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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 | 합심 기도의 위력 말씀/ 마태복음 18:15-35 요절/ 마태복음 18:19 | 2026. 9. 27 | |
| 마태복음 제 24 강 |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받았습니다. 서로 사랑하는 데 걸림이 되는 것은 죄 문제입니다. 죄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교회가 하나 될 수 없고 잃어버린 한 영혼을 살릴 수 없습니다.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가장 힘써야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합심 기도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합심 기도의 위력을 배우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랑의 공동체를 만들어 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잃어버린 한 영혼을 포기하지 않는 좋은 목자가 되도록 잃은 양의 비유를 들려 주셨습니다. 그리고 15절부터 교회에서 일어나는 죄 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제시하신 메누얼은 네 단계입니다.
첫 번째 단계는 죄를 범한 사람과 일대일로 대면하는 것입니다. 15절을 보십시오.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여기서 형제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신앙생활을 함께 하는 형제가 나에게 죄를 지을 때 방치하게 되면 서로 간에 관계성이 나빠질 뿐 아니라 교회 공동체에도 나쁜 영향력을 끼치게 됩니다. 그러므로 피해를 입은 사람은 나에게 잘못을 범한 형제를 대면하여 겸손과 사랑의 마음으로 권고해야 합니다.
그 형제가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고 회개한다면 그 형제를 얻게 되고 그것으로 문제는 해결됩니다. 일대일 대면을 통해 죄 문제가 해결된다면 그 형제의 허물에 대해 다른 사람들에게 말할 필요도 없고,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이루는 데 걸림이 되지 않을 겁니다.
두 번째 단계는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함께 돕는 것입니다. 당사자끼리 대면하여 권고했는데도 듣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하라고 하십니까? 한 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게 하여 그의 죄를 드러내어 회개에 이르도록 도와야 합니다. 이때 증인의 역할을 하는 사람은 그 가해자의 문제를 잘 알고 도와줄 수 있는 성숙한 사람이어야 할 것입니다. 한 사람이 말할 때보다 두세 증인이 그의 죄 문제에 대해 함께 말할 때 그는 자기의 죄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돌이킬 수 있습니다.
세 번째 단계는 교회에 말하여 그의 죄 문제를 공개적으로 다루는 것입니다. 만일 증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해야 합니다. 교회에 말한다는 것은 교회 지도자에게 말하는 것이며 전체 교인들에게 알려서 이 문제를 다루는 것입니다. 공동체 차원에서 죄 문제를 다룰 때도 문제를 일으킨 그 한 사람을 살리고자 하는 마음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뜻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한 진통이 있지만 죄 문제를 분명하게 다루어야 하는 것은 교회를 보호하고 사랑의 공동체로 세워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단계는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는 것입니다. 교회에 나쁜 영향을 끼친 그 사람이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수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는 것은 이제부터 형제로 여기지 말고 불신자로 여기라는 것입니다. 이는 교제를 끊는 것이며, 예배에도 나오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교회가 취할 수 있는 가장 큰 징계인 출교에 해당됩니다. 하지만 이 출교 조치마저도 그 사람을 망하게 하는 데 있지 않고, 세상 훈련을 통해 자기의 죄를 깨닫고 돌이키도록 하는 데 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권한을 부여받았습니까? 18절을 보십시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이는 베드로가 신앙고백을 할 때 예수님께서 그에게 천국 열쇠를 주시며 말씀하신 것과 똑같은 말씀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일을 대행하는 기관이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치리권을 행사하면 하나님께서 그대로 이루어 주십니다.
교인들에게 상처 주고 교회 지도자의 말도 듣지 않는 사람에 대해서 교회가 치리권을 행사할 때 하나님께서 그대로 이루어주심으로 교회의 권위를 세워 주십니다. 또한 징계를 통해 한 영혼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되면 교회는 그 사람을 받아들일 수 있으며, 이것을 하님께서 크게 기뻐하십니다.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죄 문제를 해결하고 사랑의 공동체를 만들고자 할 때 우리가 가장 힘써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19절을 보십시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여기서 두 사람은 앞에서 언급한 가해자와 피해자 두 사람일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가정을 이루고 있는 남편와 아내일 수 있습니다. 요회의 멤버일 수 있고, 팀원일 수도 있고, 중요한 직책을 맡은 리더들일 수 있고, 기도의 동역자들일 수 있습니다. 혼자 하는 기도도 능력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죄악이 가득한 소돔과 고모라를 위해 끈질기게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 도시들을 심판하는 가운데서도 아브라함의 조카 롯을 구원하여 주셨습니다(창19:29).
하나님은 한 사람의 기도도 들으시지만 두 사람 이상이 합심하여 드리는 기도를 기뻐하시고 응답해 주십니다. 예수님의 제자들과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백이십 명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썼을 때 오순절 날 성령이 강력하게 그들 위에 임하였고 복음전파와 구원역사가 활발하게 일어났습니다(행1:13,14; 2장).
