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식언(食言)
한번 입 밖에 낸 말을 도로 입 속에 넣는다는 뜻으로, 약속한 말대로 지키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이다.
食 : 먹을 식(食/0)
言 : 말씀 언(言/0)
(유의어)
부약(負約)
위약(違約)
위언(僞言)
(상대어)
이목지신(移木之信)
(출전)
서경(書經) 탕서(湯書)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의 애공(哀公) 25년조
한번 입 밖으로 냈던 말을 다시 입속에 넣는다는 뜻으로, 앞서 한 말을 번복하거나 약속을 지키지 않고 거짓말을 하는 경우를 가리키는 말이다.
식(食)은 ‘먹다’는 뜻이고, 언(言)은 ‘말’이다. 즉, 이 말은 음식이 입 안에서 없어지는 것처럼 한번 한 말을 지키지 못함을 이른다.말이란 일단 입 밖에 나오면 도로 담아 넣을 수 없다.
실행한다는 행(行)은 걸어간다는 뜻이다. 자기가 한 말을 그대로 밝고 걸어가는 것이 실천이요, 실행이다. 그런데 밟고 걸어가야 할 말을 다시 먹어버렸으니 실천과 실행이 있을 수 없게 된다.
서경(書經)의 탕서(湯書)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은(殷)나라 탕왕(湯王)이 하(夏)나라 걸왕(桀王)의 폭정을 보다 못해 군사를 일으켜 정벌하기로 했다. 그는 영지인 박 땅에서 백성들을 모아 놓고 말했다. '그대들은 나 한 사람을 도와 하늘의 벌을 이루도록 하라. 공을 세운 자에게는 큰 상을 내릴 것이니라.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朕不食言).'
자신이 한 말을 번복하지 않고 약속을 지킨다는 뜻으로 한 말이다.
王曰格, 爾衆庶. 悉聽朕言. 非台小子 敢行稱亂. 有夏多罪 天命殛之.
왕이 이르시되 오너라, 너희 중서(衆庶)야. 모두 내 말을 들어라. 나는 나라에 소동을 일으키기 위하여 군사를 낸 것은 아니다. 하왕(夏王)은 죄가 많아 하늘이 명하여 이를 베는 것이다.
今爾有衆, 汝曰我后, 不恤我衆, 舍我穡事, 而割正夏, 予惟聞汝衆言, 夏氏有罪, 予畏上帝, 不敢不正.
이제 사람들의 말을 들으면 걸왕은 백성들을 사랑하지 않고 백성이 수확하는 것을 폐하고, 하(夏)나라를 쳐서 바로 한다 하나니, 내가 너희들의 말을 들어보니 걸왕이 죄가 있는 것이니, 내 상제를 두려워 하니 감히 바로 잡을 지어다.
今汝其曰, 夏罪其如台. 夏王率, 衆力, 率割夏邑, 有衆率怠弗協, 曰時日曷喪, 予及汝皆亡. 夏德若, 今朕必往.
이제 너희들이 말하는 걸왕의 죄를 내가 관계없다고 생각할 자도 있을지 모른다. 걸왕이 거느린 백성들을 끊으며, 군중이 태만하여 복종하지 않으니 언제 망할가 생각하게 이르렀다. 하(夏)나라의 덕이 여기에 이르니 내 이제 그를 치리라.
爾尙輔予一人 致天之罰. 予其大賚汝.
너희 모두 나 한 사람을 도와 하늘의 벌을 이루게 하라. 공을 세운 자에게는 크게 보답해 줄 것이다.
爾無不信. 朕不食言.
너희는 믿지 않는 마음을 갖지마라.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爾不從誓言, 予則, 戮汝, 罔有攸赦.
너희가 맹서하는 말을 따르지 않고 충실하게 싸우지 않으면 내 너희들의 처자식까지 죽여 용서를 두지 않을 것이다.
