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15장 23-38절]
23 유다의 왕 아사랴 제오십년에 므나헴의 아들 브가히야가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이 년간 다스리며
24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로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한지라
25 그 장관 르말랴의 아들 베가가 반역하여 사마리아 왕궁 호위소에서 왕과 아르곱과 아리에를 죽이되 길르앗 사람 오십 명과 더불어 죽이고 대신하여 왕이 되었더라
26 브가히야의 남은 사적과 그가 행한 모든 일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니라
27 유다의 왕 아사랴 제오십이년에 르말랴의 아들 베가가 이스라엘 왕이 되어 사마리아에서 이십 년간 다스리며
28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로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29 이스라엘 왕 베가 때에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이 와서 이욘과 아벨벳 마아가와 야노아와 게데스와 하솔과 길르앗과 갈릴리와 납달리 온 땅을 점령하고 그 백성을 사로잡아 앗수르로 옮겼더라
30 웃시야의 아들 요담 제이십년에 엘라의 아들 호세아가 반역하여 르말랴의 아들 베가를 쳐서 죽이고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31 베가의 남은 사적과 그가 행한 모든 일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니라
32 이스라엘의 왕 르말랴의 아들 베가 제이년에 유다 왕 웃시야의 아들 요담이 왕이 되니
33 나이가 이십오 세라 예루살렘에서 십육 년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여루사라 사독의 딸이더라
34 요담이 그의 아버지 웃시야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35 오직 산당을 제거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여전히 그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더라 요담이 여호와의 성전의 윗문을 건축하니라
36 요담의 남은 사적과 그가 행한 모든 일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37 그 때에 여호와께서 비로소 아람 왕 르신과 르말랴의 아들 베가를 보내어 유다를 치게 하셨더라
38 요담이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그의 조상 다윗 성에 조상들과 함께 장사되고 그 아들 아하스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설교]
오늘 본문에는 세 왕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나오는 왕은 브가히야입니다. 브가히야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습니다. 브가히야가 악을 행하였다는 것을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다는 표현을 써서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브가히야는 베가에게 죽임을 당합니다. 베가는 왕의 장관으로서 왕궁 호위소에 같이 들어갈 수 있을만큼 왕의 측근이었습니다. 호위소는 어떤 곳이겠습니까? 왕궁 안에 있는 피난처입니다. 가장 안전해야 할 그곳에서 브가히야는 죽임을 당했습니다. 브가히야는 아마도 여기라면 괜찮을거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람의 생각일 뿐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에게 피난처는 오직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브가히야를 죽인 베가는 왕이 되어 북이스라엘을 20년간 다스립니다. 베가는 이런 불안한 정세 속에서도 오랜 기간 이스라엘을 통치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베가에게도 위기가 차자왔습니다.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이 쳐들어온 것입니다. 앗수르 왕은 북이스라엘 동쪽과 북쪽 땅을 점령하고 백성들을 포로로 끌고 갔습니다. 앗수르의 침입을 받는 북 이스라엘의 분위기는 어떠했을까요? 처참한 분위기였을 것입니다. 앗수르에 반항하여 땅을 뺏기고 백성들은 포로로 끌려갔기 때문입니다. 땅은 황폐해졌고 백성들의 마음도 피폐해졌을 것입니다. 이런 혼돈기에 호세아가 반역을 일으켰습니다. 호세아는 베가를 암살하고 북 이스라엘의 왕이 됩니다. 자기 유익을 위해 자신이 섬기던 왕을 배반한 베가는 자기가 행한대로 똑같이 배반당해 죽게 되었습니다.
이 모습은 오늘날 세상 모습과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우리도 세상 속에서 옆에 있는 사람들을 의지하고, 세상의 방법대로 살아갑니다. 그러다 가까운 사람에게 배신당하기도 하고, 나름대로 세상 속에서 잘 살아보겠다고 나만의 꾀를 내어보기도 하고 세상의 방법을 써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답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세상의 문제 앞에서 우리는 힘없고 약하고 부족한 내 모습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달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마지막에 등장하는 요담은 그 부모로부터 하나님에 대해 보고 배웠습니다. 요담의 어머니는 사독의 딸 여루사입니다. 사독은 제사장이었습니다. 따라서 요담은 그 어머니로부터 신앙교육을 받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그의 아버지 웃시야에게서도 좋은 신앙의 모습을 보고 배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34절에서는 그의 아버지 웃시야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역대기를 참고하자면 요담은 성전의 윗문을 건축했습니다. 그리고 유다 산악 지대에 성읍과 요새도 건설했습니다. 암몬과의 전쟁에서도 승리하여 조공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군사적으로 방비를 잘 갖춘 왕이기도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바른 길을 걸어 나라가 평화로웠다고 평가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요담에게도 한 가지 단점은 있었습니다. 바로 산당을 제거하지 않은 것입니다. 산당은 원래 다른 우상을 섬기기 위한 터는 아니었습니다. 이곳은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 정착하기 전까지만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것이 허락된 장소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정하신 곳이 생긴 이후로는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는 것은 멈춰야 했습니다. 왜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일까요?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 중심이 아닌 자기중심적인 신앙생활이기 때문입니다.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면 예루살렘 성전으로 갈 필요가 없기 때문에 편합니다. 하지만 편의를 위해 남겨둔 산당에는 우상이 세워지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과 우상을 겸하여 섬기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적당한 편리를 위해 적당히 타협하니 섞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생활에서도 이와같은 모습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해서는 안되는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끊어내지 못하고 미루기도 합니다. 이 정도는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니나며, 스스로 기준을 옮기거나 이 정도면 그래도 할 만큼 했다면서 멈춰버리기도 합니다. 취사선택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도 연약한 인간이기에 넘어질 수도 있고 실수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됩니다.
요담은 산당을 제거하지 않은 일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아람 왕 르신과 북 이스라엘 왕 베가가 유다를 치게 하셨습니다. 요담은 바르게 행하고 군사적으로도 안정을 갖추고 자기 나름대로 하나님께 제사드렸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향기로운 제사로 받지 않으셨습니다. 왜일까요? 온전한 제사가 아닌 타협으로 드린 제사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하나님 백성으로서 거룩하게 살려고 하지만 한계를 마주합니다. 그때 우리는 세상과 타협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 자신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인정하고 다시 주님 붙들고 나아가야 합니다. 참된 왕이신 주님을 찾으십시오. 그 주님 앞에 함께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