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를 구하라
11 개가 그 토한 것을 도로 먹는 것 같이 미련한 자는 그 미련한 것을 거듭 행하느니라
12 네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자를 보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희망이 있느니라
13 게으른 자는 길에 사자가 있다 거리에 사자가 있다 하느니라
14 문짝이 돌쩌귀를 따라서 도는 것 같이 게으른 자는 침상에서 도느니라
15 게으른 자는 그 손을 그릇에 넣고도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워하느니라
16 게으른 자는 사리에 맞게 대답하는 사람 일곱보다 자기를 지혜롭게 여기느니라
길을 걷다보면 곳곳에 붙어 있는 광고지들을 보게 됩니다. 그중 가장 자주 보이는 것은 헬스장 광고입니다. 헬스장 광고 중에서도 자주 보이는 선전 문구가 있습니다. “작심삼일은 그만! 1:1 코칭으로 집중적인 관리를 받으세요!” 작심삼일을 이용한 광고입니다. 헬스장 뿐 아니라 자기관리나 공부에 관한 광고 등 다양한 선전들이 작심삼일을 넘어서게 해주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결심을 한 후 그것을 지키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저에게도 작심삼일로 끝난 결심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중 큰 안타까움을 남긴 결심은 2024년 초에 참여했던 25기 캠프에서 내린 결심입니다. 저는 이 캠프에서 말씀을 배우고 연구하며 예전과 다른 삶을 살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또 제가 앞으로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 것을 확신했습니다. 하지만 집에 돌아온지 며칠 안되어 예전의 삶으로 돌아갔습니다. 큰 결심이 작심삼일로 끝난 것입니다.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고 믿었던 저는 제 자신에게 당황했습니다. 그 후로도 여러 번 변화하려 했지만 항상 예전의 게으른 생활습관과 부정직함으로 돌아왔습니다. 무엇이 문제일까 생각해보아도 번번히 정신력이 부족하다는 막막한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제가 작심삼일을 반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왜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삶을 다짐하지만 실패할까요? 저는 잠언 26장을 연구하며 제가 예전의 생활 습관과 어리석음으로 돌아오는 이유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지혜를 구하라”라는 주제로 잠언 26장 11절에서 16절의 말씀과 저의 깨달음을 나누겠습니다.
“개가 그 토한 것을 도로 먹는 것 같이 미련한 자는 그 미련한 것을 거듭 행하느니라.” 오늘 본문의 첫 절이자 핵심으로, 미련한 자는 미련한 행동을 반복한다는 내용입니다. 이 구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26장의 전반부를 살펴야 합니다. 26장 1절부터 10절은 미련한 자의 특징을 묘사합니다. 미련한 자를 잘 나타내는 두 구절을 보겠습니다. 6절 말씀입니다. “미련한 자 편에 기별하는 것은 자기의 발을 베어버림과 해를 받음과 같으니라.” 9절 말씀입니다. “미련한 자의 입에 잠언은 술 취한 자가 손에 든 가시나무 같으니라.” 이처럼 잠언 26장의 전반부는 미련한 자를 어울리면 안 되는, 또 어리석음으로 해를 끼치는 사람으로 묘사합니다. 그리고 11절에서 미련한 자와 개를 비교하며 그가 전반부에 등장한 미련을 반복할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미련한 자는 자신의 미련을 왜 반복할까요? 잠언 26장 11절에서 미련한 자는 개와 동급으로 나타납니다. 개가 배가 고프면 토한 것을 먹는 이유는 개가 가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개의 본성입니다. 마찬가지로 미련한 자가 미련을 반복하는 이유는 그가 미련한 자이기 때문입니다. 미련함이 그의 본성인 것입니다. 미련은 미련한 자가 하는 행동이 아니라 그의 본성이며 떨쳐낼 수 없는 정체성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26장 전반부에 묘사된 미련에서 떠날 수 없습니다. 이는 작심삼일을 반복하는 저의 모습과 유사합니다.
개처럼 미련을 반복하는 미련한 자가 불쌍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잠언이 이토록 비참하게 묘사하는 미련한 자는 어떤 사람일까요? 성경이 ‘미련한 자’라고 부르는 사람은 지적으로 무지한 자보다 하나님의 법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불신하고 대적하며 교만하게 행하는 자입니다. 따라서 잠언 26장이 훈계하는 미련한 자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으려는 정체성을 가지고 하나님 거역하기를 반복하는 자입니다.
놀랍게도 이 본문의 미련한 자는 미숙하게 행동하는 자뿐 아니라 원죄에 사로잡힌 모든 인간입니다. 인간은 원죄 즉 하나님을 거스르는 본성을 가지고 그 본성을 따라 끝없이 죄를 범합니다. 토한 것을 다시 먹는 개와 같은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잠언 26장의 미련한 자는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 원죄를 지닌 우리 자신입니다.
본문은 우리에게 미련의 상태 즉 하나님을 거역함에서 벗어나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미련에 머무르는 인물 두 명을 소개함으로 우리가 미련에서 벗어나기를 촉구합니다.
