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Wm_7PP39LEw?t=21
이씨조(李氏朝)의 산수화가 이정(李楨)
-김용준(金瑢俊)-1904~1967- 화가, 문필가, 서울 미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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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견 다음으로 강희안(姜希顏), 이상좌(李上佐),등 쟁쟁한 화가들이 있었으나 그보다는
뚝 떨어져 지금으로부터 약 3백 5,60년 전 선조대왕 때에 난 유명한 화가 이정(李楨)을
말하기로 한다.
이정(李楨)은 선조 11년(무인(戊寅)1578)에 생(生)하고 성질이 게으리기 짝이 없어서
자호(自號)하여 나옹(懶翁), 나와(懶窩)라 하였다. 그는 그의 증조부 때부터 조부, 부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름 높은 화가의 집안이었고, 그의 숙부까지도 유명한 화가였다.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숙부 흥효(興孝)의 집에 의하여 자라더니 5세 때 벌써 화재(畵才)를
발휘하니 흥효가 가히 여겨 가법(家法)으로써 가르치니 10세에 이미 대성하였다.
산수에 능하고 인물과 불화(佛畫)를 잘하여 11 세 때 금강산에 들아가 장안사의 벽화산수
와 천왕제체(天王諸體)를 그렸다. 시서(詩書)를 다 잘하였고 불법에도 조예가 깊었으며
소성(素性)이 활달하고 술을 즐겨 하여 하루에 두주(斗酒)를 불사하더니 술로써 병이 되어
30세 되던 해 서경(西京)(평양)에서 객사하였다.
이정(李楨)의 작품으로 유전되어 오는 것이 극히 희소하나 덕수궁 박물관에 소장된
몇 폭의 산수도는 그의 풍모를 추측하여 오히려 남음이 있을 만큼 그의 뚜렷한 개성이
전폭에 창일(漲溢)되고 있다. 더구나 이정(李楨)의 개성은 대작보다도 소품(小品)에 더
강렬하게 비치고 있으니 고적도보(古蹟圖譜)에 오른 <의송망안도(倚松望雁圖)>,
<한강조주도(寒江釣舟圖)>며 <산수도(山水圖)>등을 보면 무질어진 붓끝으로 소호(小毫)
의 용사(容赦)의 여지없이 선획(線畫)과 점(點)과 발묵(潑墨)으로써 혹은 산이 되고 혹은
옥목(屋木)이 되며 혹은 수엽(樹葉)이 되어 근자(近者)는 창울(蒼鬱)하고 원자(遠者)는
표묘(縹緲)하되 또한 그 가운데 호리(毫厘)만한 시기속취(市氣俗趣)가 없으며 여운이
넘치는 작품으로 법을 배웠으되 오히려 법을 이탈하여 소위 전인미답(前人未踏)의
세계를 자유로 독보하였으니 진실로 이정(李楨)은 전부득문(前不得聞) 하고
후부득견(後不得見) 할 화경(畫境)에서 독왕독래(獨往獨來)한 사람이라 하겠다.
인품을 보아 그 작품이 어떠할 것을 알 수 있고 작품을 보아 그 인품의 고하(高下)를
짐작할 수 있는 것은 동서고금의 일반적인 통칙이거니와 이정(李楨)의 그림을 보고
이정의 전기를 읽으매 족히 이 말이 헛되지 않음을 알겠다.
-한문(漢文) 미숙(未熟)하여 원문(原文) 약 130여 자(字) 생략함-
이것은 이정(李楨)의 기록 중에서도 가장 재미있는 대문이니 이 글을 보면 그가 비록
게으르고 가난한 사람일지언정 의(義)에 이르러서는 무섭기가 칼날 같은 사람임을
알겠고 추위에 떨고 있는 자를 볼 때는 입은 옷을 그대로 벗어 주었다니 아무러한
권력의 앞에서도 자기의 성깔을 굽힐 줄 모르는 꼬챙이 같은 성격이나, 그 반면에는
부드럽기 풋솜과 같은 인도심이 가득 한 것을 알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