또 식언(食言)이란 말은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도 몇 군데 나온다. 식언(食言)과 관련하여 식언이비(食言而肥)라는 말이 있는 데, ‘식언으로 살 찌다’라는 뜻이다.
자신이 한 말이나 약속에 대하여 책임을 지지 않고 거짓말이나 흰소리를 늘어 놓는 사람이나 그 행태를 말하는 것으로, 중국 춘추시대 노(魯)나라의 애공(哀公)과 맹무백(孟武伯)과 관련된 고사에서 유래되었으며, 춘추좌씨전의 애공(哀公) 25년조에 실려 있다.
춘추시대 노나라에 애공이 다스릴 때 맹무백이라는 대신이 있었다. 맹무백이 항상 식언을 일삼았으므로 애공은 그를 탐탁치 않게 여겼다.
어느 날, 애공이 연회를 베풀어 여러 신하들을 초대하였는데, 맹무백은 물론 그 연회에는 곽중(郭重)이라는 대신도 참석하였다. 곽중은 체구가 매우 비대한 인물로, 애공의 총애를 받았기 때문에 평소에 맹무백으로 부터 시기를 당하는 처지였다.
맹무백은 그에게 모욕을 줄 생각으로 “그대는 무엇을 먹고 그렇게 살이 찌셨소?”하고 묻게 된다.
그 말을 들은 곽중은 몸들바를 몰라하며 좌불안석이 되었는데, 그 때 애공은 “그대의 식언을 하도 많이 먹으니 살이 찌지 않을 수 있겠소(是食言多矣, 能無肥乎)”라고 곽중을 대신하여 대답하였다고 한다.
지키지도 못 할 말들을 마치 홍수처럼 쏟아내는 맹무백을 빗대어 한 말이었다.
말조심에 대한 교훈이 성현들의 글속에 많이 나타나 있다. 명심보감(明心寶鑑)에 나오는 입을 지키기를 병과 같이 하라는 금언은 입은 재앙과 근심의 문이니, 말조심할 것을 강조한 것이다.
우리 속담에도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도 곱다'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말의 효용성과 상대성을 가르쳐 주는 교훈이다.
조금 오래된 이야기지만 중국의 10대 신문매체인 진완바오에는 전설과 국민성이라는 제목의 베이징대 쿵칭둥(孔慶東) 교수의 글이 실렸는 데, 한국 사람들과 자주 거래하는 사람들에게 제일 골치아픈 일 중의 하나는 그들이 신용을 지키지 않는다는 점이다.
약속에 늦는다든가 약속을 아예 지키지 않는 일은 흔히 있는 일이며, 자기가 금방 한 말도 얼마 안 가서 나 몰라라 하는 식이다.
아침에 한말을 저녁에 바꾸는 등 마음이 수시로 변하여 식언하는 일은 그들에게 있어서 마치 하루 세끼 밥 먹고 잠자는 것과도 같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는 강대국의 틈새에서 생존을 유지하기 위해 잔머리를 굴려야 했던 역사와 관련이 있다고 악평을 했는데, 일고의 가치도 없는 말이긴 하지만 어찌 씁쓰레한 기분을 지울 수 없는 말이다.
식언(食言)하면 생각나는 사람은 고구려(高句麗) 제25대 평원왕(平原王)의 딸인 평강공주(平岡公主)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열전(列傳) 온달조(溫達條)에는 온달에 관한 설화가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온달은 고구려 평강왕 때의 사람으로, 얼굴은 우습게 생겼지만 마음씨는 밝았다는 데, 집이 매우 가난하여 항상 밥을 빌어다 어머니를 봉양하며 떨어진 옷과 해진 신으로 저자 거리를 왕래하니, 사람들이 그를 보고 바보 온달이라 불렀다.
