래 세상을 환히 비추어 보시사, 천하사방(天下四方)을 두루 살피시어
만백성이 안정하기를 구하시도다.”
도솔천의 천주(天主)님, 미륵부처님의 강세를 예고한 석가모니 부처
『불본행집경(佛本行集經)』 5권 「상탁도솔품(上託兜率品)」에서 석가 부처는 말법의 큰 겁액기에 도솔천의 천주(天主)로 계신 미륵부처(彌勒佛)님이 인간으로 내려와 삼회설법(三會說法)으로 천하창생을 건져 용화낙원(龍華樂園)의 새 세계를 연다고 하였다.
『화엄경(華嚴經)』 「입법계품(立法界品)」 말법의 때에 “그 통일의 하늘에 계시는 미륵부처님이 바다에 둘러싸인 동방의 나라에 강세하리라.” 하였나니, 이는 “부모와 친척과 여러 사람들을 거두어 성숙케 하시려는 것이라.” 하니라. 또 “이곳은 병든 세계를 고치는 위대한 대왕(大醫王)이 머무시는 곳이니라.” 하고,
말법시대가 되면 ‘샹커라 하는 법왕(法王)이 출세하여 정법(正法)으로 다스려 칠보(七寶)를 성취하니 무기를 쓰지 않고도 자연히 전 영토에서 항복을 받게 된다.’ 하더라. 그 때는 기후가 고르고 사시(四時)가 조화되며 여러 가지 병환이 없어지고 인심이 골라서 다 한뜻이 되는 울단월(鬱單越)의 세계가 온다 하니, 이는 곧 우주 질서가 개벽되는 말법의 시대에 이루어질 미륵부처님의 강세 소식이다.
상투, 내 머리에 세우는 솟대
내 머리에 세우는 솟대, 상투
<단군세기>는 고려 말의 대학자인 행촌 이암(李嵒, 1297~1364)선생께서 1363년에 편찬한 사서로써 47명의 단군께서 2,096년간 단군조선(고조선)을 다스렸던 치세를 기록한 역사서이다.
『고려사 (高麗史)』 세가(世家)에는 춘천의 청평산(淸平山)에 은거하기 시작하던 57세까지 이군해(李君侅)로 기록되다가
62세 되던 공민왕 7년에 개성으로 돌아와 수문하시중(守門下侍中)의 벼슬을 받으면서 '이암(李嵒)'으로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개명한 시기는 청평산에 은거하던 무렵인 것으로 추정된다.
고성이씨 출신의 명인 중에서 후세 선비사회의 추앙을 가장 많이 받은 이가 행촌 이암선생이다. 원(元)의 성리학을 국내에서 처음으로 체계를 세운 명유 백이정(白頤正)의 고모를 할머니로 하여 회양부사(淮陽府使) 이우(李瑀)의 장남으로 태어난 이암은 경상도 고성군(固城郡) 송곡촌(松谷村) 앞 바닷가에서 태어나 유년기를 보냈다.
어머니는 충렬왕 때 김방경(金方慶)의 중군(中軍) 지병마사(知兵馬使)로 일본 정벌에 큰 공을 세운 박지량(朴亮) 장군의 딸이다. 부인은 충렬왕 때 세 번이나 재상을 지내면서 일본 정벌에 전함을 만들어 공을 세우고, 충렬왕에게 「편민십팔사(便民十八事)」를 올려 명성을 떨쳤던 홍자번(洪子藩)의 증손녀이다.
이암의 가계를 형성하고 있는 부계 · 모계 · 처계의 혈연적 인맥은 문무(文武)의 정예를 모은 집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가정환경이 이암의 인품과 사상을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암은 17세 되던 1313년 충숙왕 즉위년 8월에 문과에 합격했다.
비서성 교감(秘書省校勘)을 시작으로 비서랑(秘書郞) · 단양부 주부(丹陽府主簿)·도관 정랑(都官正郞)을 거쳐 감찰 집의(監察執義)· 동지추밀원사 (同知樞密院事)밀직부사(密直副使)· 찬성사(贊成事)를 두루 역임하고
청평산(淸平山)에서 5년간의 은거 생활을 마친 후 1358년 수문하시중(守門下侍中)에 이르렀다.
단군세기(檀君世紀) 서문(序文)은 행촌 이암선생의 역사관, 우주관, 신관, 인간관과 수행론이 잘 드러나 있는 한마디로 그의 철학과 사상의 정수가 담긴 글이다. 이암선생께서는 사학史學의 역할이란 국가를 이끌어가는 인재들의 사기를 진작하는 것이고, 바람직한 역사란 만세에 걸쳐 인간 행위와 시대상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는 글이라 정의하고 있다.
따라서 역사학의 정법은 중도적 입장에서 역사적 인물들의 인물됨을 평하고 각 시대의 시대상을 진단하는 것이라 설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현재의 역사학을 보면 과학적 방법론을 들먹이거나, 민족의 정신과 철학을 배제한 역사학이란 과연 그 효용성이 무엇인지 의문이다.
행촌 이암선생은 국가 공동체의 정신이 담긴 역사학이 무너지고, 사학史學이 불명해진다면, 그 국가는 국민들의 삶의 틀이 무너지고, 올바르고 이치에 합당한 주장, 정론(正論)이 분열되어 망하는 수순을 밟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강조한다. 역사를 왜 알아야 하나? 이에 대해 단군세기 서문은 매우 깊은 화두를 던져 주고 있다.
나의 본질과 뿌리를 밝히고, 신神과 나, 국가와 나의 관계를 이해해, 참 나를, 진아(眞我)를 찾으려는 사람들에게 단군세기 서문은 매우 소중한 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檀君世紀 序]
爲國之道가 莫先於士氣하고 莫急於史學은 何也오.
