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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요 11:17-27)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초대 교회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유대인들과 로마인들에게 심한 핍박을 받으며 살아야 했습니다. 특별히, 로마 황제인 네로는 황제의 정원을 환하게 밝히기 위하여, 기독교인들을 불태우기도 하는 등, 아주 잔인하게 기독교인들을 핍박했습니다. 도미티안 황제는 자기의 통치력을 강화하기 위하여, 자기를 “주와 신”으로 숭배하도록 강요하고, 이에 반대하는 기독교인들을 잔인하게 처형했습니다. 낮에는, 원형경기장에서, 굶주린 사자들을 풀어서, 기독교인들을 희생시켰고, 밤에는 그들을 불태워 죽였습니다. 이에 동조한 로마인들은 기독교인들을 조롱했습니다.
“너희들이 세상의 빛이냐? 더 빛나게 해 주랴?”
그 죽음의 공포 앞에서도, 기독교인들은 황제 숭배를 단호하게 거부하였고, 그리하여, 그들의 집을 빼앗기고, 가족과 이별하고,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다가, 로마 군인들에게 붙들려, 굶주린 사자들의 밥이 되거나, 화형을 당하여, 죽어 갔습니다. 그 이유는 단 한 가지였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요 11:25-26)”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핍박과 죽음 앞에서, 그들은 서로 격려하며 말했습니다.
“두려워 맙시다. 우리에게는 영원한 천국이 있습니다. 마지막 날 부활이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은 지금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이 전부인 것처럼, 그렇게 생각하며, 하나님과 전혀 상관없이 살아가지만, 하나님의 사람들은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영원한 생명을 사모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아무리 험한 시험과 역경이 몰아친다 할지라도,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생각하면, 새로운 소망과 용기가 넘친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라”(고전 15:14-15)라고 말했습니다.
부활이 없다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고 증언하는 저는 거짓말쟁이가 될 것입니다.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은 헛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직접 본 것도 아닌데, 우리가 부활이 있다고 믿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앞서간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부활을 믿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이 그렇게 증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오늘은 온 세계 모든 교회들이 함께 지키는 있는 종교개혁주일입니다.
1517년 10월 31일,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95개조의 반박문을 성문 앞에 붙였습니다. 그 당시 로마 카톨릭은 극심하게 부패한 상태였습니다. 마틴 루터 이전에도, 수많은 종교개혁 운동이 있었지만, 로마 카톨릭의 탄압과 핍박으로 실패했습니다.
마틴 루터가 다시 쏘아 올린 종교개혁의 깃발은 유럽 전체로 순식간에 번져나갔습니다. 멜랑히톤, 칼빈 등 수많은 종교개혁자들에게는 3대 핵심 가치가 있었습니다. “오직 성경, 오직 은혜, 오직 믿음”이었습니다. 특별히, 종교개혁자들은 “오직 성경”이라는 단어에 목숨을 걸었습니다.
로마 카톨릭은 오직 성경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보다는 로마 교황의 말을 우선시했습니다. 로마 교황의 말은 무오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들의 주장이 틀렸다고 하는 것을 감추기 위하여, 라틴어로만 성경을 읽고 쓸 수 있도록 했습니다. 라틴어는 일반 사람들은 전혀 사용하지 않는 언어였고, 신부들과 귀족들만 사용하는 언어였습니다. 그런 까닭에, 일반 사람들은 성경에 대하여 알 수가 없었습니다. 신부들이 하는 말이 전부 진리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라틴어로 된 성경을 누군가, 독일어나 프랑스어, 영어로 번역하면, 로마 교황의 이름으로 그 사람을 잡아다, 죽였습니다. 일반 사람들은 성경을 가까이 할 수도 없었고, 직접 읽을 수도 없었습니다. 성경 안에 기록된 내용에 대하여 알 수가 없었습니다.
마틴 루터가 95개조의 반박문을 발표했을 때,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발명한 이후였기 때문에, 그 반박문이 온 유럽에 순식간에 번져나갈 수 있었습니다. 종교개혁의 깃발을 든 마틴 루터가 제일 먼저 한 일이 있다면, 라틴어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여,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이 성공할 수가 있었습니다.
종교개혁은 “오직 성경으로 돌아가자”라는 운동입니다.
여러분! 성경을 올바로 알아야, 믿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은 단순한 책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책입니다. 영원한 진리가 담겨있는 책입니다.
요한복음 11장에 기록되어 있는 죽은 나사로가 살아난 이야기는 쉽게 믿을 수 있는 그런 이야기가 아닙니다.
마르다와 마리아, 그리고, 그의 오빠 나사로는 베다니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예수님은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다니에 도착했을 때는 나사로가 죽은 지, 이미 4일이 지난 다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오신다는 말을 들은 마르다는 예수님을 맞이하러 나왔습니다.
마르다는 예수님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신약 성경을 보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등장합니다.
바벨론의 침략으로 나라를 잃고 포로로 끌려갔던 유대인들은 70년 후에,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다음, “왜 하나님의 택한 민족인 이스라엘이 이방 민족인 바벨론에게 망했는가?”라는 이유를 찾았습니다. 그 이유를 제대로 알아야, 다시는 이방민족에게 나라를 뺏길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택한 민족인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율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나라가 망한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율법을 공부하고, 그 율법대로 살고자 했습니다. 그 사람들을 가리켜, 율법학자 또는 바리새인이라고 불렀습니다.
“하나님의 택한 민족인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정하신 제사를 제대로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나라가 망한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철저하게 제사를 지키고자 했습니다.