평강왕의 어린 딸이 울기를 잘해 왕은 공주를 곯려 주려고 늘 이렇게 말하였다. '네가 항상 울어서 내 귀를 시끄럽게 하니, 커서 사대부의 아내가 될 수 없겠다. 바보 온달에게나 시집보내야 하겠다'는 놀림속에서 자랐는데 울보 공주는 울 때마다 부왕에게 그런 말을 들었다.
어느덧 공주가 16세가 되자 왕은 상부(上部)의 고씨(高氏)에게 시집 보내려 하자, 공주가 정색을 하고 왕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왕께서 언제나 저더러 바보 온달에게 시집 보내겠다고 하시더니, 어째서 말을 바꾸십니까? 평범한 사람도 식언(食言)하지 않는 법인데, 하물며 지존이신 임금이야 어떻겠습니까? 저는 아바마마의 명을 따르지 못하겠습니다.'
왕은 농담으로 한 말을 곧이 듣고 온달에게 시집을 가겠다는 공주의 말을 듣고 기가 막혔다. 어르기도 하고 겁도 주었지만 공주는 끝까지 고집을 꺾지 않았다. 왕이 벌컥 화를 내자, 공주는 궁궐을 나와 직접 온달을 찾아가 그에게 시집을 갔다.
공주가 가출을 해서까지 굳이 온달에게 시집을 갔던 것은, 얼굴도 본 적 없는 온달이 좋아서라기 보다는 임금은 헛소리, 즉 식언(食言)을 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다행이 온달은 바보가 아니었다. 다만 집안이 가난한데다 눈 먼 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구걸을 다니다 보니 사람들의 놀림거리가 되었을 뿐이었다.
공주의 도움으로 학문과 무예를 익혀 훌륭한 장수가 된 온달은 나라를 위하여 공을 많이 세웠다.
영양왕(嬰陽王) 때 온달은 신라군과 싸우러 나가면서 신라에게 빼앗긴 땅을 되찾지 않고는 죽어도 돌아오지 않겠다고 맹세하였다.
불행히 그는 신라군과 접전을 벌이다 화살을 맞아 길에서 죽었다. 그런데 온달의 시신을 담은 관을 들어 옮기려 하니 관이 꼼짝도 하지 않았다.
빼앗긴 땅을 되찾지 않고는 결코 돌아오지 않겠다는 맹세를 죽어서까지 지키려 하였던 것이다. 그의 관은 공주가 와서 달랜 뒤에야 겨우 옮길 수 있었다.
공주와 온달의 이야기에는 말의 신의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나타나 있다. 공주는 식언(食言)하지 않으려고, 부귀영화를 버리고 바보에게 시집갔다. 온달도 식언(食言)하지 않으려고, 죽은 뒤에 관이 움직이지 않았다.
고구려 사람들은 이런 정신으로 온갖 역경과 시련을 굳세게 헤쳐 나갔다. 말의 무게를 새삼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이다.
한번 뱉은 말은 삼킬 수가 없다. 그런데 자기가 한 말을 다시 꿀꺽 먹어치우는 사람이 있다. 분명히 자기가 말하여 놓고, 내가 언제 그랬냐고 시치미를 뚝 떼거나, 기억나지 않는다며 고개를 갸웃한다.
이런 것을 두고 식언(食言)을 일삼는다고 한다. 말은 밥이 아니지만, 자꾸 먹어 대면 사람이 탐욕스럽게 된다.
실언(失言)이란 말을 실수하거나 실수한 말을 뜻한다. 그런데 말을 실수한 다는 것은 다시금 크게 두 차원으로 나뉜다.
말 그대로 말 뿐많이 아닌 다른 실수와 마찬가지로 잘못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주로 말이라는게 대화의 상대방3이 있고, 말이 어떤 특정한 대상을 염두에 두고 하는 경우에는 그들에게 상처를 입히게 된다.
말의 실수의 가장 큰 예는 주로 취중에 일어난다. 어떤 사람들은 취중진언(醉中眞言)이라고도 하지만, 취기는 없던 용기를 만들어 낸 평소같으면, 자제하던 말을 내뱉게 된다. 욕설도 이에 포함될 것이다.
