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心之燈火(심지등화), 마음의 등불★
마음은 빈 상자와 같습니다.
보석을 담으면 보석 상자가 되고,
쓰레기를 담으면 쓰레기 상자가 됩니다.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마음의 가치도 달라집니다.
진정한 위로는
“힘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많이 힘들었지?”라고 먼저 물어주는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기대를 받는 사람도 좋지만,
더 나아가 누군가가 기댈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주어진 삶의 끝이지만,
열정은 삶을 오래도록 빛나게 하는 힘입니다.
예의는 사람을 품격 있게 만들고,
무례는 관계를 옭아매는 올가미가 됩니다.
많이 배웠다고 자만하지 마십시오.
가방끈이 길수록 더 겸손히 고개를 숙일 줄 알아야 합니다.
성공을 찾으려면 눈을 크게 뜨고 노력해야 하고,
행복을 찾으려면 마음의 등불을 먼저 밝혀야 합니다.
몸의 때는 물로 씻고,
마음의 때는 책으로 씻으며,
영혼의 때는 진실한 눈물과 성찰로 씻어야 합니다.
후회는 과거를 바꾸지 못하고,
걱정은 미래를 바꾸지 못합니다.
오직 오늘의 행동만이 현재를 바꾸고 미래를 만들어 갑니다.
인생을 헛되이 살고 싶지 않다면
형식적인 약속보다
작은 약속이라도 끝까지 지키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반가운 것도 사람이고,
가장 상처를 주는 것도 사람이며,
결국 가장 소중한 존재 역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아끼고,
사람을 존중하며,
사람의 마음을 밝히는 등불 같은 삶을 살아간다면,
우리의 인생도 누군가의 길을 비추는 따뜻한 빛이 될 것입니다.
🌸거울은 절대로 먼저 웃지 않는다.😝
내가 웃어야
"거울"도 따라 웃듯이,
내가 먼저 웃어야
상대방도 따라 웃습니다.
그래서 "웃는 자"에겐
→ 친구가 따르고~
→ 동료와 화합하고~
→ 사람이 따를 것이므로,
→ 마음 풍요롭게 되고,
→ 좋은 일이 생겨나고,
→ 복을 받고 누리게 될 것입니다.
미국인들은 일어나서 잘 때까지
“Good~!(좋다)”을 연발하며 산다고 합니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말끝마다
“죽겠다~!”고 한다고 하네요
졸려 죽겠다.
피곤해 죽겠다.
힘들어 죽겠다.
얄미워 죽겠다.
배고파 죽겠다. 등등
그러나 한국인들은 죽을 때
“껄껄껄”하고 죽는 사람이 많다.
“좀 더 참을 껄~!”
“좀 더 즐길 껄~!"
“좀 더 베풀 껄~!".....
얼굴에 "웃음"이 퍼지면
저절로 "마음"이 풍요롭습니다.
얼굴을 펴면
인상이 좋아지고
허리를 펴면
일상이 좋아지고
마음을 펴면
인생이 좋아집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무엇을 펴고 있으신가요?
뭐든지 펴면 좋아질듯합니다
얼굴도,
허리도,
마음도,
쭉쭉 펴봅시다.
행복이라는 다리미로
여러분의 인생을 쫙~펴보세요!
그리하여
사랑, 기쁨, 웃음으로 행복 엮어 가시기 바랍니다... ♬
https://m.youtube.com/shorts/hPVbr-qU6wo
***'6·25 형제' 튀르키예
1950년 11월 청천강까지 진격한 유엔군은 중공군 30만명이 매복해 있는 사실을 몰랐다. 중공군이 평북 군우리에서 기습하자 미군 오른쪽을 지키던 국군 2군단이 궤멸됐다.
튀르키예 여단이 그 구멍을 막아야 했다. 중공군이 포위해 오자 베레모를 뒤로 던진 뒤 “모자가 떨어진 곳 이상은 절대 물러서지 않는다”며 자리를 사수했다. 온몸으로 인해전술에 맞서는 동안 미군 주력은 전멸을 피해 한강 이남에서 반격을 준비할 수 있었다.
▶한강을 건넌 중공군이 경기도 용인의 151고지를 점령했다. 고지를 되찾으려면 백병전이 불가피했다. 튀르키예 부대가 총에 대검을 꽂고 “알라후 아크바르(신은 위대하다)”를 외치며 고지로 치달았다.
전통 칼까지 휘두르며 백병전을 벌였다. 중공군 수백 명이 사망했는데 튀르키예 전사자는 10여 명에 불과했다. 유엔군이 ‘중공군 공포증’을 극복하는 계기가 됐다. 당시 튀르키예는 정예병만 연인원 2만여 명을 보냈다. 미국, 영국에 이어 셋째 규모다.
