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注; 긴 넋두리를 내 홈피에 적었다가 우리 친구들이 읽으면 문디자슥 지랄하네 할것 같아 망스러 지기는 했는데 그래도 한친구가 거창땅에서 같이 딩굴면서 자라가지고는 요런 문디같은 생각속에 갖혀 사는 구나 하는 소리도 격려로 충고로 듣고 싶기도 하고,
또 넘의 이바구에 웃음피우는 것도 좋지만 우리의 진짜 이야기도 듣고 싶기도 해 내 용기를 내 옮겨 놀란다. 보고 한마디씩 해 다오!! 내 그리 산다. 그라고 너그뜰 산 이야기나 생각도 좀 적어 도라!!
그러마 우리를 더 많이 서로 이해하지 않겠나??
녹초!! 내 말 틀렸으면 쪽지 남겨라 얼런 지워버릴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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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도 몰래 세상사에 감나라! 대추나라! 혹은 팥나라! 콩나라!! 제법 사명감에 차 열변을 토로하기도 한다. 세상꼴이 그리 바람직하게 움직여 가지는 않는듯한 나름의 진단에서 나오는 열정과 울분의 처방이다. 지금의 그들이 소수라 세상사에 어찌하질 못하고 골방에서 독기 품을 때도 그들도 나처럼 울분을 트터리며 열변을 토했을 것이다. 인간은 그런것인가 보다.
내가 지금 독기를 품고 열정을 토로하는 것과 그들과의 다른점 한가지는 나는 정치적 욕심이 전혀없고 그들은 마음속에 궂어버린 정치적 욕망을 가득담은 것이 다를 것이다. 그러면 왜 나는 별 개인적으로는 무모할지도 모르는 작은 싸움을 하고 있는걸까?? 내 돌팔매짓은 그들이 눈 하나 깜빡하지도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주장하는 이유는 아주 소시민적인 것에서 출발한다.
사회 전체가 지향해야할 목적적 방향은 따뜻함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분리에 의한 분열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결과는 소수의 혁명가들의 권력욕을 채우는 수단을 얻는 것 외는 없다는 믿음에서다.
나는 짧은 소견이지만 혁명이 인간을 행복하게 하지는 못한다는 역사적 평가를 갖고 있다. 혁명은 오직 이념적 이데올로그들의 가슴속에 숨어있는 권력욕을 실현하기 위한 또 하나의 폭력일 뿐이다, 물론 그런 과정을 통해 역사는 발전하게 되는 것임은 사실이긴 하지만, 한시대의 희생을 통한 수대 후의 역사발전이 이루어 진다는 것에 대해 당시대 사람들이 의무짓게 할 권한을 가진 인간은 없다라는 것이다. 소위 프랑스대혁명을 인간이 이룬 가장 성공적 혁명이라한다. 무소불위의 천부적권한을 가진 브로봉왕가의 루이 16세정권을 시민의 손으로 무너뜨린 세계최초의 혁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혁명의 과정에서 죽어간 사람들의 피는 지금도 콩코드광장의 구석구석에 남아 있질 않는가? 그런 수 많은 사람들의 피흘림을 통해 얻는 평등 박애 자유의 이념을 케취플레이즈로 시작한 공화정도 과연 프랑스 국민들을 위해 무슨 사명을 다했는지 되돌아 보게된다.
모든 혁명은 그 지향점이 어디에 있다고 주장하더라도 혁명주체의 내부적 권력욕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영국의 산업혁명이후 수 많은 근로자가 생산기계에 일자리를 잃고 실업자로 나 앉거나 더 적은 임금을 받는 근로자로 전락하는 것도 눈여겨 볼만한 대목이다.
아무리 좋은 가치의 실현을 위한 혁명이든 개혁이라도 그 과정과 수단이 정당해야 하는 것이다. 인간을 목적으로 다루어야지 수단으로는 다루지 말라고 했든가??? 이점은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놓지지 말고 화두로 눈여겨 봐야할 대목이 아닐까?