위국지도 막선어사기 막급어사학 하야
史學이 不明則士氣가 不振하고 士氣가 不振則國本이 搖矣오 政法이 歧矣니라.
사학 불명즉사기 부진 사기 부진즉국본 요의 정법 기의
蓋史學之法이 可貶者貶하고 可褒者褒하야 衡量人物하고 論診時像하니 莫非標準萬世者也라.
개사학지법 가폄자폄 가포자포 형량인물 논진시상 막비표준만세자야
斯民之生이 厥惟久矣오 創世條序가 亦加訂證하야
사민지생 궐유구의 창세조서 역가정증
國與史가 竝存하고 人與政이 俱擧하니 皆自我所先所重者也라
국여사 병존 인여정 구거 개자아소선소중자야
嗚呼라 政猶器하고 人猶道하니 器可離道而存乎며
오호 정유기 인유도 기가리도이존호
國猶形하고 史猶魂하니 形可失魂而保乎아.
국유형 사유혼 형가실혼이보호
竝修道器者도 我也며 俱衍形魂者도 亦我也니
병수도기자 아야 구연형혼자 역아야
故로 天下萬事가 先在知我也니라. 然則其欲知我인댄 自何而始乎아.
고 천하만사 선재지아야 연즉기욕지아 자하이시호
夫三神一體之道는 在大圓一之義하니
부삼신일체지도 재대원일지의
造化之神은 降爲我性하고 敎化之神은 降爲我命하고 治化之神은 降爲我情하나니
조화지신 강위아성 교화지신 강위아명 치화지신 강위아정
故로 惟人이 爲最貴最尊於萬物者也라.
고 유인 위최귀최존어만물자야
夫性者는 神之根也라 神本於性이나 而性未是神也오
부성자 신지근야 신본어성 이성미시신야
氣之炯炯不昧者가 乃眞性也라.
기지형형불매자 내진성야
是以로 神不離氣하고 氣不離神하나니
시이 신불리기 기불리신
吾身之神이 與氣로 合而後에 吾身之性與命을 可見矣오.
오신지신 여기 합이후 오신지성여명 가견의
性不離命하고 命不離性하나니 吾身之性이 與命으로 合而後라야,
성불리명 명불리성 오신지성 여명 합이후
吾身의 未始神之性과 未始氣之命을 可見矣.
오신 미시신지성 미시기지명 가견의
故로 其性之靈覺也는 與天神으로 同其源하고,
고 기성지영각야 여천신 동기원
其命之現生也는 與山川으로 同其氣하고,
기명지현생야 여산천 동기기
其情之永續也는 與蒼生으로 同其業也니라.
기정지영속야 여창생 동기업야
乃執一而含三하고 會三而歸一者가 是也니라.
내집일이함삼 회삼이귀일자 시야
故로 定心不變을 謂之眞我오 神通萬變을 謂之一神이니
고 정심불변 위지진아 신통만변 위지일신
眞我는 一神攸居之宮也라.
진아 일신유거지궁야
知此眞源하고 依法修行하면 吉祥自臻하고 光明恒照하나니
지차진원 의법수행 길상자진 광명항조
此乃天人相與之際에 緣執三神戒盟 而始能歸于一者也니라.
차내천인상여지제 연집삼신계맹 이시능귀우일자야
故로 性命情之無機는 三神一體之上帝也시니,
고 성명정지무기 삼신일체지상제야
與宇宙萬物로 混然同體하시며 與心氣身으로 無跡而長存하시며,
여우주만물 혼연동체 여심기신 무적이장존
感息觸之無機는 桓因主祖也시니
감식촉지무기 환인주조야
與世界萬邦으로 一施而同樂하시며 與天地人으로 無爲而自化也시니라.
여세계만방 일시이동락 여천지인 무위이자화야
是故로 其欲立敎者는 須先立自我하고
시고 기욕립교자 수선립자아
革形者는 須先革無形이니 此乃知我求獨之一道也니라.
혁형자 수선혁무형 차내지아구독지일도야
嗚呼痛矣라. 夫餘에 無夫餘之道然後에 漢人이 入夫餘也며,
오호통의 부여 무부여지도연후 한인 입부여야
高麗에 無高麗之道然後에 蒙古가 入高麗也어니와
고려 무고려지도연후 몽고 입고려야
若其時之制先하야 而夫餘에 有夫餘之道則漢人은 歸其漢也며,
약기시지제선 이부여 유부여지도즉한인 귀기한야
高麗에 有高麗之道則蒙古는 歸其蒙古也니라.
고려 유고려지도즉몽고 귀기몽고야
嗚呼痛矣라. 向年에 潛淸輩之邪論이 陰與百鬼夜行하야
오호통의 향년 잠청배지사론 음여백귀야행
以男生發岐之逆心으로 相應而合勢하니
이남생발기지역심 상응이합세
爲國者抑何自安於道器兩喪하며 形魂全滅之時乎아.
위국자억하자안어도기양상 형혼전멸지시호
今에 外人干涉之政이 去益滋甚하야 讓位重祚를 任渠弄擅호대
금 외인간섭지정 거익자심 양위중조 임거농천
如我大臣者가 徒束手而無策은 何也오, 國無史而形失魂之故也니라.
여아대신자 도속수이무책 하야 국무사이형실혼지고야
一大臣之能이 姑無可求之爲言이나 而乃擧國之人이 皆救國自期오
일대신지능 고무가구지위언 이내거국지인 개구국자기
而求其所以爲有益於救國然後에 方可得以言救國也니라.
이구기소이위유익어구국연후 방가득이언구국야
然則救國이 何在哉아. 向所謂國有史而形有魂也니라.
