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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릭샤를 내린 사라이로힐라 역에서 여섯 시간 열차를 타고 자이푸르에 도착한 시간이 밤 열시 반으로 역에서 나와서 숙소로 가는데 숙소가 역 과 가까이 있어서 걸어가게 되었다.
역에서 내려서 걸어가는데 도로 옆 분리대에 사람들이 누워서 잠을 자는 모습을 보게 되는데 이런 모습을 처음 보는 우리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다행히 인도는 더운 나라라서 춥지는 않아서 다행이지만 즐비하게 누워서 자는 모습을 보니 여러 가지 생각이 오가게 된다.
사라이로힐라 역...철로를 건너면서 위에서
옆에 있는 객차가 우리가 타고 갈 기차이다....기다리고 있는 일행들
잎에 보이는 객차는 침대가 있는 객차로 장거리 여행에 필수이다....바라나시에서 네팔의 룸비니를 가기위해서 코락푸르까지 침대열차를 타고 갔다.
이 승객명단을 보고 자신이 타야 할 열차와 좌석을 찾는다.
객차 내부의 모습
인도의 부자...아이가 인형 같이 생겼다.
노숙자들의 모습...이 때가 1월로 밤에는 춥다.....놀란 눈으로 바라보는 우리 일행
자기 키 만한 배낭을 메고 숙소로 가는 일행들
어느 나라나 노숙자가 없는 나라가 없겠지만 도심 어디에서나 빈민가 같은 곳을 보다가 보니 인도라는 나라가 대국이기는 하지만 서민들이 살아가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곳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호텔에서는 아침 식사를 제공하는데 초라하기 그지없다. 그래도 아침을 사 먹으로 나가지 않은 것만도 고마운 일이다.
이곳에서 이틀 밤을 자기 때문에 아침에 짐을 두고 자이푸르의 관광을 나선다.
호텔의 로비에는 힌두교의 가네샤 신을 모시고 있는데 지혜와 재산과 행운을 가져다주는 신으로 상업과 학문의 신으로 힌두교를 믿는 나라의 어디에서나 가장 많이 보는 신이다.
관광을 나서는데 호텔의 수위가 인사를 하는데 시크교도 같은 모습이다.
시크교는 이슬람과 힌두교의 혼합된 교리로 만들어진 종교로 머리에 터번을 쓴 인도인들이 이 종교들의 신자이다.
호텔에서 제공되는 아침식사.
가네샤 신...힌두교가 있는 나라에서는 어디에서나 많이 볼 수 있는 코끼리 모습을 한 힌두교의 재물을 가져다 주는 신이다.
숙소에서 보이는 나하르가포트( Nahargarh Fort)...저녁에 이곳에 들렀다.
터번을 쓴 아저씨 사진을 찍으라며 포즈를 잡아 준다.
자이푸르는 라자스탄(왕의 땅이라는 뜻)주의 주도(州都)로서 북인도 평원에서 산악지대로 진입하는 관문도시인데 1728년 암베르의 통치자인 자이 싱 2세에 의해서 건설되기 시작했다고 하며 무굴제국 시대에서나 영국의 식민지 시절에도 외교적 수완을 발휘해서 독립국의 신분을 유지했다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 시절에 영국에 잘 보이기 위해서 도시를 핑크색으로 칠하게 하였는데 지금은 오히려 그것이 관광에 효과가 있기 때문에 구 시가지는 핑크색 말고는 도색을 금지하고 있다고 한다.
자이푸르에서 맨 처음 관광을 하러 간 곳이 시티 펠리스로 릭샤를 타고 가는 길이 우리가 상상을 하기 힘이 들 정도로 어지럽다.
인도의 도로의 여건과 대기의 오염 무질서와 교통수단들과 통행방식 등은 한 마디로 설명이 불가능해서 복잡하다고 밖에 표현할 수가 없다.
사람이 끄는 인력거인 릭샤를 타고 씨티 펠리스로 간다. 오토릭샤보다 저렴하다.
시티 펠리스는 1728년에 자이싱 2세가 건축한 궁전으로, 구시가의 4분의 1을 차지하며 중앙에 7층의 대리석 건물인 찬드라 마할(Chandra Mahal:달빛 궁전)이 달빛처럼 빛나고 주위에 샘과 수풀이 우거져 있는데 궁전은 마하라자(대왕이라는 뜻)가 살고 있는 곳과 박물관으로 나누어지는데, 일반 관광객은 박물관 쪽 구역을 포함한 일부만 출입이 허용된다. 박물관에는 역대 마하라자의 무기와 의상 등을 전시해놓았으며 남동쪽에는 귀빈 알현궁전이 있고, 북서쪽에는 아름다운 정원이 바라보이는 일반 알현궁전이 있다고 한다.