합심 기도가 왜 위력이 있습니까? 예수님의 말씀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두세 사람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인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그 모임에 주님께서 그들과 함께 거하십니다. 그러므로 두세 사람이 그리스도의 이름을 의지하여 합심하여 기도할 때 주님께서 그 기도제목을 하늘의 아버지께 올려 드리는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십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실 때는 예수님께서 직접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를 올리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승천하신 이후에는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하셨던 기도를 이어받아 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기도의 집이 되어야 하며, 다른 어떤 활동보다도 기도에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도 많은 갈등과 문제가 있습니다. 기도 없이 세상 방식으로 갈등과 문제를 해결하고자 할 때 서로에게 상처를 줄 수 있고 교회 공동체성을 약화시킬 수 있습니다. 목회자와 평신도들 간에, 학사들과 학생들 간에, 요회원들과 팀원들 간에 하나 되는 모임, 사랑의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 모일 때마다 그리고 가정에서 합심 기도에 힘써야 겠습니다. 많은 기도를 통해 잃은 한 영혼을 어찌하든지 살리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긍휼과 하나님의 열심을 가슴에 품고 캠퍼스에 올라가고 일대일 성경공부와 제자 양성에 도전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죄 범한 한 영혼을 어찌하든지 살리고자 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에 감동되어 베드로는 예수님께 나아와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당시 랍비들은 형제가 죄를 범할 때 세 번까지 용서하라고 가르쳤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제자라면 일곱 번까지 용서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런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한계를 정해두지 말고 무한정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왜 그렇게 용서를 해야 하는지 천국 비유를 통해 설명해 주셨습니다.
천국은 그 종들과 결산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습니다. 결산할 때에 그 신하들의 경영 상태를 결산하였는데 왕은 한 신하에게 엄청난 채무가 있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그의 빚은 만 달란트로서 오늘날 돈으로 계산해 보면 7조에 해당되는 거액이었습니다. 그가 어떻게 이런 빚을 지게 되었는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그는 그 많은 빚을 갚을 만한 재산이 없었습니다. 그의 주인인 왕은 그에게 그 몸과 아내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으라고 명하였습니다. 그 종은 엎드려 절하며 간구했습니다.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 참아달라는 것은 시간을 달라는 것입니다. 자기 몸을 팔고 아내와 자식들을 다 팔아도 갚을 수 없는 빚이었습니다. 그 빚은 죽을 때까지 일을 해도 갚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주인은 그의 종이 자기 소유와 가족들을 다 팔아도 갚을 수 없고, 10년 20년 30년 기간을 연장해 주어도 갚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그를 불쌍히 여겼습니다. 주인은 긍휼의 마음으로 그를 옥에 가두지 않고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습니다. 탕감했다는 것은 빚을 없애 주었다는 뜻입니다. 세상 왕들 중에 이런 왕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 많은 빚을 단 번에 없애주다니 참으로 크고 놀라운 은혜입니다. 그는 이제 자유의 몸이 되었고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는 주인에게 받은 은혜를 잊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요 그 은혜를 감당하는 삶을 살아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그 종은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 한 사람을 만나 어떻게 대하였습니까? 그는 그 동료를 붙들고 그 목을 잡고 인상 쓰며 말했습니다. “빚을 갚으라. 당장 갚아, 안 갚으면 감옥 가게 할거야.” 그러자 그 동료는 엎드려 간구했습니다. “나에게 참아주소서 갚으리이다.” 그 동료는 채무 기간을 연장해 주면 갚겠다며 채권자에게 긍휼을 구했습니다. 백 데나리온의 빚은 노동자의 백일치 임금으로 적은 돈은 아니지만 만 달란트 빚에 비하면 아주 적은 것입니다. 백일만 연장해 준다면 충분히 갚을 수 있는 빚입니다. 그런데도 만 달란트 탕감 받은 사람은 그 동료의 간곡한 요청을 허락하지 아니하고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두고 말았습니다.
그 동료들이 그것을 보고 몹시 딱하게 여겨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다 알렸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탕감 받은 그를 불러다가 그가 얼마나 배은망덕한 자인가를 말하였습니다.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주인은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그를 옥족들에게 넘겼습니다.
이 비유를 마치시며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형제를 용서하지 않는 것은 어떤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는지 말씀하셨습니다. 35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우리가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하나님과의 관계에 문제가 생깁니다. 기도의 문이 막히게 되고 나의 죄를 용서받을 수 없게 됩니다. 우리는 만 달란트 빚을 하나님으로부터 탕감 받은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나의 모든 것을 드려도 갚을 수 없는 은혜입니다. 주님은 내가 주님께 탕감 받은 은혜를 마음에 간직할 뿐 아니라 그 은혜를 감당하는 마음으로 형제들에게 용서의 은혜를 베풀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마6:12) 예수님은 우리에게 형제를 용서할 때 마음으로부터 용서하라고 하셨습니다. 입으로 용서한다고 말하면서 마음에는 미움을 품고 있다면 그것은 진정한 용서가 아닙니다.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할 때 그 용서는 위력이 있고, 하나님께서 나의 죄도 용서해 주십니다.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기 위해서는 만 달란트 탕감 받은 주님의 은혜가 내 마음 깊은 곳에 흐르고 있어야 합니다.
나에게 상처 준 사람을 용서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용서하려고 해도 마음에는 여전히 미움이 남아 있고 상처가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나의 미움과 상처를 담당하시고 나를 용서하시고 천국 백성이요 새사람으로 빚어 주셨습니다. 이는 평생 갚을 수 없 큰 은혜입니다. 형제가 나에게 준 상처는 백 데나리온과 같이 적은 것입니다. 나를 용서해 주신 주님의 은혜가 충만할 때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할 수 있습니다. 형제를 용서할 때 기도가 뚫리고 하나님으로부터 나의 죄를 용서받고 말씀의 능력을 덧입을 수 있습니다. 형제를 용서할 때 사랑의 공동체가 견고해지고, 잃어버린 영혼들을 살리는 역사가 힘 있게 일어나게 됩니다.
여러 문제 앞에서 가장 힘써야 할 것은 두세 사람이 모여 하나님께 올리는 합심 기도입니다. 우리가 초대 교회 성도들을 본받아 모일 때마다 교회에서 그리고 캠퍼스와 삶의 현장에서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번 가을학기에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고 섬기는 종의 삶을 살아감으로써 예수님의 사랑을 배우고 더욱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