연즉구국 하재재 향소위국유사이형유혼야
神市開天이 自有其統하야 國因統而立하고 民因統而興하나니
신시개천 자유기통 국인통이립 민인통이흥
史學이 豈不重歟아 書此하야 樂爲檀君世紀序하노라.
사학 기부중여 서차 낙위단군세기서
上之十二年癸卯十月三日에 紅杏村叟는 書于江都之海雲堂하노라.
상지십이년계묘시월삼일 홍행촌수 서우강도지해운당
여기서 말하는 나라를 다스리는 법도와 역사학은 진리의 뿌리 자리인 삼신(三神)의 도를 근본으로 한다. 행촌 이암선생은 나라를 열어서 잘 다스리는 길, 그래서 모든 사람이 행복한 삼신 상제님의 아들딸이 될 수 있는 길을 국가 경영의 원리로 얘기하고 있다.
정치학의 근본은 국가를 잘 경영하는 것인데, 그것이 위국지도(爲國之道)다. 위국지도爲國之道 란 바로 삼신(三神)의 도道이며 정치의 주제는 이 위국지도爲國之道를 잘 깨달아서 실현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학, 역사학이란 신교神敎 문화, 곧 조물주 하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세상의 역사학자들은 진리의 맥이 완전히 단절되어서 진리의 뿌리를 모른다.
정신적으로 보면 문화적인 고아다. 이 우주의 진리 근본, 조물주와 인간의 관계,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의 이치를 깨닫는 것이 역사학의 근본이고,
하늘과 땅과 인간의 역사 무대를 바르게 깨치는 것이 역사학이다. 그런데 이 사학이 삼신三神의 이치를 근본으로 하지 않아서 역사의 밑바탕, 역사학의 근거에 밝지 못한즉, 이를 깨닫지 못하고 있은즉, 사기士氣가 진작될 수 없다. 여기서 사기士氣를 ‘선비의 기개’ 등으로 해석하는데, ‘사기士氣’는 용기라든지 인생의 보람, 즐거움, 기쁨 같은 것을 뜻한다.
이 세상을 사는 맛이 안 나서 사기士氣가 진작이 안 되면 나라의 근본이 흔들려 세상이 어지러워지고 나라를 다스리는 법이 전부 삐뚤어지고 분열된다는 것이다.
역사학의 근본 법도라는 것이 깎아내릴 것은 깎아내리고, 끌어올릴 것은 끌어올려, 인물을 저울질하여 그 사람이 진정 어떤 사람인지 판단을 하는 것인데, 무엇을 깎아내리고 기리며 저울질하는가?
‘네가 신교(神敎)를 제대로 깨치고 있느냐, 신교神敎에 대해 한 소식을 듣고 있느냐.
아니면 신교神敎문화와 단절된 사람이냐?
과연 제대로 깨진 인간이냐?
역사의 기초라도 아는 인간이냐?’ 궁극으로 가면 그것을 저울질하는 것이다.
그리고 때의 흐름을 논하고 진단하니, 예를 들어 삼신문화가 흥왕하던 때와 외래 사상에 침몰되던 때 등, 때의 추세를 논하니. 이것이 만세의 표준, 근본이 되지 않을 수가 없다.
이 나라 백성의 삶은 참으로 오래되었다. 한민족의 역사는 1만 년이니 얼마나 유구한가. 이 나라 백성은 신교神敎문화의 종주이고 삼신 상제님의 원,아들과 딸이다.
동북아는 하나님 문화의 원고향이다. 이 세계 역사의 문이 열리고 세상을 다스린 創世條序, 조서條序 또한 신교문화의 맥을 바르게 증명해 왔기에, 나라와 신교문화의 역사가 늘 병존해 왔다.
國與史가 竝存하고
역사를 돌아보면 환국 시대부터 조선 초기인 세조 때까지 삼신 상제님께 천제를 올렸으며, 마지막 왕조인 조선이 망할 무렵(1897년)에도 고종이 삼신 상제님께 천제를 올리고 나라 이름을 대한제국으로 바꾼 사실이 있다. 황제 문화를 선포하고 천자 문화 본래의 위엄으로 돌아간 것이다.
人與政이 俱擧하니 皆自我所先所重者也라
사람과 정사(政事)가 함께 거론되었으니, 즉 인간을 말할 때는 항상 위국지도와 함께 삼신문화의 정사政事를 얘기했으니 이것이 모두 자아가 먼저 이야기하며 소중히 여겨야 할 바이다.
오호라, 정치는 그릇과 같고 사람은 도道와 같으니 그릇이 도道를 떠나서 어떻게 존재할 수 있으며, 나라는 형체와 같고 역사라는 것은 그 형체를 움직이는 정신과 같으니, 형체가 정신을 잃어버리고 어떻게 보존이 될 수 있겠는가.
도道와 기器를 함께 닦는 자도 나이고, 형체, 몸뚱이와 정신을 함께 갖고 살면서 그것을 키워 나가는 것도 역시 나이니, 그러므로 천하만사는 무엇보다 먼저 나를 바르게 아는 데 달려 있다.
그런즉 나를 알고자 한다면 무엇으로부터 시작해야 하겠는가? 바로 여기에 자아 문제, 나의 문제, 우리 자신의 모든 문제, 방황하는 인생의 해답이 들어 있다.
아무리 뛰어난 천체과학자, 유전공학자 또는 컴퓨터공학자, 반도체의 일인자, 또는 각 분야의 전문의, 생물학자, 또는 경제학자, 세상을 한 번 흔들고 싶은 정치가,
음악, 미술 같은 분야의 위대한 예술가, 또는 인생을 노래하는 시인으로 살고 있다 할지라도 진리의 원뿌리를 모르면, 너는 아직 진정한 인간이 아니란 말이다.