그러나 말 실수가 아닌 잘못 말하기의 사례도 있다. 예를 들면 어떤 아나운서가 뉴스의 말미에 '이상 뉴스를 마치겠습니다' 라고 말할 걸 ‘쥬스를 마시겠습니다’ 라고 말하는 경우이다.
이는 꿈과 더불어 정신분석학에서 중요시하는 잠재의식, 무의식의 단서이기도 하다. 잘못 말하는 이러한 말 실수는 특정인에게 손해나 상처를 입히기 보다는 웃음을 준다. 일종의 말의 NG인 셈이다.
그러나 식언(食言)은 앞서한 말이나 약속과 다르게 말하는 것으로 거짓말하는 것이다. 말 그대로 말을 먹는 것은 뱉은 말이 없어지는 격이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그래서 식언(食言)을 일삼는 것을 달리 말하면 거짓말을 밥먹듯이 한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근대사회에서 이렇게 말을 잘못할 경우 법에 의해 처벌을 받게 된다. 남을 비방하고 욕하고 없는 말을 지어 퍼트리는 것은 명예훼손으로 처벌받을 수도 있다.
특히 요즘들어 인터넷에서 행해지는 사이버 폭력에 대해서는 실명제의 논란까지 가져오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거짓말은 위증, 사기 등의 죄에 해당한다.
사람들은 일상생활 속에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 수없이 거짓말을 한다. 한 정신과 의사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은 평균 8분에 1번꼴로 거짓말을 한다고 한다.
모든 진실을 하나도 숨김없이 까발리면 세상은 그야말로 원시적 혼돈상태에 빠져들 것이다. 선의의 거짓말이란 말도 그 때문에 생겨났을 터다.
하지만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에게 피해를 안겨주는 이기적 거짓말은 그 사회의 도덕적 타락을 확산시키는 주범이다. 식언(食言)도 그중 하나다.
숱한 민중들이 식언(食言) 한마디에 좌절하고 고통을 당했다. 1950년 6·25전쟁 당시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은 ‘서울을 사수하겠다’고 장담했지만 이틀도 안돼 한강다리를 폭파시킨 뒤 후퇴했다.
61년 5·16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朴正熙) 소장은 민정이양을 공약했으나 식언(食言)으로 판명됐다. 또 71년 대선(大選) 때도 마지막 기회라고 공언했으나 당선후 유신을 선포, 종신집권체제를 갖췄다.
노태우(盧泰愚) 전 대통령은 90년 ‘정계개편은 안하겠다’고 해놓고 침이 마르기도 전에 3당 합당을 했다.
92년 대선 패배후 평범한 시민이 되겠다며 은퇴한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 쌀 한톨이라도 개방하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다고 했던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의 공언도 결국 식언(食言)이 돼버렸다.
정치인, 기업인, 지식인 등 지도층의 식언(食言)이 초래하는 사회의 도덕적 해이,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이 알게 모르게 입는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최근 법원이 한 기업인에게 영입을 약속했다가 취소해 피해를 입힌 모그룹 회장에게 배상책임이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 차제에 식언(食言)을 일삼는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감시는 물론 식언(食言)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의 길도 확대됐으면 한다.
살아가면서 말을 배우는 순간부터 우리는 너무 많은 실수와 거짓말, 그리고 허풍을 말하고 듣는다. 사람 사는 것이 다 그러하다 해도, 하얀 거짓말 따위의 긍정적인 해석이 있다 해도 인간 사회에 던져진 이상 공인으로서는 가급적 해선 안 되는 말이 있다.
별로 어려운 것은 아니지만 이상하게 우리가 살면서 자신도 모르게 내뱉는 말들이 이 안에 들어가 있을 것이다.
