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 15일 연중 제10주간 목요일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20ㄴ-2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0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21 ‘살인해서는 안 된다. 살인한 자는 재판에 넘겨진다.’고 옛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22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이다.
그리고 자기 형제에게 ‘바보!’라고 하는 자는 최고 의회에 넘겨지고,
‘멍청이!’라고 하는 자는 불붙는 지옥에 넘겨질 것이다.
23 그러므로 네가 제단에 예물을 바치려고 하다가, 거기에서 형제가 너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24 예물을 거기 제단 앞에 놓아두고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예물을 바쳐라.
25 너를 고소한 자와 함께 법정으로 가는 도중에 얼른 타협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고소한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넘기고 재판관은 너를 형리에게 넘겨, 네가 감옥에 갇힐 것이다.
26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네가 마지막 한 닢까지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
말을 함부로 하면서 살았습니다.
우리의 몸에는 많은 구멍이 있습니다. 얼굴에서만 보아도 입, 귀, 코에서부터 온몸에 퍼져 있고 눈으로 보이지 않는 세포의 땀구멍까지 세어보면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이 많습니다. 숨을 쉬고, 말을 할 수 있는 목구멍도 우리의 중요한 기관 중의 하나로 숨이 끊어지면 한마디도 할 수 없는 곳입니다. 사람이 죽어 입관할 때에 교회에서는 연도를 바치면서 시편의 말씀으로 죽은 사람을 대신해서 기도합니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코가 있어도 맡지 못하네, 그들의 손은 만지지 못하고
그들의 발은 걷지 못하며 그들의 목구멍으로는 소리 내지 못하네. (시편 115 5-7)
내가 죽는다면 정말 사람들이 억지로 수의를 입히고, 시상판에 대고 꽁꽁 묶고, 눈과 코, 귀와 입을 탈지면으로 꼭꼭 막아버리고, 사지를 결박하여 관에 넣어도 ‘아프다’고 한마디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사는 동안 눈과 귀를 함부로 처신하고 손과 발을 함부로 놀리고, 말을 함부로 하면서 살아왔습니다. 우리가 뱉은 말이 어떤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보면 정말 소름이 끼치게 됩니다.
장자의 제 2편 제물론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부취만부동 이사기자기야 함기자취 노자기수사’
夫吹萬不同 而使其自己也 咸其自取 怒者其誰邪
‘바람이 천만 가지 구멍에 불어와 구멍마다 제각기 다른 소리를 내다 저마다 스스로 소리를 멈추게 한다. 그게 모두 자기가 내는 소리이겠는가? 바람을 일으킨 자는 누구이겠는가?’ 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마음이 상하고 화가 나서 사람들에게 쏟아놓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누구의 탓이겠습니까? 바람 탓인가요? 숨 탓인가요? 구멍 탓이겠습니까? 사나운 소리를 내는 것도 남들이겠습니까? 그것도 아니라면 산새 혹은 개구리 때문입니까? 결국 수많은 남들이 아니라 바로 본인이란 것을 알게 된다면 구멍마다 제 소리를 내려고 그토록이나 발버둥 쳤던 순간이 부끄럽게 느껴질 것입니다. 사나운 소리를 내는 것은 남들이 아니라 바로 제 구멍의 소리입니다. 세상에서는 그 말이 통할 수 있고 잠시 속일 수 있지만 지엄하신 하느님 앞에서는 절대로 속일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재판에 넘겨지고, 최고의회에 넘겨지고, 불붙는 지옥에 넘겨질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는 자신을 보지 못하고 남의 탓으로 돌리는 어리석은 사람을 가리켜 하시는 말씀입니다. 내가 잘난 것으로 이웃에게 화내고, 내가 잘 아는 것으로 이웃에게 바보라고 손가락질하고, 내가 똑똑하다고 이웃에게 멍청이라고 한다면, 그 말이 곧 주님을 향한 것이라는 말씀을 상기시킵니다. 정치가들이 말을 함부로 하면서 자신들은 지키지도 못할 말을 떠드는 것을 보면서 화가 날 때가 많습니다. 하느님을 향해서 삿대질을 하면 그 것이 아무리 정당하다고 하여도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며, 잘못된 것입니다.
이해인 수녀님의 ‘말을 위한 기도’를 함께 바치며 은총을 청합니다.
말을 위한 기도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수없이 뿌려 놓은 말의 씨들이
어디서 어떻게 열매를 맺었을까 조용히 헤아려 볼 때가 있습니다.
무심코 뿌린 말의 씨라도 그 어디선가
뿌리를 내렸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왠지 두렵습니다.
더러는 허공으로 사라지고 더러는 다른 이의 가슴 속에서
좋은 열매를 맺고 또는 언짢은 열매를 맺기도 했을 내 언어의 나무
주여, 내가 짓는 언어의 나무에도 멀고 가까운 이웃들이 주고 간
크고 작은 말의 열매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습니다.