진리의 근본을 모르기 때문에 여전히 헤매는 인생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를 알고자 할 때는, 내가 누구인지, 내 생명은 어디에서 비롯하였으며 내 생명의 불멸성은 어느 곳에서 비롯한 것인지 알고자 할 때는 무엇으로부터 시작해야 하겠는가?
이제 여기부터 본론이다. 행촌 이암이 말하고 싶은 진리의 주제, 역사의 원주제인 신교문화(神敎文化)가 나온다.
여기서 삼신일체(三神一體) 사상, 삼신일체 진리의 주제를 선포하고 있다. 진리의 명제는 뭐냐?
‘삼신이 한 몸으로 계시는 원리’라는 말이다. 『환단고기』 전체를 읽어 보면 삼신이 한 몸으로 계시는 원리. 이것이 생명 창조의 원리요, 역사 구성의 원리이고, 인간 생성의 원리이며 현실이 지속되어 가는 진리의 근본 주제임을 밝히고 있다.
사실 이것이 기가 막힌 말이다. 진리의 원주제는 삼신일체三神一體의 도다. 삼신은 한 몸이다. 신神은 셋인 것 같은데 하나라는 말이다. 그래서 우주의 통치자 하나님을 정의할 때도 ‘삼신일체상제(三神一體上帝)’라 한다.
삼신三神과 한 몸이 되어 존재하시는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상제님, 그것을 줄여서 삼신상제, 더 줄여서 상제님이라 한다. 따라서 ‘상제님은 어떤 분인가? 상제님은 왜 우주에 존재해야 하는가?’ 이것을 알려면 삼신三神을 알아야 한다.
삼신과 한 몸이 되어 계시는 이치를 알아야 한다. 상제님께서 존재하시고 우주를 다스리시는 이치는 바로 삼신이 전제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삼신이 한 몸으로 계시는 도道는 어디에 있느냐? 바로 ‘대원일지의(大圓一之義)’, 대원일大圓一의 뜻에 있다. 이 우주의 조화, 삼신의 조화는 대원일大圓一, 무한히 크고 원만하고 하나다라는 것이다.
우주의 모든 것을 낳아서 조화시키니 원융무애(圓融無礙)한 것이다. 원만할 원圓, 둥글 원圓자. 원圓이라는 것은 어디가 막히고 제한되어 있는 게 아니잖은가. 원만하다, 둥글다는 것은 진리의 오묘함, 진리의 영원함을 그려 주는 그림 언어다. 삼신의 창조성과 조화를 다시 ‘대원일(大圓一)’로 표현한 것이다.
이것을 이유립 선생은 순수한 우리말로 커발환이라 했다. 배달국 시조 환웅의 호칭인 커발환이다. 그다음, 삼신에 대한 정의가 나오고 삼신과 인간 생명과의 관계가 나온다. 삼신의 세 손길 가운데 조화의 신神은 내려와 나의 본성性이 되었고. 하나님의 마음이 내 마음, 본성이 되었다는 것이다.
낳아서 기르는, 교화(敎化)를 주장하는 신神은 내려와서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 자체인 나의 목숨, 명命이 되었고. 그러니 나의 생명은 원래 불멸이다. 왜? 삼신의 영원한 생명을 그대로 지녔기 때문이다.
삼신의 또 하나의 손길인 치화신(治化神)은 내려와서 내 몸의 정精이 되었으니. 이것이 성명정(性命精)이다. 삼신이 내 몸에 들어와서 3가지 참된 것[삼진三眞]이 된 것이다.
행촌 이암이 전한 전체 47대 단군의 가르침에서도 나타나지만 이 서문의 기본 주제가 내 몸속에 들어와 있는 삼신, 즉 성명정性命精이다. 하나님의 본성과 하나님의 무궁한 생명과 그리고 우주를 잡아 돌리는 하나님의 정기다. 그러므로 오직 인간만이 삼신을 받아서 만물 가운데 가장 존귀한 생명이 되었다.
삼신의 원마음, 조물주의 원마음, 나의 본마음, 성性이라는 것은 신神의 뿌리이니. 신神이 하나님의 마음인 성性에 근본을 두고 있다고 해서 이 성性이 신神은 아니요. 우리 몸속에서 기氣가 환히 밝고 밝아서 어둡지 않은 것, 어둠이 다 사라진 것이 진성眞性이라.
우리가 눈을 감으면 아무것도 안 보인다. 그런데 이 어둠이 사라지고 내 몸속의 기氣가 환히 빛나서 어둠이 전혀 없는 것, 이것이 바로 진성(眞性)의 경계라는 말이다. 진성眞性은 하나님의 본래의 밝은 마음, 우리의 원마음자리다. 참마음자리다. 사실 우리가 그것을 닦는 것 아닌가.
우리민족의 고유의 수행법, 태을주(太乙呪) 주문을 읽어서 잡된 생각, 순간순간 바뀌는 생각이 다 없어져 ‘진리 의식’이 확 뚫려 버리면, 마치 막혔던 하수구가 확 뚫리듯 이 우주와 내가 한마음, ‘한 몸이 돼 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내가 우주 천지와 한 몸이 될 때 조물주 삼신의 본래 마음과 조물주의 영원한 생명, 불멸의 명命과 조물주의 정기, 정精을 회복하게 된다.
이러므로 신神은 기氣를 떠날 수 없고, 기氣는 신神을 떠날 수 없나니. 신神은 기氣를 타고 또 기氣 속에는 신神이 있잖은가. 그 기氣를 움직이게 하는 신神의 손길이 있다. 내 몸속에 있는 신神이 기氣와 더불어 하나가 된 후에, 내 몸속에 있는 성性과 명命,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님의 무궁한 생명의 경계를 가히 볼 수가 있다.