평범한 범인은 물론 유명인, 연예인, 정치인을 비롯한 공인, 언론인에서 심지어 교육자까지 말의 잔치 속에서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할 때가 너무 많다. 말하는 입보다 듣는 귀가 많아져야 한다. 입이 하나고 귀가 두 개인 이유다.
실언은 실수로 내뱉는 말이다. 자신도 실언인 것을 알고 남도 말하는 이가 의도했다기보다 실수했다고 인정하여 바로 용서를 구하면 없는 일처럼 넘어가는 말이다.
하지만 범인의 실언이라거나 정치인의 실언 등 누군가 집중하여 듣는 이가 있다면 말 실수 한마디가 일파만파로 번질 수 있다. 그래서 공인일수록 말을 자제하고 격조를 갖춰야 하며 공식적인 발언을 연습해야 한다.
허언은 빈말이나 거짓말이다. 그 수준이 높지는 않다. 지탄받기보다 어쩌다보니 잘못 말하고 수습할 수 없는 지경에 갈지언정 허언 정도라면 빨리 제자리를 찾을 수 있다.
하지만 허언이었음을 인정하지 않고 허언을 위한 거짓말을 만들다보면 어리석게도 서로 앞뒤가 맞지 않는 큰 거짓말로 이어지기도 한다.
허언은 다분히 가벼운 마음으로 사정과 상황에 따라 급하게 나오는 말이므로 말을 아끼고 당황할수록 침묵을 지킨다면 허언을 막을 수 있다.
공언(空言)은 허언(虛言)보다 좀더 나아간 거짓말이다. 공개적으로 말한다는 뜻의 공언과는 다른 말이긴 하지만 조금은 공식적인 의미도 담고 있다.
말 내용이 허무하고 허황되어 실행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다고 우기는 것도 공언이다. 빈말, 헛소리보다는 좀더 확신에 찬 말이지만 어차피 말하는 이 스스로도 자신의 말을 믿지 않는다.
따라서 남에게 믿음을 줄 수 없는 말이다. 허풍이나 과도한 자신감이 여기에 속한다. 따라서 함부로 자신의 능력이나 상황을 지나치게 낙관하지 않는다면 공언을 피할 수 있다.
식언(食言)은 말을 내뱉고 그 말을 주워담는 행위다. 거짓말의 의도를 담았다는 것보다는 자신의 말을 지키지 않고 거두거나 다른 말로 바꾸는 경우를 말한다.
따라서 처음에는 대중이나 상대방에게 약속했던 것도 아니라고 말하고 상대방이 믿고 있는 구체적인 사실이 아닌 엉뚱한 해답이 정답이라고 우기는 경우다.
또한 자신의 것을 내놓는다고 해놓고 나중에 기억나지 않는다는 등의 변명으로 일관하며 자신과 남 사이의 약속을 헌신짝 처럼 버리는 상황이다.
약속은 반드시 지킬 수 있는 것만 해야 하고 나중에 지키지 못하게 되었을 때는 반드시 사과와 함께 이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를 명시적으로 말해주는 것이 그나마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지 않는 길이다.
망언(妄言)은 확신범에게서 들을 수 있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자신의 신념에 대한 이야기이며 자신의 확고한 생각과 의지에 의한 말이기 때문에 거짓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다.
더구나 자신의 세계에서는 이러한 망언은 용기있는 발언이라며 추켜세우는 명언이 되는 경우도 있다. 일반적인 정서로 따질 문제는 아니다. 상대방에 의해 일방적으로 망언이라고 규정 지어지기 때문이다.
정서와 상식의 문제라는 점에서 망언은 늘 반복되고 망언을 하는 사람의 신념에서 비롯되는 것이므로 확고하고 고집스럽게 밀어부치는 경향이 있다.
망언을 피하는 길은 딱히 없다. 다만 내쪽 진영이 있다면 상대방 진영이 있는 것이고 또한 중립지대가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반드시 나만 옳지 않으며 구태여 상대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며 자신의 신념을 강조할 필요가 있는지 되돌아 볼 필요는 있다.
