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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香氣) : ‘숲속의 향기로운 풀’
논어 학이편(學而編)에서 공자는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노여움을 품지 않으면 이 또한 군자가답지 않은가!’(人不知而不溫 不亦君子乎)라고 군자 됨에 관해 말했다. 한때 공자는 진나라와 채나라 사이에서 곤경을 당해 7일간 밥을 지어먹지 못한 어려움을 겪었다. 이런 상황에서 공자가 제자들과의 문답을 통해 한 대화가 순자(荀子)의 유좌편(宥坐編)에 나온다. ‘향기로운 풀이 깊은 숲 속에서 자라지만 보는 사람이 없다고 해서 향기롭지 않은 것이 아닌 것처럼, 군자가 배우는 것은 세상에 나아가 쓰이기 위해서가 아니다’라고 한 말이다.(且夫芷蘭生於深林 非以無人而不芳 君子之學 非爲通也) 즉 공자에게는 군자란 세상에서 인정을 받아 등용되지 않을지라도, 아무도 보아주지 않는 숲속의 난초처럼 품격 있는 향기를 발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옛 선비들은 이러한 군자의 향기를 가까이 두기 위해 매화, 난초, 국화와 대나무(죽)를 사군자(四君子)로 칭하여 이들을 그리기를 좋아했다. 옛사람들이 이들을 사군자라 하여 사랑하게 된 것은 어렵고 험난한 환경 속에서 뜻을 굽히지 않고 더욱 꿋꿋하고 아름답게 서 있는 그 성품을 높이 산 것이다. 선비들이 이들을 보며 스스로의 인격을 함양하고 마음 가짐을 새롭게 하였다. 따라서 시와 그림으로 그리고, 실제로 꽃을 가꾸며 늘 곁에 두고 그 뜻을 새기고자 하였다.
이처럼 향기는 주로 상징적인 이미지로 동양에서 사용된 반면, 팔레스타인이나 중동지역에서는 예물과 향품의 기능을 하였다. 아기 예수의 탄생을 경배하기 위해 찾아온 동방박사들은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 이중 유향과 몰약은 향기를 내는 예물이다. 이 향료는 창세기에도 나온다. 야곱이 애급으로 곡식을 사러가려는 아들들에게, 너희는 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그릇에 담아가지고 내려가서 그 사람(총리 요셉)에게 예물로 드릴지니 곧 유향 조금과 꿀 조금과 향품(방향,芳香)과 몰약과 유향나무열매(피스타치오)와 감복숭아(아몬드)이니라‘고 했다. 유향은 예물로서만 사용된 것이 아니라 출 애급 시 이스라엘의 성막에서 사용된 중요한 향품의 하나로서 소제와 함께 불살라지고, 전설병과 더불어 상위에 두었던 향료였다. 오늘날엔 가톨릭 미사에서 사용된다. 이처럼 유향은 종교의식에 사용되었다. 고대 이집트인들과 마찬가지로 인도에서도 이 향을 피우면 악령을 쫓아낸다고 믿었으며, 한때에는 환자를 치료하는 방법으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몰약 또한 강한 향기를 내는 아름다움과 사치의 대상으로 ’시편‘과 ’잠언‘ 그리고 ’아가서‘에 자주 등장한다. 몰약은 유대인의 장례 때에도 사용되었다.’액체 몰약‘은 회막을 거룩하게 보이기 위해 바르는 관유의 한 원료였으며, ’몰약을 탄 포도주‘는 일종의 마취제로 예수님이 못 박하시기 직전에 주어졌다.
유향은 역사상 가장 오래된 향료 중의 하나로서 고대 오리엔트를 통해 이집트로 다시 그리스와 로마로 전해졌다. 이집트를 비롯한 고대민족들은 유향을 사체(死體)의 방부나 화장할 때 그 소향료(燒香料)로 대단히 중요시 했으며 지금도 중요한 방향성수지로서 옛날처럼 귀한 산물로 취급되고 있다. 몰약은 유백색으로 밀크의 방울이 굳어진 것 같은 유향과는 대조적인 향기를 풍긴다. 유향이 고대동방, 이집트, 그리스, 로마를 통해서 향료(香料)의 대표 역할을 한 반면 몰약은 오히려 의약품으로 향고(香膏), 향유(香油)의 부향료(賦香料)의 주체였다. 몰약으로 향을 넣은 향고나 향료는 고대이집트, 그리스, 로마로 보급되어 현대유럽의 화장품의 원류(源流)를 이루었다.