내 몸속에 있는 조물주 삼신의 마음인 성性은 삼신의 무궁한 생명命과 떨어질 수가 없고 또한 내 몸속의 영원한 생명은 그 주인 되는 원마음, 신神의 본성을 떠날 수가 없나니. 내 몸속에 있는 삼신의 마음, 본성이 무궁한 삼신의 생명과 합일이 된 연후에, 내 몸속의 아직 신神으로 비롯되지 않은 원래의 본성性과, 기氣로 비롯되지 않은 본래의 영원한 생명의 경계를 볼 수가 있다.
본래 우리 본성은 만물을 환히 비추는 거울이다. 그것이 영靈의 세계다. 배워서 아는 게 아니라 직관으로 깨닫는 것이다. 그 모델이 바로 『도전道典』에 나오는 복남이다.
복남이는 비춰서 그냥 환히 다 알았다. 안내성 성도가 그러지 않는가. 어른이 된 복남의 이름이 운기인데, “백운기는 대허령(大虛靈)이기 때문에 본래 다 안다”고. 그게 영각(靈覺)이다.
성性은 그 본성이 영각靈覺이다. 비춰서 환히 깨닫는 것. 만물을 환히 비추는 신神의 본성으로 비춰서 다 깨닫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천신(天神), 삼신과 더불어 그 신성의 근원을 함께하고. 즉 내 몸속에 있는 본성이 우주 만유를 비춰서 환히 아는 지혜와 조화의 능력은 천신天神과 근원이 같다는 것이다.
삼신의 영원한 생명이 우리 인간의 몸을 통해 현실의 삶으로 나타나는 것은, 바로 저 산천, 대자연과 더불어 그 기氣가 동일하고, 즉 천지와 더불어 내 몸의 기氣가 같다는 말씀이다.
또 내 몸의 정기가 자손을 통해 영원히 지속될 수 있는 것은 창생과 더불어 그 하는 일이 같으니. 바로 천지의 뜻과 목적을 세상 사람들과 더불어 이뤄 나가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집일함삼(執一含三) 회삼귀일(會三歸一), 여기서 ‘일 一 ’은 일기(一氣)로, ‘삼三’은 삼신을 뜻한다. 때로는 ‘일一 ’을 일신(一神)으로 이해해도 된다.
집일執一이 함삼含三, 우리가 하나를 제대로 잡아 이해하고 깨치고 생활화하여 온몸으로 체험하고 깨달으면, 하나一그 자체가 되면, 동시에 함삼含三, 그 하나의 일기一氣를 움직이는 삼신의 조화가 그 속에 다 들어 있다.
그다음 회삼귀일會三歸一, 우리가 삼신의 이치를 제대로 깨치면, 우주를 움직이는 하나의 조화기운으로 돌아간다.
집일(執一)이 함삼(含三)하고 회삼(會三)이 귀일(歸一) 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즉 성명정(性命精)이 그 근원은 하나의 일신(一神)이라는 말이다.
‘정심불변(定心不變)’에서 ‘심心’은 내 몸의 삼신의 본성인 ‘성性’이다. 그러므로 이 마음, 조물주의 본성, 본래의 마음을 확고히 정해서 변치 않는 것을 일러 진아(眞我), 참된 나라고 한다.
다시 말해 몸속의 삼신이 그대로 발현이 되고, 즉 우주의 삼신, 만물을 낳아 길러서 다스리는 조교치(造化,敎化,治化) 삼신의 본래 신성을 그대로 깨쳐서 확고한 마음으로 우주의 진정한 주인이 된 것, 이것을 일러 참된 나라고 한다는 것이다.
20세기 현대사에서 이 진아(眞我)에 대해 제대로 전한 사람이 인도 사람 마흐리쉬다. 물론 거기에 신도神道의 이치는 안 들어 있지만, 마흐리시는 석가모니 못지않게 근본을 깨친 사람이다. 이 진아眞我는 무엇을 공부해서 아는 게 아니다. 무엇을 배워서 깨달아 아는 것이 아니고 한순간에 번개처럼 깨치는 것이다.
성명정性命精의 근본 일신(一神) 자리를 깨치는 것은 그런 것이다. 그걸 상철上哲이라 한다, 상등 철인. 그리고 무엇을 배워서 ‘아, 영원한 목숨, 불멸성이 있구나.’ 하고 머리를 굴려서, 지식을 통해서 좀 깨닫는 것은 중철中哲이다. 또 힘써서 계율을 써 놓고 ‘오늘은 이렇게 해야지, 저렇게 해야지’ 하며 정精을 보존하는 공부 단계는 하철下哲이다.
우리 몸에서 성명정性命精을 보면, 위계질서가 있는 것처럼 제일 위 머릿속에 성性이 있고, 가슴의 중심에서 명命이 작용하고, 그다음 배꼽 아래 하단전에 정精의 작용이 있다. 우리 일상생활에서는 내 몸의 모든 동력動力을 잡아 돌리는 이 정精을 잘 보존하는 것이 근본이다. 그러나 그것은 하철이라는 것이다. 깨달음의 그 위 단계는 영원한 생명, 불멸이 있다는 걸 깨닫는 것, 지명知命이 중철이다. 그리고 이 대우주의 생명의 근원으로서 삼신의 본래 마음자리, 성性을 깨치면[知性] 명命과 정精을 자기가 확고하게 직접 다스릴 줄 안다.
