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중개업소가 즐비하게 늘어서있는 성남시 판교동 취락지구는 을씨년스런 날씨만큼이나 분위기가 가라앉아 있었다.
40여개의 부동산 가운데 문을 연 업소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 "청약통장 상담사절"을 써 붙인 각각의 공인중개사무소 내부는 사무 집기마저 이리저리 팽개쳐진 채 방치된 곳이 적지않다.
"성남거주 40세 이상, 10년 이상 무주택 세대주" 청약 통장이 8000만원에서 1억원의 프리미엄이 붙어 거래되고 있다며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소문의 진앙지"임을 실감케하는 모습은 흔적조차 찾기가 힘들었다.
문을 연 한 부동산 사무소에 들어가 청약 통장 얘기를 꺼내니 대뜸 손사래부터 친다. "청약통장 상담 같은 것은 일절 안 합니다. 돌아가세요."
정부가 판교 투기에 대해서는 철저히 단속하겠다는 입장을 거듭 천명해서인지 이 곳 부동산들 사이에서는 청약 통장 거래에 대한 경계감이 팽배한 분위기다.
반면 닫혀 있는 공인중개사 사무소 입구에 적혀진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어 "성남에 거주하고 있고 40세가 넘은 10년이상 무주택 세대주의 통장을 팔려고 한다"고 운을 띠워봤다.
"지금 팔면 8000만원을 받을 수는 있지만 당첨이 유력해 보이니 조금 더 가지고 있다가 당첨되면 2억원 이상 받고 팔아라"는 답이 돌아온다.
그러나 대부분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들의 말은 이와는 다르다.
이 ?P공인 관계자는 "중요한 사실은 청약통장을 그런 고가에 거래하는 것 자체가 무모한 짓"이라고 강조한다.
가장 당첨확률이 높은 40세 이상 10년 연속 무주택 성남 거주자의 경쟁률도 190대 1로 추정되고 아파트에 따라서는 그 보다 높을 가능성이 큰데다, 5년 동안 재산권 행사를 제한 당하기 때문에 이런 거래를 하는 게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S공인 관계자도 "당첨 확률이 200대 1에 육박하는 청약 통장을 누가 1억원씩 주고 사겠느냐"고 반문하며 "설사 자금력이 있어도 5년 뒤에 가서 1억~2억 먹겠다고 지금 1억을 태울 사람이 있겠느냐"고 말했다.
실제 8000만원을 프리미엄으로 받을 수 있다는 소문이 퍼져나가면서 이 곳 부동산에는 "내 통장 좀 팔아달라"는 식의 문의전화가 많게는 하루 100통씩 폭주하지만 사겠다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설명이다.
그럼 "40세 이상 10년 연속 무주택 성남 거주자 청약통장=8000만~1억원" 소문의 진상은 뭘까.
현지의 공인중개사들은 부동산 브로커를 지목하고 있다. 브로커들이 분양이 이뤄진 후 당첨된 청약통장을 높은 값에 불법거래시키기 위한 사전작업으로 "거래의 실체"없이 통장값을 부풀렸다는 것이다.
미리 8000만~1억원의 웃돈 얘기를 흘려 분위기를 띄우면 몇 달 후 분양에 당첨된 통장에 붙는 프리미엄이 훌쩍 커지고, 수수료로 거액을 챙길 수 있다는 얘기다.
이 관계자는 "어차피 거래가 안 되고 있는 상황에서 브로커들이 바람을 잡는 경우가 많은데 8000만원 윗돈 거래 소문도 브로커들이 의도적으로 냈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공증을 받은 상태에서 "40세 이상 10년 무주택 성남 거주자 청약통장"이 1000만~2000만원에 거래됐다는 얘기는 들어봤지만 분양 뒤에 당첨 통장에 거래이 얹혀져 거래되는 것이 더 문제가 될 것"이라며 "정부는 판교 시범단지가 분양된 뒤 불법거래되는 당첨통장을 단속하는데 더 힘을 쏟아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