달의 궁전이라고도 불리는 찬드라 마할의 일부를 관광지로 개방하여 왕족들의 수입원으로 삼고, 나머지는 마하라자의 후손들이 아직도 생활한다고 한다.
씨티펠리스의 이모저모
이 건물도 이슬람의 문화의 영향으로 성문의 무늬가 기하학적 무늬로 장식되어 있다.
위에 나무처럼 된 베란다는 돌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시티 펠리스로 들어가는 문
여러 문 들 중...우리 일행이 포즈를 취해주고 있다.
문 앞에 있는 정교한 조각이 있는 건물은 나무가 아닌 돌이라고...
어디나 원숭이들이 있다.
시티 펠리스의 건물은 다 분홍색으로 칠해져 있는데 자이푸르의 많은 건물들이 분홍색으로 칠해져 있는 것은 영국의 왕자를 맞이하기 위해 건물들을 새로 단장했는데, 수많은 건물들을 다시 칠 할 만큼 재고가 남아있던 페인트가 핑크색뿐이어서 건물 벽을 모조리 핑크색으로 칠해버렸다고 한다.
그 후로 핑크색은 환영의 의미를 담게 되고, 현재는 법으로도 건물 외관을 핑크색으로 유지하도록 하면서 자이푸르는 핑크시티의 명성을 이어나가고 있다고 한다.
시티펠리스를 돌아보면서 내부와 외부의 건물들이나 전시된 내용들을 보게 되는데 사전 정보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왔기 때문에 정작 보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아닌지를 모르고 그냥 지나가면서 보고 있는 것이 답답하다.
연회장이 있는 건물로 지금도 연회를 하는 곳이라고...
씨티펠리스에서 유명한 것 중의 하나인 은항아리...마호싱 2세가 영국을 방문하면서 "나는 성스러운 갠지스 강의 물만 써야겠다"며 가져간 항아리로, 세상에서 가장 큰 은제품으로 기네스북에도 등재되어 있다고 한다.
씨티펠리스의 성문 중 하나인 시바신에게 바쳐진 여름을 상징하는 연꽃 무늬의 문
사람들이 인도의 북부 쪽에 오는 이유는 아그라의 타지마할 묘나 카주라호의 성행위 조각이 있는 힌두교 사원 그리고 바라나시의 화장터를 보러 온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사실 인도에 대해서 무지한 편이다.
인도의 역사나 문화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하고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인도가 이슬람의 지배를 받고 인도의 대부분의 건물들이 이슬람과 연관된 건물이라는 것 자체도 모르고 왔다가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인도여행을 오려는 사람은 인도에 대해서 역사와 문화를 간단하게나마 이해를 하고 와야 볼 것이 있게 된다. 그러지 못하면 인도는 덥고 더럽고 추하며 더운 곳이며 사람들은 아무리 괴로워도 참고 사는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오해를 하고 갈 수밖에 없게 된다.
시티펠리스를 주마간산 격으로 둘러보고 맞은 편에 있는 잔타라만타라를 보러 갔는데 잔타르 만타르(Jantar Mantar고대 인도어로 마법의 장치)는 천문대로서 델리, 우자인, 바라나시, 마투라, 자이푸르 5곳에 있으며 자이푸르에 있는 것이 가장 큰 규모라고 하며 18세기 초 무굴제국 말 이곳의 번왕이면서 수학자·천문학자였던 자이싱 2세가 1728~1734에 세웠다고 한다.
주요천문 계기를 건축물처럼 땅에 설치하였고 맨눈으로 천문학적 위치를 관찰할 수 있게 하였는데 이 계기들로 시각, 천체 높이, 일식, 월식, 행성의 기울기 등 다양한 천체 관측과 연구가 가능하다고 하며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가 되었다고 한다.
관측기구들...
거대한 해시계
잔타르만타르이 담장에 있는 가게...여기에서 여자 일행들 중 몇명이 인도풍 바지를 사서 여행내내 입고 다녔다.
그리고 담장을 마주하고 있는 하와마할을 보러 갔는데 하와마할은 자이푸르 시내의 중심가가 내려다 보이는 5층짜리 성으로 1799년 스와이 프라탑 싱(Sawai Pratap Singh)이 건축하고 라찬드 우스타(Lachand Usta)가 설계를 맡았다고 하며 자이푸르의 대표적인 관광명소이다. 이 성은 세상 밖으로의 출입이 제한되던 왕궁 여인들이 도시의 생활을 엿볼 수 있도록 건축되었다. 자이푸르 시내를 관망할 수 있는, 바람이 잘 통하는 격자형 창문이 벌집처럼 많아‘바람의 궁전’이라고 불린다.
