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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풍무(66)
살수는 내 밥이다(2)
"내가 못살아."
픽 웃은 백산은 먹을 것과 여벌의 옷이 들어있는 등짐을 내려놓고
못 속으로 뛰어들었다. 실은 더위에 지칠 대로 지쳐 체면 따질 겨를이
없었고, 워낙 함께 목욕을 해대서인지 별반 어색하지도 않았다.
백산 역시나 물 속에서 옷을 벗어 대중 흔들어 빤 다음 그녀 옷가지
가 널린 근처로 날렸다.
"그것 불편하지 않아?"
여전히 손목과 발목에 살갗처럼 붙어있는 광혈지옥비를 가리켰다.
"보기엔 투박해 보여도 차고 있으면 거의 몰라. 몸의 일부처럼 느껴
지지. 우람한 근육을 가진 사람들과 같다고 보면 되지."
"하긴 그렇긴 하겠다. 나도 이렇게 가슴이 빵빵 튀어나왔지만 불편
한 걸 못 느끼니까. 오빠 우리 여기서 밥 먹자."
문득 생각난 듯 주하연은 손뼉을 쳤다..
"그럴까?"
그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 백산은 한쪽에 풀어 두었던 등짐으로 살짝
손을 내밀었다.
둥실 떠오는 그것들을 허공에서 풀어 수면위로 띄웠다. 빙천비로 차
게 해둔 덕에 한 여름 날씨에도 불구하고 음식들은 처음 담은 상태 그
대로였다.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천천히 끌어당기는 거야. 그리고 먹고 난 다
음엔 다시 제자리로 가져다 둬야하고."
"어? 밥은 바로 옆에서 같이 먹어야 더 맛있는데. 그런데 이것도 재
미있겠다."
주하연의 눈빛이 초롱초롱 빛났다.
"산채!"
낮게 외치며 젓가락을 슬쩍 들어올리자 두 사람 중간에 있던 접시
하나가 주하연 곁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꺄아! 이거 완전히 신선놀음이네?"
눈앞으로 다가온 접시에서 야채 몇 점을 입안으로 가져가며 소리쳤
다. 이어 다시 슬쩍 손을 내젓자 산채 접시는 다시 중앙으로 돌아갔
다.
"이렇게 해서 내공의 강약을 조절하는 거야. 내공은 너무 강해서도
안되고 너무 약해서도 안 돼, 두 가지가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어야만
강함이 나타나는 거거든."
백산은 손을 쓰지 않았다. 접시 쪽으로 눈길만 줘도 곧바로 딸려왔
다가 젓가락질을 하는 순간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우씨 오빠, 산채 조금씩만 먹어. 고기를 그렇게 많이 먹으면 내 건
없잖아."
"그러니까 부지런히 움직여야지. 손 저을 시간이 어딨냐?"
슬쩍 미소를 짓자 백산 앞으로 다가오는 접시들의 움직임이 더욱 빨
라졌다. 무서운 속도로 오가는 접시들의 모습은 마치 움직이는 도검을
보는 듯했다.
지지 않겠다는 듯 주하연도 내공을 끌어올리기 시작하자 두 사람 전
면은 빠르게 움직이는 접시로 인하여 물결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오빠 반칙이야, 그 접신 내 거란 말야!"
손으로 가리켰던 접시를 백산이 가져가자 주하연은 뾰족 소리를 질
렀다. 그러나 백산의 비겁한 행동은 시작에 불과했다.
손을 뻗어내어 접시를 끌어내려 했으나 언제나 백산보다 한발 늦었
다. 종종 백산은 두 개를 동시에 끌어가도 하고, 세 개를 동시에 끌어
가기도 했다.
"그랬다 이거지?"
사악한 미소를 머금은 주하연은 재빨리 빙천수라마공을 끌어올렸다.
쩌-엉!
순식간에 조그마한 못이 꽁꽁 얼어붙자 백산은 주춤 몸을 멈췄다.
그 때를 틈타 주하연은 양손을 거칠게 휘둘러 중간에 있던 모든 접시
를 쓸어갔다.
그 다음 동작은 더 빨랐다. 얼음위로 그것들을 내려놓더니 한꺼번에
얼려버리는 것이었다.
"이제부턴 전부 내 거다?"
"내가 화천비로 녹여버리면 어쩔 건데?"
"어쩌긴 뭘 어째. 그럼 오늘이 오빠 제삿날이지."
하얀 이를 드러내며 배시시 웃던 주하연은 눈앞에 놓인 음식을 음미
하듯 천천히 오물거렸다.
