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1편에서는 도교 수행의 중요한 개념인 성명상수가 무엇인지 살펴봤습니다.
성은 본성과 정신의 수행
명은 생명과 몸의 수행
그리고 중요한 것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닦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오래된 개념을 오늘날 우리의 수행에 적용한다면 어떻게 볼 수 있을까요? 저는 아주 간단하게 몸과 마음을 함께 보는 수행으로 이해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1. 몸을 바꾸면 마음도 달라진다.
우리는 흔히 마음이 먼저이고 몸은 그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제 생활에서는하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반대 방향도 끊임없이 일어납니다. 몸이 긴장하면 호흡이 얕아지고 호흡이 달라지면 감정과 각성 상태에도 변화가 생깁니다. 잠을 제대로 못 자거나 몸이 지나치게 피곤하면 작은 자극에도 예민해질 수 있습니다. 즉 몸의 상태가 마음의 상태를 만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수행에서 몸을 살피는 것은 단순히 건강을 관리하는 일이 아닙니다. 마음을 안정시키는 하나의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2. 우리는 흔히 몸이 피곤하면 마음이 지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 반대는 어떨까요?
마음속에 문득 걱정거리가 떠오르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어깨가 스르륵 올라가 위축됩니다.
불쑥 찾아온 두려움은 명치 끝을 딱딱하게 굳게 만들고
솟구치는 화는 가슴을 뜨겁게 달구며 호흡을 가빠지게 만들죠.
생각과 감정은 단순히 머릿속에 머물지 않습니다.
반드시 몸이라는 무대 위에 자신만의 흔적을 남깁니다.
그래서 진정한 알아차림은
단순히 아 내가 지금 화가 났구나 라는 감정의 이름표를 붙이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방향을 조금 바꿔 몸을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분노가 밀려올 때 내 가슴은 얼마나 조여오는가?
두려움이 찾아올 때 내 배는 어떻게 경직되는가?
지금 내 숨소리는 얼마나 얕아져 있는가?
마음이 몸에 남기는 자국을 가만히 지켜보는 것
그것이 비로소 나와 완전하게 만나는 순간입니다.
3. 이것이 현대적인 성명 상수다.
이 관점에서 보면 성은 알아차림의 방향 명은 몸과 생명의 방향으로 현대적으로 이해해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이것은 전통의 개념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것이지 성 이퀄 뇌 명 이콜 자율신경계처럼 일대일로 동일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전통의 언어와 현대 과학의 언어는 서로 다른 체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둘 사이에 공통된 경험을 조심스럽게 살펴보는 것입니다.
4 수행의 길에는 서로 맞닿아 있는 두 개의 흐름이 존재합니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첫 번째 길은 마음에서 몸으로의 이완입니다.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생각을 깨닫고 불쑥 일어나는 감정을 가만히 관찰하며 그 마음이 몸의 어느 곳에 맺혀 있는지 의식적으로 살피는 여정입니다.
반대로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두 번째 길은 몸에서 마음으로의 깨어남입니다.
땅에 닿아 있는 발바닥의 감각에 집중하고
온몸을 받치는 무게감을 실감하며
척추와 관절이 그리는 섬세한 움직임과 자연스럽게 오르내리는 숨결에 가만히 마음을 놓아둡니다.
지나간 과거나 오지 않은 미래의 생각에 표류하던 의식은 이처럼 몸의 생생한 감각을 충분히 경험하는 순간
비로소 지금 여기라는 단단한 현실로 돌아옵니다.
이것이 바로 몸의 감각을 깨워 마음을 온전히 묶어두는 몸을 통한 알아차림입니다.
5. 기공은 단순히 몸을 풀어 주는 체조에 그치지 않습니다.
동작 속에서 온몸의 감각을 일깨우고 숨결을 따라 마음의 조용히 시선을 두는 일상의 다리이자 깊은 수행입니다. 마디마디 관절을 마찰하듯 천천히 움직여 봅니다.
척추가 부드럽게 마디마디 이어지는 느낌 발바닥이 대지에 단단히 뿌리 내리는 감각 그리고 나를 지탱하는 몸의 온전한 무게감을 가만히 음미합니다.
이때 호흡은 강제로 가다듬거나 일부러 깊게 조절할 필요가 없습니다.
초반에는 의식의 힘으로 움직임과 숨을 정성껏 이끌어 나가지만 일정 순간이 지나면 그 조율하는 손길마저 살포시 놓아줍니다.
내가 숨을 쉬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숨 스스로가 몸 안에서 자율적으로 피어오르고 꺼지는 흐름을 가만히 관조하는 것입니다.
이 원리의 핵심은 바로 유도 후 방임에 있습니다.
시작은 의식적인 정성으로 나아가되 만민에 도달하는 끝자락에서는 모든 것을 자연의 순리에 순응하게 내맡기는 것입니다.
6. 수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조절이다.
수행은 항상 힘을 빼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몸을 움직여야 하고 때로는 힘을 써야 하고 때로는 긴장을 유지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긴장할 때 긴장할 수 있고 이완할 때 이완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그리고 필요할 때 그 상태를 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수행의 깊이는 항상 얼마나 편안한가로 판단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내 몸의 상태를 알아차리고 필요에 따라 조절할 수 있는가?
여기에 더 가까울 수 있습니다.
7. 성명 상수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처음에는 몸과 마음을 따로 봅니다.
몸을 닫고 마음을 닦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알게 됩니다.
몸이 변하면 마음이 변하고 마음이 변하면 몸이 변한다는 것을
그리고 더 깊이 바라보면 몸과 마음을 나누어 바라보는 것 자체가 하나의 분별일 수 있다는 것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성명상수의 방향은 몸과 마음을 둘 다 붙잡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몸과 마음이 본래 하나의 생명 흐름 안에 있다는 것을 직접 알아가는 것입니다.
수행한다고 해서 몸을 버릴 필요도 없고 몸을 단련한다고 해서 마음을 잊을 필요도 없습니다.
성명 상수는 아주 오래된 말이지만
오늘 우리에게는 이렇게 살아날 수 있습니다.
몸을 돌보면서 마음을 깨우고 마음을 깨우면서 몸을 돌보는 것 몸과 마음 어느 하나도 버리지 않는 것
그리고 결국에는 몸과 마음을 둘로 나누어 붙잡지 않는 것
그것이 제가 이해하는 현대적인 성명 상수입니다.
몸을 보며 길들이고 마음을 보며 다스린다.
오늘 하루 몸과 마음이 어떻게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지 조용히 한번 살펴보십시오. 수행은 특별한 장소에서만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이 몸을 느끼는 순간 이미 시작되고 있습니다.
몸과 마음의 길 함께 머물러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