인류가 발견한 가장 오래된 향고는 기원전 14세기 이집트 제18왕조의 파라오(BC1580-1314)인 투탕카멘의 무덤 안에서 석고로 만든 항아리에 채워진 것이었다. 20세기 발견 당시에도 은은한 향기가 남아있어 세계인들을 놀라게 했다. 고대에 이러한 향의 제조자는 주로 제사장이나 주술사였으며, 그리스 로마시대에는 화학자들이 향료를 제조하여 새로운 추출법을 개발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향료가 유럽에 전해진 것은 예루살렘 성지를 투르크로부터 탈환하기 위해 떠났던 십자군원정(1091-1270)을 통해서였다. 그 후 15세기에는 수도원의 수도사들에 의해 만들어졌고, 17-18세기에는 과학의 발달로 화학자들의 몫이 되었으며, 19세기에는 전문 조향사들이 직접 향수회사를 설립하여 다양한 브랜드를 선보였으며, 20세기에는 고급의상회사들이 패션을 완성시키는 마지막 단계의 상품으로 향수시장에 뛰어들었다.
이와 같은 향수가 중세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이유로는, 몸에서 풍기는 냄새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 당시 종교적 이유로 목욕은 죄악시되었고, 목욕탕에서 전염병의 감염우려도 있어 건강에 나쁜 행위라는 의식이 팽배하였다고 한다. 또한 그 당시 수세식변기가 없어서 사람들은 아무 곳에서나 배설을 했기 때문에 역한 냄새를 지우기 위해 향수가 만들어졌다는 주장도 있다. 이 역겨운 악취의 처리에는 오랜 시간이 소요되었다. 18세기 런던의 시계수리공인 알렉산더 커밍스가 단순한 구조의 수세식변기를 개선하여 현대식 화장실로 가는 발판을 마련한 후, 상하수도시스템이 설치됨으로써 악취문제가 해결되었다. 그러고 보면 인류가 수세식변기와 상하수도시설을 완성하기까지는 차마 문명인이라고도 일컬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처럼 향수는 인간의 아름다움과 품위를 결정하는 화장품의 완성판이 되었다. 비누도 그럴 때가 있었다. 1960년의 강신재의 소설 ‘젊은 느티나무’ 첫 부분은, ‘그에게서는 언제나 비누냄새가 난다’라고 시작된다. 아마, 지금 같으면, ‘그에게 언제나 상큼한 향수 냄새가 난다‘라고 하지 않을까?
으레 향수에는 여인들의 이야기가 따른다. 복음서에는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한 옥합을 깨뜨려 예수의 머리에, 발에 부어 장례를 미리 준비했다는 말씀이 있다. 이와는 다른 경우이지만, 클레오파트라는 로마의 시저와 안토니우스를 자기의 방으로 끌어들여서 네롤리, 쟈스민, 제라늄 향유를 배합한 향으로 유혹하여 로마의 군대를 결국 철군하게 하여 이집트를 구했다고 한다. 그리고 마리린 몬로의 잠옷이란 샤넬 No.5 일화도 유명하다.