성은 분홍빛과 붉은 사암으로, 성의 외벽이 도로와 맞닿도록 건축되었고 성의 1,2층은 정원으로 연결돼 있으며 성에는 약 953개의 작고 둥근 포대와 같은 공간이 층을 이루고 각 공간에는 작은 발코니, 아치형 지붕, 격자형 창문이 나있다고 한다. 보통의 관광객들은 밖에서 바라보게 된다.
정면에서 바라본 하와마할(인터넷)
뒤에서 바라본 하와마할
걸어가면서 찍은 하와마할 맞은 편에는 기념품들을 파는 곳이 있다.
오전에 세군데 관광을 하고 점심을 먹으로 가는데 릭샤를 타고 갔는데 릭샤는 사람이 끄는 것이고 오토릭샤는 오토바이에 인력거를 연결한 것이다. 인력거꾼들도 거리에 많은 것을 보면 이렇게 해서 생계를 꾸려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힘들게 자전거 페달을 밟는 사람을 보면서 타고 가는 것이 미안하기는 하지만 우리가 이용해주지 않으면 수입이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매연이 심해서 마스크를 하게 된다.
말로 설명하지가 버거운 거리의 모습들
점심은 나트라즈(Natraj)라는 곳에서 카레의 종류가 여러 가지가 나오는 음식을 사서 먹었는데 아직은 어떤 것이 맛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기 때문에 가이드에게 권하는 것을 사먹게 된다. 오후에는 자이푸르의 유명한 영화관에서 인도영화를 한 프로를 보는 것으로 예정되어 있어서 그곳으로 이동을 하는데 공원과 주변을 보는데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지저분하다.
나트라즈라는 식당...나트라지는 춤추는 시바신을 의미한다.
꽤 비싸게 먹었는데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곳에 인도에서 가장 유명한 라씨 가게가 이곳에 있다고 하면서 한 번 사 먹어 보라고 한다. 라씨는 응고된 요구르트 같은 것을 우유와 설탕을 조금 넣고 젓게 되면 묽은 요플레처럼 되는데 독특한 맛의 음료수가 되는데 어디에 가더라도 라씨가게가 있는 것을 보아 인도사람들이 주로 마시는 간식과 같은 음료수인 것 같다. 그 중에 한 가게에 사람들이 줄을 길게 서 있는데 이곳이 유명한 가게라고 한다. 맛은 신 맛이 전혀 없고 달디 단 묽은 요쿠르트 같은데 처음 보는 맛으로 설명하기가 어렵다. 나중에 인도에 있는 동안 자주 사먹게 되었다.
라시 왈라 라는 간판들이 늘어서 있는 거리...줄 서있는 곳이 원조라고
점심 먹고 잠깐 자유시간에 공원을 가는 길의 모습
공원 안에는 사람도 자고 개도 자고...쥐가 땅에 구멍을 파 놓아서 온통 쥐구멍 투성이다.
길에 있는 공중변소...경악을 금치 못하게 된다. 근처에는 냄새 때문에 가지도 못할 정도이다.
극장은 연극을 공연장과 영화관을 겸한 곳으로 자이푸르의 지도를 찾으면 구글에서 가장 크게 나오는 라자만디르시네마(Raj Mandir Cinema)라는 영화관이다. 영화는 인도의 영화가 대부분이 그렇듯이 주인공 한 사람이 화려한 액션과 출중한 능력으로 악당들을 무찌르는 내용으로 화려한 춤과 과장된 액션이 우리들의 눈에는 유치하게 보이지만 인도사람들은 이런 영화를 몇 번씩이고 본다고 한다.
자이푸르의 유명한 극장...라지 만디르
극장 내부...가운데 있는 사람이 내부를 감시하는 사람인 듯..
무대의 모습...아직 영화가 시작하지 않아서...내부가 아주 화려하다.
극장구경을 하고 난 다음 각자 자유시간을 주어서 아침에 일어나면서 보이던 산 위의 성을 보러 몇 명이 택시를 타고 갔다. 이 성은 나하르가포트( Nahargarh Fort)라는 성으로 암베르 성 때문인지 관광책자에도 나와 있지 않고 설명도 없다.
