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으면 애가 된다? 반로환동(反老換童)의 진실
흔한 말로 ' 늙으면 애가 된다' 는 말이 있는데 사주의 4개의 기둥중에 년주와 시주의 모습이
같아짐을 의미한다. 사주명리학의 기본적인 근묘화실 이론에서 년주는 초년(어린이), 월주는 청년,
일주는 중년, 시주는 노년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늙으면 애가 된다는 말은 년주와 시주의 비슷함을 의미하는데, 사실 우리의 삶을 모습을 고찰하다보면 초년시절과 노년시절의 유사성에 무릎을 치며 감탄을 할 때가 있다.
먼저 초년시절은 년주가 기준이 되는데 태어나 사춘기 전까지의 시기를 의미하며 전적으로 부모에게 의지한다.
갓 태어난 아이가 할수 있는 일은 없다. 대소변을 가릴수도 없고, 말도 할 수 없다.
오직 울음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뿐이다.
노년은 시주가 기준이 된다. 사회적, 경제적 은퇴(대략 70세 전후)후 자식에게 의지하는 사기를 의미한다.
노인중에 노인, 근력을 잃고 거둥이 불편하며, 병들거나 다치면 더욱 그렇고 치매라도 올라치면 더 심해진다.
심지어 대소변을 스스로 못가릴수가 있어서 자식이나 간병인이 수발을 거든다.
차이점은 아이는 부끄러움을 모르지만, 쇠약한 노인은 이를 부끄럽게 여긴다.
몇년전 침대에서 넘어져 골반을 다쳐서 거동을 못하시다 올해 돌아가신 95세 큰 이모님은
자신의 대소변을 받아주는 간병인에게 늘 미안한 마음을 가지셨다고 한다.
아이는 자란다. 말을 배우게 되고, 조금씩 자신이 할수 있는 일이 늘어난다.
엄마가 해주던 세수, 이닦기, 옷입기도 자기가 직접 할 수 있게 된다. 년주의 성장을 의미한다.
노인은 쇠약해진다. 말도 어눌해지고, 조금씩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줄어든다.
스스로 하던 세수, 옷입기, 보행도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할 수 있게 된다. 시주의 쇠퇴를 의미한다.
어린아이가 사회활동을 하지 않으니 어린시절에는 체(體)가 중심이 된다.
부모와 조부모, 형제등의 가족의 역할이 중요하다.
노인은 이제 사회생활도 끝나니 청년, 중년시절의 용(用)의 중심에서 체(體)중심의 생활로 바뀐다.
자식, 손주, 친구등이 중요해진다. 년주의 시절이나, 시주의 시절에는 체(가족)이 중심이 되는 이치이다.
아이는 잘 삐지기도 하고 잘 운다. 자기가 바라는 것을 못하거나 얻지 못할때 그러하다.
노인도 잘 삐지고 서러워 한다. 이전에 했던 것을 나이가 들어 못하거나, 남의 도움을 받아야 할 수 있으니
그 점이 서럽다. 차이점은 아이는 드러내놓고 울고, 노인은 속으로 서러움을 삼키고 운다.
나이를 먹을수록 아이는 독립성이 강해지지만, 노인은 의존성이 강해진다.
년주의 시절에는 내가 아프거나 가족의 경조사에 부모의 손을 잡고 병원이나 식장에 갔었다.
시주의 시절에는 내가 아프거나 가족의 경조사에 자식의 부축을 받아 병원이나 식장에 간다.
어릴때나 늙어서나 누군가에게 의지해야 하는 것은 같다.
아이의 기준(년주)에서는 월주는 가까운 미래이다. 곧 청년이 되고 사회활동을 시작할 것이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한다. 제약이 풀리고 하고 싶은 일을 하거나,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월주는 아이에게 가까운 미래가 되니 장성하여 부모의 품을 떠나 사회인으로 본격적으로 활동하며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는다. 시주는 아이가 생각하고 싶지 않은 아주 먼 미래이다.
보송보송한 피부가 쭈글해지고 꼿꼿했던 허리가 구부정해지는 노년이니 생각하기도 싫을 것이고
생각도 잘 안한 것이다.
노인의 기준(시주)에게는 일주가 가까운 과거이다.
' 나도 왕년에는' 을 외치는 노년이 보내왔던 가까운 과거이니 기억도 추억도 생생하다.
월주는 청년시절의 기억과 추억이니 생각이 나기도 하고 기억이 왜곡되기도 한다.
길가는 청년들을 보면 과거의 화려했던 시절을 그리워하니 먼 과거가 되며 부모와 형제에 대한
기억이기도 하다.
년주는 아주 먼 과거를 의미하니 어린시절의 추억과 기억, 조부모의 기억이다.
할머니 이름이 가물가물하다, 할아버지 이름은 아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주 먼 오래된 기억이니 더욱 희미함을 뜻하는 데 가끔씩 손주를 돌보면서 잊혀졌던
자신의 어린시절을 기억할 수 있겠다.
년주와 시주는 비슷하다. 목화토금수로 오행이 흘러가고 음양이 바뀌듯이
사람은 년주로 시작해서 시주로 끝난다. 그 시작과 끝의 모습이 비슷하니 반복되고 순환된다.
무협지에 보면 반노환동이란 말이 있는데, 고수가 극강의 내공으로 인해서 환골탈태하여 다시 젊은 모습,
어린 모습으로 돌아간다는 뜻인데, 그 본의와는 차이가 있지만 사주명리학에서도 반로환동이 존재한다.
일주의 시기를 거쳐 시주의 시기로 접어들면, 다시 어린이와 같은 모습이 된다.
늙으면 애가 된다는 말은 년주와 시주의 싱크로율을 높다는 뜻을 의미하며
우리의 삶속에서 확인되어 진다.
삶의 모습은 명리학의 이론이 반영되고
명리학의 이론은 삶의 모습에 투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