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에서 3년째 살면서 발견한 특이 현상>
어제는 저녁을 먹기 위해 동해의 해안로 안쪽에 있는 작은 음식점으로 갔었다.
60대 중반 여성이 양재기에 매운 고기찜을 만들어 파는 집이었다.
동해 바닷가 도시에 삼 년째 살면서 특이한 현상을 발견했다.
오후 세 시쯤 되면 식재료가 소진됐다고 문을 닫은 음식점이 많다.
관광객들이 몰려와 줄을 서서 기다려도 준비한 식자재가 떨어졌다며 문을 닫기도 한다.
아예 점심 시간만 장사를 하는 가게도 있다. 어스름이 돌 무렵이면 밥을
먹기 위해 문을 연 식당들을 한참 찾아야 한다.
그들이 가게를 하는 게 돈을 벌기 위한 것인지 아닌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서울의 광화문 뒤쪽의 지하상가에서 아는 사람이 만두국집을 했다.
상가 음식점들의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옆 가게가 몇 그릇을 팔았나가 상인들의 관심사였다.
한 그릇이라도 더 팔기 위해서 쏟아지는 잠을 참아가며 밤 늦게까지
텅 빈 가게를 지키기도 했다. 옆 가게와의 경쟁은 거의 전쟁상태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 한적한 지방도시에서는 도무지 그런 경쟁이 없어 보였다.
"고기가 삼 인분 밖에 남지 않아서 그것만 팔면 가게 문을 닫으려고 했어요."
작은 음식점을 혼자 하는 주인 여자가 말하면서 자기가 담갔다는 식혜 한 잔을 가져다준다.
지방 도시라 그런지 자영업자의 대부분은 혼자서 가게를 꾸려간다.
갑자기 손님이 들이닥치는 걸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혼자 음식을 만들고
서빙을 할 수 있는 만큼만 손님이 오기를 원한다. 예약을 해야 할 때가 많았다.
음식 맛을 칭찬하니까 그녀가 말이 고팠는지 얘기가 흘러나왔다.
"저는 원주에 살았는데 30~40년 전 우연히 망상 해변을 지나다가 바다에 반해 버렸어요.
그때부터 동해로 와서 혼자서 하는 음식점을 차렸죠. 양재기에 끓이는 매운 갈비찜은
누구보다도 자신이 있었어요. 저는 아침에 그날 하루에 팔 식자재를 준비하고
그게 떨어지면 바로 문을 닫고 놀아요.
삼 년 후면 내 나이 칠십인데 국민연금도 나와요. 아이들은 다 커서 독립했고
나는 조금만 더 벌면 된다니까요. 내가 여행을 하려고 일주일간 가게 문을
닫아 놓은 적도 있다니까요."
냄비 속에서 끓는 걸쭉한 고기 국물에 밥을 비벼 먹고 나올 때였다.
내가 "번창하세요"라고 하면서 인사를 했다.
"아니요, 가게가 번창 안 해도 돼요. 내가 필요한 만큼만 조금만 벌면 돼요. 안녕히 가세요."
주인 여자의 대답이었다. 여백에 철학이 들어있는 것 같다.
동해의 바닷가 도시에 와서 늙으나 젊으나 그런 라이프 스타일을 많이 봤다.
묵호항 앞에는 문어로 탕수육과 짜장면을 만들어 파는 가게가 있다.
문을 연 날이면 손님들이 줄을 선다. 그런데도 갈 때마다 문이 닫혀 있다.
하는 날보다 젊은 가게 주인이 노는 날이 더 많은 것 같다.
나의 집 바로 앞에 동치미 막국수를 파는 젊은 부부가 있다.
40대 남자가 주방을 지키고 아내가 홀에서 서빙을 한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이
카운터에 앉아 게임기를 가지고 놀 때가 있다. 맛집으로 소문이 나서 점심 때면
사람들이 붐빈다. 저녁까지 장사를 하면 부자가 될 것 같은 데도 점심 무렵을
전후해서 몇 시간만 영업을 하고 문을 닫는다.
돈보다 아이와 함께 놀아주는 삶을 위해서 그렇게 한다고 했다.
어린 딸은 아빠엄마가 돈을 벌 때까지 기다려 주지 않는다고 했다.
가족이 함께 하는 시간을 가지는 게 먼저라고 했다. 바닷가의 한적한 도시에서
나는 경쟁의 트랙에서 벗어난 전혀 다른 삶의 모습들을 본다.
예약된 몇 명의 손님들에게 지압을 해준 후 오후에는 한적한 바닷가로 나와
대금을 부는 남자도 봤다. 낡은 주공아파트에 혼자 살고 있다고 했다.
다가구 주택에 살면서 바닷가에 나가 노래를 부르는 늙은 무명 가수도 있다.
자기 노래가 담긴 씨디를 팔아서 살았는데 200장을 판 날도 있다면서 자랑했다.
경제적 여유보다는 마음이 부자인 사람들인 것 같다. 그들을 보면서 나도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거구나 하는 위로를 받는다.
하던 변호사의 일을 멈추고 바다가 보이는 나의 방에서 매일 작은 글을 쓴다.
그 분이 준 작은 깨달음을 내 작은 글 그릇에 담아 민들레 홀씨가 바람에
날리듯 블로그에 실어 날려 보낸다.
오후가 되면 드럼 연습을 하고 바다로 나가 물이 빠져나간 고운 모래 위를 맨발로 걷는다.
밀려오는 푸른 파도가 내 마음속으로까지 흘러 들어와 하얀 거품을 뿜어낸다.
헛된 욕심과 야망으로 들끓던 젊은 시절의 고통에서 벗어난 한가한 노년은
인생의 가장 행복한 계절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