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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풍무(70)
싸움은 봐줘가며 하는 게 아니다(2)
사양선은 저 멀리 검게 보이는 곳을 가리켰다. 울창한 수림으로 뒤
덮인 그곳에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무인들이 숨어있었던 것이다.
"그냥 숨어만 있어?"
"네, 별다른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거 참 이상한 노릇일세……. 으응?"
고개를 갸웃하던 백산의 눈에 일순 광채가 서렸다. 오른 편 숲에서
인기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왔으면 모습을 드러내야지."
바닥을 살짝 굴려 돌멩이를 끌어올린 백산은 인기척이 감지되었던
곳을 향해 사정없이 뿌렸다.
슈아악!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두 개의 돌멩이가 수풀 속으로 파고들었다.
"으헛!"
낭패한 소리와 함께 두 개의 신형이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순식
간에 삼 장 높이로 솟구친 두 사람은 각자의 무기를 뽑아들며 뒤편 나
무를 찼다.
우두둑!
아름드리 소나무가 뚝 부러지고 두 사람은 백산을 향해 몸을 날리며
고함을 내질렀다.
"군주님을 내놓거라!"
"어라? 얘들은 또 뭐야?"
순식간에 10여 장을 단축하며 무기를 뻗어내는 두 명을 백산은 의아
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언뜻 보기에도 상당한 고수들이었다.
청룡언월도와 비슷한 무기와 6척에 달하는 길다란 장검에서는 푸른
광채가 일렁였다. 강기를 터득한 무인이 아니라면 결코 불가능한 현상
이었다.
더구나 두 사람은 군부에서나 입는 갑옷을 입고 있다. 청룡언월도와
비슷한 무기를 든 자는 일상적인 갑옷이었고, 6척 장검을 들고 있는
자는 백색 갑옷을 입었다.
문득 주하연을 찾으러 온 왕부 인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하지만 주하연의 말을 들어보지도 못한 상황이다. 조심해서
나쁠 게 없다는 생각에 그녀를 품안으로 끌어들였다.
"요즘 얘들은 왜 반갑다는 인사를 칼로 대신하는지 몰라."
무상신법을 펼쳐 물러나며 이죽거렸다.
"이놈! 어디 감히 군주님의 옥체에 손을 대느냐?"
백산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백산을 향해 호통을 내지른 자는 남
경왕부 4신위 중, 대형격인 광양신장 천괄이란 자였고 그 곁에 있는
인물은 백양신장(白楊神將) 갈영상(乫英相)이었다.
천괄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상대의 몸놀림, 지면을 스치듯 물러나
는 가공한 경공은 결코 자신에 비해 하수가 아니라는 반증이었다.
"안고 가는 게 훨씬 정스럽잖아. 그럼 허공섭물로 끌고 가리?"
푹푹 찌는 여름임에도 불구하고 무거운 갑옷을 걸친 자의 모습에 내
심 실소가 흘렀다.
"하연아 아는 사람이냐?"
"응! 왕부에서는 4신위라 불러."
백산의 품에서 폴짝 뛰어내린 주하연은 환하게 웃으며 앞으로 내달
렸다.
"관우 할아버지! 백양 할아버지!"
그녀가 천괄을 부르는 호칭은 관우였다. 천괄이 들고 있는 범천언월
도( 天偃月刀)라는 무기가 삼국시대 관우의 청룡언월도를 닮았다고
하여 그녀가 붙인 별칭이었다.
"군주님!"
감격한 얼굴로 천괄과 갈영상은 그 자리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근데 복장이 왜 그래?"
갑옷 차림의 둘을 번갈아 보며 주하연은 놀란 듯 물었다. 막 전쟁터
에서 돌아온 사람처럼 보였다.
"그러니까 군주님으로 변장한 홍아가 왕부로 돌아오신 다음날 바로
출정했습니다."
천괄은 그간의 사정을 간단하게 설명했다. 감숙성 근처에서 세력을
모으는 토번족을 정벌하라는 황제의 칙령이 도착해 어쩔 수 없이 왕부
를 떠나야 했다.
급하게 떠났기에 주하연이 있던 별장의 습격소식도 알지 못했다.