"있잖아, 무공이 참 좋기는 좋다. 얼마나 좋아, 한 여름에 이런 얼음
구덩이 속에서 밥도 먹고. 옛날엔 왜 이런 걸 몰랐지?"
"하연아 그런데 너 이것 녹이고 나갈 자신 있어?"
한 자 두께로 얼어버린 얼음을 가리키며 백산은 물었다.
"그럼 이 정도는 일도 아니지, 오늘 밤 시원하게 자려고 일부러 두
껍게 얼렸어요. 이야합!"
허공섭물로 접시들을 풀밭으로 던져 올린 주하연은 두 팔을 활짝 펴
며 낮게 소리를 질렀다.
찌지직! 찌익! 팟!
순간 수십 조각으로 깨진 얼음조각들이 못 안을 가득 메웠다.
"좀 추워지려 그러네? 안되겠다 나가야지."
몸을 부르르 떨던 주하연은 못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백산이 놓아둔
등짐으로 다가가 그 자리에서 한바퀴 빙그르르 돌아 물기를 털고는 옷
을 걸쳤다.
연한 하늘빛 경장을 걸친 그녀의 모습은 갓 잡아 올린 잉어를 보는
듯 생기가 넘쳤다.
"여기 오빠 옷!"
주하연이 내놓은 옷은 밝은 회색으로 편안한 느낌을 주었다. 처음
백산은 검은색 무복을 선택했으나, 시체 같아 싫다는 주하연 만류에
밝은 회색을 사게 되었다.
"돌아서!"
"우씨, 자기는 다 봐놓고."
툴툴거리며 주하연이 돌아서자 백산은 재빨리 밖으로 나와 옷을 걸
쳤다.
"역시, 오빠는 아무리 봐도 작품이야."
백산의 모습에 눈이 부시다는 듯 주하연은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환하게 웃었다.
"산이라고 춥진 않겠지?"
뉘엿뉘엿 넘어가는 해를 보며 주하연은 주변을 살폈다. 잠자리를 마
련해야 하는데 마땅한 자리가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 한 여름인지라
마른 풀이 있을 리가 없었다.
궁여지책으로 밥 먹기 전에 널어두었던 옷들을 가져와 바위 옆 편편
한 곳에 펼쳤다. 그러자 침상만은 못했지만 제법 푹신한 자리가 마련
되었다.
"오빠 그만 자자! 하연이 되게 피곤해."
기지개를 켜며 늘어지게 하품을 한 주하연은 옷 위로 풀썩 몸을 뉘
였다.
"참! 우리 밥! 다시 한번 보고 와요."
"알았어."
못 가에 둔 등짐 속 음식들을 다시 한번 빙천비로 확실하게 얼린 다
음 주하연이 있는 곳으로 갔다.
주하연에게 한 팔을 양보하고 언뜻 잠이 들었을까. 갑작스럽게 찾아
온 정적에 백산은 눈을 떴다.
여름, 산 속에 정적이 찾아들 경우는 웬만해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다. 호랑이나 곰 또는 다른 맹수가 산으로 들어왔을 때나 아니면 두
다리로 걷는 짐승이 등장했을 뿐이다.
지금 백산의 감각을 자극하는 것들은 후자였다. 극도의 은신술을 펼
쳐 몸을 숨기고 있지만 사람이 분명했다.
"건들지만 않으면……."
주하연을 품안으로 끌어들이며 눈을 감았다. 굳이 다른 사람들의 싸
움에 끼어들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바로 그 순간.
백산과 주하연이 있는 계곡 안으로 은밀하게 숨어드는 자들이 있었
다. 연신 계곡 밖을 흘끔거리며 안쪽으로 들어오는 자들은 등에 업힌
자까지 합쳐 전부 다섯 명이었다.
쫓기고 있는지 그들의 얼굴엔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런!"
못 근처에서 발을 멈춘 한 인물이 낮은 신음을 발했다. 수면을 덮은
얼음 때문에 물 속으로 몸을 숨기려고 했던 계획이 무산되고 말았다.
"양선아!"
"늦었습니다, 사부. 도대체……, 저들이 그랬단 말인가?"
고개를 돌린 인물이 흠칫 놀라며 소리쳤다. 그제야 못에서 3장여 떨
어진 바위 아래 서로 부둥켜안고 자는 백산과 주하연을 발견했다.
'우린 신경 쓰지 말고 왔던 길로 나가. 그럼 아무 일도 없던 게 되
니까.'
"으음! 알고 있었소? 미안하게 됐소이다. 한데 계곡 밖에 적이 있어
서 도망치지도 못할 것 같소. 소생은 사양선(思陽先)이라고 하오."
