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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미년 6월 (1595년 6월)
403
6월 초1일 (임인) 저녁나절에 맑다. [양력 7월 7일]
404
권 ∙ 박 ∙ 신 세 조방장과 웅천현감 ∙ 거제현령과 함께 활 열다섯 순을 쏘았다. 충청수사 선거이(宣居怡)는 이질에 걸려 쏘지 않았다.
405
새로 번드는 영리가 들어왔다.
406
6월 초2일 (계묘) 종일 가랑비 내리다. [양력 7월 8일]
407
식사를 한 뒤에 대청에서 공무를 봤다. 한비(韓 )가 돌아갔다.
408
어머니께 편지를 편지를 썼다.
409
영리 강기경(姜起敬) ∙ 조춘종(趙春種) ∙ 김경희(金景禧) ∙ 신홍언(申弘彦)이 모두 당직을 마치고 나왔다.
410
오후에 가덕진첨사 ∙ 천성만호 ∙ 평산포만호 ∙ 적량첨사 등이 와서 봤다.
411
천성보만호 윤홍년(尹弘年)이 와서 청주의 이계(李繼)의 편지와 서숙부의 편지를 전하며, 김개(金介)가 지난 3월에 죽었다고 했다. 비통함을 이길 길이 없다.
412
저물 무렵에 권언경(權彦卿) 영감이 와서 이야기했다.
413
6월 초3일 (갑진) 흐리되 비는 오지 않았다. [양력 7월 9일]
414
식사를 한 뒤에 나가 공무를 봤다. 각 보고 문서를 처리하고, 하달 공문을 내보냈다.
415
느즈막이 가리포첨사 ∙ 남도포만호가 왔다. 권 ∙ 신 두 조방장과 방답첨사 ∙ 사도첨사 ∙ 여도만호 ∙ 녹도만호가 와서 활 열다섯 순을 쏘았다.
416
아침에 남해현령이 달려와서 보고 하는데, 해평군 윤두수(尹斗壽)가 남해에서 본영으로 건너온다고 한다. 그 까닭을 알 수 없으나 곧 배를 정비하고 현덕린(玄德麟)을 본영으로 보냈다.
417
사량만호가 와서 양식이 떨어졌다고 보고하고서 돌아갔다.
418
6월 초4일 (을사) 맑다. [양력 7월 10일]
419
진주의 서생 김선명(金善鳴)이라는 자가 계원유사(繼援有司: 식량을 잇대주는 직책 이름)가 되고 싶다고 여기에 왔는데, 보인(保人) 안득(安得)이라는 자가 데리고 왔다.
420
그 말을 들어 살펴보니, 그 속을 보장하기 어려울 것 같아 아직 좀 두고 보자고 하고 공 문을 만들어 주었다.
421
세 조방장과 사도첨사 ∙ 방답첨사 ∙ 여도만호 ∙ 녹도만호가 와서 활 열다섯 순을 쏘았다.
422
탐후선이 오지 않아 어머니의 안부를 알 수 없다. 걱정이 되고 눈물이 난다.
423
6월 초5일 (병오) 맑다. [양력 7월 11일]
424
이(李) 조방장 등과 함께 같이 아침식사를 하는데,자윤 박종남(朴宗男)(조방장)은 병으로 오지 않았다.
425
저녁나절에 우수사 ∙ 웅천현 감 ∙ 거제현령이 와서 같이 종일 이야기했다.
426
오정 때부터 비가 내려서 활을 쏘지 못했다. 나는 몸이 몹시 불편하여 저녁식사도 먹지 않고 종일 쓰리고 앓았다.
427
종 경(京)이 들어 와서 어머니께 서 편안하시다고 하니 다행이다.
428
6월 초6일 (정미) 종일 비가 내렸다. [양력 7월 12일]
429
몸이 몹시 불편하다. 송희립(宋希立)이 들어 왔다. 그 편에 도양장의 농사 형편을 들으니, 흥양현감(배흥립)이 무척이도 애를 썼기 때문에 추수가 잘 될 것이라고 했다.
430
계원유사 림영(林英)도 힘을 많이 쓴다고 했다.
431
정항(鄭沆)이 이곳에 왔으나, 나는 몸이 불편하여 종일 앓았다.
432
6월 초7일 (무신) 종일 비가 내렸다. [양력 7월 13일]
433
몸이 몹시 불편하여 신음하며, 앉았다 누웠다 했다.
