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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느끼는 바에 따라 궁금증이 살아나고 조금 알고 나자 더 궁금해 졌다. - 전편의 마지막 부분.
아마도 미래에서 먼 우주를 여행할 수 있었던 것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기술로 우주를 내 달린다면 아득히 먼 우주라도 아주 짧은 시간 안에 도달할 거라는 결론을 얻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시간은 악세사리 정도밖에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고 보면 지구의 과거라는 역사는 미래에서 잠깐 들렀다가 어지럽혀 놓은 탓에 남은 얼룩이 흙속에 남아있고 그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발견되는 문명의 흔적을 보면서 첨예한 문명에 감탄을 자아내며 외계인의 작품이다 아니다 하는 판단을 하며 반복되는 역사에서 문명을 가진 선조들이 있었다고 호들갑을 떠는 일들을 가끔 만날 수 있었다.
후손들은 그 물건들을 찾아내면 아주 진기한 유령을 손에 잡은 것처럼 과학잡지의 1면을 톱기사로 장식하곤 하였다. 또 일부 몇몇 나라에서는 비밀로 하자며 말을 번복하는 일도 있었다. 그러다가 나라의 고위 관계자들이 쉬쉬하면 모든 것이 그림자로 변해버리고 말았다.
우주가 무한히 넓다고 천문학자들 뿐만아니라 하늘을 올려다본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고 있지만 어느 철학자의 말처럼 우주는 하나의 점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시간 여행을 하는 미래의 후손들에게 실로 우주의 크기는 점 하나의 크기에 불과할 거라고 생각했다. 어디든 그냥 마음먹은 순간 비행접시를 타고 생각만 하면 목적지가 바로 눈 앞에 다가와 소원이 이루어졌을 테니 말이다.
"그러면 나도 우주 여행을 할 수 있을까?"
혼자 생각하듯 작게 중얼거렸는데 미리의 말이 들렸다.
-'갈 수는 있는데 준비가 필요해요'-
"준비....?
-'네! 시간요. 작다고 생각한 우주지만 그 안을 여행한다고 하면 아주 긴 시간이 필요하답니다. 우주의 근본 기질이 그렇게 되어 있는 까닭이래요. 저도 아직 안 가봐서 여기까지만 알고 있어요.'-
"미로의 우주....?"
미리는 시간여행을 설명하면서 남해한 질문을 던졌다.
-'언니, 1초가 길까요. 아님 짧다고 생각되나요?-
"글쎄... 깊이 생각해 보질 않아서... 너는 답을 알고 있니?"
-"1초를 쪼개어 백만 개 그 이상 수천 억으로 쪼개고 나누어 보세요. 그리고 그 순간 순간이 지나가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고 섬세하게 헤아릴 수 있다면.... 참 어마어마 하죠? 그 1초 안에 나누어진 1초를 분모와 더불어 정확하게 백만.... 그 이상까지 숫자를 완벽하게 샐 수 있다면 쉽게 갈 수 있는 거고요. 하나나 둘, 그 이상 많이 셀 수 없다면 그만큼 먼 거리라 빨리 도달하지 못한다는 거죠. 시간을 여행하는 일이 그렇답니다. 해답이라고 하기에는 느낌인 거죠. 각자의 생각 안에 시간의 정의가 있는 거랍니다.'-
"시간의 정의? 그게....?"
-'네, 언니! 하나의 생명이라고 보면 장소나 시점에 따라 흘러가는 방법도 다르답니다. 곧게 흐르는 시간도 있고 구부정하게 흐르는 시간도 있답니다. 거기다가 그리스문자의 오메가처럼 흐르는 시간도 있고.... 그런 시간들을 막대 그래프처럼 옆으로 줄을 맞춰 세워 놓고 수평선을 몇줄 그어보면 수평 줄에 걸려 있는 각 구간은 동일 시간대라는 거에요.'-
"길이가 다른데도? 그리고 오메가 기호구간은 과거와 미래를 왔다갔다 하지 않을까?"