우리나라도 공자왈, 맹자왈 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조상 제사를 잘 모셔야, 자손들이 잘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지 않습니까?
여러분!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가, 유대인들에게 붙잡혀 심문을 받게 되었습니다. 가만히 보니, 그 자리에,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함께 있었습니다. 그때, 사도 바울이 “여러분 형제들아 나는 바리새인이요 또 바리새인의 아들이라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로 말미암아 내가 심문을 받노라”(행 23:6)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사이에 다툼이 생겼습니다.
왜냐하면, 바리새인들은 부활도 있고, 천사도 있고, 영도 있다고 믿고 있는데, 반면에, 사두개인들은 부활도 없고, 천사도 없고, 영도 없다고 믿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철저하게 연구한 바리새인들은 구약 성경을 통하여, 부활이 있음을 알고 믿었습니다. 오빠 나사로의 죽음 앞에서,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라고 말한 마르다도 부활을 믿고 있었습니다.
25-26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이것을 네가 믿느냐”
여러분! 예수님이 부활이요 생명이 되심을 믿으십니까?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고전 15:17-18)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믿고 살았던 사람들은 다 망한 사람들입니다.
부활이 없다면, 굶주린 사자 앞에서도 당당했던 사람들, 뜨거운 불길에 휩싸여 죽어가면서도 태연했던 사람들은 다 망한 것입니다. 부활이 없다면, 깊은 지하 동굴 카타콤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죽어간 사람들도 헛된 삶을 산 것입니다.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도 헛것이 되고, 우리도 망한 사람들 중의 하나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다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14,1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전에,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시 23:1-2)라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선한 목자가 되셔서, 푸른 풀밭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여 주신다고 하는데, 안 믿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우리의 선한 목자가 되셔서, 우리를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고, 악한 짐승으로부터, 악한 자로부터 우리를 지키시고, 자기 눈동자처럼 우리를 보호하여 주신다고 하는데, 어찌 안 믿을 수가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 8:1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은 앞날을 예측하기가 무척이나 어렵습니다.
며칠 전, 뉴스를 보니, 가상 인간들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말을 하고, 노래를 부르고, 광고를 하고, 여러 분야에서 다양하게 활동하던 가상 인간들이 많이 있었는데, 그 많은 가상 인간들이 지금은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진짜 사람은 아닌가? 가짜라고” 그렇게 생각할 정도로, 가상 인간들이 진짜 사람을 대신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언제부터인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고 합니다.
어둠이 점점 더 깊어가는 시대입니다. 무엇이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놀라울 정도로, 과학과 기술은 발전을 했는데, 그것을 누리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은 더욱더 어두워져만 가는 것 같습니다. 놀라운 기술을 바탕으로 아름답고 편리한 다리를 만들었는데, 그 다리에서 뛰어내리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뛰어난 기술로 미사일을 만들고, 탱크를 만들고, 총들을 만들어, 수출을 하고, 큰 돈을 버는 것은 좋은데, 그렇게 하여,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는 어딘가에서는 전쟁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어디에 쓰이는 물건들입니까? 공격이든 방어이든, 전쟁이 있어야, 쓸모가 있는 물건들을 선전하고, 판매하는 일들이 없어야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나라에서 다시는 전쟁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전쟁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전쟁은 어둠이기 때문입니다. 파괴와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지구의 모든 나라들이 함께 웃으며,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일까요?
우주를 향하여, 인공위성을 쏘는 시대에 사는 지금, 옆 나라 땅을 빼앗으려고 전쟁을 일으킨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어둠의 일을 벗어버리기 위해서, 우리는 이 땅에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믿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보이는 것만 보아서는 안됩니다. 뿐만 아니라, 보이는 것만 믿어서는 안됩니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보이는 것이라고 진짜가 아닙니다. 우리를 속이는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우리를 속이기 위하여 보여주는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우리의 육신의 눈에 보이지 않지만, 영적인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예수님의 질문에 마르다는 무엇이라고 대답했습니까?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으십니까? 예수님께서 부활이요 생명인 것을 믿으십니까? “내가 믿습니다”
우리는 매주일,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라고 시작하여,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라고 우리의 신앙고백을 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매주일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우리의 입술의 고백처럼,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음을 믿으십니까?
“내가 믿나이다”라고 고백했던 마르다는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나사로가 누워있는 무덤을 향하여, “나사로야 나오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사로는 무덤 밖으로 걸어나왔습니다.
여러분! 나사로가 다시 살아났음을 믿으십니까?
사도 바울은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고전 15:19)라고 말했습니다.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은 헛것이기에, 헛것을 믿는 우리가 세상 사람들보다 더욱더 불쌍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다시 살리셨습니다. 야이로의 딸도 살리셨습니다. 관에 누워있던 청년도 살리셨습니다.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께서, “부활을 믿노라”라고 고백하는 우리도 다시 살리실 줄로 믿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부활이요 생명인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2천년이 흘러가는 동안, 성경을 읽지 못하도록 하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성경을 불태우고, 성경을 믿는 믿음의 사람들도 불태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성경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우리의 믿음은 더욱더 확신을 갖게 됩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거짓을 기록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 땅에 사는 동안, 이 땅의 삶이 전부인양 사는 것이 아니라,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바라봄으로, 영원한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것을 기대하면서, 하루하루 복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선한 목자이신 주님, 우리를 인도하시고, 지키시고 보호하여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세상의 빛으로 오신 주님, 우리 안에 자리잡고 있는 어둠을 물리쳐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부활이요 생명이 되신 주님, 주님만을 믿사오니, 이 땅에서도, 영원한 생명을 누리며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