한편 세상의 모든 냄새를 소유하고 지배하고자하는 욕망을 지닌 사악한 주인공이 최상의 향수를 얻기 위해 스물다섯번이나 살인을 마다하지 않은, 엽기적인 미학을 다룬 ‘향수’란 소설이 있다. ‘좀머씨 이야기’를 쓴 독일 작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작품이다. 냄새에 관한 천재적인 능력을 타고난 주인공 장 바티스트 그르누이가 향기로 세계를 지배하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이다. 그는 1738년 여름, 파리의 음습하고 악취 나는 생선좌판 밑에서 일하는 젊은 여인의 사생아로 태어나자 버려졌다. 그로부터 그는 떠돌이 생활을 시작하며 이 세상의 온갖 냄새에 비상한 반응을 보이는 초능력으로 파리에서 향수제조를 하게 된다. 그러나 증류법의 향수제조에 한계를 느낀 그는 향수의 본 고장인 프로방스의 그라스에 도착한다. 어느 날, 그는 미세한 향기에 이끌려 그 황홀한 향기의 진원인 한 소녀를 찾아내어 그녀를 목 졸라 죽이고 그 향기를 자신의 것으로 취한다. 병적으로 향기에 집착하던 그는 사람들의 사랑을 불러일으켜 모든 사람들을 매혹시킬 수 있는 최상의 향기를 만들기 위해 연속적으로 살인을 저지르고 결국 자신도 끔찍한 최후를 맞는다.
이 소설의 무대인 그라스는 16세기 중반 가죽 무두질의 본 고장이었다. 전 세계 향수 원액의 70%를 공급하며 '향수의 수도'라 불리는 그라스는 남동부 프랑스의 지중해 연안에 자리하여 1년 내내 꽃이 피어 향수 제조를 위한 최적의 환경이다. 무두질은 동물의 원피에서 가죽제품을 만들기 위한 피혁을 분리해내는 공정으로 살점이 붙은 원피를 끓이는 과정에서 악취가 동반했다. 무두질을 마친 가죽에도 여전히 악취가 배어 있었다. 이들은 그 당시 이탈리아에서 도입된 향료를 발전시키었다. 그중 한 장인이 절묘한 해법을 내놓았다. 무두질 장인인 갈리마르(Galimard)는 마을에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식물 염료 추출법을 응용해 향을 품은 오일을 가죽 장갑에 뿌려봤다. 이것이 대 성공이었다. 향기 나는 가죽 제품에 대한 소문은 유럽의 왕족과 상류층 사이에 빠르게 퍼졌고 주문도 폭주했다. 가죽공방과 무두질 장인들은 저마다 조향사를 고용하기에 이르렀고, 더 좋은 향을 만들기 위한 경쟁이 본격화되었다. 그라스가 세계 최고의 조향생산지이자 세계 향수 및 아로마 산업에 향기로운 혈액을 공급해주는 심장으로 자리매김한 첫걸음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런데 향기란 꽃과 풀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과일에서도 나온다. 독일의 시인이자 극작가였던 요한 프리드리히 실러는 썩은 사과를 책상 서랍에 넣어두고 적절한 시어가 생각이 나지 않거나 영감이 떠오르지 않을 때에는 썩은 사과냄새를 맡으며 시적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이런 일화가 있었다. 괴테가 친구인 실러의 집을 찾아 갔을 때 마침 그가 부재중이어서 귀가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기다리는 동안 괴테는 실러의 책상에 앉아 뭔가 쓰려고 했을 때 악취가 풍기어 그 진원지를 찾아 서랍을 열었더니 썩은 사과더미가 있음을 발견했다. 그는 역겨운 냄새로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러자 실러의 부인이 친절하게 괴테에게 썩은 사과의 향기가 실러에게 영감을 주기 때문에 그것 없이는 시 쓰는 일과 생활자체도 할 수 없음을 설명해주었다고 한다. 아주 오래된, 고1 시절에 국어선생님 한분이 폴 발레리가 썩은 사과냄새를 맡으며 시를 썼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마 그 선생님께서 잘 못 알고 계셨던 것 같다. 폴 발레리는 지중해 연안의 프랑스의 작은 항구도시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는 지적 문제에 몰두하는 것을 중시했고 실러와는 달리, 시적 영감이라는 것을 가차 없이 공격했다. 발레리의 작품에는 그가 평생 동안 감각적 쾌락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는 증거가 충분히 나타나 있다. 가을의 과일인 그의 시 ‘석류’를 감상해보자.