-'네, 맞아요. 그 오메가 처럼 흐르는 시간은 그곳을 지나는 사람이나 동물 혹은 무생명체라 해도 타임머신 없이 몇 번이고 왕래가 가능하답니다. 물론 자율적이지 않은 거죠! 한마디로 얼떨결에 헛발을 디디고 나니 과거이고 또다시 얼떨결에 미래로 이동하였다고 표현하면 맞을 거에요.'-
"시간이 단순하질 않네! 시간 여행에 대해서 달리 설명한다면 쉽게 말이야!"
-'아마도 이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겠네요. 시간 속을 여행하는 사람은 순식간에 이루어지는데 밖에서는 몇십년 또는 몇백 년, 그 이상 수억 년의 시간이 흘러가지 않을 까요?'-
"옴매나?"
나는 먼 우주로 항성간 여행을 하는 것이 긴 시간이 소요된다는 말에 남편과 아이의 얼굴이 눈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시간은 무엇인지 복잡한 것을 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내 삶에 있어서 그리 복잡한 것은 필요하지 않았다. 내 행복을 가져다주는 가정이 내게는 가장 소중하고 또 단순한 삶이 평화로운 것이라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이제 미래를 다스리는 제왕을 다시 만날 것이라는 기대를 접어두고 미리와의 만남으로 만족하기로 하였다.
미리가 내 소원을 들어 주었고 오랜만에 나와 말동무 하였으니 고마울 뿐이었다.
단지 그 상상의 세상에서 가상공간을 통제하는 제왕을 만난다면 한가지 더 물어 볼 것이 있기는 있었다.
당신이 공간을 다스리는 것처럼 이 현실을 다스리는 것이 맞는지?"
11. 현실인가 가상 공간인가?
미리야! 이건 누가 만든 거니? 공룡시대 이전에도 사람들이 살았는가 보네! 이건 아무리 보아도 첨예한 문명을 가진 사람들의 작품 같은데!
나는 꿈을 꾸었다. 그런데 잠을 자면서도 이상한 말을 한다고 남편이 나를 끌어안으며 귀앳말로 작게 이야기 하였다. 아마도 미리와 내 과거인 미래 언어로 이야기 하는 잠꼬대를 들었나보다.
특별한 경험은 분명코 꿈을 꾼 것이 아니었다. 저녁 때에 잠시 과거로의 여행은 상상이 아닌 실제였다. 내가 다시 집이라고 하는 현실에 들어왔을 때는 떠날 때의 그 모습 그대로 그 시간대였으나 현실과 가상을 구분하지 못할 내가 아니었다. 다만 공룡시대까지 올라갔을 때 '볼이라도 꼬집어 확인 하였더라면 가짜로 간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을 텐데!' 라는 아쉬움이 있었다.
카리시안이 내게 암시로 전해준 것처럼 미리가 타임머신과 일체가 되어 나를 시간 이동시킨 것이 분명하였다. 다만 그 긴 여행을 하고 돌아온 것이 불과 몇 초 정도밖에 안 걸린 것으로 보아 생체 비행접시 안에 들어가 시간 속을 달려 여행하였던 것이 분명하였다.
여행을 하였다는 증거는 다시 돌아왔을 때 현실의 시간이 다만 몇 초라도 흘러갔다는 것이 여행하였다는 것을 증명해 주었다. 다음에 다시 여행할 때에는 좀더 현실감 있게 대처해 봐야지.
회사에서는 현실적으로 비행접시가 완성되자 세상에 공표하기 전에 완벽한 설계로 다시 고쳐가며 정리하기 위해 처음부터 접근하기로 하였다. 남편의 머리와 손은 일에 임하여 바쁘게 움직였다. 전체 그림을 그려놓고 부품 하나하나를 꺼내어 새로 디자인하였다. 무게를 잡아당기는 군더더기를 제거하고 기체를 보강하여 가볍고 실용성 있게 가능한 범위에서 최대한 능률을 고집하기로 하였다. 현장에서 맞추어 붙인 부분들을 도면에 옮겨 현실에 맞게 디자인하고 완벽에 가깝도록 원형을 갖추어 설계도를 완성하기로 한 것이다.
