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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목자되신 하나님
시편 23편 1-6절
2020년 4월 19일 주일낮 11시
인도 설교 선형수 목사. 주은혜교회 진천
서로 인사합니다 반갑고 고맙습니다
'결핍'은 인생에서 죽을 때까지 해결될 수 없는 숙제이다. 건강, 환경, 지식, 물질(돈), 명예, 관계, 직업, 직장, 학교, 친구, 가족, 친척, 마을, 사회, 국가, 교통, 음식, 물, 공기, 사람, 짐승, 나무, 산, 바다, 들 등등 모든 것에서 만족보다는 부족함 혹은 결핍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베트남은 쌀을 나눠주는 자판기가 설치되어서 코로나 19로 쌀이 없는 사람들에게 큰 인기를 누린다고 한다.
수십년 전에 우리 나라에도 보릿 고개 시절처럼 배고픈 때가 있었다. 지금도 무료급식소에 사람들이 몰리니 배고픈 사람들이 있다. 분명한 것은 전반적으로 살림살이나 먹고 살기가 나아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사람들이 옛날보다 더 불안을 많이 느끼고 살 수 있다. 상대적 박탈감, 비교의식, 결핍을 느끼기 때문에 불안한 것이다.
시편 23편은 마음의 온전한 평강을 누리는 영혼을 그린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의 마음에 주어지는 평강이다. 오늘 본문은 결핍은 외부에서 올 수도 있지만 내부에서, 자기 자신의 내면에서 오는 경우도 많다는 것을 말한다.
[1] "하나님은 저의 목자이십니다.
저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다윗은 왕으로 기름부음 받기 전 십대 중반까지 목자 혹은 목동으로 양을 치는 생활을 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을 목자로 비유한다. 다윗은 목자의 경험을 가지고 있어서 양들의 필요가 무엇인지 양들을 목자로서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 잘 안다. 다윗은 자신을 연약하고 스스로 방어할 수 없는 어리석은 양과 비교한다. 다윗은 하나님을 그의 공급자, 보호자, 인도자, 진정 그의 모든 것으로 여긴다. 아가는 엄마 아빠가 전부이다. 엄마 아빠가 옆에 있으면 행복하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것을 믿으면 아무것도 부족함을 느끼지 않는 신자는 행복하다. 어린 아이처럼 하나님이 함께 하는 것으로 기뻐하는 사람은 언제나 부족함이 없다.
사람들은 누구에게나 원수 혹은 적이 있다. 사람, 환경, 마음, 분위기, 관계, 직장, 학교, 마을, 이웃, 티비, 스마트폰, 술, 마약, 게임, 돈, 습관, 자동차 바이러스, 경쟁, 욕심, 시기, 질투, 명예, 자아 등등 인간이 살아가면서 무엇이든지 원수가 될 수 있다. 원수는 결핍 혹은 부족함이기도 하다.
시편 13편은 특히 원수에 대해 기도하는 시이다.
히브리어 맛소라 본문을 제가 직역한다.
13:2 야웨여 어느때까지 입니까
영원히 저를 잊으시렵니까
언제까지
제게서 당신의 얼굴을 숨기시렵니까
13:3 언제까지 제 영혼이 고뇌해야 합니까
온종일 슬픔으로 보내나이다
언제까지 제 원수가 저보다 높아져야 합니까.
13:4 돌아보소서 제게 응답하소서
나의 하나님 야웨여
제 눈에 빛을 비추소서
제가 죽음의 잠을 자지 말게 하소서
13:5 제 원수가 말할까 합니다
"내가 그를 이겼다"
제 적들이 기뻐할 것입니다
제가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13:6 그러나 저는 당신의 신실한 사랑을
( "버하서더하 בחסדך")
제가 의지하나이다
제 마음이 기뻐합니다.
당신의 구원으로
제가 야웨께 노래합니다
진정 그가 제게 풍성하게 베푸십니다
시편 13편은 많은 원수를 말한다. 원수, 죽음의 잠, 원수, 적들, 흔들림, 등등 많은 원수가 시인을 흔들고 있다. 원수가 정확히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 없다. 원수는 밖에도 있지만 내 안에도 있다.
북이스라엘 왕 아합과 그 아내 이세벨은 다 가졌으나 하나님을 가지지 못했다. 그래서 항상 결핍, 즉 부족함을 느꼈다. 자기 백성 나봇의 포도원이 너무도 탐이 났다. 그래서 누명을 씌워서 죽이고 빼앗았다. 하나님이 없는 자는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고 함부로 살다가 하나님의 버림을 받는다. 그들 부부의 최후는 비참하게 개의 밥이 되었다.