릭샤는 올라가기 어렵기 때문에 택시를 타고 올라갔는데 곧바로 해가 지기 시작한다. 그래서 내부는 구경도 하지 못하고 외곽을 둘러서 성곽으로 올라가서 보고 자이푸르의 야경을 구경하고 대기 시켜 놓았던 택시를 타고 내려왔다. 이 성도 꾀 큰 성임에도 불구하고 언제 지어진 성인지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해도 설명이 된 곳이 없다.
나하르가 포트로 올라가는 택시에서
나하르가 포트의 외부의 모습
성에서 바라보는 자이푸르
금방 어두어져서 야경을 보게 되는데...이곳에서 무허가 비슷하게 사는 사람도 있고 젊은이들도 이곳에서 노래하고 춤을 추기도 한다.
숙소에 돌아와서는 숙소 바로 옆에 있는 건물의 이층이 맥주 같은 것을 파는 음식점이라고 해서 일행들과 같이 가서 어떻게 생겼나 구경도 하고 간단하게 맥주도 마시고 왔는데 이곳은 서빙 하는 사람들도 다 남자들이다.
내일은 자이푸르 옆에 있는 암베르성을 보고 자이푸르를 떠나기 때문에 자이푸르에 대해서 더 자세한 것을 구경할 수 있는 시간이 없다. 자이푸르는 인도의 여행 중에서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 곳이며 아고라를 가는 길에 둘러서 가는 정도이다가 보니 시간적인 여유가 없다. 이 도시에 대한 기억은 길에서 노숙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충격을 받았던 것과 도시가 핑크빛이었다는 것 그리고 라씨를 처음 먹어본 정도이다.
자이푸르의 아침거리
시티펠리스
점심 때의 거리모습
극장 내부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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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자이푸르 바로 옆에는 반가라 라는 유령마을이 있는데 자유여행을 가는 사람이 있으면 한 번 가 보시도록...
이 마을은 세계 13대 마경(魔境)중에 제일 무서운 곳이라고 하는데 써프라이즈에 나온 곳이라고 한다.이곳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많은데 일몰 이후에는 출입을 금한다고 한다.
이 마을은 1573년도에 이곳의 영주이자 무굴제국의 장군인 맨싱 1세가 외침으로부터 안전한 요새같은 마을을 지을 목적으로 이 반가라마을을 산중턱에 지었다고 한다. 외침을 막기 위해서, 튼튼한 요새처럼 건설된 이 반가라마을이 완성되자, 200가구 13,000명의 사람들이 이곳으로 이주해와서 살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로부터 150년이 지난 1720년도경에, 자이푸를 건설한 자이싱2세가 이끄는 아잡가르종족이 쳐들어왔으며, 두종족간에 치열한 전쟁이 벌어졌다고 한다.
오랫동안 이어진 전쟁으로 반가라마을의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으며, 살아 남은 사람들은 대기근이 발생하여, 기아와 질병으로 굶어죽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고 한다. 결국 반가라마을은 전쟁과 기아의 폭풍을 맞아서, 마을의 모든사람들이 괴멸당했으며, 그 후 마을전체가 텅빈 폐허의 도시로 변해버렸고 그 우후로 아무도 살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이곳이 이렇게 유령의 도시가 된 것에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의 전설이 있다고 한다.
이 마을에 마술사가 있었는데 그는 마을 최고의 미녀였던 라트나타비를 차지하기 위해 물약을 먹으면 자신에게 안기게 되는 흑마술을 썼다고 한다.
그는 신비의 물약을 만들어 건넸지만 이를 안 라트나타비는 물약을 바위에 부었고 그 바위가 마술사에게 굴러와 깔려 죽었는데 그는 죽으며 "여기선 아무도 살아남지 못한다"고 저주의 말을 남겼다고 한다.
그 저주 때문에 때문에 전쟁이 일어났고 의문의 죽음들이 발생하면서 마을이 폐허가 되었다고...
이외에도 또 하나의 이야기는 맨 싱 1세가 반가라 마을을 건설하기 앞서 이 마을엔 터줏대감 힌두교 성자 바바 발락 나스가 있었다.
그는 맨 싱 1세를 찾아 마을을 건설하는 것은 말리지 않겠지만, 자신의 집에 그림자가 지는 것은 막아달라고 부탁했다. 이를 어길 경우 무슨 일이 벌어질 지 장담할 수 없다고.
하지만 그가 죽은 후 이 마을엔 높은 건물들이 대거 건설됐고 바바 발락 나스의 부탁은 지켜지지 못했다. 이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 폐허가 되고 이 마을은 사람이 살지 못하는 곳이 됐다는 전설이 전해진다고....
인터넷에서
첫댓글 자세한 설명과함게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