먼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자입니다. 12절을 보겠습니다. “네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자를 보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희망이 있느니라.” 성경의 지혜로운 자는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해 옳은 것 즉 하나님의 뜻을 알고 따르는 자입니다.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자는 자신의 미련함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자신이 하나님의 뜻을 따른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변화될 이유를 모르고 미련에 머물 수밖에 없습니다. 잠언은 우리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며 미련에 머물 때 게으르게 될 것을 경고합니다. 자신이 옳은 것을 한다고 믿는다면 다른 변화를 원하지 않고 그 상태에 머물며 나태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13절부터 16절에 등장하는 게으른 자에 대한 묘사는 육체적으로 움직이지 않는 자뿐 아니라 자신이 이미 구원받았다고 믿으며 미련에서 벗어나기를 원하지 않고 하나님을 찾지 않는 자입니다. 인간의 기준으로 성실한 사람이 하나님의 기준으로 게으를 수 있습니다.
잠언은 두 번째로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22절을 보겠습니다.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의 말은 별식과 같아서 뱃속 깊은 데로 내려가느니라.” 남의 말하는 것은 상대방을 낮춤으로 내가 높아지는 기분을 주기에 유혹적입니다. 예를 들어 친구가 시험공부를 하지 않는다면 내 등수는 올라갈 것입니다. 하지만 친구가 공부하지 않은 것이 나를 지혜롭게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이처럼 다른 사람에 대해 험담하는 것은 즐겁긴 하여도 실제로 나를 지혜롭게 하지 못합니다. 미련한 자는 이를 알지 못하고 남을 험담하며 자신의 미련을 반복합니다. 그의 눈에는 남을 낮추는 것이 별식과 같을 것입니다. 하지만 결국 자신의 토를 다시 먹는 일입니다. 잠언은 미련에 깊게 빠져드는 두 인물을 보이며 우리가 미련에서 벗어나기를 촉구합니다.
또한, 성경은 우리의 미련은 심판받을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바로가 한 예입니다. 바로는 하나님을 거역하며 그 미련을 반복한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그 결과 그의 아들이 죽었습니다. 이처럼 미련한 자는 그 미련에 대한 대가를 받습니다. 이는 개와 다르게 인간에게는 미련과 지혜 사이에서 선택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미련하고 죄된 본성을 가지고 있기에 미련을 선택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받을 것입니다.
미련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요? 잠언 26장 11절은 우리가 미련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보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발버둥 치더라도 우리는 죄된, 미련한 본성을 떨쳐낼 수 없습니다. 개처럼 미련을 반복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나 자신이 아닌 하나님에게서 지혜를 찾아야 합니다. 잠언 2장 3절에서 5절을 보겠습니다. “지식을 불러 구하며 명철을 얻으려고 소리를 높이며 은을 구하는 것 같이 그것을 구하며 감추어진 보배를 찾는 것 같이 그것을 찾으면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알게 되리니.” 나의 미련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침상에 누워 구원을 구하는 자는 애초에 구원을 얻을 마음이 없습니다. 자신의 미련을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미련한 자가 진정으로 지혜를 구한다면 미련을 버리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지혜를 구하는 것은 정직하고 성실하게 사는 것입니다. 또한,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것이며 가족을 사랑하고 이웃에게 기부하는 것입니다. 삭개오가 한 예입니다. “삭개오가 서서 주게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갑절이나 갚겠나이다.” 삭개오는 미련함을 깨달았을 때 그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역동적인 노력 즉, 정직하라는 계명을 따릅니다. 이처럼 지혜를 구하는 것은 말로만 비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깨달은 계명을 행동으로 실행하는 것입니다. 삭개오의 이런 점을 우리가 본받아야 합니다.
잠언 31장 10절부터 31절은 현숙한 여인의 예를 통해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을 어떻게 따라야 할지 구체적인 지침 3가지를 줍니다. 첫째로 현숙한 즉, 지혜로운 여인은 자신의 일에 성실합니다. 31장 16절 말씀입니다. “밤이 새기 전에 일어나서 자기 집안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며 여종들에게 일을 정하여 맡기며.” 밤이 새기 전에 일어나고 집안 사람들을 잘 돌보며 일을 효율적으로 나누어주는 성실함을 갖추었습니다. 두 번째로 지혜로운 사람은 가난한 자를 돕습니다. 20절 말씀입니다. “그는 곤고한 자에게 손을 펴며 궁핍한 자를 위하여 손을 내밀며.” 돈을 탐하지 않고 구제하는 모습입니다. 또한 지혜로운 사람은 여호와를 경외합니다.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 여호와를 경외한다는 것은 그분의 말씀을 중히 여기며 그분과 멀어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진심으로 지혜를 구할 때 우리는 우리의 미련을 온전히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려 할수록 그것을 온전히 지킬 수 없음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또 행동을 조심한다 해도 죄된 생각을 멈출 수 없음을 깨닫습니다. 그때 하나님께 더욱 간절히 매달릴 것입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잠언 8장 17절 말씀입니다. 우리가 지혜를 구할 때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실 것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잠언 2장 6절 말씀처럼 하나님은 ‘지혜를 주시며 지식과 명철을 그 입에서 내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지혜를 구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잠언의 지적처럼 우리의 본성은 토를 먹는 개와 같이 죄 되고 미련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잠언을 통해 우리가 미련에서 벗어나기를 촉구하십니다. 미련에 머무른다면 우리는 게으름 속에서 남을 비방할 것이고 결국 합당한 보응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혜를 구하십시오. 자신의 미련을 깨닫고 그것으로부터 자유롭기를 진정으로 소망하기를 구하십시오. 매 순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정직하고 성실하게 사려고 노력하십시오. 우리가 발버둥 치며 구할 때 하나님께서 지혜와 생명을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