다윗 왕도 아둘람 굴이나 광야에서 사울의 칼을 피해 도망다니는 삶을 살 때 결핍, 즉 부족함을 느끼고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고 도우심을 구했다. 그러나 왕의 자리에 올라서 평안해지자 다윗은 부하들이 전장에 나가서 싸울 때 궁궐에서 낮잠을 자다가 일어나 오후 늦은 시간에 궁전 뜰을 어슬렁 거렸다. 그리고 궁전 아래 여인이 목욕하는 것을 보았다. 그 순간 다윗의 마음에 견딜 수 없는 결핍, 즉 욕망의 갈증이 왔다. 그는 그 부족한 것을 채우고자 남의 아내를 뺏고 그녀의 남편 그 부하 장군을 죽게 만들었다.
하나님이 마음에 없거나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갖지 못하면 그 결핍이 찾아 온다. 간음, 살인 후에 다윗의 집안에 항상 죽을 때까지 칼이 떠나지 않았다. 모든 인간은 죄인이어서 잘못된 결핍이 그 사람을 지배하면 넘어지게 되고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
시편 23편은 다윗이 하나님과 좋은 관계에 있을 때, 그의 원수가 많고 고난에 처했을 때 지은 시 일 수 있다. 시인은 하나님의 헤세드, 신실한 사랑을 의지하여 살아간다. 구원의 하나님, 풍성하게 채워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한다.
미국에서 신학을 공부하는 방한칸 원룸에 월세로 사는 어느 가난한 부부의 주방에 시편 13:6이 히브리어로 붙어 있었다.
ואני בחסדך בטחתי יגל לבי בישועתך
אשירה ליהוה כי גמל עלי
바아니 버하서더하 바타흐티
야겔 리삐 비슈아테하
아쉬라 라아도나이 키 가말 알라이
"그러나 저는 당신의 신실한 사랑을 의지합니다
제 마음이 기뻐합니다, 당신의 구원으로.
제가 노래합니다, 야웨께.
그가 제게 넘치도록
부어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미국의 어느 신학생 부부가 이 구절을 주방에 써 붙여 놓고 날마다 아침마다 저녁마다 풍성하게 부어주시는 하나님을 감사하며 찬양했다. 아무것도 없는 그들이 풍성하게 채우시는 하나님을 감사하고 찬양했다.
궁핍과 불안은 외부에서 뿐만 아니라 나의 내부에서 나오는 것일 수 있다.
오늘 본문 시편 23편1절
יהוה רעי לא אחסר
아도나이 로이
로 에흐사르
"야웨는 나의 목자시니
나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내게 가진 것이 많아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의 목자이시니
나는 부족함이 없는 것이다.
[2] "푸른 풀밭에 그가 나를 눕게 하신다
잔잔한 물 가로 나를 이끄신다."
양들에게 필요한 것은 풀과 물이다. 요즘 풀약, 제초제를 많이 뿌려서 아무데서나 풀을 먹으면 죽을 수 있다. 오염원이 많아져서 아무데서나 물을 마시면 병이 들거나 죽을 수 있다.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풀은 푸른 풀밭이다. 오염되지 않은 깨끗하고 안전하고 먹고 쉬고 놀 수 있는 푸른 풀밭이다.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물은 잔잔한 물가이다. 쉼이 있고 깨끗하고 안심하고 마시고 고요하게 쉴 수 있는 잔잔한 물가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묵상하는 삶과 행동하는 삶이 함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이 두 가지를 신자에게 주시는 분이다(스펄전). "하늘의 목자 는 그의 돌보심 아래서 신자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시는데 생략하는 것이 없다."(칼빈).
[3] "제 영혼를 소생시키시고
의의 길로 나를 가게 하시니
그의 이름을 위함이라"
"슬픔에 찬 영혼에 활력을 주시고, 죄악된 영혼을 성결하게 하시며, 연약한 영혼은 강건하게 하신다"(스펄전). 하늘의 목자이신 하나님이 이런 일을 하시기 때문에 강단에 서는 설교자와 그의 전하는 말씀에 성령의 역사와 능력이 일어난다. 성도가 말씀을 읽을 때 감동을 주시고 기도할 때 소망을 주신다.
