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갓길 차 속에서 아내의 지적을 받고 나는 아차! 하였다. 당선 군의원 캠프 해단 모임에서의 일 때문이었다. 퇴임할 군의원에 앞서 면장님에게 먼저 잔을 권한 것이다. 4년 전 선거사무장으로 보좌한 인연을 이어온 김 의원이다. 온통 당선자 축하 일색인 그 분위기에 묻혀 석양 길 나그네 된 심정이었으리라. 야인으로 내려서야 하는 처연한 그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것이다.
“의원님 죄송하게 됐습니다.”
밤이 늦었지만, 전화를 넣었다. 전화선 너머 표정을 보아하니 섭섭하셨던가 보다. 별생각 없이 옆자리 면장님부터 권한 것이지, 다른 뜻이 없음을 밝혔다.
“의원님, 한번 인연은 영원한 인연 아임니꺼, 사랑합니데이~”
“하하하~ 와 이카노.”
느닷없는 사랑 고백에 우린 크게 웃었다. 사람의 감정은 이렇듯 섬세하다. 공걸 바라는 마음에서 인연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다. 논밭머리 하고픈 공사야 없진 않았어도 오히려 경계하였다. 누를 끼치고 싶지 않았으려니와, 나는 이미 국가로부터 많은 혜택을 받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 군의원 8년을 내려놓아야 하는 퇴임식이 열렸다.
면사무소 행사장은 꽉 찼다. 자두수확으로 분주한 이때 이렇듯 사람이 모인 것은 그만큼 인심을 얻었다는 방증이 아닌가. 그런 본을 받고 싶다는 동료의원의 축사가 진심으로 들렸다. 나도 잘하고 살아야겠구나 싶었다. 시종일관 행사를 주관한 면장님이 고맙다.
김 의원이 그간의 소회를 털어놓았다. 의원 된 후 사모님은 장터를 딱 일곱 번밖에 안 갔단다. 표 달라 읍소할 땐 그토록 다급하더니 되고 나니 본척만척하더란 거였다. 한두 사람과 몇 마디 나누는 중에 스쳐 지난 사람들은 서운하였던 게다. 되기도 어려웠거니와 되고도 어려웠겠다. 당선자에게 당부하기를 낙선자와 어서 빨리 소주 한 잔 나누란다. 딱 여덟 표 차였으니 그 치열함은 대단하였다. 그만큼 장터의 분위기는 냉랭하기 이를 데 없어, 사태의 엄중함은 정부를 빼닮았다. 세상살이가 장난이 아니다.
우리 부부의 호접란도 단상에 배열되었다.
‘白手 감축 百壽 기원’이 인쇄된 리본이 가지런하게 드리웠다. 산을 내달리며 생각한 문구다. 빈둥거리는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백수’지만, 홀가분하게 털어버리고 장수하시란 의미를 담았다. 空手來空手去! 가는 세월이다. 고희를 바라보는 여생이 한층 보람되고 행복하시길 빈다.
첫댓글 남는 자와 떠나는 자
그 극과 극의 갈림길에서 김작가님
마음 고생 하셨군요 ㅎㅎㅎ
복마전 같은 선거판이었습니다. 한발 물러 서서 관전만 한 걸 다행으로 여깁니다.