자신을 사양선이라 소개한 사내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럼 바로 옆에 있는 녀석은 사양후(思陽侯)가 되는 건가?"
"물을 걸 물어봐요, 형이 사양선이면 동생은 당연히 사양후지."
"안 잤냐?"
"바로 옆에서 시끄럽게 구는데 잠을 잘 수 있겠어요. 난 잠귀가 밝
아 조그마한 소리에도 잠을 깬단 말예요. 어디 보자."
하고 어정쩡하게 몸을 일으켜 못 가에 서 있는 자들을 쳐다보았다.
"꼴을 보아하니, 최소한 두 달 이상은 쫓겨다녔고, 살이 썩어 가는
중상인데도 죽지 못한 이윤 원한 때문이 분명하겠군. 오래 힘들 것도
없이 며칠 안에 죽겠구먼. 거기 등짐 안에 음식 있으니까 그거 나눠먹
도록 해요."
"말씀은 고맙지만 더 이상 폐 끼치고 싶지 않습니다. 6개월 동안 도
망 다녔고, 북황련 은영대를 서른 명 이상 베었으면 할만큼 했지요."
사양선은 힘없는 얼굴로 말했다. 대파산에서부터 도주를 시작했지만
북황련 은영대는 강했다. 사곡에서 살아 나온 인원은 전부 20명, 이곳
까지 오는 동안 15명이 죽었다.
이제 더 이상 도망칠 여력도 대항할 힘도 없다.
"그러니까 먹으라는 거야 임마. 왜 그런 말도 있잖아, 배부른 귀신
은 때깔도 좋다고. 그런데 쫓는 놈들이 은영대야?"
은영대란 말에 백산은 느닷없이 소리를 질렀다.
"그렇소이다, 은영대 소속의 암살과 추적 전문인 영향조라는 자들입
니다."
그랬다. 사양선을 비롯한 다섯 명은 혈겸마광인의 공격을 받았던 잠
영루 후예였다. 사양선과 사양후는 쌍둥이로 사예군 아들들이었다.
"알아?"
영향조란 사양선의 말에 백산은 주하연에게 물었다.
"오빠는? 무림인은 내가 아니고 오빠라고, 영향조를 나한테 물으면
어떡해?"
말은 그렇게 했지만 주하연의 입에선 북황련 영향조에 대해 술술 흘
러나왔다.
"조장은 환객(幻客) 자군(紫君)이란 잔데 칠사의 한 명이에
요. 그리고 영향조 인원수는 1백 명이고, 한번 작전을 나갈 때마다 50
명씩 움직인다고 해. 저들이 6개월 동안 쫓겨다녔으면 자군이 왔을 가
망성이 크겠네."
"거봐 다 알고 있으면서."
"그거야 심심해서 정보를 모아본 적이 있었거든, 언젠가 거지할아버
지 병을 고쳐준 적이 있었는데 돈이 없다고 해서 대신 무림인들에 대
한 정보를 달라고 했지. 가만 그 거지할아버지 이름이 뭐더라, 아 맞
다. 파면신개(破面神 )라고 했다."
"악만금? 얼굴에 화상자국이 있는 사람. 아직 살아 있어?"
"응, 너무 건강해서 탈이지. 그런데 오빠가 신개 할아버지를 어떻게
알아? 아, 맞다, 신개 할아버지도 그 때 일원이었지."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등창을 치료해주면서 만난 파면신개는 강호
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었다. 그때 그가 귀마겁에 참여했던
한 사람임을 알게 되었다.
"저기 소협, 몸을 피하시는 게……."
사양선은 다급한 얼굴로 말했다. 못을 얼려 놓은 것이 두 사람 작품
이란 건 알지만 다가오는 자들은 관련 없는 사람들이라 하여 살려줄
자들이 아니다. 잠영루의 어린아이들까지 전부 없앴던 잔악한 자들이
아니던가. 공연한 시비에 휘말린 두 사람이 걱정돼서 하는 말이었다.
"참! 쫓기는 이유가 뭐지? 북황련도 조용한 것 같던데."
"저희는."
"형님!"
사양후가 말을 가로막았다.
"무슨 상관 있냐, 어차피 이곳이 마지막일 텐데, 저희는 잠영루 후
옙니다. 잠영루주였던 사예군 그분은 선친이셨고요."
"헉……! 니미럴!"
첫댓글 즐감하고 감니다
즐~~~~감!
즐독입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즐독하였습니다
잘 보고갑니다
즐독.감사합니다.
즐독 입니다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즐감합니다.
잘읽었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즐감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
재미 있게 읽고 갑니다
항상 건강 하고 행복 하세요
감사 하고 사랑 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0^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