▶튀르키예 뿌리는 고구려 서북 초원에 있던 ‘돌궐’로 알려져 있다. 고구려와 돌궐은 우호 관계를 유지했는데 당시 유목 민족의 전투력은 남달랐다.
튀르키예 국부 아타튀르크는 건국 전쟁 때 “공격이 아니라 죽기를 명령한다. 우리가 죽어가는 동안 동료가 우리 자리를 채울 것”이라고 했다. “총탄이 없으면 대검이 있다”고도 했다. 6·25에서 튀르키예 부대가 보여준 불퇴전과 백병전에는 아타튀르크와 유목 민족의 상무 정신이 배어 있을 것이다.
▶6·25 당시 미군 포로의 3분의 1이 수용소 등에서 사망했다. 반면 튀르키예 포로는 244명 전원이 무사 귀환했다. 미군 등은 포로가 되면 지휘 체계가 무너졌지만 튀르키예 장병은 수용소 안에서도 계급과 군율을 지켰다.
식사량이 형편없는데도 동료가 아프면 건강한 사람이 자기 몫을 나눠줬다. 혹한에는 허약한 동료를 가운데 눕히고 껴안아 체온을 지켰다. 중공군의 세뇌 공작에도 아무도 넘어가지 않았다. 형제애를 중시하기 때문이다.
▶튀르키예의 참전 용사가 본지 인터뷰에서 “(고아) 아이들을 1년 정도 돌봤다”고 했다. 튀르키예는 6·25 전쟁 고아를 보살피려고 부대 운영비를 쪼개 수원에 ‘앙카라 학원’이란 보육 시설을 운영했다.
640여 명의 전쟁 고아에게 새 삶을 줬다. 튀르키예처럼 한국을 위해 1000명에 가까운 전사자를 내면서 고아까지 돌봐준 전우는 거의 없다. 내일이 6·25 전쟁 76년이다. ‘형제의 나라’에 거듭 감사를 표한다.
https://youtu.be/MXFylNMIqR4?si=6coTqpSR9oAe8Y4i
"보은(報恩)"
손녀 하나만 바라보고 그녀를 양육하며,
일생을 살아온 90세의 미국인 할아버지의 이야기이다.
아들과 며느리는 이혼하고 아들과 손녀 셋이서 단란하게 살았는데 아들이 먼저 하늘 나라로 가면서 어린 손녀를 할아버지 혼자 양육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늘 건강하시던 할아버지가 최근 들어 옆구리를 잡고 힘들어 하시는 모습을 보며 왜 그러시냐고 여쭈어 보았더니,
할아버지가 20대에 6.25 한국전쟁에 파병이 되어 중공군과 싸우다가 옆구리에 총을 맞아서 당시 의술로는 그냥 총알을 몸에 지닌 채로 사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의사의 권유로 지금까지 그냥 지내 오셨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이가 들고 면역력이 약해지니 그로 인한 여러 가지 몸의 상태가 안 좋으시다는 말씀을 들은 손녀는 수술을 해드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미국 병원비는 아마 집 한 채 값을 들여야 할 것 같아 마음뿐이었지 어찌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한국은 의술도 좋고 병원비가 저렴하다는 소문을 들은 손녀는 할아버지가 평생 자신을 위해 희생하신 것에 보답하기 위해서 치료를 해드려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할아버지를 모시고 한국으로 왔습니다.
병원에 입원하고 모든 검사를 마친 후 담당 의사는
"몸에 총알을 담고 어찌 지금까지 사셨습니까?“
하고 이유를 물었습니다.
할아버지는 한국전쟁 참전 용사로 중공군과 싸울 때 얻은 훈장이라고 설명을 하자
담당 의사가,
"저희 할아버지도 6.25 참전용사셨는데 총을 맞고 후송이 되었지만 결국 열악한 의료 시설과 낙후한 의술 때문에 돌아가셨고, 아버지가 의사가 되시려고 생각하셨지만 가난한 살림으로 의학 공부를 할 수 없어서 아들인 제가 의사가 되었다." 는 이야기를 하며,
"염증이 생겨 그냥 두면 안되는 상황인데 잘 오셨다.“ 고 말하며
"저희 할아버지와 같은 참전 용사를 수술할 수 있게 되어 영광" 이라고 말을 했습니다.