변황에 도착해서 별장이 피습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봉선군주는 무사
하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런데 1개월 전에 왕부에서 다시 연락이 왔었습니다. 왕부로 돌아
온 이는 군주님의 몸종인 홍아였다는 소식과 함께, 군주님은 혈마총으
로 들어갔다고 하였습니다."
질겁한 왕야는 자신들을 돌려보냈고, 부랴부랴 중원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중원에 와서도 정신 없이 뛰어다녔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군주님. 소신들을 벌하여 주십시오."
"할아버지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그래요. 홍아가 내 역할을 잘해서
그런 거지. 그만 일어나세요. 근데 아버지는?"
"아마 오시고 계실 겁니다."
"그랬군요. 참! 인사하세요, 여기 백산오빠는 지금까지 날 지켜주신
분이고, 저기 있는 분들은 오빠 부하들예요."
주하연은 두 사람에게 백산을 소개했다.
"그런 사정이 있었구려. 좌우간 반갑소. 백산이오."
천괄의 설명을 듣고있던 백산은 고개를 갸웃하다가 이내 자기 소개
를 했다.
"천괄이네. 왕부에서 후한 포상이 있을 걸세. 이 친구는 갈영상이라
부르네."
자신을 소개한 천괄은 어색한 얼굴로 포상이란 말을 강조했다. 주하
연의 입에서 흘러나온 오빠라는 말 때문이었다. 황족인 주하연이 무림
인으로 보이는 한낱 야인에게 오빠라는 호칭을 쓰다니,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다시 한번 고개를 들어 백산을 유심히 살폈다. 다소 거만해 보이는
얼굴을 제외하면 별반 흠잡을 데 없는 사람이지 싶었다.
"어쩌다보니 그렇게 된 걸 가지고 뭘. 그나저나 저 곳에 숨어 있는
놈들은 어떻게 할거요?"
슬쩍 미소를 머금은 백산은 멀리 보이는 능선을 턱으로 가리켰다.
"무슨 소린가, 저곳에 숨어있는 자들이 군주님을 노린단 말인가?"
"여기에 무림인들이 노릴 정도로 값어치 나가는 사람은 하연이 밖에
없거든."
"말조심하라. 군주님을 보호해 준건 고맙지만 그렇다고 함부로 대해
도 된다는 건 아니다."
"아이고 실수, 이제부터는 봉선군주님이라 불러야지. 미안하게 됐소
이다. 그렇다고 너무 민감하게 받아들이지 말고. 지금은 내 말투 갖고
시비 걸 게 아니라 저놈들 걱정을 먼저 해야 할 것 같은데."
손사래를 치며 고개를 돌린 백산은 주하연을 보며 싱긋 웃었다. 이
편으로 다가드는 은신하고 있던 자들의 기척이 가깝게 느껴졌다.
"흥! 중원 천하에 왕부 여식을 건들고도 살아날 자신이 있다면 마음
대로 하라고 해라. 그동안 왕야가 안 계셔서 무림을 방치하고 있었을
뿐이니라. 별장 피습에 관련된 자들은 전부가 몰살을 당하게 될 게
야."
천괄의 몸에서 진득한 살기가 용솟음쳤다. 감히 황족을 납치했던 무
림인들은 한 놈 남김없이 전부 색출하여 철퇴를 내리게 될 것이다.
개개인은 물론이고 거대조직이라 할지라도 예외는 없다. 왕야가 돌
아오면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이다.
"알았으니까 너무 무서운 표정 짓지 말라고. 일단 그 우람한 목소리
를 가지고 저 놈들의 정체를 캐봐. 가능하면……, 참 별호 가 뭐지?"
"광양신장(光陽神將)!"
백산의 물음에 주하연이 짧게 대답했다.
"광양신장? 니미럴, 별호는 무쟈게 좋구먼. 난 말이야 별호가 그럴
싸한 놈들이 젤 부러워. 내 별호는……."
"놈!"
뒤쪽에서 들려오는 백산의 이죽거림에 천괄은 으르렁거렸다. 별호
타령은 차치하고라도 놈들이라 하였던 말 때문이었다.
원래 말투가 그러려니 하면서도 귀에 거슬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아! 맞다, 별호를 물었었지. 다른 게 아니고 '난 광양신장 모모
다.'하면서 이름을 밝히고, 저놈들의 정체를 물어보라고."
"이 놈이?"
"그것도 괜찮은 방법이네. 관우 할아버지 해봐요."