비행접시의 회전부를 맞고 있는 기전체의 모터와 발전기를 동일 선상에서 일체형으로 하는 설계는 보류하고 속도 제어방식은 가변저항을 사용하여 차후에는 전자제어 방식을 택하기로 하였다.
나느 아침을 만나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려고 아이와 함께 유아원 버스를 탔다.
가까운 거리지만 함께 타고 가는 일이 즐거웠다. 작은 행복을 버스에 실려 보내고 회사 입구에서 내렸다. 아이에게 손을 흔들어주고 정문 앞에서서 바람개비를 올려다 봤다. 언제 보아도 남편의 정성이 담긴 고마운 친구라며 봉을 어루만져 주었다. 녀석은 간지럼도 안타는지 멀거니 서 있으면서 아무 말도 안 했다.
"너 왜 그래? 뭘.. 봤니? 내가 가가이 와서 얘기하는데도 왜 말이 없는 거니? 암 말이구 해봐! '유림이가 젤 이뻐!' 이런 말도 있잖아! 멀쭈름하게 쳐다보지만 말구 얘!"
그래도 말이 없었다. 나는 손으로 한 번 더 어루만져 주고는 돌아서는데 갈 바람이 조금 불어왔다. 바닷가에 세워둔 발전용 바람개비가 '위~윙' 소리를 크게 내며 돌아갔다. 내 바람개비도 해를 쳐다보려고 고개를 돌리는지 그때서야 '애~애' 고리를 내고는 몇바퀴 도는 시늉을 하였다. 마침 골목을 지나가는 대형화물차의 바퀴에서는 먼지가 포스라니 날아갔다.
공장 안으로 들어서자 느낌이 어색한 분위기가 다가왔다. 별로 달라진 것도 없어 보였고 직원들도 모두 정상적으로 근무에 임하고 있었다. 평소와도 별 다르지 않았지만 마음의 촉각이 잡히는 분위기가 쎄한 느낌이었다.
요즈음은 가상공간의 통치자라는 분을 만난 뒤로는 두려움이 가셔서 뒤통수가 말끔해 졌는데 이 느낌은 뭐지....?'
그 기분을 표현하면 아마 무속인이 접신하기 전에 보이는 음산한 기분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2층 사무실에 올라가 평소처럼 바닥을 훑어보고 책상 정리며 유리창 청소 등 소소한 일들도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경리를 보는 유소현 양도 전화를 받느라고 바쁘고 관리과장님도 서류에 관심을 두고 넘기느라 손이 분주하였다. 아침에 출근하던 남편도 별일 없이 아이에게 뽀뽀해 주고 잘 나갔고...
'너무 평범한 일상이라서 그럴까?'
남편의 자리에 가 보았다. 남편의 자리에는 평소대로 커다란 제도판이 현장을 보이는 창문을 비껴 같은 방향으로 벽쪽으로 놓여 있고 왼족 벽으로는 컴퓨터가 놓여 있었다.
출입구를 바라보는 방향으로 사무실 중앙을 향해 넓은 책상이 놓여 있으며 자동 제도판 경사면에는 그리다 만 것이 걸려 있었다. 모든 것이 그냥 정리되다 만 것처럼 너부러져 제 위치에 놓여있었다. 자세히 돌아보니 남편만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고 생산부장님도 함께 보이지 않았다.
'두 분 다 사라지셨나?'
내가 다른 차원으로 사라져 다녀온 경험이 있다보니 누가 안보이면 사라졌다는 표현이 먼저 떠올랐다.
비행접시를 만들고 부터 뭔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 변화가 느껴졌다. 뭔가 달라지는 것이 있었다. 내 표현이 달라지고 있는 것처럼 특별히 뭐라고 말할 수 없이 미세하게 공장 분위기도 달라져 갔다. 반면 세월이 변해가는 것처럼 모든 것에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조금씩 눈에 띄지 않게 변화하며 흘러가는 진일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이 들었다. 진화하는 것이면 좋겠지만 변화라는 것은 안 좋은 방향으로도 흘러갈 수 있는 있는 조짐도 있을 것이라고 여겼다.