434
6월 초8일 (기유) 비가 내렸다. [양력 7월 14일]
435
몸이 좀 나은 것 같다. 저녁나절에 세 조방장이 와서 보고, 곤양 군수는 자기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 급히 집으로 돌아갔다고 전했다. 매우 섭섭하다.
436
6월 초9일 (경술) 맑다. [양력 7월 15일]
437
몸이 아직도 쾌하지 않는다. 답답하고 걱정된다.
438
조방장 신호(申浩) ∙ 사도첨사 ∙ 방답첨사가 편을 갈라서 활쏘기를 했는 데, 신호(申浩) 편이 이겼다.
439
저녁에 원수군관 이희삼(李希參)이 임금의 분부를 가지고 이곳에 왔는데, 조형도(趙亨道)가 수군 한 사람에 양식 다섯 홉씩 ∙ 물 일곱 홉씩이라고 없는 것을 꾸며서 장계를 하였다고 했다. 인간의 일이란 참으로 놀랍다. 천지에 어찌 이처 럼 속이는 일이 있단 말인가.
440
저물녘에 탐후선이 들어와서 어머니께서 이질에 걸렸다고 한다. 걱정이 되어 눈물이 난다.
441
6월 초10일 (신해) 맑다. [양력 7월 16일]
442
새벽에 탐후선을 본영으로 내어 보냈다.
443
저녁나절에 세 조방장 ∙ 충청수사 ∙ 경상수사가 와서 봤다.
444
광주의 군량 서른아홉 섬을 받았다.
445
6월 11일 (임자) 가랑비가 오고 바람이 세게 불었다. [양력 7월 17일]
446
아침에 원수군관 이희삼(李希參)이 돌아갔다. 저녁에 나가 공무를 봤다.
447
광주 군량을 훔쳐간 도둑놈을 가두었다.
448
6월 12일 (계축) 가랑비가 오고 바람 불었다. [양력 7월 18일]
449
새벽에 아들 울(蔚)이 들어왔다. 어머니의 병환이 좀 덜하다고 한다. 그러나, 연세가 아흔인지라 이런 위험한 병에 걸리셨으니, 염려가 되고 또 눈물이 난다.
450
6월 13일 (갑인) 흐렸다. [양력 7월 19일]
451
새벽에 경상수사 배설(裵楔)을 잡아오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그 대신으로는 권준(權俊)이 되었다.
452
남해현령 기효근(奇孝謹)은 그 대로 유임되었다고 한다. 놀라운 일이다.
453
저녁나절에 경상수사 배설(裵楔)에게 다녀가서 보고 돌아왔다.
454
어두워서 탐후선이 들어왔다. 금오랑이 이미 영(營) 안에 와 있다고 한다. 또 별좌의 편지를 보니, 어머니 병환이 차차 나아간다고 한다. 다행이다.
455
6월 14일 (을묘) 새벽에 큰 비가 내렸다. [양력 7월 20일]
456
사도첨사가 활을 쏘자고 청하여 우수사와 여러 장수들이 다 모였는데, 저녁나절에 개었으므로 활 열두 순을 쏘았다.
457
저녁에 금오랑이 경상수사 배설(裵楔)을 잡아갈 일로 들어왔다. 권준(權俊)을 수사로 임명한다는 조정의 공문과 유서와 밀부(密符: 유수 ∙ 감사 ∙ 병마사 ∙ 수사 ∙ 방어사들이 차던 兵符)도 왔다.
458
6월 15일 (병진) 맑다. [양력 7월 21일]
459
새벽에 망궐례를 했다. 식사를 한 뒤에 포구로 나가 배설(裵楔)을 떠나 보내니 마음이 불편하다.
460
아들 울(蔚)이 돌아갔다.
461
오후에는 조방장 신호(申浩)와 함께 활 열 순을 쏘았다.
462
6월 16일 (정사) 맑다. [양력 7월 22일]
463
나가 공무를 봤다. 순천의 7호선의 장수 장일(張溢)이 군량을 훔치다가 잡혀 왔으므로 처벌했다.
464
오후에 두 조방장과 미조항첨사 등과 함께 활 일곱 순을 쏘았다.
465
6월 17일 (무오) 맑으나 바람이 종일 불었다. [양력 7월 23일]
466
경상수사(권준) ∙ 충청수사(선거이) ∙ 두 조방장이 같이 활을 쏘았다.
467
6월 18일 (기미) 비가 오락가락 했다. [양력 7월 24일]
468
진주의 유생 류기룡(柳起龍) 및 하응문(河應文)이 양식을 대어 달라면서 쌀 다섯 섬을 받아 갔다.