마음에 없는 인사치레는 하지 마라
서울 명동 한복판에서 아버지가 느닷없이 물었다. 은행에 다닐 때다. 점심을 먹고 아버지가 담배 피우는 동안 길에서 지나치는 직장 동료들에게 내가 두어 번 한 말이었다. “별일 없지? 언제 밥 한 번 같이 하자구”라는 말을 아버지가 지켜보다 지적했다. 점심시간에 만나는 직장 동료들인데 딱히 할 얘기는 없어 인사치레로 하는 거라고 강변했다. 아버지는 바로 “정신 나간 놈 같으니라고”라며 역정을 냈다.
가까운 다방으로 자리를 옮겨서도 여전히 큰소리로 ‘익은 밥 먹고 선소리한다’라면서 야단쳤다. 아버지는 실없는 말을 하는 언행을 크게 나무랐다. 또 지킬 마음도 없이 약속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아서였다. 상대편도 어차피 약속으로 제 말을 받아들이지는 않는 동료 간의 통상인사법이라고 재차 말씀드렸지만, 아버지는 막무가내였다. “그중에는 네 말을 곧이들은 사람도 있을 수 있고, 지킬 생각도 없는 약속을 하는 가벼운 언행은 상대에 대한 존중이 아니다. 앞으로 상대편이 네가 하는 말을 그 정도로만 여기는 게 더 큰 문제다”라고 질책했다.
아버지는 “지금껏 자라며 아버지와 어머니 둘 중에 누가 너를 더 많이 때렸는지 아느냐? 어머니가 너를 더 많이 때렸다. 그러나 너는 내가 때린 것만 기억날 것이다. 동물은 먹이를 주는 이에겐 적의(敵意)를 품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그래서 시간을 내 식사비즈니스를 하는 건데 그 중요한 일을 가벼이 여기는 것을 아버지는 못마땅해했다. 그때 일러준 고사성어가 ‘식언(食言)’이다. 이미 알고 있었지만, 고사에서 비롯된 건 그날 처음 알았다.
아버지는 식언은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나온다고 했다. 노(魯)나라 애공(哀公)이 월(越)나라에서 돌아올 때 조정 중신 계강자(季康子)와 맹무백(孟武伯)은 왕을 맞으러 멀리까지 달려가 축하연을 열었다. 자신이 없는 동안 둘이 자신을 여러 번 비방하고 헐뜯었다는 걸 알고 있었고 애공이 그 일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둘이 또한 알고 있었다. 술자리가 유쾌할 수 없었다. 평소 식언을 일삼아 탐탁지 않게 여기던 맹무백이 곽중(郭重)에게 살이 많이 쪘다고 하자 애공이 그를 대신해 “그야 말을 많이 먹었으니 살이 찔 수밖에 없지 않겠소[是食言多矣 能無肥乎]?”하고 둘이 자신을 비방한 일을 꼬집었다.
글을 쓰려고 찾아보니 식언은 ‘말을 번복하거나 약속을 지키지 않고 거짓말을 일삼는다’는 뜻이다. 좌씨전보다 앞서 공자(孔子)가 쓴 서경(書經)의 탕서(湯書)에 나온다. 은(殷)나라 탕왕(湯王)이 하(夏)나라 걸왕(桀王)의 폭정을 보다 못해 군사를 일으켜 정벌하기로 했다. 그는 백성을 모아 놓고 “그대들은 나 한 사람을 도와 하늘의 벌을 이루도록 하라. 공을 세운 자에게는 큰 상을 내릴 것이니라.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朕不食言]”라고 했다. 자신이 한 말을 번복하지 않고 약속을 지킨다는 뜻으로 한 말에서 식언은 유래했다.