수술이 순조롭게 끝나고 회복한 후에 건강한 모습으로 완쾌되어 퇴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퇴원을 위해 수속을 준비하면서 그 손녀는 치료비가 어마어마하게 많이 나왔을 것이라 예상을 했습니다
두려운 마음으로 계산을 하러 창구로 갔는데
수납 창구에서 봉투 하나를 내어 주었습니다.
"얼마일까?" 하며 봉투를 열어보니 계산서엔
"진료비 0원" 에 미화 $1,000이 들어있었습니다.
동봉한 작은 쪽지에는
"당신이 흘린 피로 지켜진 우리나라의 자유는 영원할 것입니다. 귀국하시거든
여생을 편안하게 오래 오래 사십시오" 라고 적혀있었습니다.
"이게 무슨 일이냐?" 고 물으니 병원 측과 담당 의사가 치료비를 모두 부담하였다는 것이었습니다.
깜짝 놀란 손녀는 집도 의사를 찾았지만 의사는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퇴원하여 미국으로 귀국 길에 할아버지는,
"전쟁 당시에도 한국 군인들은 듬직하였고 정이 많은 병사들이었다.
한국이 놀랍도록 발전했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이 정도로 발전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산(山)은 붉은 흙과 돌들뿐이었고 참으로 가난한 나라였었는데,
울창한 산림과 빌딩 숲을 보니 내가 한국의 자유를 위해 싸운 보람이 있다."
고 말씀을 하시며 기쁜 마음으로 미국으로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국격을 높인 젊은 의사! 그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얼굴도 모르고 어디에 붙었는지도 모르는 우리나라를 위해
15만 여명의 연합군이 죽거나 다치거나 또 실종되었습니다.
그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나라의 평화가 있었을까요?
미국의 수도 워싱턴 의사당 앞 한국 공원엔 한국전에서 전사한 50,000명의 미군들 명단과 공원 바닥에 쓰여 있어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문구
"Freedom is not free(자유는 공짜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를
볼 때마다 부끄러운 마음으로 오늘 우리나라의 현실을 돌아보며 한숨을 쉬게 됩니다.
호국보훈의달6월~♡^^^
https://youtu.be/zwUEjZibJNI?si=xQ0iWbKhHsaErIFh
첫댓글 늘! 좋은글"감사합니다
산모퉁이님!
즐거운 불금
금빛찬란
행복하세요.
첫댓글
감사합니다!
아~
아 ~~
잊으랴
어찌우리이날을
조국의 원수들이 짓밟아오던날 을~~~~
상기하자
6 25
꼬마인형
영상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이 가득한 시간 보내셔요
https://youtu.be/zwUEjZibJNI?si=VaFBxyMwcJTVMb5p
인천갈매기님!
한주마무리
잘 하시고
풍성한
불금 되세요.
오늘도
덕분에
감사합니다!
보문산인님
심지등화
마음의 등불
사람을 아끼고 존중하며 마음을 밝히는 등불 같은 삶을 살아간다면 우리의 인생도 누군가의 길을 비추는 따뜻한 빛이 될것입니다
6 ,25 참전 유명인
튀르키예 형제
튀르키예 형제의 나라에
감사를 표한다
보은
자유는 공짜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늘 부끄러은 마음으로 우리나라의 현실을 돌아보며 한숨을 쉬게 합니다
이모네 감자
이모님네 농사지은 감자 마늘 고동 한보따리 가지고 오셨네요 ㅎㅎ
꼬마인형
인천갈매기님의 꼬마인형
동영상 잘봤습니다
감사합니다
보문산인님
늘감사드립니다
이사장님!
신나고
즐거운
불금되세요.
항상
감사합니다!
@보문산인(대전) 늘감사드립니다
마음은 등불 같으신 분이 다녀가셨는데
모처럼 방문에
기분좋았는데
이늠 올갱이가 ㅎㅎㅎ
오랜만에 뵈서 방가웠구요
용돈까지 늘 감사합니다
건강한 모습으로 또뵙게습니다
사랑합니다
이모님!
간만에
즐거운
시간
풍성한
나눔
늘
감사합니다!
행복가득
불금되세요!
울 이모님..!
항상 바쁘시네
건강하세요 💕
사여사님!
오늘도
화알짝
빛나는
시간되세요.
감사합니다!
보문산인님
오늘은
묵상
감사드립니다
즐거운 시간보내세요
초아님!
즐거운 불금
한주
마무리
잘 하세요.
늘
감사합니다!
보문산인님
심지등화
마음의 등불
사람을 아끼고 존중하며 마음을 밝히는 등불 같은 삶을 살아간다면 우리의 인생도 누군가의 길을 비추는 따뜻한 빛이 될것입니다
한이수님!
즐거운 불금
신나는
주말
준비
잘 하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