469
저녁나절에 조방장 박종남(朴宗男)과 함께 활 열다섯 순을 쏘고 헤어졌다.
470
6월 19일 (경신) 비가 내렸다. [양력 7월 25일]
471
홀로 다락 위에 앉아서 몽매간에 아들 면이 윤덕종(尹德種)의 아들 윤운로(尹雲輅)와 같이 왔는데, 어머니의 편지를 보니 병환이 완쾌하시다고 한다. 천만다행이다.
472
신홍헌(申弘憲) 등이 들어 와서 보리 일흔여섯 섬을 바쳤다.
473
6월 20일 (신유) 비가 오락가락 했다. [양력 7월 26일]
474
종일 다락에 앉아서 충청수사가 말이 분명치 않다는 말을 들었다.
475
저녁에 몸소 가보니, 중태에 이르지는 않았으나 습한 곳에 기거함으로 일어나는 뼈마디가 저리고 아픈 풍습이라는 병으로 많이 상했다. 무척 염려가 된다.
476
6월 21일 (임술) 맑다. [양력 7월 27일]
477
몹시 덥다. 식사를 한 뒤에 나가 공무를 봤다. 신홍헌(申弘憲)이 돌아갔다. 거제현령은 또 왔다.
478
경상수사(권준)가 보고하는데, 평산포만호(김축)가 병에 걸려 심하다고 한다. 그래서 내어 보낼 일로 적어서 보냈다.
479
6월 22일 (계해) 맑다. [양력 7월 28일]
480
할머니의 제삿날이라 공무를 보지 않았다.
481
경상수사가 와서 봤다.
482
6월 23일 (갑자) 맑다. [양력 7월 29일]
483
두 조방장과 함께 활을 쏘았다. 저녁에 배영수(裵永壽)가 돌아갔다.
484
6월 24일 (을축) 맑다. [양력 7월 30일]
485
우도(右道)의 각 고을과 포구에 부정사실을 조사했다. 음탕한 계집 열두 명을 잡아다가 그 대장(隊長)을 아울러 처벌했다.
486
저녁나 절에 침을 맞아 활을 쏘지 않았다.
487
허주(許宙) ∙ 조카 해가 들어왔다.
488
전마(戰馬)도 왔다. 기성백(奇誠伯)의 아들 기징헌(奇澄憲)이 그의 서숙부 기경충(奇景忠)과 함께 왔다.
489
6월 25일 (병인) 맑다. [양력 7월 31일]
490
원수의 공문이 들어왔다.
491
"세 위장(衛將)을 세 패로 갈라 보낸다"
492
고 했고, 또 소서행장이 일본에서 와서 화친할 것을 이미 결정했다고 한다.
493
저녁에 조방장 박종남(朴宗男)과 충청수사 선거이(宣居怡)에게로 가서 그의 병세를 보니, 이상한 일이 많았다.
494
6월 26일 (정묘) 맑다. [양력 8월 1일]
495
식사를 한 뒤에 공무를 보고 활 열다섯 순을 쏘았다. 경상수사가 와서 봤다.
496
오늘이 권언경(權彦卿) 영감의 생일이라고 했다. 그래서 국수를 만들어 먹고 술도 몹시 취하며 거문고도 듣고 피리도 불다가 저물어서야 헤어졌다.
497
6월 27일 (무진) 맑다. [양력 8월 2일]
498
허주(許宙) ∙ 조카 해 ∙ 기운로(奇雲輅) 등이 돌아갔다.
499
나는 조방장 신호(申浩) ∙ 거제현령과 함께 활 열 순을 쏘았다.
500
6월 28일 (기사) 맑다. [양력 8월 3일]
501
나라제삿날(明宗의 祭祀)이라 공무를 보지 않았다.
502
6월 29일 (경오) 맑다. [양력 8월 4일]
503
아침에 대청으로 나갔다. 우수사가 와서 활 열 여 순을 쏘았다.
504
6월 30일 (신미) 맑다. [양력 8월 5일]
505
문어공(文語恭)이 날삼(生麻)을 사들일 일로 나갔다. 이상록(李祥祿)도 돌아갔다.
506
저녁나절에 거제현령 ∙ 영등포만호가 와서 봤다.
507
방답첨사 ∙ 녹도만호 ∙ 조방장 신호(申浩)가 활 열다섯 순을 쏘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