'근데 마음이 어두운 것은 뭐지? 혹시 도결이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아닐거야! 걔는 그동안 보아온 걸로 봐서 내 피를 정확하게 옮겨 받았다면 녀석은 누가 뒤에서 때린다고 해도 안 맞고 피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애야! 더구나 무슨 일이 있었다면 선생님이 연락했겠지!'
나는 스스로 위로와 걱정을 쌓아가며 마음 고생을 하고 있었다. 이게 가정을 가진 사람이 갖는 행복감과 더불어 생기는 불안감이라고 여겼다. 괜한 걱정이면 좋겠지만....
공장 바닥에서 작업에 열중하며 분주하게 움직이는 직원들도 별 말이 없었다. 나도 평소처럼 따끈한 차를 준비하여 한잔씩 건네주며 인사를 주고 받았다. 직원들은 무슨 약속이나 한 것처럼 별다른 말이 없이 맡은 업무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궁금하기는 했지만 그냥 아무일 없을 거라는 믿음을 갖고 나도 남편에 대해 묻지않았다.
그런데 얼마지나지 않아 목발을 짚고 행가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과 부축하듯 뒤따라 들어오는 사람의 실루엣이 보였다.
목발을 짚고 들어오는 사람은 불행히도 남편이었다.
"무슨 일 있었어요?"
"아니... 별일 아니야! 걱정할 일은 더욱 아니고!"
"근데 왜 나무 막대기를 짚고 와요? 암일 아닌데요?"
"응, 이거... 얘가 날 좋아하나 봐! 그냥 손에 잡으니까 좋은데!"
뭔일이 있어도 있는데 남편은 그냥 평소처럼 웃으며 말했다. 내가 걱정할까 봐 아무 일 아닌 것처럼 둘러대는 것으로 보였다. 사람들은 진짜 큰일이 닥치면 오히려 웃어가며 안심시킨다. 지금 남편은 아무 일도 없다며 그것을 믿으라고 말하고 있다. 내 키만한 나무를 짚고 절뚝대면서 말이다.
"사모님, 태 과장이 발을 삐끗해서 인대가 늘어났대요. 별 무리없이 한 2주간 발을 사용하지 않으면 곧 좋아진대요. 그래서 부목을 대고 깁스를 했는데... 아마 좀 불편할 겁니다."
그렇겠지! 별일이 있는데 별일이 아니라니...
'어쩌다가요?'
나는 왜 그렇게 되었느냐고 물어볼까 하다가 말았다. 별거 아니라는데 괜히 걱정을 더 키울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안스럽게 쳐다보는 내 눈빛을 읽었는지 함께 병원을 다녀오신 생산부장님이 대신 말문을 열었다.
"오늘 화물차에 가공품을 싣고 왔는데 물건을 내리는 중 컴퓨터 부품이 중요한게 있어서 태 과장이 받으러 차에 가다가 내리던 짐이 갑자기 옆으로 쏠리는 바람에... 공교롭게도 그 옆을 지나가는 태 과장이 피하면서 발을 삐긋했어요. 발을 많이 사용하지 않구 한 2주 정도 지나면 원상복구 된답니다. 염려 놓으십시오."
"그럼 다행이네요. 뭔가가 이상했는데... 그런 일이 있었네요."
남편은 목발을 짚고 다니는 것이 불편해 보였다. 본인도 아마 들판을 뛰어다니던 사슴을 우리에 가둔 것마냥 답답하겠지... 마음에 얹혀있는 안개를 거둔 기분이지만 깁스를 보니 조금 안쓰러웠다.
"근데 새로운 부품이 어떤 건데 상처와 바꿔요?"
"응, 이거..."
남편이 책상위에 있는 것을 집어 내 앞에 내민 것은 작고 얇은 것이었다.
"그게 컴퓨터 부품이예요? 내가 보니 음악이나 영화 보려고 만든 동그랑땡 같은데요."
"아니야! 이게 얇고 작지만 저 커다란 자석붙은 제도판 보다는 더 비싸고 정밀하게 그림을 그려주는 캐드라는 거야! 그리고 이게 뭐시라? 동그랑땡이라고? 디스켓이라고 하는거야. 하하!"