둥근 것, 모난 것, 밝은 것, 어두운 것, 향기로운 것, 반짝이는 것
그 주인의 얼굴은 잊었어도 말은 죽지 않고 살아서 나와 함께 머뭅니다.
살아 있는 동안 내가 할 말은 참 많은 것도 같고 적은 것도 같고
그러나 말이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세상살이
매일매일 돌처럼 차고 단단한 결심을 해도
슬기로운 말의 주인이 되기는 얼마나 어려운지
날마다 내가 말을 하고 살도록 허락하신 주여
하나의 말을 잘 탄생시키기 위해 먼저 잘 침묵하는 지혜를 깨우치게 하소서
헤프지 않으면서 풍부하고 경박하지 않으면서 유쾌하고
과장하지 않으면서 품위 있는 한 마디의 말을 위해
때로는 진통 겪는 어둠의 순간을 이겨 내게 하소서
참으로 아름다운 언어의 집을 짓기 위해 언제나 기도하는 마음으로
도를 닦는 마음으로 말을 하게 하소서
언제나 진실하고 언제나 때에 맞고 언제나 책임 있는 말을 갈고 닦게 하소서
내가 이웃에게 말을 할 때는 하찮은 농담이라도
함부로 지껄이지 않게 도와주시어 좀 더 겸허하고
좀 더 인내롭고 좀 더 분별 있는 사랑의 말을 하게 하소서
<하느님께서 우리 마음을 비추시어 하느님의 영광을 알아보는 빛을 주셨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2서 말씀입니다. 3,15─4,1.3-6
형제 여러분, 오늘날까지도 모세의 율법을 읽을 때마다 이스라엘 자손들의 15 마음에는 너울이 덮여 있습니다.
16 그러나 주님께 돌아서기만 하면 그 너울은 치워집니다.
17 주님은 영이십니다. 그리고 주님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습니다.
18 우리는 모두 너울을 벗은 얼굴로 주님의 영광을 거울로 보듯 어렴풋이 바라보면서,
더욱더 영광스럽게 그분과 같은 모습으로 바뀌어 갑니다. 이는 영이신 주님께서 이루시는 일입니다.
4,1 이렇게 우리는 하느님의 자비를 입어 이 직분을 맡고 있으므로 낙심하지 않습니다.
3 우리의 복음이 가려져 있다 하여도 멸망할 자들에게만 가려져 있을 뿐입니다.
4 그들의 경우, 이 세상의 신이 불신자들의 마음을 어둡게 하여,
하느님의 모상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을 선포하는 복음의 빛을 보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5 우리가 선포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선포하고,
우리 자신은 예수님을 위한 여러분의 종으로 선포합니다.
6 “어둠 속에서 빛이 비추어라.” 하고 이르신 하느님께서 우리 마음을 비추시어,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난 하느님의 영광을 알아보는 빛을 주셨습니다.
축일6월 15일 성녀 에드부르가 (Edburga)
신분 : 동정녀, 수녀원장
활동 지역 : 윈체스터(Winchester)
활동 연도 : +960년
같은 이름 : 에드브르가
앵글로 색슨의 황녀 가운데 에드부르가란 이름으로 공경을 받는 분은 모두 세 분인데, 그중에 윈체스터의 성 에드부르가는 국왕 앨프레드(Alfred)의 손녀딸이자 에드워드(Edward the Elder) 국왕의 딸로 태어났다. 그런데 그녀의 부모는 그녀가 요람기에서부터 수도생활을 하기로 운명 지어진 것으로 생각한 듯하다. 왜냐하면 불과 3세 때에 그녀의 성소를 시험해 보기로 결정했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부친이 딸을 무릎에 올려놓은 뒤 한 손에는 복음서와 함께 성작을 보여 주고, 다른 손에는 아름다운 목걸이와 팔찌를 들고 보여 주면서 무엇이든 선택하도록 하였다. 이 어린 아기는 두 눈을 반짝이면서 한쪽은 분명히 싫어하는 기색을 드러내 보이며 거절하고, 성물에 대해서는 놀라운 눈빛으로 감싸 안았다는 것이다.
이리하여 왕은 자신의 어머니가 세운 수도원에서 그녀를 길렀는데, 차차 장성하여 수녀가 되고 나중에는 원장이 되어 높은 성덕을 닦았다. 그녀는 특히 애덕과 겸손이 뛰어났으며, 살아생전에 이미 수많은 기적이 일어났다고 전해온다. 그녀는 이따금씩 다른 수녀들이 잠자는 동안에도 혼자 일어나 기도하였고, 수녀들의 신발을 닦아 주거나 잠자리를 보살피는 등 참으로 관대한 어머니처럼 일생을 살았다.
오늘 축일을 맞은 에드부르가 (Edburga) 자매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