본성을 제대로 한순간에 깨치는 그게 상철이다. 지성知性과 지명知命과 지정知精에서 가장 중요한 게 그 주재 자리인 성性을 바르게 인식하고 체험하는 것이다. 우리 머리의 중심에 있는 성性 자리, 조물주이신 대우주 조화옹의 마음자리, 그 본성을 한순간에 깨치는 것을 불가에서는 돈오頓悟라 한다. 그것은 배워서 잔머리 굴려서 되는 게 아니다. 성숙해서 어느 날 한순간에 홀연히 깨닫는 것이다. 그렇게 완전하게 본성을 깨치는 게 바로 진아(眞我)라는 말이다.
그다음 온갖 신도神의 조화, 신통력으로 변화를 지어내는 게 바로 일신一神의 세계이니, 내 몸속의 삼신인 성명정 性命精 삼진을 완전히 드러낸 진아眞我라는 것은 일신一神이 머무는 궁전이라. 진아 一神 , 참된 나는 조물주 삼신의 궁전, 즉 삼신이 머물러 계시는 집이다. 인간에 대한 정의로 이보다 더 지극한 것이 없다.
바로 이러한 진리의 근원을 깨달아서 삼신의 법, 삼신 원리의 법에 의지하여 수행을 하면, 상서롭고 길조가 충만한 천지 기운이 스스로 이르고 삼신의 영원한 생명의 광명이 항상 비치나니, 이것이 바로 하늘과 인간이 함께 하나가 되는 경계라. 이런 삼신의 진리와 삼신의 구성 원리를 확고히 잡아서 삼신계맹(三神戒盟, 삼신이 내려 주신 성명정 性命精은 우리 인생의 으뜸이 되는 진리의 계명이다), 삼신 하나님께서 내려 주신 진리의 원칙적인 이 기틀에 대한 맹세를 굳건히 지키면 우주의 절대 조화의 일자[一神]에 비로소 능히 돌아갈 수 있게 된다는 말씀이다.
여기서 다시 정리를 한다. 그러므로 성性과 명命과 정精이 기틀이 없음은(여기서 기틀이 없다는 것은 일체의 경계로 하나가 된 것oneness을 뜻한다) 완전히 삼진(三眞)이 원융무애(圓融無礙)하게 하나가 되어 있는 경계, 바로 삼신과 한 몸으로 계시는 상제님의 조화 경계이시니. 대우주 만물과 더불어 조화의 한 몸으로 계신다.
태을주를 읽다 보면 우주의 조화 삼신과 하나 되게 해 주는 기운을 받아서 대우주와 내가 한 몸이 되는 경계를 체험하게 된다. 또한 상제님은 세상 창생들의 마음과 기운과 몸과 더불어 아무 자취 없이 영원히 계신다.
심기신(心氣身)이 다시 더 세밀하게 작용하는 게 감식촉(感息觸)이다. 창생들의 느낌과 호흡과 접촉이 일체인 경계에서 늘 머무시는 분은 환인주조, 즉 삼신 문화를 처음 창세 역사에 드러내신 분으로 인류 시원 문화의 주인이며 인류의 뿌리 조상이시니. 이 지구촌 창세 시대의 인류를 구환족이라 한다.
환웅천황 때는 구황족이라 했고, 조선(단군조선)에 가서는 구이九夷, 또는 구려九黎라고 했다. 환인천제는 지구촌 세계만방과 더불어 치우침이 없이 베푸시면서 한결같이 함께 기뻐하시며 하늘 땅, 인간과 더불어 함이 없이 스스로 조화를 누리신다. 진리의 틀이 이렇게 되어 있는 고로, 신교문화의 근원적 가르침을 바로 세우려고 하는 자는 오직 먼저 나를 세워야 한다.
무엇으로 나를 세우는가? 신교의 진리로 세워야 한다는 말씀이다. 성명정(性命精) 심기신(心氣身) 감식촉(感息觸) , 우리 몸속의 삼신의 삼단 작용, 아홉 개의 진리 개념에 대해 뚫어지게 꿰야 한다는 말이다. 우주의 삼신의 이치로써 내 몸속의 삼진(三眞), 구체적으로 아홉 개의 진리 개념을 관통해야 한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먼저 삼신의 이치로 자아를 확고히 세우고 형체를 뜯어고치려고 하는 자는 먼저 무형인 내 몸속의 삼신의 이치, 性命精 삼진三眞을 바로 세워야 하니 이것이 바로 나를 알고 내가 우주의 진정한 주인으로 홀로 섬을 구하는 유일한 방도이다.
오호 슬프도다. 부여의 도道인 신교(神敎)의 도道가 없어진 연후에 한인(漢人)들이 부여에 쳐들어왔으며. 한나라 무제가 옛 환국, 배달, 조선(단군조선)의 땅을 다 삼켜버리려고 부여를 침략하지 않았는가.
고려에, 원래 있었던 신교神敎의 도가 없어진 연후에 몽고가 고려에 쳐들어왔거니와. 만일 그때에 앞서서, 즉 본래 우리의 도道, 신교神敎가 살아 있어서 이를 제압을 하여, 만일 부여에 동방 문화의 종주로서 그 혼과 기백, 문화의 원형이 그대로 다 있었다면,
백성들이 삼신상제님의 진리 군사로 무장되어 있었을 것 아닌가. 그러면 한인漢人들이 ‘도저히 상대가 안 되는구나.’ 하고 자기네 한漢나라로 돌아갔을 것이요. 고려에 고려의 도道가 그대로 있었다면 몽고는 제 나라로 그냥 돌아갔을 것이다.