나는 이런면에서 인간의 기본적 욕구만 충족될수있다면 가장 좋은 세상은 일차산업사회가 아닌가 싶다. 농경사회는 인간이 그 중심에서 사회를 이끌러 갔는데 산업사회 요즘처럼 정보산업사회가 되면서 부터는 인간의 그 systems로 부터 아주 고립될 정도로 소외되고 있다. 정보나 권력이나 자본을 쥐고 있는 Big brother들이 곳곳에 넘처나게 많아져 언제나 인간은 작은 한 점으로 자신의 자리를 메김 받게 된다.
내가 영국에 있으면서 옆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공부하다가 가슴 시원한 위로를 받는 순간은 우리집 부근에 있든 큰 영못(둘레가 한2-3km정도)과 주면의 공원을 산책하며 누리는 안정감과 한가함이 주는 매력에 빠질 때였다. 그 후 나는 도시의 근린공원이나 생활공원 그리고 community facilities나 community care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곳에 거대한 공룡이 되어버려 인간이 소외된 듯한 도시의 한켠에 인간의 인간다운 모습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각박한 도시생활을 하며 그런 공간이 인간에게 주는 의미가 이렇게 크다면 인간은 역시 자연을 떠나 지속적 안정과 평화를 누리기는 어려울것이란 생각을 했다.작은 여유가 자연과 함께 할 때 우리는 진정한 인간으로 삶의 가치를 내재화하여 볼 수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음식도 두세번이면 물리고 아무리 좋은 sex도 그 순간에 머무는 쾌락일 뿐인데 인간과 자연이 함께하는 순수한 공간에서는 지속됨을 나는 피부로 온몸으로 느낀것이다.
사실 그전에는 나도 내 호주머니에 들어있는 만원짜리 장수에 따라 행복지수가 다른 삶을 살았다. 공무원으로서 박봉에 늘 머리속을 어지럽히는 생각은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하는가? 노년에 치료비가 없어 병원도 가지 못하는 신세가 되지는 않을까? 인간다운 품위는 유지할 수 있을까? 였으니 언제 자연속에 숨어있는 나의 모습을 볼수 있었는가?
내가 여기서 말하는 자연은 삼라만상의 모든 것을 의미함이다. 당연 인간은 그 주체이다. 인간이 잃어버린 자연성을 찾게된다면 아마도 자연계에서 인간만큼 멋진 생명체도 없을지 모른다.
인간이 잃어버린 자연성은 결국 그 생명성까지 잃어 버리게 되어 우린 생명의 주체가 아니라 사물적 종속체로서 살고 있음을 느끼고 슴찟해 할 때가 있다. 이런 경우는 우리의 숨도 결국 기계소리처럼 사물화된 형상일 뿐이지 않겠는가??
세상 곳곳을 두루살펴볼 기회가 그래도 여늬 직업보다는 많았다는 것이 내겐 자산이면 자산일까? 아님 생각 많은 애물단지일까??
1990년대 말 주택2백만호(평촌 분당 일산 산본등 신도시)할 때 사회 구석구석의 차이가 주는 갈등도 보았고(요즈은 이를 양극화라한다.?/너무 정치적이라 나는 쓰기가 달갑지는 앟다) 10여년 해외생활을하며 눈으로 볼수 없는 그빈층의 삶의 실재적 모습도 보았다.
자카르타는 바다보다 낮은 저지대가 많다,그래서 비가 30분만 오면 시내는 온통 물바다가 된다. 우리 대사님 관저는 차에서 내려 인간이 끄는 보트를 타고 들어가셔야 한다. 그래서 내가 그곳에 있은 동안은 홍수해 예방에 대해 정부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어 내게 자문을 청하는 기회가 많아 이리저리 둘러볼 기회도 있었다. 생활환경이 열악한 지대는 대게가 가난한 분들이 산다. 그 때 본 일화다.(이건 재미반 세상을 보는 또다른 앵글의 측면에서 쓴다)그러나 지역이 평지로 되어 있어 강이 발달하지는 않았다. 시내 중심부를 흐르는 최대의 강(우리로 치면 개울정도)인 찔리웅강 탐사를 나갔을 때의 일이다.
