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뭄/ 유주연
햇볕이 산등 뒤로 넘어가고 있었다 새들은 마른 낙엽 밑으로 고개를 집어넣고 있었다
항아리는 토방처럼 말라가고 있었다
마른 목소리로 누군가를 부르는 사람의 가슴도 조각나고 있었다
대답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새는 그들의 마른 처소에서 울고 사람은 제단 아래에서 멍해지고 있었다
텁텁한 입과 길어진 머리 안팎으로 미처 울음이 되지 못한 슬픔들이 무음으로 울고 있었다
빛은 점점 옅어졌고 대지는 뜨거워졌으나 흙은 짙어지고 퍼즐처럼 갈라졌으나 몸들은 결코 따뜻해지지 않았다
영혼들은 스스로 자기를 먹으며 버텼다
때로 단지 마른 고기와 치즈가 그려진 금빛 액자틀 아래에서 두 손을 모아 기도하듯 없는 목소리로 벙어리처럼 호소하고 있었다
햇볕이 산등 뒤로 또 다시 넘어가고 있었다 언제나 완전히 넘어가지 않고 넘어가고만 있었다
가뭄이었다
가뭄이었고
가뭄이었다
새들의 눈물이 낙엽을 적시고 있었다
사람의 모은 손이 신앙을 넘어가고 있었다
결정적 형태가 주어지지 않았다
가뭄이 깊어지고 피가 굳어가고 식량이 가루가 되어가고 있었다
-2026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2026 신춘문예 당선시집』
<가믐에 대한 소감>
첫 연에서 “항아리는 토방처럼 말라가고 있었다” 항아리는 물을 담는 그릇이다. 항아리는 생명의 상징이기도 하고 거대한 유기체로서 지구를 상징하기도 한다. 항아리가 말라가고 있다는 것은 인간뿐 아니라 “새들은 마른 낙엽 밑으로 고개를 집어 넣었다”는 자연 생태계로서 거대한 지구의 황폐와 생명의 소멸 상태를 의미한다.
둘째 연에서 “마른 목소리로 누군가를 부르는 사람의 가슴도 조각나고 있었다” 마른 목소리로 청원한 자와 청원의 대상이 언급된다, 마른 목소리로 누군가를 부르는 사람의 가슴도 조각나고 있었다. 기후 생태적인 외적인 가믐으로 인한 식량부족 상태를 유발하기도 하지만 화자가 갈구하는 종교적인 내적인 갈망이 가믐 상태로 더 심각하게 다가온다.
다섯째 연에서 “영혼들은 스스로 자기를 먹으며 버텼다” 신으로부터 아무런 응답도 듣지 못한 상태에서 스스로를 갉아먹으며 버틴다. 계속해서 “때로 단지 마른 고기와 치즈가 그려진 금빛 액자틀 아래에서 두 손을 모아 기도하듯 없는 목소리로 벙어리처럼 호소하고 있었다” 풍요를 상징하는 예술 작품만의 표현과 대비되는 결핍 속에서 비를 기다리는 기우제처럼 신의 응답을 기다리고 있다. 기도를 들어줄 신은 어디 있는가? 어디 있기나 하는 건가? 신의 존재는 불분명하다. 신의 부재와 현존은 슈뢰딩거의 상자 안에 있는 양자의 파동처럼 요동친다, 신의 존재유무는 불확정적이다. 불확정적인 상태에서 시인의 간청은 이어진다.
여덟째 연에서 “사람의 모은 손이 신앙을 넘어가고 있었다” 햇볕이 산등 뒤로 넘어가듯 고통의 절정에서 결국 신앙도 파산에 이르러 믿음 자체도 말라가고 있는 상태이다. 신과의 관계 단절을 성찰하게 된다.
결국 “결정적 형태가 주어지지 않았다” 조각난 믿음 앞에서 신의 응답은 없고 신의 부재는 드러난다, 상황은 형태가 균열이 생기는 불안과 황폐성에 직면한다. “가뭄이 깊어지고 피가 굳어가고 식량이 가루가 되어가고 있었다”고 결론을 내린다. 가믐으로 인해 생명이 소멸되어가고, 믿음은 가루가 되어가듯 식량도 가루가 되어가고 있었다. 생존의 기반이 붕괴되는 현실이다. “되어가고 있었다”는 표현은 과거에서 현재로 진행형이다. 기후 위기의 시대에 인간의 생존과 영적인 황폐성을 상징한다.
- 감상자 이구한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