아버지는 “자신이 한 말이나 약속에 대해 책임지지 않고 거짓말이나 흰소리를 늘어놓는 것은 사람의 도리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특히 아버지는 “자기를 드러내려는 현시성(顯示性) 허언(虛言)은 병이다. 실제로 겪지도 않은 것을 사실로 단정하는 회상착오(回想錯誤)를 가져올 수도 있으므로 다시는 쓰지 말라”고 다짐을 두고서야 말을 끝냈다. 돌이켜보니 그 후 그렇게 한 번도 말하지 않았다. 반드시 약속을 잡았고, 지켰다. 그날 아버지가 말씀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말하는 것이 언뜻 보면 멋있어 보일지 몰라도 상대는 이미 알아차리고 있다. 진정성(眞情性)이 떨어지는 말은 화려하나 힘이 없다. 손주에게도 서둘러 익혀줘야 할 인성이다.
▶️ 食(밥 식/먹을 식, 먹이 사, 사람 이름 이)은 ❶회의문자로 饣(식)은 동자(同字)이다. 사람(人)이 살아가기 위해 좋아하며(良) 즐겨먹는 음식물로 밥을 뜻한다. 사람에게 먹이는 것, 먹을 것, 먹게 하다는 飼(사)였는데 그 뜻에도 食(식)을 썼다. 부수로서는 그 글자가 음식물 먹는데 관계가 있음을 나타낸다. ❷상형문자로 食자는 ‘밥’이나 ‘음식’, ‘먹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食자는 음식을 담는 식기를 그린 것이다. 갑골문에 나온 食자를 보면 음식을 담는 식기와 뚜껑이 함께 그려져 있었다. 食자는 이렇게 음식을 담는 그릇을 그린 것이기 때문에 ‘밥’이나 ‘음식’, ‘먹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食자가 부수로 쓰일 때도 대부분이 ‘음식’이나 먹는 동작과 관련된 뜻을 전달하게 된다. 참고로 食자가 부수로 쓰일 때는 모양이 바뀌어 飠자나 饣자로 표기된다. 그래서 食(식)은 ①밥 ②음식 ③제사 ④벌이 ⑤생활 ⑥생계 ⑦먹다 ⑧먹이다 ⑨현혹케하다 ⑩지우다 그리고 ⓐ먹이, 밥(사) ⓑ기르다(사) ⓒ먹이다(사) ⓓ양육하다(사) ⓔ사람의 이름(이)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음식을 청해 먹은 값으로 치르는 돈을 식대(食代), 부엌에서 쓰는 칼을 식도(食刀), 여러 가지 음식을 먹는 일을 식사(食事), 한 집안에서 같이 살면서 끼니를 함께 먹는 사람을 식구(食口), 음식점이나 식당에서 먹을 음식과 바꾸는 표를 식권(食券), 밥을 먹기 전을 식전(食前), 식사를 마친 뒤를 식후(食後), 음식을 담아 먹는 그릇을 식기(食器), 음식만을 먹는 방 또는 간단한 음식을 파는 집을 식당(食堂), 뜻밖에 놀라 겁을 먹음을 식겁(食怯), 음식에 대하여 싫어하고 좋아하는 성미를 식성(食性), 음식(飮食)을 만드는 재료를 식료(食料), 남의 집에 고용되어 부엌일을 맡아 하는 여자를 식모(食母), 음식(飮食)을 먹고 싶어하는 욕심을 식욕(食慾), 한번 입 밖으로 냈던 말을 다시 입속에 넣는다는 뜻으로 앞서 한 말을 번복하거나 약속을 지키지 않고 거짓말을 하는 경우를 가리키는 말을 식언(食言), 각종 식품을 파는 가게를 식품점(食品店), 음식을 먹은 뒤에 몸이 느른하고 정신이 피곤하며 자꾸 졸음이 오는 증세를 식곤증(食困症), 식량이 떨어져 기운이 다함을 식갈역진(食竭力盡), 식객이 삼천 명이라는 뜻으로 함께 하는 사람이 대단히 많음을 식객삼천(食客三千), 나라의 녹을 받아먹음을 식국지록(食國之祿), 근심 걱정 따위로 음식 맛이 없음을 식불감미(食不甘味), 음식을 잘 차려 먹지 아니함을 식불이미(食不二味), 먹는 것으로 하늘을 삼는다는 뜻으로 사람이 살아가는 데 먹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을 식이위천(食以爲天) 등에 쓰인다.