옛날 ESCAP회의를 참석하기 위해 태국에 머무는 동안 한차례 동남아 국가의 도시canal이 도시빈민들의 집단촌을 이루고 사는 모습을 본적이 있고 60년대 우리나라 청계천하류와 중량천의 판자촌을 직접 눈으로 본적이 있다.
하지만 20세기 말의 세계적 도시중의 하나인 인구 2억4천의 자원부국 연간 무역수지흑자 300억불의 인도네시아 수도 중심부에서 바라본 모습은 참으로 기대보다 더 심했다. 강은 이미 생활하수와 쓰레기더미로 오염될 대로 오면되어 우리가 탄 고무보트는 모터에 의해 움직이기 보다는 현지인이 쓰레기 덤불을 치우고 밀어서 움직이는 것이 더 자주 있었다.
조금 내려가는 데 왠 할머니가 물속에 몸을 담그고 볼일을 보고 계셨다. 애쓰 우리를 외면해 우리도 의식하지 않으려는 배려를 했다. 조금더 내려갔더니 강 가운데로 나무다리가 놓여있고 몇개의 작은 나무울이 처져 있었다. 뭘까? 궁금했는데 왠 이쁘장한 20대 처녀가 우리를 보고 웃고 있잖은가! 그 옆에는 그만한 또래의 남자 아이가 무표정하게 외면하고 있고...강가 데이트인가?
역시 볼일을 보고 있는 장면이였다.
하루에 한번이상은 스퀄(소낙비)이 내리는데 그 때는 어쩔까??
강 주변 뚝은 양철과 함석과 나무로 엉기성기 만든 다닥닥한 움집들이 그 수를 헤아리지도 못하게 많다. 좀전에 본 화장실은 이 동네에서는 최고의 부자들이 누리는 수세식 화장실이고 나머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강 속에 담그고 볼일을 보면 그만이다.
문제는 그다음에 본 장면이다.
빨래?? 그럴수 있다.
목욕 ? 그럴수 있다. 10수년전 태국의 방콕에서도 보았고 우리들 중량천에서도 있음직하다.
그런데 바로 그 자리에 쌀을 씻고 있다. 그 물로 밥을 지어 먹는것이다.
그게 지금 우리와 동시대를 사는 지구촌의 한곳에서 일상사로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다.
그런 그들이 우리들 보다 많이 불행해 보이지는 않았다.
그들은 상대적 비교를 우리만큼은 하지 않아서 일것이다.
요즘
양극화가 우리사회의 화두인데(물론 정치한 쪽에 수혜계층이 중심이겠지만)우리의 한쪽 극에 있는 분들의 월 생활비나 섕계수준은 이들 나라의 중상류층이다.진짜다.
그런데 나는 지금도 내 업무와도 연관있고 내 공부와도 연관이 있어 주거복지 문제에 수헤당사자들을 만나 보기도 한다.
다른 계층분들도 직간접으로 만나기도 하고...
그런데 문제는 이들 수혜계층이 행복해 하질 못하고 더 많은 상실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고 심지어는 사회에 대한 복수심을 키우기도 한다는 것이다. 차이를 극복함으로서 사회적 갈등을 완화하고자 많은 돈을 일방적으로 쏫아 붓지만 일방적 지원은 더 많은 부작용을 만들수 있음을 보여주는 단초일것이다. 나는 역국서 공공복지주택기관에 약 한달여를 근부하며 100여 UNITS을 직접 보았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 100명이상을 면담한적이 있었다.