천괄이 백산을 향해 살기를 뿌리자 재빨리 주하연이 끼어들며 맞장구쳤다.
"끄응! 알겠습니다, 군주님!"
낮게 신음을 뱉어낸 천괄은 인기척이 느껴지는 전면으로 몸을 돌렸
다. 이어 그의 입에서 우렁찬 고함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는 남경왕부의 봉선군주님을 모시고 있는 광양신장 천괄이다. 너
희들은 누구냐?"
"니미럴……. 별호는 역시 그럴싸해야돼. 저거 보라고, 광양신장 한
마디에 이쪽으로 오던 놈들이 전부 멈췄잖아."
일순 잠잠해지는 전면을 보며 백산은 낮게 투덜댔다.
"광양신장 때문이 아닐 거야, 저들이 관우 할아버지의 과거 별호를
알 리가 없고……."
"과거 별호?"
"응! 20년 전에는 광양신장이 아니고 대막혈신(大漠血神)이라 불렸
거든."
"대막혈신(大漠血神)!"
대막혈신이란 주하연의 말에 화들짝 고함을 지른 사람은 뒤편에 서
있던 유몽이었다. 자신과 동시대에 활동했던 자, 중원에 사황(四皇)이
있다면 변황엔 사신(四神)이 있다고 하였는데 그 중 일인이 바로 대막
혈신이었던 것이다.
"그럼 다른 사람들도?"
"맞아요 유몽 할아버지, 왕부 수신사위의 과거 이름이 변황사신이었
어요."
주하연은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놀랍군요……."
유몽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남경왕부. 왕야가 무슨 생각을 가지
고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들 또한 단순한 세력은 아닌 듯싶었다.
하지만 대막혈신이란 말에 놀란 사람은 유몽뿐만이 나이었다.
백산 일행을 공격하기 위해 다가오던 복면인도 놀란 눈으로 천괄과
갈영상을 보고 있었다.
"저자가 과거 대막혈신이었다고?"
나직이 중얼거리는 인물. 북황련 척사대 대주인 만자승이었다.
주하연의 말처럼 척사대는 광양신장이라는 소리나, 그의 목소리에
포함된 강한 내공 때문에 멈춘 것은 아니었다.
다만 새롭게 가세한 자의 정체가 궁금했을 따름이었다. 그런데 그는
변경에 가있다는 남경왕부 4신위였다.
더구나 광명신장이 과거 대막혈신이라니.
"제기랄!"
만자승의 입에서 욕설이 흘러나왔다. 귀광두가 광명신장에게 주하연
을 넘기고 떠나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주하연을 도와줄 사람이 없을 때는 귀광두가 직접 나서서 그녀를 남
경왕부까지 데려다 주겠지만 대막사신이라는 대단한 자가 등장했다.
주하연 곁에 귀광두가 있어야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천붕오천멸살계로 명명하였던 이번 작전은 시작
도 해보지 못하고 실패로 돌아갈 터이고, 그에 대한 모든 책임은 산동
만씨세가의 몫이 된다.
'별수 없다, 거칠게 몰아쳐서 놈을 떠나지 못하게 만드는 수밖에.'
100여 명 남짓 데려온 부하들을 흘낏 쳐다보며 지그시 이를 악물었
다. 직접적인 접촉은 피하고, 멀리서 공격하고자 하였던 애초의 계획
을 변경하고 접근전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결정을 내렸다.
많은 희생이 따를 터이지만 귀광두를 주하연 곁에 묶어두는 유일한
방법이지 싶었다.
"각 조장은 모여라!"
만자승의 목소리가 울려 퍼짐과 동시에 사방에서 열 명의 복면인이
다가왔다. 부하들을 면면히 쳐다보던 만자승은 짧게 말했다.
"공격 방법을 바꾼다. 화살 공격에 이어 접근전을 펼치며 명항까지
물러난다. 주하연과 귀광두를 제외한 나머지는 전부 없애라."
"알겠습니다!"
만자승을 향해 고개를 숙인 열 명은 재빨리 제자리로 돌아갔다.
잠시 후.
만자승의 입에서 공격명령이 떨어졌다.
"쏴라!"
첫댓글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즐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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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
재미 있게 읽고 갑니다
항상 건강 하고 행복 하세요
감사 하고 사랑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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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0^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