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발전과 번영의 터전, 울산에 이르다(구어 - 울산 24km)
조선통신사 걷기행사 18일째인 4월 18일, 전국적으로 비가 내리겠다는 예보와 달리 아침에는 날씨가 맑다. 7시에 구어 만남의 광장 쪽으로 가는 시내버스에 올랐다. 약 40분이 걸려 7시 45분에 만남의 광장에서 내려 어제 점심을 들었던 식당에서 해물된장찌게로 아침을 들었다.
예정시각보다 약간 빠른 8시 반에 울산을 향하여 24km의 행로에 들어섰다. 구도로와 소로로 이어지는 한적한 길을 따라 한 시간여 지나니 경북과 경남의 경계지점에 가까운 석계초등학교에 이른다. 그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학교 못 미쳐 작은 동네의 소나무 숲이 보기 좋고 호젓한 시골마을들이 평화로워 보인다.
도의 경계표시가 안 보이는 가운데 어느새 울산광역시에 접어든 듯, 충청북도에서 경상북도 문경에 접어든지 11일 만에 경상북도를 벗어나니 경상북도가 넓고 큰 지역임을 실감하게 된다. 10시 반에 녹동미나리 산지의 갈림길에서 산길을 따라 가파른 고개를 넘으니 차가 다닐 수 없는 오솔길이 나타난다. 천마산 기슭의 흙길을 따라 내려오니 외진 곳의 저수지에서는 태공들이 한가롭게 낚시를 즐기고. 저수지에 떨어지는 빗방울이 운치가 있다.
그 아래쪽으로 내려오니 만국기처럼 요란스런 깃발들이 휘날리는 사찰이 나온다. 절 이름을 살피니 천만사라고 적혀있다. 선상규 회장은 2년 전에 지날 때 짓고 있었는데 그 사이에 완공하였나 보다고 말한다. 사단법인 대중불교 조계종 천만사라고 밝힌 사찰의 본원이 어디인지 잘 가늠이 가지 않는데 스님과 처사가 한 잔씩 드시라며 직접 커피를 뽑아준다.
사찰에서 내려오니 호계마을, 포장도로를 따라 꽤 긴 언덕길을 오르니 달천마을을 지나 고개 마루에 화이트가든 음식점이 나타난다. 이곳이 점심 식사를 하는 장소, 예정보다 빠른 11시 50분에 당도하였다. 메뉴는 순두부찌개, 약간 싱거운데 일본인들에게는 적당할는지.
12시 50분에 이곳을 출발하여 오후 걷기에 나섰다. 울산경찰에서 에스코트에 나서고. 경북지방에서는 경찰의 지원이 전혀 없어서 약간 위험하기도 하였는데. 식당에서 점심을 들고 있을 때 요란한 천둥소리가 들리더니 오후 걷기에 나서자 천둥번개가 연달아 치더니 빗방울이 떨어진다.
비옷을 꺼내 입고 우산을 받쳐 든 채 한 시간여 오르막과 내리막길을 몇 차례 오르내리는 사이에 울산광역시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오는 고개 길에 이른다. 그 사이에 비는 그치고.
울산시내의 초입에 있는 에스 오일 주유소에서 잠시 쉬었다가 오후 2시 20분 그곳에서 10여분 거리에 있는 울산병영의 언덕에 올랐다. 경상좌병영의 본거지였던 병영은 커다란 공터만 댕그라니 남아 있다. 약간 높은 지대라 울산비행장의 활주로와 시내 중심부가 시야에 잡힌다. 강진의 병영은 석축을 새로 쌓는 등 유적을 복원하고 있는데. 병영에서 내려오는 길에 외솔기념관으로 가는 안내표지가 눈에 띤다. 한글학자 최현배를 기리는 곳이리라.
시내 중심가를 거쳐 오후 3시 20분에 중구 북정동에 있는 울산동헌에 도착하였다. 울산동헌은 울산읍성내의 중심 건물로 울산도호부의 수령이 집무하던 곳으로 울산광역시 유형문화재 1호로 지정되어 있다. 동헌 입구에는 고복수의 타향살이 노래비가 세워져 있고.
몸 풀기를 하고 동헌을 잠시 살펴 본 후에 700m 쯤 떨어진 숙소로 향하였다. 숙소에 여장을 풀고 따뜻한 물로 몸을 씻으니 고단한 몸이 나른하다. 잠시 쉬었다가 6시부터 저녁 식사, 숙소에서 가까운 강동한정식집에서 고양문 교수가 고향인 울산에 온 것을 환영하는 뜻으로 저녁을 대접하였다. 너무나 큰 호의에 감사를 드린다.
식사가 끝나자 한국노래와 일본노래를 번갈아 부르며 흥겨운 분위기, 식당의 영업에 폐가 될까봐 7시 반에 서둘러 노래 부르기를 끝내고 내일을 기약하였다. '먹고 걷고 자자'에서 먹고 걷고 노래하고 자자'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셈인가.
동헌 입구에 새겨진 울산시민헌장에는 울산이 아득한 선사시대부터 풍요로운 삶을 이어온 고장으로 신라문화의 터전, 국방의 요충지, 근대산업의 중심지라고 적혀 있다. 1967년 연수과정의 일환으로 새로운 중공업단지로 발돋움하는 울산을 산업시찰 할 때 허허벌판이던 신흥도시가 한국경제의 견인차로 탈바꿈하여 상전벽해의 성공적인 사례가 되었다. 몇 년 전에 광역시로 승격된 울산의 발전상은 한국의 경제발전과 새로운 도약의 산 증거가 아닐는지, 먹구름 속에 비가 오다가 활짝 갠 날씨처럼 울산의 웅비를 거울삼아 한일 양국의 더 나은 미래를 기약하는 다짐을 할 수 있으면 좋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