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 있는 선수는 열심히 뛰는 선수를 이길 수 없고, 열심히 뛰는 선수는 즐기면서 플레이하는 선수를 이길 수 없다."
이 명언은 현재 프리미어쉽 토튼햄에 소속되어 있는 바로 이영표선수가 남긴 말이다.
'조가 보니또'에서도 이영표선수에게 '그라운드의 음유시인'이라는 수식어를 붙혔는데 나 또한 이 말에 동감한다.
늘 즐기는 축구를 지향하는 이영표는 한때 드리블하는 재미로 축구에 빠져 있었다. 헛다리짚기 기술은 초등학생 때부터 익혔다는 게 본인의 설명이다.
"한동안은 헛다리짚기가 너무 재미있어 매일 시간가는 줄 모르고 연습했던 기억이 난다. 정말 너무너무 재미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헛다리짚기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대신 새로운 재미를 찾았다.
그것은 바로 패스다. 뒤늦게 패스야말로 축구의 진정한 즐거움이며 색다른 묘미라는 것을 느꼈다. 최근에는 패스에 푹 빠져 살고 있다."
얼마 전 잉글랜드 현지 인터뷰 때는 또 한 번 성장했다는 인상을 줬다.
"내게 축구는 한 마디로 말해 즐거움이다. 그런데 그 즐거움이란 여러 가지 뜻을 포함하고 있다. 즐거움은 방종이 아니다.
자유가 넘치면 아무 거리낌 없이 함부로 행동하는 방종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진정한 자유, 그리고 참 즐거움이란 방종과는 거리가 멀다. 절제가 필요하다.
자신을 충분히 절제하면서 즐거움을 만끽하고, 자신을 철저히 통제하면서 기쁨을 만끽해야 비로소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또 자유는, 그리고 즐거움은 규칙을 지킬 때 더 큰 행복감을 준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축구에서의 기쁨은 일정한 규칙 안에서 룰을 따르는 것이다.
물론 정직과 페어플레이는 너무나도 당연한 기본 밑바탕이다. 최소한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세상에 축구를 '즐거움'이라고 주저 없이 표현할 수 있는 선수가 몇이나 될까. 또 그 즐거움의 속뜻을 이처럼 명쾌하게, 그리고 철학적으로 읊어낼 수 있는 선수는 얼마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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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표는 솔직하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어설프게 꾸미려 들거나, 과대포장하려는 법이 없다. 오히려 겸손하다. 객관적인 평가에 비해 자신의 능력을 낮춰 이야기할지언정 높여 말하진 않는다.
그래서 한번은 "일부에서는 이미 이영표 선수의 기량이 R.카를로스 못지않다는 평가가 나오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이에 이영표는
"나는 그리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래도 일단 내 실력을 높이 평가해준다는 뜻일테니 솔직히 기분은 좋다. 그렇지만 나는 여전히 부족한 게 사실이고 더욱 발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 뿐이다."
과거 이영표는 "자신을 뛰어넘으면 그 누구라도 뛰어넘을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어 토튼햄 이적이 임박한 상황에 "자신을 뛰어 넘었느냐"고 질문했다.
그런데 대답이 참으로 걸작이다.
"나는 결코 내 자신을 뛰어넘을 수 없다. 내가 나를 초월하면 그것은 이미 내가 아니다. '나를 뛰어넘으면 누구라도 뛰어넘을 수 있다'고 말한 것은 영원히 노력하고 또 노력하겠다는 마음의 표현, 의지의 표현이다."
축구 선수로서 이루고픈 궁극의 목표를 물었을 때의 답변 또한 예사롭지 않았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너무 놀랍고 경이로워 할 말 자체를 잃었다는 게 사실에 가깝다.
"내 궁극의 목표는 오로지 하나, 지금보다 더 재미있게 축구를 즐기는 것이다."
대개의 선수들은 훗날 한국(조국) 축구사에 어떤 인물로 남고 싶으냐고 질문하면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싶다"고 말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영표는 달랐다. 평범치 않았다. 뇌리를 강하게 파고든 그의 대답은 다음과 같다.
"내가 한국 축구사에 이름을 남길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더군다나 특별히 '어떻게 기억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다.
그러나 만약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날 기억해주는 팬이 있다면 그들 각자의 기억 속에 들어있는 그 모습이 진정한 이영표의 모습일 것이다."
토튼햄 이적을 목전에 두고 있을 무렵 "향후 진로에 대해 한 마디 해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는데 당시 이영표는 의외의 목소리를 내놓았다.
"축구를 '어디서' 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정작 중요한 문제는 '어떻게' 하느냐는 점이다."
독자들께 돌발적인 퀴즈를 하나 내볼까 한다. 만약 이영표에게"지금의 모습에 만족하느냐"고 묻는다면 그는 어떤 대답을 내놓을까.
정답을 공개한다.
"만족하지 않는다. 갈수록 경험이 더해지면서 느끼는 것은 축구가 정말 어렵다는 점이다. 축구, 너무 어렵다. 그래서 그런지 내 실력에 만족해 본 기억이 전혀 없다.
아마도 운동을 그만두는 날까지 나는 만족하지 못할것같다. 그러나 한가지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축구를 하는 동안에는 항상 즐겁게 플레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점이다. 거듭 말하지만 나는 축구 그 자체가 즐겁다."
이영표는 2006년 개인적으로 2번째 월드컵을 맞는다. 개인적인 목표나 각오가 분명 있을 것이다. 꿈의 무대로 일컬어지는 월드컵에 나서면서 꿈을 갖지 않는다면 차라리 그게 거짓일 것이다.
"월드컵은 축구선수라면 누구나 참가하고 싶어한느 최고의 무대다. 그리고 모든 선수가 최상의 플레이를 펼치길 원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오랫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모두 표출할 수 있다면 더는 바랄 게 없을 만큼 기쁠 것이다. 하지만 인생을 살아본 결과 모든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있다.
예를 들어 농부가 아무리 최선을 다해 씨를 뿌리고 밭을 갈더라도 날씨가도와주지 않으면 원하는 만큼의 수확을 거두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축구도 같은 선상에서 이해된다. 최선을 다해도 뜻한 결과를 얻지 못할 수 있다. 이같은 뜻밖의 변수 때문에 섣불리 어떤 장담을 늘어놓기가 곤란하다.
하루하루 부지런히 최선을 다하면 그 열매는 내일로 이어진다는 신념 아래 부단히 실력을 쌓아 월드컵에 나설 것이라는 각오 정도는 밝힐 수 있지만, 당장 특별한 목표를 공개적으로 말하긴 무리일 듯하다.
하지만 자신감 충만하다. 왜냐하면 그동안 최선을 다해 왔고, 앞으로도 내 모든 능력을 월드컵에 쏟아 부을 수 있도록 기량 정진에 매진할 것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