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의 고대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의 비석들중 유일한 고구려의 비석 유물로 남진정책의 최대 근거자료로 손꼽히는
충주시의 중원 고구려비 국보 205호로 지정되어 고구려의 남진을 유일하게 기록하며 5세기 고구려 신라 외교에 관한 내용들이
담겨진 비석인데 그러나 5세기에 세워졌다고 여겨지는 중원고구려비가 4세기 말 광개토태왕 재위시에 건립되었다는 정반대의 \
판독 주장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지요
고광의 동북아 역사재단의 연구 위원은 ‘3D 스캐닝’과 ‘RTI 촬영으로 비문의 글씨들이 새롭게 판독되었다며
고 위원이 제시하는 판독된 글자가 ‘ 永樂七年歲在丁酉(영락7년세재정유)라는 내용들입니다
영락7년세재정유는 광개토태왕 재위 7년인 397년 정유년을 말하는 것으로
중원 고구려비 상단부에서 판독되었다는 영락 7년 정유라는 연도 명문은 중원 고구려비가 광개토태왕 재위 7년인 397년이나 그 직후에 세워진 것을 방증하는 것이지요고 위원의 판독 결과를 인용한다면
기존의 중원고구려비 건립연대에 관한 기존 통설은 두계 이병도가 주장하는 건흥 4년과 신유년 481년 들이었지만 그러나 새로운 판독으로 영락7년이 발견되면서 건립연대가 앞당겨지게 되었다는 주장들이 제기되었던 것이지요
중원 고구려비에서는 5세기 건립연대 근거로 신유년 명문외에 백제 개로왕을 지칭한다고 여겨진 개로라는 명문이 함께 인용되어 기존의 5세기 건립근거로 인용되어 왔지만 그러나 개로라는 명문이 개로왕을 지칭하는게 아니고 동명이인인 고구려 당주의
성명을 가리키는 것이라는 해석들이 제기되어 개로왕설은 힘을 잃어가는 상황이지요
그리고 기존에 신유년이라는 해석되어 왔던 명문이 ‘공이백육십사(功二百六十四)다르게 판독 해석되어
나타나서 기존 해석을 뒤집으려고 하였지요
[단독]40년 논란 충주 고구려비에서 '397년(영락7년)' 명문 읽었다..제2의 광개토대왕비가 확실
[경향신문] ‘영락7년세재정유(永樂七年歲在丁酉)’ 1979년 충북 중원(충주)에서 발견된 충주 고구려비(국보 제205호)는 고구려 광개토대왕 시대에 세운 제2의 광개토대왕비라는 근거자료가 나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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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왕 건립 추정 '충주고구려비'..광개토대왕, 397년 직접 세웠다
[서울경제] 한반도에 유일한 고구려 비석이자 국보 제205호로 지정된 충주 고구려비(중원 고구려비)가 광개토대왕 재위 7년(397년)에 세워진 고구려 최초의 비석으로 추정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
“고구려 태자가 신라왕에게 ‘무릎 꿇어라’ 했다”…제2광개토대왕비 ‘8자’의 비밀[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고구려 태자가 신라왕에게 ‘무릎 꿇어라’ 했다”…제2광개토대왕비 ‘8자’의 비밀[이기환
“…우스운 이야기를 하나 하겠어요. 일전에 내가 곰곰이 생각하다가 잠이 들었는데 꿈에 건흥(建興), 두 글자가 나타났다는 말이야, 아 눈이 번쩍 띄어서 전등불을 켜고 옆에 있는 탁본과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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