그곳에서도 똑 같은 현상(모두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표정)을 보고 나는 정말 뒤로 넘어지는 줄 알았다. 정부가 너무 째째하게 쓸 만큼 안준다는 불평에서 오는 상대적 불만이 만든 스스로의 올가미라고 나는 내 가슴에 注를 달았다.
나는 주택건설200만호계획을 추진하든 그 기간동안 도시빈민의 현실적 모습을 보고 저소득층 주거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모든 책임은 정부에 있다는 확신에 찬 생각으로 영국에 건너가 이방면의 책을 주로 보며 SEMINAR주제도 그런 방향으로 잡아 발표하다가 지도교수의 너무 한쪽으로 치우치면 학문적 균형을 잃으니 시장과 국가의 역할에 대한 균형을 찾으라는 정성어린 충고도 듣든 사람이다.
그 교수님의 생각은 내가 사회주의자로 보였든가 보다. 그러나 이상은 현실에서는 판판이 다른 현상을 만들어 낸다. 그것이 인간의 모순이다. 인간은 모순 덩어리이다.내가 지금껏 종합한 모든 지식과 경험과 사고의 합에 의한 판단은 인간은 역시 모순덩어리이다.
내 이야기가 조금은 치우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내인생에서 참으로 소중한 시간을 보낸 기간을 찾으라면 나와 내처가 한 가정을 이루고 시작한 신혼(1977-1981)시절이고 두번째는 영국 유학시절 그리고 세번째는 제주에서의 2년이 아니였나 싶다.
그 이년이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은 불필요한 시간의 낭비가 거의 없었다는 것이고 인구54만 정도의 작은 지역이였기 때문에 사람에 그리 심하게 씨달리는 경우가 없었든 탓이고 세번째 가장 중요한 이유는 잘 정비된 자연이 바로 곁에 있었다는 이유일게다.
그런 조건이 주는 삶의 질은 몰라도 수도권 사람들의 삶의 질보다 3배쯤은 높지 않을까??? 서울 친구들과의 한번 모임에 쏫는 시간이 얼마인가? 가는 데 2시간 오는데 2시간이다. 몇차례의 모임에 참석하고 새벽2-3시에 집에 돌아오며 아 싫다!! 이 낭비의 시간이... 그런 생각을 했다. 제주는 딱 10분이면 도니다.멀어도 15분... 얼마나 좋은가??
삶의 바운다리를 좀 좁히더리도 시간 손실을 줄이고 삶의 질을 높이는 그런 패턴의 생활습관들을 문화로 정착했으면 좋겠다.
아침에 일어나
한시간쯤 산책하고
꽃과 온갖 푸성귀에 물주고 그름주고
집안을 청소하고
그리고 정서스레 준비한 소찬에 조반을 먹고
서재에 앉아 보고 싶은 책도 읽고
오랫동안 못본 친구에게 편지도 쓰고
떨어져 나는 아니들에게도 안부전하고
또 살아가는 이야기를 글로도 쓰고
한 11쯤에나 다시 뒷산을 따라 이는 생명의 고동을 들어며 자연속에 한 부분으로 삶을 음미하는 산책을 하고 돌아와 가벼운 오찬을 하면(불행히도 처는 교직을 그대로 유지할 테니까 혼자 오찬을 해야겠지..)
오후가 되면 바깥바람을 조금은 정기적이고 규칙적으로 속한 삶을 살아야 할것이다. 이것저것 아무것도 뚜렷한 곳이 마땅찮으면 나는 아마 취미생활을 위한 ACADEMY에 참여할것이다.
단(단전호흡)
서도
회화
사진
친구들과의 공동 취미생활
그리고 방송대 학생일 가능성이 높겟지???
문화교양학
농학
영어
또는 중국어
아미년 일본어??
