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 / 김정태
아버지는 20여 년 만에 땅속에서 나와 지상에 누웠다. 당신께서 잠들어 있는 동안 난 40대에서 60대 초로가 되었다. 내가 살아 숨 쉴 수 있는 시간이 보낸 세월에 비해 턱없이 적다는 것을 되새김할 나이에 닿아있다. 다다른 시간은 밀려가고 있는데, 어쩌자고 당신께선 아직 살도 다 덜어내지 않은 모습으로 자식 앞에 계시는지.
덜 삭은 당신의 살은 뼈를 가지런히 잡고 있었다. 살은 근육도 물도 아닌, 흙에 떠있는 무늬로 보였다. 관 안은 헐렁해 고요했고, 바라보는 자의 속은 뭔가로 그득해 마음은 아득했다. 땅속에서 보낸 시간은 흐름도 무게도 비우고 있었기 때문일까. 아무런 표정도 읽을 수 없다. 떠나신 후, 20여 년 밥벌이로 세상을 헤매고 있을 때 아버지는 몸도 마음도 비우고 누워 계셨겠구나 하는 느닷없는 생각이 잠깐 스치고 지나갔다. 나도 황혼이란 말로 뭉뚱그려지는 나이대에 들어섰음인가. 삶과 죽음의 경계는 무뎌지고 흐려져 뿌옜다.
쓰다듬다 내가 기진한들 맞아들여야 할 산자와 주검과의 마주함이다. 혼백이 떠나간 주검 앞에서 입을 열어 까불대는 것은 객쩍다. 가슴이 요동친대서 이 풍경이 싸워서 이겨내야 할 대상은 아니다. 지금 주검은 가볍고 명료한 사실이며, 삶은 맞아들여 뒤따르는 그것에 잇대야 하기에 끈적이고 무거웠다.
중장비 이마가 밝히는 불을 의지해 시작된 이장移葬 절차는 아침볕이 내리쬘 때쯤 막바지에 이르고 있었다. 내게 덜어준 살과 뼈를 아침볕에 드러내놓고 있었다. 세상에 나온 잠시의 시간을 알뜰히 쓰고자 작정이라도 하고 계셨던 걸까. 볕을 쬐고 바람이 거들자 뼈에서 살이 녹아내렸다.
당신 몸의 헝클어짐은 지금 당신이 할 수 있는 가지런함이었기에, 흐트러진 듯 질서는 유지되고 있었다. 이것이 내 아버지의 몸이고 나는 스스로 가지런함 앞에서 산자로서 경건을 유지했다. 하지만 마음은 여러 것들로 비벼지며 뭉개지고 있었다. 20년의 시간이란 이런 거였구나 하는 생각 앞에서 무참했다. 가지런함은 살아 있는 동안만 유효하다. 그렇긴 하되 말하여질 수 없는 시간 앞에서 산자는 들볶이고 있다. 가뭇없이 빠져나간 생명 앞에서 생명 있는 자도 말없음에 동참해야 하는 것이다.
묘가 열렸을 때 아침볕이 일제히 내려앉았다. 당신이 살과 뼈를 나눠준 3남매 중 이 자리엔 나밖에 없다. 형은 아버지보다도 1년 앞서 떠났다. 지금 아버지 옆에 같은 남루함으로 누워있되 그는 제 아비의 모습을 볼 수 없다. 누나는 얼마 전 재가 되어 산사에 머물고 있어 여기 오지 않았을 것이다. 어머니는 맏딸이 재가 되어가는 순서를 알아채지 못했다. 살아계시되 되어가는 일이 무엇을 하는지 알지 못하니 생전의 아버지와 같이 누웠던 자리에 지금 누워있다. 아버지와 형의 형상은 크기도 모습도 똑같다. 덜 덜어냈고, 무질서가 가지런함으로 환치되어 누워있는 모습이 너무 닮았다. 유골도 닮음은 유전되는 걸까.
동도 트기 전 열어젖혀진 조부모의 거처에는 아무도 있지 않았다. 두 분이 나란히 누워 계신다고 생전의 아버지는 말했었다. 그런데 아무도 없다. 손으로 고운 흙을 만져나갔다. 오한으로 이불 속에서 떨고 있는 사람 이불 걷듯, 조심스럽게 흙을 걷어냈다. 까만 재가 두 줄로 나란히 그어져 있었다. 마치 새끼줄을 두 가닥 나란히 놓고 불로 태운 뒤 남은 재처럼 흙 위에 그은 검은 두 선線이다.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싹 다가가서 휴대폰의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개발사업소에서 요구하는 꼭 필요한 증빙서류 중의 하나다. 주검이 보이면 최대한 근접해서 찍어야 한다고 사업소 직원은 현행범 얼굴 사진을 확보해야 한다는 듯 말했었다.
집안의 서사를 늘어놓자고 시작한 글이 아닌데 여러 풍경이 포개지니 무색하다.