"어쨌든요. 그러면 그걸 컴퓨터에 넣기만 하면 도깨비 방망이처럼 '부품 그려져라 뚝딱!' 하면 설계도면이 나오나요?"
"하하! 그런게 어딨어! 내 손으로 조작해야 그림이 그려지지! 여기가 뭐 서기 3500년 시대인줄 아나 봐!"
"서기 3500년을... 왜? ...나와?"
사무실로 들어오시던 생산부장님이 우리의 대화 중 36세기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시고 놀라 말을 끼워 넣으셨다.
"글쎄요. 우리 집사람이 이 디스켓을 보면서 그림을 그려라 하고 말하면 그냥 자동으로 그리는 것이냐고 묻길래 그건 아마 1500년은 지나면 그렇게 될거라고 귀띰 해 주었죠!"
남편은 얼버무리며 잘 넘어갔다.그런데 생산부장님의 말씀이 걸작이었다.
"난 또 사모님이 그곳에서 오신 줄 알았네!"
평소 부장님은 나를 보고 미인이라고 칭찬하셨는데
'아마 여기 여자들이 예뻐지려고 노력하여 진화를 거치다가 한 천 년쯤 지나고 나면 사모님처럼 예뻐지는 쪽으로 미모가 바뀔거야!'라는 말씀을 서슴없이 하셨던 분이었다. 그래서 우리 말을 엿듣고 말씀하실 때 나는 뜨끔하는 가슴의 충격을 받았다.
남편은 불편한지 의자를 끌어다가 깁스한 다리를 올려 놓고는 영화에서나 보는 거만한 사람이 앉는 모양으로 자세를 잡았다. 보기에 썩 좋은 폼상은 아니었다.
"다리를 접어 구부리면 인대가 안 쪼그라드나요?"
"그냥 편하게 있으려는 거에요! 보기 안 좋아 보여?"
"아닙니다! 제가 어떻게 과장님 아픈 다리에 일침을 놓으리까? 절대 안정을 취하셔야죠 환자인데요."
나는 말을 하고 보니 내가 듣기에도 좀 꼰 것 같아 미안했다. 아마도 밖에서 하듯 짐안에서도 불편을 감수할 것을 예상한 내 기분이 그렇게 말한 것 같았다.
그렇게 남편과 있는 동안 점심을 준비할 시간이 되었다. 스물 다섯 명 정도의 식탁이야 주방의 영양사 혼자도 충분하지만 나는 식사를 준비하는 게 즐거웠다. 신선한 반찬을 만드는 일도 재미있고 내가 거들어서 조금 더 맛을 채울 수 있다면 주부로서 큰 기쁨 아닐까하는 내 생각도 양념이 되리라고 믿었다.
"아이구... 사모님은 여기 안 들어오셔도 되는데! 저 혼자서도 충분해요."
"저도 알아요! 근데 혼자보다는 둘이 하면 더 낫죠!"
"그러면 오늘 기분도 좀 저기압 됐을테니 계란후라이 하나 더 얹어 볼까요?"
영양사는 남편의 일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말하면서 빠른 손놀림으로 반찬을 만들어 나갔다. 생선조림은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매우 좋아한다며 무를 큼지막하게 썰어 넣고 토막낸 갈치를 넣어 자글자글 조려내었다.
시금치를 삶고 콩나물을 삶아 무쳤다. 김이 올라오는 나물 무침은 양념에 버무려 맛을 내었다..
냄비에 미역을 넣고 불에 익힌다음 들기름을 넣어 볶고 나서 뜨겁게 달구어졌을 때 물을 붓고 오랫동안 끓였다. 나는 기껏 계란 후라이를 만들어 내는데 영양사님은 여러가지를 한꺼번에 만들어 내었다.
"왜 이 미역은 빨리 안 익나요?"
나의 어설픈 질문에 영양사님은 미소를 지어보이더니 미역은 푹 끓여 우려내야 영양면에서 좋고 특히 산모에게는 여러머로 좋다고 알려주었다. 거기다가 쇠고기를 썰어 넣고 끓이면 고급 식단이 된다고 덧붙였다.