▶️ 言(말씀 언, 화기애애할 은)은 ❶회의문자로 辛(신)과 口(구)의 합자(合字)이다. 辛(신)은 쥘손이 있는 날붙이의 상형이고, 口(구)는 맹세의 문서의 뜻이다. 불신이 있을 때에는 죄를 받을 것을 전제로 한 맹세로, 삼가 말하다의 뜻을 나타낸다. ❷회의문자로 言자는 ‘말씀’이나 ‘말’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言자의 갑골문을 보면 口(입 구)자 위로 나팔과 같은 모양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을 두고 생황(笙簧)이라고 하는 악기의 일종을 그린 것이라는 설도 있고 나팔을 부는 모습이라는 얘기도 있다. 하지만 단순히 말소리가 퍼져나가는 모습을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 言자는 이렇게 입에서 소리가 퍼져나가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부수로 쓰일 때는 ‘말하다’와 관계된 뜻을 전달하게 된다. 참고로 갑골문에서의 言자는 ‘소리’나 ‘말’이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그래서 금문에서는 이를 구분하기 위해 여기에 획을 하나 그은 音(소리 음)자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言(언, 은)은 ①말씀, 말 ②견해(見解), 의견(意見) ③글 ④언론(言論) ⑤맹세(盟誓)의 말 ⑥호령(號令) ⑦하소연(딱한 사정 따위를 간곡히 호소함) ⑧건의(建議), 계책(計策) ⑨허물, 잘못 ⑩혐극(嫌隙: 서로 꺼리고 싫어하여 생긴 틈) ⑪이에 ⑫요컨대, 다시 말하면 ⑬여쭈다, 묻다 ⑭기재하다, 적어넣다 ⑮소송하다 ⑯이간하다(離間; 헐뜯어 서로 멀어지게 하다) ⑰알리다 ⑱예측하다 ⑲말하다 ⑳조문하다, 위문하다 그리고 ⓐ화기애애 하다(은) ⓑ화기애애 하면서 삼가는 모양(은) ⓒ위엄(威嚴)이 있는 모양(은)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말씀 화(話), 말씀 설(說), 말씀 어(語), 말씀 담(談), 말씀 사(辭), 말씀 변(辯),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글월 문(文), 호반 무(武), 다닐 행(行)이다. 용례로는 말로나 글로써 자기의 의사를 발표하는 일을 언론(言論), 어떤 일과 관련하여 말함을 언급(言及), 사람이 생각이나 느낌을 소리나 글자로 나타내는 수단을 언어(言語), 말과 행동을 언행(言行), 같은 말을 쓰는 사람들을 언중(言衆), 사람의 생각이나 느낌을 입으로 나타내는 소리를 언사(言辭), 말로 한 약속을 언약(言約), 말을 잘 하는 재주를 언변(言辯), 입담 좋게 말을 잘 하는 재주를 언설(言舌), 말로써 옥신각신 함을 언쟁(言爭), 상대자가 한 말을 뒤에 자기가 할 말의 증거로 삼음을 언질(言質), 말과 글을 언문(言文), 말 속에 뼈가 있다는 언중유골(言中有骨), 여러 말을 서로 주고 받음을 언거언래(言去言來), 서로 변론 하느라고 말이 옥신각신 함을 언삼어사(言三語四), 말하고 웃는 것이 태연하다는 언소자약(言笑自若)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