세계 오지 탐험을 할려면 영어 한가지로만은 부족할 테니까>>
겨우 한다는 언어가 해외 생활 10년을 했음에도
영어
일본어 쬐쬐끔
아랍어 쬐쬐쬐금
그리고 마인어(인니어) 어는정도다. 인니어로는 밥먹는 되는 지장이 없으니 도움이 될 테고.. 일어와아랍어는그저 시늉만 할수 있는 인사 정도겠지...
그러니 언어 하나쯤은 더 하고 싶다. 뭘할지는 아직은 모르겠고,.......
오후는 아무튼 집안에서 하는 활동보다는 바같에서 하는 활동을 찾으려 한다,
저녁에는 처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맛있는 만찬을 하면서 하루를 정리하겠지...
저녁을 먹고 나면 동네를 천천히 한바퀴 도는 산책을 처와 한께 할것이다.
그리고 가벼운 교양서적을 읽고 하루를 정리하면 10쯤 잠자리에 들게 되겠지??
나는 참으로 묘하게도 규칙적 반복이 싫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안정감을 준다.
물로 이런 반복도 한해 두해가 되면 지루해 질테니까 중간중간 테마 여행은 계속할 것이다.
국내외를 망라해서......
일년이면 한두달은 여행을 하고 싶다.
여행을 통해 내가 이 지구촌에서 생명을 가지고 있는 인간으로의 존재를 거듭 확인하게 될것이다.
나는 인간이 스스로 존재 이유를 찾는 노력은 계속해야 된다고 보는 사람이다. 무엇으로 존재할 것인가는 매우 개인적인것이기는 하지만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을 가지지 못하면 삶은 어려워 진다고 생각된다.
인간의 존재가치는 자신이 IDENTY를 잃지 않고 발전 시키는 것이다. 그 노력은 죽을 때까지도 계속되어야 한다.
참으로 나 스스로에 만족하는 것은 나의 정체성의 뿌리가 정치적 권력에 있지 않고 인간은 본연일지 모르는 자연성(생명성)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내 스스로의 힘으로도 일룰 수 있지 않겠는가?
권력이나 돈에 자신의 사는 의미를 두는 무리를 보면 언제나 위태위태한 위기감을 느낄 뿐 부럽지 않다는 것도 내가 나를 사랑하는 이유중의 하나다. 남들이 뭐라하든...
내 식으로 나를 살게 하겠다는 의지 또한 싫지 않다.
작은 소시민의 오기같은 자기사랑의변이다.
요즘처럼 잘난사람들이 많은 경우에
자신을 지키는 요정도의 뽐냄은 애교로 봐주리리라 믿는다.
내 삶을 내 식으로 살수 있는 여건이 조금씩 만들어 지고 있는 것은 내겐 행복이다.
첫댓글 이런 저런 이야기 모두 하자고 열어놓은 까페 아닌가베! 우리는 이제 모든 것을 수용하는 나이가 되고도 남았다.
진취적인 기상으로 노력하여 얻은 봉우리는 쉬이 무너지지 않는 법, 열심히 사는 모양 좋으네 그려,
모임에는 바쁜일이 있었나보네. 안나온걸보니. 디게 재미있었는데.
삶 그 자체가 스트레스 일 수도 있는데 끈기 있게 잘 살아왔네. 근데 타자 치는데 얼마 걸린노 나같으마 반나절은 걸리겠다.
솔직 다 읽어 주느라 좀 걸렸다.넋두리 이번엔 길었어. 하지만 훌융하지 우리화동칭구 자랑스럽고 노래한마디해줄께.자랑스러워~자랑스러워 ~머리에서 발끝까지 자랑스럽데이...................
한심하기는 하지만 세상에는 별의 별 사람들이 다 사는 법...다양성을 인정하고 나 혼자만이라도 정제되고 멋있는 삶을 살겠다는 마음을 갖고 있는 자네야 말로 이 시대의 표상이네...근데, 뭔 넋두리가 그리 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