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 때에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문화재청장을 지낸 유홍준 교수님은 조선문인 유한준의 말을 인용해 우리의 문화유산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이사장으로 재임중이신 유홍준 교수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6)' 중 의성관련 부분을 발췌해서 올려봅니다.
신라탑의 출발점, 탑리 오층석탑
북부 경북 순례의 첫 기착지는 아무래도 탑리 오층석탑이 제격이다. 의성군 금성면 탑리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다.
우현 고유섭 선생은 우리나라 석탑의 시원양식은 익산 미륵사탑, 부여 정림사탑 이외엔 탑리 오층석탑밖에 없음을 지적하면서 이 탑의 중요성을 강조했는데, 김원용 선생은 다음과 같이 간명하게 설명했다.
“7세기 전반기에 분황사의 모전석탑을 만들어낸 신라는 7세기 중엽에 와서 백제인들이 먼저 시작한 것처럼 화강석을 써서 목탑·전탑 혼합식이라 할 수 있는 신라 석탑의 초기 형식을 구현하는 데 성공하였다.
경북 의성군 금성면 탑리 소재 오층석탑은 (…) 기단의 형식, 몸돌, 지붕돌의 형식 등이 소위 신라 석탑 형식에로의 방향과 청사진을 만들어놓아 (…) 모든 신라 석탑의 출발점이 되고 있다.”
의성군 금성면은 이 탑으로 인하여 문화사·미술사뿐만 아니라 지방사적으로도 큰 이름을 얻었는데, 그 이름이 너무 큰 바람에 시외버스 행선지표시조차 ‘탑리(금성)’으로 되어 있다.
또 금성면 봉황재에서 부산대 지질학과 김항목 교수가 발견한 공룡의 화석은 ‘울트라사우루스 탑리엔스’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의성 탑리 오층석탑이라는 명작은 그곳으로부터 20리 떨어진 그윽한 골짜기 빙계계곡에 빙산사(氷山寺)터 오층석탑이라는 모방작을 낳았다. 누군가가 경북8승(慶北八勝)의 하나로 꼽은 바도 있는 빙계계곡은 느릿하고 밋밋한 이곳 산세에서는 전혀 예기치 못한 깍아지른 절벽이 그림같은 병풍을 이루는 절경이다.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계곡 한쪽 언덕에 큰 바위가 있는데 아래쪽 구멍인 빙혈(氷穴)은 한여름에 얼음이 얼고 위쪽 구멍인 풍혈(風穴)은 한겨울에 더운 바람이 나온다는 오묘한 곳인데, 바로 이 빙혈과 풍혈 곁 평평한 곳에 빙산사터 오층석탑이 아름답게 서 있다.
답사회원 중 농협에 근무하는 조재일씨에게 의성의 특산물 소개를 부탁했더니 생각 밖으로 아주 유창했다.
먼저 “의성은 경상북도의 최고 중앙에 있어 의성 북쪽을 북부 경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의성의 특산품으로는 마늘, 작약, 감을 들 수 있습니다.”라고 시작한다.
"방금 우리가 다녀온 탑리 오층석탑이 있는 금성면과 사곡면 경계지역엔 금성산이 있는데 금성산은 남한에서 유일하게 화산분화구가 남아 있으며 화산재가 토양을 형성한 사곡면 마늘(보통 ‘의성마늘’로 불리는)에는 벌레가 없고 안동댐 조성 이후 경북에서 가장 추운 곳이 되어 한지형 마늘의 대표적 생산지가 되었습니다.
시곡에서 본래 유명한 것은 감이었습니다. 지금은 생산량도 많지 않은 사곡시(柿)는 옛날엔 진상품이었습니다.
사곡시에는 씨가 하나도 없고, 첫서리가 내리기 전 배꼽이 붉어질 때 따서 비닐봉지에 밀봉한 뒤 장독에 넣어 땅에 묻었다가 12월 말쯤에 먹으면 단감하고는 비교할 수 없는 단맛과 개운한 맛이 있습니다.
또한 의성은 한국에서 작약이 제일 많이 재배되는 곳입니다. 꽃 피는 5월이면 의성 땅 곳곳에 작약꽃이 환하게 핍니다.
작약꽃의 다른 이름인 함박꽃이 탐스럽게 활짝 피면 정말 함박웃음만큼 복스러워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