마을에서 멀지 않은 선산 일대가 산업단지에 수용된다는 통보를 받은 것은 이태 전이다. 선산에 계신 조부모, 아버지, 숙부, 형의 묘를 이장해야 하는 일이 생긴 것이다. 파묘를 하고 주검의 모습을 바싹 다가가서 한 장 찍고, 서너 발짝 물러나서 한 장 더 찍어오라고 개발사업소 직원은 들꽃 몇 송이 찍어오라는 듯 차분히 일러주었다. 그 다음은 꼭 화장을 하고 ‘화장증명서’를 발급 받아 사진과 함께 내라는 것이다. 재가 된 모습도 찍어야 하느냐는 물음에 바닥을 찍어오라고 했다. 재를 한 번 더 재를 만들어야 증명서를 뗄 수 있을 거라고. 말하던 직원은 일그러지는 내 얼굴을 보고 급히 제자리로 돌아가 컴퓨터에 코를 박았다.
난 할아버지를 본 일이 없다. 재가 되어 흙에 스민 분을 뵌 셈이다. 할머니는 내가 초등학교 입학하는 날 돌아가셨다. 뭔 초본인지 등본인지를 쥐여주며, 베옷 입은 엄마는 혼자서는 안가겠다고 징징대는 나를 달래다 등짝을 쳐서 밀어냈었다. 40대의 아버지는 방바닥에 누워 사지를 요동치며 울었다. 우리 삼 남매는 아버지 우는 모습이 무서워서 울었고, 우는 어머니를 따라다니며 울었다. 그때의 할머니 나이보다 서너 해는 더 살은 손자가 재가 된 할머니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있는 것이다. 할머니는 색깔로 길게 누워 같은 색깔의 남편 옆에서 평안했다.
아버지가 선산으로 이사하던 날, 선산에 딸린 비탈밭에는 보리가 누렇게 익어가고 있었다. 당신이 안식처로 터를 잡기 전, 형이 먼저 와 기거하고 있었다. 형은 늙은 아버지를 방바닥도 아닌 병원의 차가운 복도 바닥에서 꺽꺽 울게 했다. 당신의 어머니 죽음 앞에서 사설을 하며 울던 아버지는, 자식의 죽음 앞에서 가슴과 배의 장기들이 뒤섞이는 듯 동물의 울음소리를 내며 울었다. 형은 대꾸 없이 선산으로 와 거처로 들어갔다. 그날도 선산의 비탈밭엔 보리가 익어가며 바람에 일렁였다. 형과 아버지의 이태 간의 풍경들이 뒤섞여 이제는 논리나 개념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다만 기억은 흐려지고 멀어 풍경만 살아 그림으로 겹친다.
덜 삭은 아버지의 몸이나 형의 몸을 난 만져볼 수 없었다. 만질 수 없음에 내 몸이 떨었다. 다만 생전의 온기를 기억해 볼 뿐 그 이후를 난 알지 못한다. 구급차 안에서 흐르지 않는 피가 채 식지 않은 형의 살을 만졌었다. 다시 재가 되고 흙이 될 터이다.
세상에 다시 드러낸 모습을 아침 햇살이 덮을 때, 지상에서 보던 어떤 주검의 모습보다 재가 되지 않고 앞에 놓여 있는 주검은 훨씬 논리적이다. 죽는 것 이후에 대하여 한 치의 줄임도 보탬도 없었다. 나는 주검 앞에 더 이상 다가설 수 없고, 주검 또한 내게 손 내밀지 못한다. 삶과 주검의 경계는 아득한 것이어서 논리로 설명한들 더 아득해질 뿐이다.
죽음을 산자는 살아 있기에 죽음 후를 말할 수 없고, 죽은 자는 죽었기에 자신의 죽음 이후를 전해줄 수 없다. 그러니 산자가 죽음을 논리로 설명할 수 없다. 다만 세월이 지난 후에 다시 만날 수 있다면 무질서한 가지런함으로 말해 볼 뿐이다. 지금 이 순간의 시간과 공간에 그것이 존재한다.
극악스럽게 소리치던 중장비의 법석도 끝이 났다. 겨울을 막 지난 보리는 중장비의 바퀴에 이겨지고 뭉개졌다. 이젠 이 들판에서 누렇게 익어가는 보리는 볼 수 없다. 작은 관에 모셔진 다섯 분을 모시고 화장터로 향했다. 억지로 재가 될 것이다. 조부모는 흙이었다가 다시 재가 될 것이다. 그래서 산자의 슬픔과는 더 멀어질 것이고, 주검들은 산자 앞에 더 완강하게 설 것이다.
산일을 마치고 화장터로 향하는데, 뿌예진 눈앞에, 어쩌자고 다섯 분이 선산의 양지에 앉아 봄볕을 쬐고 있다. 같은 방, 같은 식탁에서 밥을 먹던 그들이.
화장터로 향하는 차 안에서 옆구리가 저려와 울음이 밖으로는 나오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