석류
폴 발레리/김현 역
'너희들이 감내해 온 나날의 태양이,
오, 반쯤 입 벌린 석류들아,
오만(傲慢)으로 시달림 받는 너희들로 하여금
홍옥(紅玉)의 칸막이를 찢게 했을지라도,
비록 말라빠진 황금의 껍질이
어떤 힘의 요구에 따라
즙(汁)든 붉은 보석들로 터진다 해도,
이 빛나는 파열은
내 옛날의 영혼으로 하여금
자신의 비밀스런 구조를 꿈에 보게 한다.'
가을 햇빛에 익은 과일은 석류나 무화과와 같이 꽉 찬 내부의 힘에 의해 터지는가 하면, 사과나 모과처럼 과육과 껍질을 알차게 영그는 경우도 있다. 무화과가 북풍에 떨어지는 것을 보고 쓴 니체의 ‘무화과’는 가을날 읽기에 참으로 향기로운 시이다.
무화과
프리드리히 니체/박 성현 역
‘무화과 가 떨어져 내리고 있어
부드럽고 달콤하게 떨어져 내리며
발그레한 살갗이 벌어져
나는 익은 무화과를 흔드는 북풍
내 가르침은 무화과 같이 떨어져
그 즙을 마시고 그 달콤한 살을 씹어
세상은 온통 가을이잖아!
하늘 맑은 오후야!‘
지금까지 꽤 지루하게 향기에 관해 이야기를 늘어놓은 것은 ‘모과’를 위함이었다. 동네 바로 넘어 작은 공원이 있다. 가을이오면 단풍잎으로 둘러싸인 공원풍경이 아늑하다. 봄에는 살구나무에 과물이 열리고 가을엔 모과나무에 황금빛 모과들이 주렁주렁 달린다. 비바람이 불거나 서리와 눈이 내리는 날엔 그 중력을 이기지 못하여 ‘툭 툭’ 둔탁하게 모과가 땅으로 떨어진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모두 눈독을 드리지만 운 좋은 날엔 몇 개 씩 두둑이 전리품을 들고 올 수 있다. 모과는 서양에서 ‘황금사과’라고 불리지만, 어쩐지 약간 투박하기도 하며 소박한 우리의 모습을 닮았다. 이런 모과로 청을 만들어 추운겨울에 그 은은한 향기를 차로 마시는 즐거움이 있다. 남은 모과는 나무그릇에 담아 책상위에, 안방탁자에 놓아두고 지난 가을의 향기를 즐기고 있다. 눈과 서리를 맞은 과물은 얼마 지나지 않아 갈색으로 변하고 물러져서 썩는다. 비록 썩어가는 모습이지만 모과는 아직 지난 가을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어 고마울 뿐이다. 공자가 말했듯이 누가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도 노여움을 품을 필요가 없으며, 보아주는 사람이 없어도 마음 쓸 이유가 없는 나이가 되었다. 불의한 세상에서 권력은 모든 악취를 풍긴다. 불교 가르침에는 ‘악을 짓지 않고 선을 받들어 행한다(諸惡莫作 衆善奉行)는 말이 있다.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되어야함이 중요하다. 수신(修身)이나 제가(齊家)만 잘하여도 훌륭하다. 굳이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를 고집하다가 불행해질 필요가 있을까? 공자와 부처도, 예수님도 치국평천하를 하지 않았다. 오직 ‘숲속의 향기로운 풀’처럼 이 땅에 향기만을 남기시고 가셨다. 실러는 아니지만 썩어가는 모과를 보며 한번 써본 시이다.
‘모과 향
모과나무를 한번 올려다봐
거긴 하늘높이 차양을 치듯
무르익은 들판이 되어버렸네
온통 황금색깔로 풍요롭게
열려있는 무게들의 배열은
가을빛을 빚어내고 있잖아
그 빛들을 모아 그릇에 담아
은은히 스미는 향기를 맡아봐
그건 그니가 숨겨둔 흔적이야.
이제 이틀 후이면 아기예수께서 이 땅에 평화의 왕으로 오신 날이다. 이 평화는 누릴 자격이 없는 자들에게 깨어진 관계를 회복시키라고 주신 것이다. 바라기는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적대관계에서 회복되어 그분이 주시는 참 평화의 향기를 누렸으면 좋겠다. 샬롬!
첫댓글 좋은 글 감사합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