"특히 한식은 차게해서 먹으라고 한식이 아니예요. 나물 무침을 냉장고에 넣었다가 차게해서 먹으면 식감이 떨어져요. 아마도 한식은 차게 먹지 말라는 뜻일 거에요."
그랬다. 시금치나 콩나물, 시래기 무침등 나물을 먹다가 남아 있는 것을 냉장고에 넣었다가 먹으니 맛이 덜했던 기억이 났다. 영양사가 달리 영양사이겠는가? 요리의 맛을 알고 맛을 낼줄 아는 사람이라야 참 요리사가 아닐까? 그런 요리사의 맛을 아는 직원들은 밥그릇에 밥풀 붙은 것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반찬 그릇까지 말끔하게 비워 냈다. 나는 영양사의 말에서 한가지 깨우친 것이 있었다. 불티나도록 바쁜 음식점에는 언제나 신선한 재료를 써서 금새 만들어낸 음식을 내오니 맛이 좋고 더불어 사람들도 더 찾게 된다는 도미노 현상을 얻어낼 수 있었다.
도미노라는 비유가 어울릴지 모르지만 도와주러 들어간 식당에서 오늘은 새로운 것을 배우고 나왔다.
퇴근하여 집에온 남편은 역시 불편했다. 한 발을 들고 깨금발을 하며 다니거니 앉아서 엉덩이로 어기적거리는 모습은 고장난 다리의 빠를 치유를 위한 것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엉덩이를 찰싹 갈겨주고 싶은 그런 행동으로 보였다.
남편이 소파 모서리를 짚고 일어나는 것을 아이가 유심히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기어다니던 아이가 자기도 벽을 짚고 아빠의 모습을 흉내내며 일어섰다. 어찌 되었건 아이가 서기위한 모습을 보여준 결과가 되었다.
해가 산 너머로 떨어지고 나자 바람이 세차게 불어왔다. 그런 저녁에 바람 속에서 찾아온 이가 있었다.
이곳은 바닷가라서 바람이 부는 것은 예사였고 오히려 바람이 잦아든 날이 더 이상할 정도였지만 근간에는 바람이 조금밖에 안 불었던 것 같았다. 근데 오늘은 조금 세게 불었다. 태풍이 오려는지 어둠을 타고 바람이 많이 불었다.
"저를 찾아 오셨나요?"
현관문을 두드리고 찾아왔다면 이웃이겠거니 하지만 이번에도 이웃이 아닌 내 뇌파를 타고 찾아온 방문객이었다. 불청객이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은 언제나 같았다.
그러고 보니 불편한 남편과 아이를 돌보느라고 카리시안에게도 행운목에게도 관심을 두지 못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미리의 음성이 아니었다.
"제왕이라는 분이신가요?"
안개처럼 스며들어오는 흐릿한 윤곽이 지난번에 조우하였던 가상공간의 통치자라는 제왕으로 불리는 이였다.
"미리는요?"
그는 말없이 나를 주시하며 비행접시 안으로 인도하였다. 내 스스로 걸어 들어간 것이 아니었다. 거실 소파에 앉아 있는 그대로 타임머신 안에 있는 조종석에 앉았다.
나는 얼른 현실체크를 했다. 가장 쉬운 것이 내 살갗을 꼬집어보는 일이었다.
오른손을 들어 왼쪽팔목을 꼬집어 보았다. 살갗은 만져졌으나 감각이 없었다.
"자기야!"
나는 꿈결인가 하여 얼른 남편을 불렀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늦어버렸다. 가상의 공간이 현실을 넘어 어느새 나는 공룡이 살고 있는 세계로 들어와 있었다.
얼마 전에 미리의 말로는 내가 생각한 곳으로 이동한다고 했는데... 오늘은 내 생각과 전혀 다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때 나즈막하게 들려오는 음성이 있었다.
낯익은 반가운 음성이 귀를 간지렀다.
-'언니!'-
"으응... 미리?"
-'네!'
"오늘은 나를 데리고 어디로 가는 거니?"