여기서 ‘고려지도(高麗之道)’를 단순하게 고려의 도道라고 해석하면 원전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고려지도高麗之道는 바로 신교(神敎)다. 부여의 도道, 조선의 도道, 대한민국의 도道도 신교神敎다. 앞으로 후천, 가을우주가 되어서 상제님 세상이 와도 상제님의 원가르침인 신교神敎가 있을 뿐이다.
아, 슬프도다. 도道와 기氣가 다 죽어 있고 형形과 혼魂이 다 전멸된 때를 맞이했구나. 신교문화가 완전히 다 왜곡 말살 조작이 되고, 지금의 유·불·선, 기독교가 들어왔다는 말이다.
사실 지금의 유·불·선, 기독교도 내내 신교神敎의 원형 삼도(三道)로부터 나온 것이다. 원형 삼도 三道 란 무엇인가? 삼신이 자기를 드러낸 것이 하늘과 땅과 인간이다. 삼신 가운데 하늘은 조화신을 주장하고 땅은 어머니로서 낳아서 기르는 교화신을 주장한다. 인간은 천지의 주인으로서 만물을 다스리는 치화신을 주장한다. 삼신이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로 드러났다.
살아 있는 삼신인 하늘, 땅, 인간은 각기 크게 삼신의 한 가지 속성을 주장한다. 조화신, 교화신, 치화신의 뜻을 천지인 속에서 구현한다. 그리고 인간이 이 삼신의 도道를 문명 속에서 닦는 각기 다른 전공 분야가 있는데 그게 원형 삼도로서, 유불선의 원형이다.
하늘의 도道, 천도(天道)의 조화를 주장하는 것을 전도佺道라 한다. 인亻 변 옆에 온전 전全 자, 전도佺道 . 그다음 어머니의 도道, 삼신의 교화의 도道를 전공을 하는 것이 선도仙道다.
그다음 삼신 가운데 치화의 신, 인도人道를 주장하는 게 바로 종도倧道다. 인人 변 옆에 마루 종宗 자. 이 천도(天道)의 조화신을 근거로 해서 나온 전도佺道를 계승한 것이 불(佛)도이고,
교화신을 주장하는 지도(地道)를 근거로 해서 선도(仙道)가 계승이 되었고, 인도(人道)의 치화신을 근거로 해서 나온 종도倧道를 계승한 것이 바로 유儒도다. 즉 삼신의 삼재지도(三才之道), 천지인에서 원형 삼도(三道)인 전도佺道 ·선도仙道 ·종도倧道 가 나오고 이것을 계승한 것이 바로 불도·선도·유도다.
그 원형 삼도 가운데 종도倧道가 살아 있고, 선도仙道는 지속이 돼서 지금까지 그 이름이 남아 있는데 전도佺道만이 깨진 것이다. 원형 삼도에서 삼신의 조화의 도道, 전도佺道가 깨지면서 역사의 뿌리가 완전히 파괴되어 버렸다. 이것을 회복한 것이 「단군세기」와 「태백일사」다. 특히 「태백일사」 여덟 편에 전도佺道에 대한 내용이 많이 나온다.
『환단고기』 강독을 제대로, 많이 들은 사람은 기운을 받아서, 집일함삼(執一含三)만 듣고도 일 一 자, 하나를 잡을 줄 알아야 한다.
대우주를 움직이는 대우주 조화의 근원, 이 일 一 자를 잡아야 일상제(一上帝)를 바르게 잡을 수 있다. 집일 執一 공부를 해야 동시에 그 속에서 함삼含三, 이 우주의 지극한 조화 세계, 일기一氣를 타고 노시면서 우주를 창조하고 만물을 낳아 기르는 조물주 삼신의 손길이 인식된다. 그러면 삼신이 우리 몸에 들어와 우리 몸의 살아 있는 삼신, 성명정性命精이 발동이 되어 죽을병이 들어도 벌떡 일어나는 것이다.
상제님이 뭐라고 말씀하시냐면 “나는 손이 한 마디만 있어도 일어나고 머리카락 하나만 있어도 거기 붙어서 나오느니라.”(道典 10:16:3)라고 하셨다. 그게 선仙이다, 불멸의 선仙. 소우주 인간은 대우주의 일一자, 불멸의 생명과 코드가 연결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단군세기 서문]
나라를 위하는 길에는 선비의 기개보다 앞서는 것이 없고,
사학을 밝히는 것보다 더 급한 것이 없음은 무엇 때문인가?
사학이 분명하지 않으면 선비의 기개를 진작시킬 수 없고,
선비의 기개가 진작되지 못하면 국가의 근본이 흔들리고 정치의 법도가 갈라지기 때문이다.
대개 역사학의 정법이 폄하할 것은 폄하하고 기릴 것은 칭찬해서
인물을 저울질하여 평가하고 시대상을 논하여 진단하는 것이니 만세의 표준이 아닌 것이 없다.
우리 백성의 삶은 참으로 유구하다. 새 세상을 열고 질서와 법도를 세운 내용 또한 분명히 밝혀져 있어서,
나라는 역사와 함께 존재하고 사람은 정치와 함께 거론되니
나라와 역사와 사람과 정치[國史人政] 이 네 가지는 모두 우리 자신이 우선시하고 소중히 여겨야 할 바로다.
아아! 정치는 그릇과 같고 사람은 도道와 같으니, 그릇이 도를 떠나서 어찌 존재할 수 있으며,
나라는 형체와 같고 역사는 혼과 같으니 형체가 그 혼을 잃고서 어찌 보존될 수 있겠는가.
도와 그릇을 함께 닦는 자도 나요, 형체와 혼을 함께 키워 나가는 자도 나[我]다.
그러므로 천하만사는 무엇보다 먼저 나를 아는[知我] 데 있다.
그런즉 나를 알려고 할진대 무엇부터 시작해야 하겠는가?