[4] "또한 진정 내가
죽음의 그림자의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나는 해를 두려워 하지 않으리라
진실로 당신이 나와 함께 함이라
당신의 막대기와 당신의 지팡이가
나를 위로함이라"
이 구절은 특히 임종예배 때에 혹은 입원 환자들을 심방하여 예배할 때 즐겨 낭독하는 구절이다. '죽음의 그림자'는 원수나 대적일 수도 있다. 질병, 건강, 돈, 인간관계 등등이다. '죽음의 그림자' 역시 결핍이다. 시인의 목숨을 위협하는 것, 그것은 우울증, 정치적인 적, 도적, 강도, 이웃나라, 나 자신의 게으름 혹은 무능함, 부정적 혹은 비관적 생각, 등등이다. 신자의 앞길을 막는 자, 신자의 앞길을 방해받을 때도 하나님의 위로와 도우심이 있다. 목자는 막대기와 지팡이로 늑대나 이리 같은 짐승들이 양들을 해치지 못하도록 물리치고 제압하는데 시용한다. 혹은 양들이 다른 길로 가지 못하도록 가리키거나 때리기도 한다. 모세는 지팡이를 가지고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키고 광야를 가는데 사용했다. 모세가 든 지팡이는 하나님이 가지고 가라고 한 것이고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의 상징으로 쓰였다.
[5] "원수들의 목전에
내 앞에 당신이 상을 차리시니
내 머리에 당신이 기름으로 부으시나이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
둘둘 말은 두꺼운 천이나 양탄자가 바닥에 깔리는 이동식 상으로 쓰였다.
의인에게는 원수들이 있다(스펄전). 신자에게 원수가 있으니 하나님 편에 서서 살아가는 것이다.
원수는 일종의 결핍이다. "아 나는 참 내세울 것이 없는 사람이야" 라는 생각이 나에게 있다. 이것이 열등감으로 변하면 나를 힘들게 하고 견디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가난하고 부족한 사람이니 하나님을 의지해야 해", "나는 하나님을 붙들어야 살 수 있어" 라고 생각하면 나의 부족과 연약함은 복이요 은혜가 되는 것이다.
원수들이 없다면 하나님이 우리의 친구가 될 수 없다. 세상과 친구가 되면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이다. 경건한 자는 원수 앞에서도 고요함을 유지한다.
예수님은 선한 목자이시다(요 10:11,14). 예수님은 그의 양을 알고 그의 양은 예수님을 안다. 초대 교회 신자들이 박해 기간에 동굴에 숨어 살 때 그린 카타콤 벽화에 예수님을 목자로, 잃은 양을 어깨에 맨 목자로 그렸다.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 목자는 가장 낮고 천한 직업이었다. 다윗의 형들이 많았지만 막내인 다윗이 목자였다. 우주의 하나님이 우리의 목자가 되신다. 고대 사회에서 왕은 목자로 여겨졌다. 다윗은 왕으로서 목자 역할이었다. 그러나 진정한 목자는 우주의 왕이신 하나님이다.
[6] "정녕 선함과 신실하신 사랑이
나를 추격하리니
나의 평생의 날들에
나는 야웨의 집에 돌아가리라
영원히"
'헤세드', '신실한 사랑'은 언약적 사랑이다.
야웨의 집은 성전이다. 성전은 예수님이요 성전은 하나님이시다.
신자는 이 땅에서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살고 기쁘고 즐겁게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신실하신 사랑이 신자를 따라 다니는 것이다.
날마다 신자는 하나님의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집은 성전이고 예수님이요 하나님이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우리는 날마다 예수님께 하나님 아버지께 돌아가는 것이다.
여러분의 삶속에 평생 하나님의 선함과 신실한 사랑이 함께 하며 날마다 하나님 아버지께, 그리스도 예수께 돌아가는 삶을 살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목가적 풍경(1-4절), 잔치(5절), 요약(6절) ☞콘라드 쉐퍼
안전과 평온함의 분위기가 지배한다.
"따른다", "거한다" 두 동사는 목양과 잔치의 이미지이다.
초장, 물, 양떼 회복 // 상, 기름, 포도주.
"어두운 골짜기" = "나의 원수들" ☞ 위험.
그러나 하나님의 임재로 두려움이 사라진다.
마지막 부사절은 여정과 체류, 양떼와 손님을 요약한다: "나의 평생에", "나의 인생 전체에."
시편23편은 시작과 말미에 야웨를 말한다.
가운데에 하나님(4-5절).
신뢰가 흔들리지 않는다.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4절; 창26:3).
[4] אתה
하나님께 직접 말함으로 친밀감이 강화된다.
1절 야웨 - 4절 "당신"(아타)-6절 야웨로 틀(인클루지오)을 이룬다.
악(רע) - 나의 목자(רעי) : 단어 유희 - 두려워 말아야 할 악의 위협에 맞서는 목자.
[4a] 어두운 골짜기 : 하나님의 부재
시인의 영적 경험을 반영한다: 초장(1절), 잔잔한 물(2절), 골짜기(4절), 하나님의 상(5절), 성전(6절).
하나님과 시인의 관계는 동물 농장처럼 하나님에 의해 야수성이 길들여지고 다듬
어진다.
"여호와의 집": 공동체가 예배와 공적인 삶을 누리는 공적인 장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