-'그냥 따라와 보세요. 언니가 알고자 했던 일들에 대해 지난번 부족했던 제 설명을 보충해 줄 수 있을 거에요.'-
이번에는 시간의 흐름이 거꾸로 진행하고 있는 바깥풍경이 보였다. 영화에서 몇 본 보았던 공룡의 시대가 지나가고 작은 이끼 식물들이 자라는 시대까지 올라가자 한 사나이가 벌판에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허허로운 진흙밭이었다. 먼지가 일고 있는 마른 진흙밭... 진흙처럼 생긴 단단한 암반이었다. 사나이가 손을 들자 단단한 바닥이 갈라지며 덩어리져 스스로 일어나 성벽이 되고 성채가 만들어졌다.
그의 손놀림에 돌을 정교하게 쌓아놓은 모습으로 되었다. 우리 눈에는 흙을 주물러 만드는 것처럼 쉬워 보였다. 그는 수많은 바윗덩어리로 탑을 만들고 건물을 올리고 순식간에 땅을 변화시키는 마술같은 일을 벌였다.
-'보세요! 저 사나이가 가상공간에서 세상을 통치하기 위해 스스로 존재하는 지배자 였는데 좀 괴팍스럽답니다. 저렇게 과거로 올라가 시간을 어지럽히고 있는 거에요,'-
미리는 다시 말을 이었다.
-'미래에서 여기를 보러 오는 이들에게 쉴 수 있는 여행자 주거시설을 만든다는 거에요. 그래서 저런 것들을 많이 만들었는데 글세요... 세월이 흐르면 혼돈이 온다는 것을 모르는 가봐요. 철부지 같은 일을 하고 있잖아요. 그래서 능력이 더 뛰어난 제왕님이 그를 감금하고 이곳을 폐기시켰답니다. 그런데 그 능력이 우수한자가 감옥이라고 갇혀 있겠어요? 아니면 우주 끝으로 던져진다고 다시 안오겠어요? 그런데 지금쯤은 어느 은하계로 가서 지구와 같은 문명을 만들어 놓고 천문학자들에게 또 혼돈을 주고 있나봐요. 지금 서기 3500년에는 은하계를 다 뒤져가며 지구와 똑같은 행성을 찾느라고 야단인데 그는 과거 선사시대에서 미래의 첨단 문명을 더 발전시킨 다음 우주로 떠나 닮은꼴 지구를 찾았대나 봐요.'-
"그래서 지금 내가 머물고 있는 시대에서 지질학자와 고고학자들이 과거에 첨단 문명이 있었다는 것을 확인 했다고 하는데 그게 다 저런 장난구러기 초능력자의 짓이란 말이야?"
-'네, 언니! 그래서 여행사 입구에 이런 말 써 놓은 것 기억 안 나세요?'
"뭔데...?"
-'네, 과거로 여행하면서 땅에 착륙하여 내리지 말고 혹시라도 내리거든 낙서를 하지 말고... 또 물건을 함부로 버리지 말라고 말에요. 그게 다 나중에 우리 조상님들 즉 시간여행이 뭔지 모르는 시대에 살고 있는 조상님들이 사실증명을 하기 위해 다투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말에요. 그런데도 가끔은 지구 시작지점까지 갔다가 오면서 공룡들이 사는 곳에서 공룡알을 가져 오기도 해요. 그런 일은 법적으로 제재하기 때문에 번식시키지 않았지만 공룡들 한테 장난삼아 가지고 있던 금속물건들을 던지거나 하여 공룡을 놀래키거나 다치게 한답니다. 그래서 타임머신에 오를 때 짐을 검사하여 확인하고 올 때도 다시 체크하여 없어진 물건이 있으면 엄벌에 처하기도 해요,'-
"그래 미리야! 네가 사람보다 초능력자보다 훨씬 정직하고 낫구나! 너는 다음에 꼭 사람으로 태어나서 우리 진짜 언니 동생으로 만나자 꾸나!"
-'언니 고마워요. 글구 사랑해요.'-
"나두!"
나는 또 궁금한 것이 있어 미리에게 물어보았다.
"미리야! 근데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거니? 아니면 이게 현실이니;?"
유림이는 졸려서 이쯤에서 나갑니다.
미안요. 빨리 다시 올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