대저 삼신일체(삼신과 하나됨)의 도는 ‘무한히 크게 하나 되는 정신[大圓一]에 있으니,
조화신造化神이 내려 나의 성품[性]이 되고,
교화신敎化神이 내려 나의 목숨[命]이 되며,
치화신治化神이 내려 나의 정기[精]가 된다.
그러므로 오직 사람이 만물 가운데 가장 고귀하고 존엄한 존재가 된다.
대저 성性이란 인간의 신神이 생겨나고 자리를 잡는 근거와 바탕이다.
신神이 성性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성性이 곧 신神인 것은 아니다.
기氣가 환히 빛나 어둡지 않은 것이 곧 참된 성품[性]이다.
그러므로 신神은 기氣를 떠날 수 없고, 기氣 또한 신神을 떠날 수 없으니,
내 몸 속의 신神이 그 밝은 기氣와 결합된 후에야 내 몸 속의 본래 성품과 본래 목숨을 볼 수 있다.
성품[性]은 저마다 타고난 목숨[命]과 분리될 수 없고, 목숨[命]도 성품[性]과 분리될 수 없다.
그러므로 내 몸에 깃든 성품[性]이 본래의 참된 목숨[命]과 결합된 뒤라야,
내 몸속에서 신화神化하기 이전의 본래 성품[性]과 내 몸에서 기화氣化하기 이전의 본래 목숨[命]의 조화 경계를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인간의 본성[性]에 담긴 신령스러운 지각은 하늘의 신[天神]과 그 근원을 같이 하고,
인간의 본래 목숨[命]이 생명으로 발현됨은 자연의 산천[山川]과 그 기氣를 같이 하고,
인간의 정기[情]가 자손에게 이어져 영원히 지속함은 창생[蒼生]과 천지의 이상세계를 이루어 가는 과업을 함께 함이다.
이에 하나[一氣]속에는 셋[三神]이 깃들어 있고, 셋은 하나의 근원으로 돌아가는 원리가 그것이다.
그러므로 (무궁한 일신의 조화에 머무는) 한마음(一心)으로 안정되어 변치않는 것을 진아(참을 실현한 나)라 하고,
신통력으로 온갖 변화를 짓는 것을 일신(一神, 하나님)이라 하니,
진아眞我는 우주의 일신一神이 거처하는 궁전이다.
이 참됨의 근원[眞原]을 알고 그 법에 의지해 닦고 행하면,
상서로운 기운이 저절로 이르고 신(三神)의 광명이 항상 비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사람이 하늘과 하나 되고자 할 때,
진실로 삼신의 계율을 굳게 지킬 것을 맹세함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능히 이 '하나됨의 경지'에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성품과 목숨과 정기가 혼연일체의 경계에 계신 분은 '삼신과 한 몸이신 상제님'이시다.
상제님은 천지 만물과 혼연히 한 몸이 되시며,
마음과 기운과 몸으로 아무런 자취를 남기지 않으시나 영원히 존재하신다.
그리고 느낌과 호흡과 촉감이 혼연일체의 경지에 계신 분이 인류의 시조인 환인주조님이다.
환인주조님은 세계만방에 한결같이 덕화를 베풀고 즐거움을 함께 누리시며,
하늘 땅 인간 삼계와 더불어, 함이 없이 저절로 조화를 이루신다.
이러하므로 가르침을 세우려는 자는 반드시 먼저 자아를 확립해야 하고,
자신의 형체를 바꾸려는 자는 반드시 무형의 정신을 뜯어고쳐야 하나니,
이것이 바로 '나를 알아 자립을 구하는 유일한 방도'인 것이다.
아, 슬퍼구나! 부여에 부여의 도가 없어진 후에 한나라 사람이 부여에 쳐들어 왔고,
고려에 고려의 도가 없어진 후에 몽골이 고려에 쳐들어왔다.
만약 그 당시에 미리 제정되어, 부여에 부여의 도가 있었다면 한나라 사람은 한나라로 쫓겨가고,
고려에 고려의 도가 있었다면 몽골인은 몽골로 쫓겨 갔을 것이다.
아, 통탄스럽도다!
과거에 오잠 吳潛과 류청신柳淸臣같은 간신배가 떠들어 댄 사악한 말이 은밀히 백귀와 더불어 야행하여
고구려의 역신인 남생과 발기의 역심과 상응하여 합세하였는데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들이 도와 그릇이 함께 없어지고 형체와 혼이 다 사라지는 때에
어찌하여 자신만 편안코자 한단 말인가!
금일에 외인(몽골인)이 정사를 간섭함이 갈수록 심하여 왕위에서 물러나고 다시 오름을 저희들 멋대로 조종하되,
우리 대신들이 한갓 속수무책인 것은 무슨 까닭인가?
나라에 역사가 없고, 형체가 혼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로다.
대신 한 사람의 능력으로 나라를 구할 수 있다고 말할 수는 없으나,
온 나라 사람이 나라 구하기를 스스로 기약하고 나라를 구하는데 무엇이 유익한 것인지 찾아낸 연후에
비로소 구국을 말할 수 있으리라.
그렇다면 나라를 구한는 길은 어디에 있는가.
앞에서 말한 바, '나라에 역사가 있고, 형체에 혼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신시에 나라를 연 이후로 국통이 있어,
나라는 이 국통으로 인하여 세워지고, 백성은 이 국통으로 인해 흥하였나니,
역사를 배움이 어찌 소중하지 않으리오?
이 글을 써서 기쁜 마음으로 <단군세기>의 서문으로 삼는다.
공민왕12년(서기1363)계묘 10월 3일에, 홍행촌수가 강화도의 해운당에서 쓰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